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의 책 외1편
연두 정말옥
우물에서 잠자던 개구리가
경칩을 맞듯
책은 잠들지 않는다
손에서도 잠들지 않는다
내 마음 담아내는 글자들
그 '언어의 집'에서 나는
잠들어야 한다
꽃들이 고개를 세우듯
꽃들이 반짝이는 눈을 뜨듯
내 문장도 눈을 떠야한다
손가락이 책의 온도를 잰다
책의 온도가 내 가슴속에서
고요를 들려주고 있다
내 안의 고요가 꽃으로
피어오르는 날
구름을 타고 오르는 새가 되겠지
사우 우체국에서
연두 정말옥
사우동 우체국*에 갔다
내 팔의 핏줄이 긴장할 정도의 물건을 카트에 싣고
4호 상자를 집어 스카치테이프로 뚜루루루 삐뚤빼뚤 둘렀다
상자 안 물건을 직원의 창구 앞까지 이동할 수가 없었다
내 몸이 정상이 아니다
빈 상자를 여기에 놓고 물건을 하나하나 담아도 될까요?
무거운 것을 들 수 없는 수술 환자라서요
내가 말을 마치자 담당인 김00*라는 직원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왔다
그녀는 3호 상자가 맞겠다며 빛의 속도처럼 테이프를 상자에 뚤 두르고 물건을 담았다
한00라는 이름표를 단 남자 직원은 플라스틱 그릇을 든 듯이 상자를 저울 위에 올려놓았다
상자의 무게는 마음 밖으로 밀리고
내 마음 속 저울은 김00의 나비 같은 동작과
한00의 상자 드는 모습으로 숫자를 높이고 있었다
아! 두 직원, 그들의 무게를 다시 빈 카트에 싣고
우체국을 나왔다
오늘 하루는 천만금을 얻은 듯 하늘이 푸르렀다
그들의 배려의 무게는 나의 뇌리에서 영원히 솜털처럼 떠다닐 것이다
*사우동 우체국 : 춘천시 북쪽에 위치한 우체국 이름.
*김00 : 모바일 영수증에서 알게 됨.
*정말옥 약력 :
영남대학교 사범대학 졸업
고려대학교 및 강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
한국문인 수필등단(2018)
이태극전국백일장시조부문 차하(2018)
종합문예 [유성 및 문학고을} 시 등단(2019)
강원시조 신인문학상 당선(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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