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aum
  • |
  • 카페
  • |
  • 테이블
  • |
  • 메일
  • |
  • 카페앱 설치
 
카페정보
카페 프로필 이미지
사)우리 역사학당
카페 가입하기
 
 
 
카페 게시글
문화 사상 여행 스크랩 우실하 - 동북공정 너머 요하문명론
天風道人 추천 0 조회 25 13.06.17 17:44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난 봄에 출간된 것으로 한 번 읽어봐야 되겠다고 생각하고도 이제야 읽게 되었다. 전공은 역사인데, 환경문제에 관심이 많다보니 환경동아리 운영하랴, 초록교육연대 나가보랴, 또한 환경관련 연수에 참여하랴 도통 역사 관련 책은 읽기가 쉽지 않다.

 

흙으로 빚은 고대인물상을 책 전면에 확대시킨 '요하문명론'은 그 내용이 아주 궁금했는데, 왜냐하면 우리 고조선사의 흐릿한 기억을 고고학적으로 증명하려면 요하 유역에서 고고학적인 발굴이 진행되어야 마땅하기 때문이다. 고조선사를 읽으면 최초의 도읍이 어딘지도 불명확하고 고작 '평양'만 달랑 나오는데, 고조선이 한반도내의 평양에서 시작되었을리는 만무이다.

 

 

1987년 중국 내몽고자치주 적봉시 소하서 유적에서 기원전 7000년경의 신석기 유물이 발견되어 중국은 종래의 황하문명을 능가하는 중국문명의 신기원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데, 흥륭와문화(기원전 6200경), 사해문화(기원전 5600년경), 부하문화(기원전 5200년경), 조보구문화(기원전 5000년경) 등의 신석기 유적지와 동석병용의 홍산문화(기원전 4500년경), 소하연문화(기원전3000년경), 초기 청동기시대의 하가점하층문화(기원전 2000년경) 등이 몰려있다.

 

20여년전에 하가점문화층을 발굴한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있는데, 이제 어느 정도 유물 유적 파악이 정리된 모양이다. 놀라운 사실은 흥륭와문화층에서 세계최고의 옥이 발견되었는데, 그 옥귀걸이 모양이 강원도 고성 문암리 유적과 전남 여수 안도패총에서 발견된 옥결의 모양이 완전히 일치하고 있다. 이는 요하문명과 한반도 신석기 문화가 공통의 옥문화를 간직하였고, 서로 교류하였음을 알려주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사실 흥륭와유적은 요하는 아니고 그 아래의 대릉하의 지류인 망우하 상류 연안의 구릉지이다.  흥륭와유적에서 현재의 중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오래된 신석기시대 집단거주지가 발견되어 '중화원고제일촌'이라는 칭호를 얻고 있다.

 

대련대학의 유병호(조선족)는 요하문명의 특징으로 (1) 세석기문화, (2) 용과 옥 그리고 조상숭배, (3) 평저통형토기와 지자문토기를 들고 있다. 평저형토기는 동북 3성과 내몽고 지역, 흑룡강 하류, 그리고 한반도 동북부에서 출토되고 있다.

 

 곰형옥기

용형옥기 

 

중국인들이 자랑하는 용 유적지도 종래 하남성 복양시 서수파 앙소문화 유적지 1호묘에서 기원전 4400년경의 용 형상물이 발견되어 '중화제일용'(조개껍질을 쌓아 만든 방소룡)이라고 자랑하였으나, 사해문화 유적지에서 그 보다 1000여년이 앞서는 석소룡(돌로 쌓은 용 형상물)이 발견되어 용의 기원이 황하 지역이 아니라 요하 지역임을 입증하게 되었다.

 

특히 홍산문화 만기유적지인 우하량 유적지(기원전 3500년경)에서는 방형과 원형의 제단, 여신묘(흙으로 만든 여신상 발굴), 적석총이 발굴되어 초급문명사회, 혹은 초기국가사회로 진입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이는 앙소 문화 보다도 1000년을 앞서는 것으로 중국문명의 기원이 종래의 앙소문화에서 요하 홍산문화로 옮겨가야 한다는 주장이 중국 내부에서 정리되고 있다고 한다.

