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https://www.youtube.com/live/jNkx6SiMNoE?si=StfBVQG6bW1cWM-L
디모데전서 강론 11
디모데전서 5:1-8
받으실 만한 것
바울 사도는 3:14-15에서 “14 내가 속히 네게 가기를 바라나 이것을 네게 쓰는 것은 15 만일 내가 지체하면 너로 하여금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행하여야 할지를 알게 하려 함이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라고 하여 당시 개인 집에서 모임을 가진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말씀하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집 안에서’ 일어나는 일은 하나님께서 하늘을 향해 돌이키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우리 가정에서 어떻게 해야 되느냐 하는 생활 지침, 혹은 바른 생활에 대한 교훈이 아니다. 하나님의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라고 하였기 때문이다.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터가 되고 든든한 기둥이 되어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나야 교회이다. 이런 점에서 바울 사도는 사람들의 모임에서 어떻게 구성을 이루고 조직을 어떻게 하며 혹은 그들 개개인이 가정 생활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만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도 교회 안에서 각 계층의 여러 사람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집이 된 자들의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여전히 복음에 대해 말한다.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 젊은이에게는 형제에게 하듯 하고”(1절). “늙은이”란 ‘프로스뷔테로스’로 ‘장로, 손윗사람, 더 늙은’이라는 뜻으로 남성 단수형으로 기록하였는데 주로 히브리어 ‘자켄’(늙은, 나이 많은, 장로)의 역어로 사용되었다. 17절에서는 “장로”로 번역하였다. ‘늙은 남자’ 혹은 ‘장로’는 진리로 먼저 된 자를 의미한다. “꾸짖지 말고”의 ‘에피플렛소’는 ‘겨누어 치다, 말로 책망하다, 꾸짖다, ~을 두드리다’라는 뜻으로 앞에 부정의 ‘메’가 있으니 ‘겨누어 치지 않는다’라는 뜻이다. “아버지에게 하듯 하며”라고 하였는데 하나님의 집에서 아버지는 오직 하늘 아버지이시다.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하시더라(마 12:50)
예수님은 어머니와 형제들을 부정하시는 듯한 말씀은 혈육의 관계를 무시하신 것이 아니라 말씀의 기준을 가지고 천국을 설명하신 것이다. “제자들을 가리켜 이르시되 나의 어머니와 나의 동생들”(마 12:49)이라고 하셨다. 즉 지금 이 땅에 하나님의 왕국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말씀을 나누는 자들이 어머니요 동생들이라고 혈육의 관계인 것처럼 말씀하셨는데 하늘 왕국의 새로운 가족이라는 뜻이다(이런 의미에서 13장에서 천국 비유를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우리의 행위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요 6:39-40)
4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자기 몸을 주셨으니 5 영광이 그에게 세세토록 있을지어다 아멘(갈 1:4-5)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것이고 그들을 영생으로 살리시는 것이다. 그러기에 하나님 아버지의 뜻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심으로 우리,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한몸된 교회로 대속을 이루시는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선언하였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음으로 하나님의 집이 되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 집이 되고 진리의 아들들이 되었다는 것은 진리로 먼저 된 자를 겨누어 치지 않는 것이고 곧 하나님 아버지를 대적하지 않는 상태라는 의미이다.
“젊은이”의 ‘네오테루스’는 ‘새로운, 젊은, 신선한, 어린’이라는 뜻인데 ‘네오스’의 남성 복수형이다. 4:12에서 “연소함”(헬, ‘네오테스’)과 같은 의미로 복음을 적극적이고 왕성하게 드러내는 자이다. “형제에게 하듯 하고”라고 말씀하였는데 성경에서 형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13 형제들아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여도 이상히 여기지 말라 14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요일 3:13-14)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라고 말씀한 것은 단순히 이 땅에서 혈육의 형제를 사랑하여 구원을 얻는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 안에서 형제가 되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생명이 주어진다는 의미이다. 형제로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는 형제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요한 사도는 밧모섬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환난과 참음과 나라에 동참하여 함께 교회 된 자를 “형제”라고 하였다(계 1:9).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 젊은 여자에게는 온전히 깨끗함으로 자매에게 하듯 하라”(2절). “늙은 여자(들)”는 1절의 “늙은이”와 같은 단어 ‘프로스뷔테로스’인데 여성 복수형으로 기록되었다. 여기서 여자 장로로 번역할 수 없으니까 1절을 “늙은이”라고 번역한 것으로 보인다. 여자로서 늙은 자란 이미 교회가 된 자를 표현한 것이다. “어머니에게 하듯”라고 하였는데 늙은 남자를 하나님 아버지를 대하듯이 하였다는 것과 비견된 의미로 늙은 여자를 어머니 대하듯 하라고 말씀한 것이다. 성경에서 어머니는 아들을 낳는 존재로 예수 그리스도만 드러내고 전하는 교회를 비유한다(계 12:5).
26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27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요 19:26-27)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 가운데 혈육의 어머니가 걱정되어서 요한에게 부탁하신 것이 아니라 제자 요한을 교회에 맡기신 것을 의미한다. 예수님은 십자가 죽음으로 영을 넘겨주신 자신의 몸 된 교회가 요한을 품고 또한 요한은 교회를 통해 복음을 나누도록 하신 것이다. 이런 점에서 어머니는 교회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늙은 여자에게는 어머니에게 하듯 하며”라는 말씀은 먼저 교회가 된 여자로서 진리를 나누는 하나님의 집이 되었는데 그 진리를 소중하게 여기는 자들이 교회라는 뜻이다.
