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마을에 꽃핀 잘살기 운동
경상남도 통영군 한산면 장사도 지도교사 옥 미 조
성공내용
무지와 가난으로만 살아온 낙도 진뱀이 섬의 분교에 부임한 젊은 교사 옥미조 선생이 자기 봉급으로 사들여온 손수레로 마을길을 넓히면서 시작된 생활환경 개선사업은 이 섬마을 주민들에게 열심히 일하면서 저축하는 습관을 일깨워 주었으며 소득증대에 못지않은 저축 장려에 성공한 마을로 발전시켰다.
마을현황
○ 가 구 : 14호 ○ 인 구 : 83명 ○ 저축실적 : 180만원
고사리 같은 손으로 손수레 끌고
이 섬에 내가 부임한 것은 72년 3월이었다. 학교는 조용했다. 대절 선에 이삿짐을 싣고 산꼭대기에 위치한 학교에 들어서니 운동장에서는 방목하는 염소가 뛰놀고 있었고 전 주민이 환영 나와 새로 부임하는 나를 반가이 맞이해 주었다. 학교 주변은 동백 울타리로 싸여 있었다. 학생들이나 마을사람들은 쉬운 대로 아무데고 드나들었고 용변도 제멋대로 하는 형편이었다. 나는 여러 가지 할 일을 계획 세웠지만 우선 눈앞에 있는 가까운 일부터 그리고 쉽게 돈 들지 않는 것부터 해보기로 했다. 문을 바로 여닫는 일이라든가 신발을 제자리에 벗어 두기라든가 변소 문을 열 때 노크하는 일, 담임인 내가 아침에 만났을 때 인사하는 일 등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하나하나 가르쳐 주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오랜 시간이 걸려도 나는 그 일을 끈기 있게 지도했다. 청소하고 난 다음 빗자루, 걸레를 제자리에 가져다 두기도 지도하고 임시로 만든 교문으로 다니도록 계몽시켰다. 나는 환경정화 계획을 수립하고 틈틈이 정리 작업을 해나가는 한편 밤으로 집집마다 다니면서 내 계획을 말씀드리고 호응하게끔 협조해 줄 것을 부탁드렸다. 개인, 가정, 마을이 학교와 마찬가지로 많은 문제점이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문제점을 파악했고 문제해결을 위하여 또 새로운 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더 많은 마을사람들을 만났고 장기적인 계획을 수립했던 것이다. 나는 운동장을 고르기 위해서 봉급을 타오면서 8,500원을 주고 손수레 한 대를 사왔다. 손수레 한대는 몇 달 걸려야 해낼 일을 한 달도 걸리지 않아서 15도 경사의 좁은 운동장을 넓힐 수 있는 한계선 까지 축대를 쌓고 높은 곳의 흙을 운반하여 평평하게 만들었다. 손수레를 처음 보는 마을 주민들이나 학생들은 호기심에서 손수레에 가득 흙을 파 담는 일을 즐겁게 해내었다. 집이 학교와 멀리 떨어진 마바위 학생들까지 일과를 다 마친 뒤 늦게 까지 한번 손수레를 타기 위해 갈 때는 흙을 담아 싣고 갔다. 달이 있는 밤은 저녁을 먹고 나와서 운동장을 골라 주어서 학교가 세워지고 3년을 그대로 둔 운동장이 고르게 되고 또 넓어진 셈이 되었다.
낮은 곳의 운동장 흙을 채우기 위해 마을로 가는 산 흙을 파려고 손수레가 다닐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사람이 겨우 다닐 수 있었던 30~40cm폭의 옛 길은 1.5m의 넓은 길로 닦아지고 그 뒤 손수레는 마을길을 따라 다니면서 좁은 길을 넓게 해주었다. 8,500원짜리 손수레는 새것을 사온지 불과 3개월 만에 더 쓸 수 없는 폐품이 되고 말았지만 손수레 하나가 해낸 일은 엄청난 것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감히 생각조차 못한 일들을 연약한 학생들의 힘으로 그것도 틈틈이 해내었고 동네의 모든 길이 그 후로 차차 넓혀져 가기 시작했으니 일하는 즐거움까지 안겨다 주었다.
