오늘은 원큰댁 전사 날입니다.
160여 년 전 돌아가신 선조를 경건하게 추모하는 날입니다. 보통 1세대를 30년으로 추정한다고 하는데 5대조이니 150년을 개략적으로 추정하는데 실제와 거의 차이가 없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비문을 보면 문필에 재능이 있고, 지방의 향시 등에 급제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학고처사(鶴皐處士)로 불렸다는 기록이 있어서 종손한테 시문 등이 남아 있느냐는 질문도 하였습니다.
아쉽게도 기록을 발견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요즈음 옥천전씨 규천 전극항 선생의 시를 국역하여 몇 편을 전씨중앙종친회 카페 [전씨 중앙종친회 - Daum 카페] 에 올리고 있습니다. 빈거견흥(貧居遣興)을 인용해 보겠습니다.
貧居遣興
虯川 全克恒
一床書史困迃儒 數畝田園半已蕪 郭外寺僧時寄藥 門前官吏日催租 當軒竹葉如金碎 入砌苔文似錦鋪 莫笑馬卿徒立壁 才名猶得動成都
가난하게 살지만, 흥을 돋우며 산다. 규천 전극항
경서와 역사책 한 질만 가진 가난하고 굽은 선비가 작은 땅과 전원이 있지만 이미 반은 황무지이다. 성 밖에 있는 절의 스님이 때때로 약을 부쳐오지만 대문 앞 관리는 날마다 조세(租稅)를 독촉한다. 창문과 마주 본 대나무 잎새는 쇠 부스러기와 같고 섬돌에 오르니 이끼 무늬가 비단을 펼쳐 놓은 듯하오. ‘사마상여’의 집처럼 4개의 벽만 서 있다고 비웃지를 마시오 재주로 얻은 명망은 오히려 성도(成都)[한양]를 움직일 수 있습니다.
[국역] 전과웅 [출처] 규천 선생 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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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천' 선생은 지금으로부터 약 380여 년 전 분인데도 기록이 남아 있어서 지금도 그 당시를 회상하면서 선생의 업적을 알 수 있습니다.
'학고처사'도 기록이 남아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오전 11시에 13명이 참석한 가운데 홀기에 의해 여법하게 전사를 봉행하였습니다.
참석자는 원로 전찬진, 전한표, 전찬균, 전성표내외, 전과웅, 전찬흥내외, 전찬진내외, 전찬익내외, 전찬준 이었습니다.
전찬기는 이번이 처음이어서 묘소 부근까지 왔는데 찾지 못해서 농수산물도매상가 부근에서 기다리다가 “남강릉막국수”에서 점심을 먹을 때 합류하였습니다.
160여 년 전 선조를 한 해에 한 번 기억하고 추모하는 것은 아름다운 미풍양속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세대가 지나면 이 풍속이 이어질까? 하는 우려를 많이 듣습니다.
제수를 간소화하면서 아름다운 미풍양속을 계속 이어나갔으면 하는 희망을 품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