 

 

(뉴허량(우하량) 동방의 여신상 머리 부분)

 

현대 중국은 80년대 개방화 이래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을 만들어 왔는바, 한족 중심의 종래 중화관에서 벗어나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을 포괄하는 것으로 모두 다 황제의 후손이고 중화민족임을 강조하여 경제발달의 후폭풍으로 중화제국이 붕괴되는 것을 미연에 차단하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

 

종래 앙소문화를 기원으로 하는 황하중심문명을 중국 고유의 것으로 보아왔으나, 그 보다 1000년 가량 앞서는 문화가 장강 하류 하모도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되었고(1973), 다시 그 보다 2000년 가량이 앞서는 요하문화를 발굴해내게 되었다(1985). 그동안 4대문명 가운데서도 가장 늦은 시기의 황하문명에 불만을 지녀왔던 중국은 차제에 황하기원론을 버리고 그 보다 앞선 요하문명기원론으로 옮아가 세계최고의 소원도 성취하고 55개 소수민족의 기원도 요하에서 흘러간 것으로 만들어 체제를 안정시키는 고고역사프로젝트를 실현시키고 있는 중이다.

 

요하 지역이 현재 중국 땅이며, 우리로선 접근 조차 거의 불가능해 뭐라 할 말이야 없지만, 이렇게 되면 동북공정이 문제가 아니라 단군 까지도 황제의 자손이 되는 웃지못할 지경에 다다를 것이다. 저자 우실하 교수는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한낱 동북공정이 아니라 그 너머 대중화주의 건설을 위한 중국의 21세기 국가 전략을 응시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북경에서 서북으로 120km 떨어진 하북성 탁록현에는 귀근원과 중화삼조당이 조성되어 있는데, 귀근원이란 '중화민족의 근원으로 돌아가는 정원'이라는 의미이며, 중화삼조당은 '중화민족 3인의 조상을 모신 사당'을 말한다. 중화삼조당 안에는 중국 조상인 염제와 황제는 물론이고 한국인들이 민족의 조상으로 높이려 하는 치우마저 끌어다 놓았다.(1997년) 또한 연변조선족자치주 왕청현 만천성국가삼림공원 안에는 양손에 마늘과 쑥을 든 백의신녀(웅녀상. 높이 18미터)를 세워 웅녀가 중국사람임을 드러내고 있다.(2001년)    

 

우실하는 중국의 대중화주의가 '역사전쟁'을 너머 '문명전쟁'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면서, 그 보다는 유럽공동체를 본받아 '요하문명'을 동북아공동체의 공동시원으로 설정하고 한, 중, 일, 몽골, 러시아 등이 협력해나가는 단초로 만들어 나가길 제안하고 있다.

 

유럽문명이 에게해문명을 공동의 시원문명으로 받아들여서 르네상스를 일으켰듯이 요하문명을 동북아 문화공동체의 근원으로 활용하여 '동방의 르네상스'를 준비해 가자고 호소하고 있다.

 

중국과 싸워서 빼앗을 수도 없고, 중화제국이 붕괴되어 55개 소수민족이 각기 독립하게 되면 또 모르르까, 현재로서는 누구의 소유를 넘어서 문화적 시원과 동북아문명의 교류사를 직시하는 계기를 삼아야 되겠다. 우선은 한국인이라면 요하문명에 꼭 관심을 갖고 일독해 보아야할 책이다.  

 

[  참고자료 ; 한겨레 검색에서 '요하문명론' 두드리면 mbc 느낌표에서 2006. 12.에 방영한 동영상이 나옵니다. 경향신문에서 기획기사로 '코리안루트를 찾아서'도 좋은 자료입니다.  ]

 
다음검색
댓글
최신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