해묵은 폐습을 버리고
그러나 웬만한 지방에선 별로 문제될 것도 없는 이러한 정도의 성과로 만족할 수 없었다. 가장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도박, 폭음(暴飮) 불법고기잡이(폭발물을 사용하는 고기잡이)가 그것이었다. 아마 이것은 어느 섬마을을 막론하고 보다 나은 내일을 건설하는데 가장 암적인 요소가 되는 문제들일 것이다. 폭음의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빈곤에 있다. 아무리 잘살아 보려고 발버둥을 쳐도 워낙 가난하고 거기다가 빚까지 걸머지고 있으면 체념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빚을 갚는 것이 선결 문제였다. 즉 빚을 청산하고 홀가분한 마음으로 내일을 설계할 수 있어야만 이 의욕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밝은 내일을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보내는 사람이 어찌 패가망신의 근본인 폭음을 일삼을 수 있겠는가? 또한 도박을 없애기 위해서는 도박할 시간을 없애는 것이 절실했다. 도박도 없애고 열심히 일하는 기풍도 조성하고 거기에서 소득도 늘어날 것이니 일석삼조의 효과가 있을 것이 아닌가. 나는 무엇으로든지 주민들의 몸과 마음을 일하는데 모아야 갰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마을에 보리 타작기를 구입해 오는 일에 관하여 의견을 모우는 한편 마을에 자가 발전기를 설치하여 전등을 가설하는 일에 의견을 나누는 등 회의를 자주 소집했다. 상수도 공사도 하고 선착장의 설계도 했다. 여러 가지 분담하여 계획을 세우게 하여 공동 결의로 그 순서 절차를 정해 마을 전주민이 같이 관심을 가지고 참가하는 방법을 취했다. 한 달에 한 번씩 새마을 봉사일로 정하여 83명의 주민이 공사현장에 전원 나오게 했다. 그러한 끈질긴 노력의 대가로 작년도에는 두 집을 제외하고는 전가정이 지붕 개량이 되었다. 또한 집수(集水)광도 만들었다. 산 위에 위치한 이곳에선 바닷가에 있는 우물에 까지 내려가서 물을 길어오려면 여간 힘들지 않기에 지붕 물을 받아두는 저장고로 블록으로 쌓아 만드는 집수광이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다. 물을 길어오는 수고와 시간을 아껴서 가정의 가축을 돌보고 책을 읽어볼 수도 있고 자녀들을 보살펴 줄 수 있도록 하였다.
호박구덩이를 파면서 소득증대에 힘써
인간은 내일의 기다림 속에서 살고 있다. 내일에 대한 기다림은 아마 잘사는 기다림일 것이다. 너도 또 나도 잘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잘살려면 무엇보다도 소득이 늘어나야 된다. 소득증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장사도가 내일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것도 소득증대에 있었다.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은 한번 실패했다고 해서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이다.
소득증대사업 뿐만이 아니라 무슨 일이든지 이것을 이룩하려면 문자 그대로 백절불굴의 정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 내가 손을 댄 것이 호박농사였다. 첫 해 호박농사는 만족할만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랬지만 가을이 되고 사료 채취가 가능하게 되어 돼지새끼 4마리를 사왔다. 졸업생중 진학 못하는 가정에 주어서 새끼를 키워 살림에 보태 쓰고 자활 하도록 부탁했다. 졸업생과 같이 또 호박구덩이를 팠다. 전교생은 1인당 20구덩이 졸업생은 60구덩이에 퇴비까지 하였다. 나는 105구덩이를 파서 인분을 한 장군씩 넣는데 2월 초순까지 걸렸다. 마을 사람들이 부지런해야겠고 일거리를 만들면 얼마든지 일할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미역 한 철 부지런히 눈코 뜰 새 없이 일하지만 미역 철 2개월이 지나면 그냥 허송세월이다. 깃새 하는 10~11월 사이도 간조의 차이에 맞추어야 하기 때문에 바쁘지만 쉬는 틈이 많다. 미역도 한때뿐이요 물때 맞춰 하기 때문에 종일하는 것은 아니다. 노는 땅 없애고 일 년 내내 일할 수 있도록 해야만 이 마을은 가난이 없어지고 진뱀이 섬의 신화가 달성되리라 생각하였다. 그래서 가축 기르기를 권장했다. 염소는 우리 마을의 자연적 입지조건이 가장 적합한 곳이어서 옛날부터 많이 기르고 있었다. 그렇지만 별로 큰 이익을 올리지 못했다. 그 이유는 기르는 방법을 잘 몰라 그 관리에 소홀하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에서 길러보려고 한 쌍을 13,000원에 구입해 왔고 그 뒤에 10마리를 더 구입해서 12마리가 되었다.
