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주제
"원효는 불교를 어렵게 이해하는 대신, 누구나 쉽게 접하고 실천할 수 있는 ‘대중불교’를 강조했다. 그는 무애가(無碍歌)와 같은 노래를 통해 일반 백성에게도 불교 사상을 전했으며, 이는 배움이 특정 계층의 전유물이 아님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현대 교육 현장에서 지식과 도덕을 가르칠 때, 절대적으로 규율을 강조하는 방식과 학생 스스로에게 최대한 자율성을 부여하는 방식 중 어떤 접근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하는가?"
철학과 24학번 안가은입니다.
저는 현대 교육 현장에서 지식과 도덕을 가르칠 때, 학생에게 자율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절대적으로 규율만을 강조한다면 학생들은 규칙을 잘 따르는 순응적인 사람이 될 수는 있어도, 스스로 배우고 탐구하는 힘이나 새로운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능력이 발달하기 어렵습니다.
규율 중심 수업은 정해진 답과 방법만을 강조하기 때문에 학생들이 다양한 관점에서 사고하거나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제시하는 기회를 제한합니다. 이는 창의성과 비판적 사고 능력을 길러주지 못하게 됩니다.
원효는 불교 교리를 단순히 외우거나 따르는 것만으로는 깨달음에 이를 수 없다고 보았습니다. 그는 깨달음이란 각자가 자율적으로 사유하고 실천하는 과정 속에서 얻어지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교육도 외부에서 강요된 규율만으로는 참된 배움에 이를 수 없습니다. 학생 스스로 배우고 탐구하며 깨달음을 얻는 과정 속에서만, 지식은 자기 것으로 체화되고 도덕은 삶 속에서 실천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제가 지금 참여하고 있는 한국철학사 토론 수업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자율성이 보장되지 않고 절대적인 규율이 강조된다면, 학생들은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말하기보다 정해진 틀 안에서만 발언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토론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며 형식적으로 의견을 나누는 수준에 머물고, 본래 토론이 가진 다양한 시각을 비교하고 충돌하며 사고를 확장하는 과정은 사라지게 됩니다.
결국 교육의 목적은 단순히 규칙을 지키는 순응적 인간을 길러내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배우고 성찰하며 책임 있게 행동할 수 있는 자율적 인간을 형성하는 데 있다고 생각합니다.
첫댓글 안가은 학우의 주장은 잘 읽어 보았습니다. 저는 22학번 철학과 유주원 입니다. 절대적 규율을 강조하는 입장으로서 반론을 하려고 합니다. 자율을 보장한 토론 수업을 교수님께서는 해주고 계십니다. 하지만 그렇게 자율을 강조하는 와중에도 교수님께서 하라고 하지 않았다면 침묵의 유지는 끝없이 이어졌을 것입니다. 또한 지식과 도덕은 절대적 규율이 있어야 합니다. 절대적 규율이 없이 자율적 토론및 배움은 그저 학생이 배움에 있어 혼란의 가중 및 부담이 더 커질것 입니다. 절대적 규율 아래에 도덕을 배우는 것은 가이드 라인이며 이것이 사회의 규칙이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절대적 규율 아래에 지식을 배우는 것은 학생의 문제해결 능력을 키워주기도 합니다. 앞에 문제가 있을때 어떻게 해결하는지에 대한 가이드 라인이자 그를 활용하여 문제의 해결이라는 결과까지 다가갈 수 있기때문입니다. 그렇기때문에 현대의 교육현장에는 절대적 규율아래 지식과 도덕을 가르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 가르침의 방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