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남해안 바닷길 속 최치원 설화
1)비금도(飛禽島)설화
비금도는 목포로부터 약 50여km 떨어진 곳에 있는 섬이다. 원래는 세 개의 큰 섬과 작은 섬으로 구성된 소군도 였으나 간척사업으로 인해 현재의 비금도가 되었다.
비금도에는 최치원과 관련하여 대두산, 수도산, 선왕산 주위에 그의 설화가 전승되고 있다. 고운정설화, 선왕산 기우제설화, 관청동지명 유래설화가 전하고 있는데, 고운정(孤雲井)설화는 비금면 수도 마을의 뒷산인 수도산의 정상에 있는 샘과 함께 전하고 있는데 설화의 내용을 간추려 보면 다음과 같다.
최치원이 당으로 건너가기 위해 수도리 앞을 지나게 되었을 때 마침 배에 식수가 떨어진다. 최치원이 수도리 뒷산 봉우리에서 물이 나올 것이라 하여 그 곳을 팠더니 물이 솟아올랐다. 이에 사람들이 이 샘을 고운정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 당시 섬에 가뭄이 들어 농사를 짓지 못하여 사람들이 고통스러워하고 있었다. 이러한 이야기를 사람들이 듣고 고운(孤雲)에게 청하기를 비를 내리는 기우제를 지내 달라고 청을 하니 이에 최치원은 선왕산에 가서 기우제를 지내니 비가 내렸다. 후에 최치원은 배에 물을 채우고 비금도에서 기상을 보고 난 뒤 우이도로 건너갔다.¹
이 설화는 비금도에 전하는 설화인데 최치원은 민중에게 해결사로 나타나고 있다.
바다에서의 항해와 섬에서 가장 중히 여기는 문제는 바로 식수 문제이다. 섬은 사방이 바다이기 때문에 물은 많으나 식수는 부족하다. 또한 물은 섬이 무인도와 유인도의 기준이 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러한 식수 문제를 해결한 최치원은 섬 주민 에게는 영웅이다. 식수 문제를 해결해 주고 가뭄으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섬 주민에게 비를 내려 농사를 짓도록 해 주었다. 이는 최치원이 섬 주민에게 얼마나 큰 영웅인지를 시사해 주고 있다.
2)우이도(牛耳島)설화
우이도는 비금도와 함께 연근해와 원해의 연결 고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 섬에도 또한 최치원과 관련하여 설화가 전해지고 있다.
최치원이 우이도 상산에 도착하였을 때 우이도에는 가뭄이 극심하였다. 고운 선생을 본 주민들은 가뭄을 물리치도록 간청했다. 고운 선생은 즉시 북해 용왕을 불러서 가뭄을 해결하라고 했으나 옥황상제의 명령이 아니면 용왕의 마음대로 할 수 없다고 거절하였다. 이 말을 들은 고운 선생은 화를 내면서 속히 비를 내리라고 명령했다.
기가 꺽인 용왕은 하는 수 없이 고운 선생의 명령대로 비를 내려 가뭄을 해결했다. 하늘에 있는 옥황상제는 뒤 늦게 이 사실을 알고 화를 내면서 용왕을 잡아 죽이라고 명령했다. 이를 듣고 용왕이 최치원에게 살려달라 간청하자 고운선생은 용왕을 도마뱀으로 만들어 선생의 무릎에 숨겨 죽음을 면하게 하였다. 이후 고운은 성산봉에서 바둑을 즐기며 머물다 중국으로 떠났다고 한다. ²
이 설화는 성산봉 제 2봉과 함께 전하는 설화이다. 섬 주민들은 현재까지도 성산봉 제 2봉을 신성시 여긴다고 한다. 최치원이 남겨놓은 철마와 은쟁반은 최근까지 전해졌으나 현재는 남아 있지 않다. 이 설화는 구전뿐만 아니라 신라<<수이전>>의 <최고운전>에도 함께 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