사온 염소를 교미시켰더니 새끼를 낳아 꼭 배가 되었다. 새끼를 낳은 지 한 달 전후하여 다시 모두 교미를 시켰다. 우리 학교는 이제 자활학교 사업으로 1년에 20만원의 순수익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염소에 관한 문헌이면 모두 구해서 읽고 염소 기르는 사람을 만나 얻은 경험담을 나는 학생들에게 열심히 가르쳐 주었다. 염소는 이상 없이 잘 자랐다. 내가 들어오기 전엔 보통 10~20마리뿐이던 장사도의 염소는 77마리로 불어났다. 소가 2마리에서 13마리로 돼지, 닭 개가 수 없이 늘어나 지금은 모두 바쁜 주민들이 되었다. 내가 산을 다니다가 염소새끼 낳을 거라고 알려주면 자기 집으로 데리고 가서 보호해 주어 실패를 막고 내손으로 염소새끼 낳은 뒷수습을 해준 것만도 40여 마리가 넘는다. 염소의 아픈 다리는 내손으로 늘 고쳐주고 있다. 염소나 개, 돼지에게 질병 약을 먹이도록 가정방문이나 길을 지나가면서 보살펴 준다. 내가 사준 돼지는 3개월도 못가서 돼지 값이 껑충 뛰어올라 한 마리에 12,000~13,000원이 되어 약 4만원의 순이익을 보았고 예정대로 분만하게 되면 적지 않은 수익이 오르리라는 것을 자기들이 먼저 계산 해두고 있다. 나는 늘 호박 잘 키워 주기만을 부탁드리고 돼지 집 청소와 흙 넣어 주기를 관심 있게 살펴주니까 자기들도 버릇이 들고 말았다. 학교의 돼지 기르기, 닭 기르기 등의 책은 벌써 헌책이 다 돼가는 실정이다. 한 가지 재미있는 일은 요즘은 내가 집을 다니면서 이렇게 해주었으면 하고 바라는 말은 며칠 안으로 곧 이루어진다는 점이다. 마늘 대신에 양파를 배추 대신에 당근을 심자고 말했을 때 처음에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러나 여름에 심어준 당근이 가을에 가서 배추를 심어선 500원어치도 안 되는 땅에서 5,000원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당근이 자라는 동안은 마음껏 뽑아 반찬도 하고 김장철에 팔러갔더니 판로도 쉽고 가격도 배추와 비길 데가 아니라고 기뻐하고 있다. 내가 당근 씨 한 홉을 사와서 어머니들에게 심는 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며칠 뒤에는 서로 우리 집에서 당근 씨를 사와서 심으니 와달라는 부탁이 많았다. 그래서 복합비료를 뿌리고 골을 치고 알맞게 흙을 고르고 한나절씩 심어 주었더니 한 달쯤 후에는 발아 성적이 아주 양호하게 자라났다. 2월 초순 날씨가 따뜻해지고 건조해서 물을 뿌리도록 했더니 30분이나 걸리는 먼 곳까지 물동이를 날라 물을 뿌려 가꾸었고 2월 중순은 오히려 기온이 낮아져 혹시 실패하여 모처럼의 의욕을 끊지나 않을까 싶어 나는 기도를 해가며 염려했다. 두 치쯤 자라났을 때 뒷거름을 주어 성공할 수 있게 하였다. 나는 온상에 양배추를 심어 각 가정마다 20~30본씩 분양해 주었다. 추치니와 춘원마디 호박도 온상에 심어 모두 나눠주었다.