“젊은 여자”의 ‘네오테라스’는 ‘네오스’의 여성 복수형으로 1절에서 “젊은이”와 짝을 이루는 표현이다. 성경이 이렇게 남자와 여자로 계속 표현한 것은 교회를 다양한 의미에서 설명하기 위한 것이다. 따라서 “자매에게 하듯 하라”라는 말씀은 여자 형제에 대한 것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를 형제로 말씀한 것이다. “온전히 깨끗함으로”라는 말의 ‘하그네이아’는 4:12의 “정절”과 같은 단어로 제의적 순결을 의미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복음의 순결함 안에 있는 상태를 의미한다.
“3 참 과부인 과부를 존대하라 4 만일 어떤 과부에게 자녀나 손자들이 있거든 그들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3-4절). “참”이란 말의 ‘온토스’는 ‘확실히, 실제로, 진실로, 사실상’이라는 뜻이고, “존대하라”라는 말의 ‘티마오’는 ‘가격을 정하다, 존경하다, 선물하다, 보상을 주다’라는 뜻이다. “과부”란 문자적으로 남편을 잃은 자이지만 성경적 의미에서 보자면 언약을 무시하여 하나님을 남편으로 삼지 않은 상태를 가리킨다. 그래서 “참 과부”란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다고 하나 아직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가 사실상의 과부라고 비유한 것이다(참고 롬 7:1-6). 그들에게 복음을 선물로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자녀나 손자들”이란 복음으로 진리의 아들들이 되고 또 그 아들에 의해 진리의 아들들이 된 자를 가리킨다. “효를 행하여”라고 번역한 것은 완전한 오역이다. 헬라어 ‘유세베오’는 “경건”(2:2, 3:16, 4:7-8)이라고 번역한 ‘유세베이아’와 같은 의미의 단어로 동사형으로 표현하여 ‘하나님을 두려워하다, 예배하다, 경건하다’라는 뜻이다. “보답”이란 말의 ‘아모이베’는 ‘돌려준 것, 보답, 보상’이라는 뜻이다.
과부, 즉 율법에서 자유롭게 되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 있는 자들에게 교회가 복음을 선물로 준다면 진리의 아들들과 손자들이 있게 될 것이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경외하여 부모, 즉 하나님 아버지께 돌려드리는 것이 되는데 그것이 하나님 아버지 앞에 받아들이실 것이라는 의미이다.
“5 참 과부로서 외로운 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주야로 항상 간구와 기도를 하거니와 6 향락을 좋아하는 자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5-6절). “외로운 자”란 ‘홀로 남겨진 자’를 의미한다. “항상”이라고 번역된 말 ‘프로스메노’는 ‘~을 향해 머무르다, 거하다’라는 뜻이다. 율법에서 과부, 고아, 나그네를 돌보라고 하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시는 모습을 보여주시기 위한 것이었다(신 10:18, 14:29, 16:11, 24:19, 시 68:5 등). 그러므로 과부로 홀로 남겨졌다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 되어 세상과 결별한 상태가 되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주신 십자가의 비밀을 넘겨주고 넘겨받는 간구와 기도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머물러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향락을 좋아하는 자”, 즉 교회가 세상과 벗이 되어 사는 자는 이미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이다.
36 또 아셀 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 하는 선지자가 있어 나이가 매우 많았더라 그가 결혼한 후 일곱 해 동안 남편과 함께 살다가 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눅 2:36-38)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약 4:4)
“7 네가 또한 이것을 명하여 그들로 책망받을 것이 없게 하라 8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7-8절). “이것을 명하여”라는 말은 이제까지 전한 진리의 말씀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 어떤 것인지 가르치라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것이 흠 없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이다.
24 그러므로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자기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25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그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26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27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 5:24-27)
결국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 이런 표현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신 대속의 죽음에 근거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하나님 집 안에서 복음을 나눔으로 하늘을 향해 돌이키는 일이 되어 복음으로 굳건히 서 있어야 함을 전하였다.
“친족”이란 직역하면 ‘자기 자신의 것, 자신에게 속한 것’이고, “가족”이란 ‘집에 속하는’이라는 말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씀하는 “친족, 가족”이란 혈육적인 관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집이 된 관계를 가리킨다. “돌보지 아니하면”의 ‘우 프로노에오’는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깨닫지 못하다’라는 뜻이다. “배반한”의 ‘아르네오마이’는 ‘거절하다, 부인하다’라는 뜻이고, “불신자”란 ‘아피스토스’로 ‘믿음이 아니다’라는 뜻이다. 즉 하나님의 집에 대해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를 부인하는 것이고 믿음이 아닌 것보다 더 심한, 못한 상태라는 말씀이다. 비교급을 사용하여 믿음이 아닌 것에 대한 최악의 상태를 표현한 것이다. 교회는 믿음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의 집으로 온전히 드러난다는 뜻이다(20241208 강론/주성교회 김영대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