우리 마을의 경우면 가지, 호박, 당근, 오이, 양배추 등은 3천여 원 어치만 씨를 사와서 심으면 마을 주민들은 그것을 기르고 가꾸는 것만큼은 부지런해지고 앞으로 또한 자기들이 가꿀 수 있도록 지도만 해주면 정말 부지런해지고 잘사는 마을이 되리라 나는 믿고 그 깊은 뜻대로 약간의 경비는 자활학교 수익과 내 봉급 일부를 투자하는데 인색치 않으려 결심하였다. 또 양배추는 학교에서 개간한 60여 평의 산지 일부에 심어 점심시간마다 학생들에게 먹여보려고 한다. 우리 학교는 작년부터 젖자는 양 두 마리를 사와서 거기에서 나오는 하루 약 4~5리터의 양유를 무료 급식시켜 왔고 금년부터는 주 1회 분식으로 점심 한 끼를 학교에서 먹는다.
벌기보다 잘 써야 한다.
그러나 소득이 늘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늘어난 소득을 어떻게 쓰느냐 하는 가장 중대한 문제가 남아 있는 것이다. 늘어난 소득을 저축해서 보다 유용하게 써야만 이 보다 잘사는 내일을 기약할 수 있음은 물론 내일에 대한 꿈을 키울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 전교생과 아직 학생이 없는 가정 까지도 모두 저금통장이 있다. 처음에는 5부 이자를 얻어 쓰고 갚을 줄 모르던 주민이었으나 직접 가정을 방문하여 변소 약치기, 가축 돌보기, 아픈 환자 약 가져가기 등으로 가정방문 할 때 권유하고 설득하였더니 상당히 많은 저금을 해주게 되었다. 학생들은 혹 어머니가 과자라도 사오면 “이 돈으로 저금하자”하고 과자를 먹지 않을 만큼 되었고 작년 5월부터 학용품(공책, 연필, 칼, 지우개, 색지, 도화지, 책받침 등) 일체를 자기들의 가정에서 사지 않고 학교에서 무상으로 사와서 나눠주기 때문에 학용품 사는 것만큼 저금하도록 권해서 더욱 더 많은 돈이 저축되고 있다. 자활학교 수익금이 높아지는 대로 기금 마련을 위해 학교 자체의 적금도 불입할 생각이며 한 달에 염소 1마리 정도 판매한 금액으로 학교의 모든 시상은 저금으로 해준다.
다른 학교 같으면 교내행사의 상품이 학용품으로 족하지만 우리학교는 학용품을 무상 지급하므로 저금으로 시상을 하고 있다. 풀베기 대회를 개최하여 양의 사료와 퇴비를 하고 그 곳에서 나온 수익금이 저금으로 돌아가는 생각을 하며 처음과 끝이 일치되고 학교와 마을이 또 개인이 상호 이익 체계 속에서 움직여지고 있는 느낌이 든다.
처음에는 우리들의 저금으로 중학 진 학금을 지급할 계획이었으나 이에 그치지 않고 그 이상 계속 적립하여 마을 동력선을 사는데 쓰기 위해 계획 추진 중이다.
불행하게도 장사도는 선착장이 없어 배 탈 곳이 없다. 동시에 동력선이 없으므로 많은 손해를 보고 있다. 예컨대 급한 환자가 있어도 이곳에서는 어쩔 수 없고, 다른 곳의 배들이 와서 고등어, 전복 등을 모두 잡아가더라도 노를 젓는 배로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1년 동안 이렇게 손해 본 금액이면 아쉬운 대로 동력선 한 척이 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아무튼 저금은 뚜렷한 목적 하에 실행되도록 해야겠다. 지금 장사 도는 100만원, 30만원, 50만 원 등의 적금이 늘어가고 있고 학생저금으로 월 1만 원가량 저금되고 있다. 진뱀이 섬도 뱀 섬의 실화를 원형 그대로 보존할 자랑스러운 섬이 될 날도 오래지 않다고 본다.
자료출처 : 새마을운동 시작에서 오늘까지 (내무부) 19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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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옥미조선생님 파이팅~~~
사람은 지도자를 잘만나야 심신이 편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