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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구에 ‘색깔’을 입히자
정인서/조선대 겸임교수
“당신은 누구입니까?”
이런 질문을 받으면 우리는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언뜻 대답을 할라치면 흔히 자신이 다니고 있는 직장과 직위를 대거나, 하고 있는 일을 말하기가 쉽다. 그러나 정작 자신만의 고유한 특징을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직장이나 일이 자신의 특징 가운데 일부일 수도 있지만 사실 그게 전부는 아닐 게다.
그렇다면 요상한 질문을 한 번 해볼까.
“당신은 어떤 색깔입니까?”
더욱 난감해진다. 색깔이라니. 내가 무슨 흰둥이나 검둥이라는 말인가. 미국 땅에서나 써먹을 말을 한국 사람에게 물어본다면 우리가 어려서 미술시간에 배운 살색이라고 말하면 될 수 있을까. 우리가 배웠던 살색은 약간 분홍 빛 나는 황색 비슷한 색이라 여겨진다.
이번에는 이런 질문을 해보자.
“당신이 살고 있는 동네는 어떤 특징이 있습니까?”
그래, 서구에 어떤 특징이 있을까. 한번 이번 기회에 짚어나 보자.
필자는 광주에 올라온 지 28년 됐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광주 땅에 첫발을 디디면서 광주 사람이 되기 시작한 것이 1978년이니까 벌써 살아온 세월의 절반을 훌쩍 넘기며 버텨 온 것이다. 그 세월동안 이상하리만치 서구 쪽에서만 인연을 맺어왔다.
지금은 남구로 편입된 진월동을 시작으로 쌍촌동, 농성동, 화정동, 월산동을 거쳐 현재의 풍암동에 이르기까지 나는 서구 쪽 사람이었다. 진월동과 월산동은 지금은 남구이지만 내가 처음 기거할 당시에는 서구였다. 이렇듯 서구를 떠나 살아본 적이 없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동네가 예전에 살던 동네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이리라.
사람은 한 번 정을 붙이면 그 지역에서 멀리 못가는 모양이다. 그 지역의 산세와 사람들에 익히고 취해 있어 쉽사리 떠나지 못하기 때문일까. 아마도 그 이유인지는 몰라도 나는 서구가 좋다. 서구는 부모님이 살아계시는 고향인 목포에 가기 가깝고, 도심에서 그리 멀지 않은데다, 가까운 친구들이 이웃에 있어 아무 때건 저녁에 불러내 잎새주나 OB맥주 한 잔 마실 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 서구는 지도를 놓고 보면 동구, 북구, 남구, 광산구가 둘러싸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광주의 중심지역이다. 구도심과 신도심이 적당히 어울러져 있는가하면 재래시장과 대형백화점, 할인점 등이 공존하고 아파트 밀집지구와 일반주거지역이 혼재하며, 곳곳에 알맞은 규모의 저수지가 있고 중요한 것은 염주체육관과 월드컵경기장이 있다는 사실이다.
1997년 말 스위스의 컨설팅사인 기업전략그룹(CRG)은 세계 192개 도시를 대상으로 정치적 안정성과 사회복지, 범죄율 등 42개 기준을 적용해서 ‘살기 좋은 도시’평가보고서를 발표했다. 이 보고서를 보면 캐나다가 지구상에서 가장 살기 좋은 국가로 평가됐고, 몬트리올은 북미지역에서 세 번째로 살기 좋은 도시로 거론됐다. 미국에서는 애틀랜타와 유타주의 솔트레이크시 정도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동네로 꼽힌 데가 수도권의 일산지구 다음으로 광주 서구의 풍암지구라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잘 기억이 나지 않지만 주거환경의 여러 가지 비교지수 가운데 주민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체육시설, 1-2시간 코스의 등산로, 종합병원, 저수지, 근린공원 등을 가장 높게 꼽았던 것 같다.
그렇다면 또 한 번 이렇게 요상한 질문을 해도 될까.
“서구는 무슨 색깔입니까?”
특징 몇 가지는 말할 수 있어도 난데없는 색깔이라니 이 질문에는 난감하기 짝이 없다. 서구는 무슨 색깔일까. 그냥 이것저것 다 있는 색깔이 아닐까. 어떻게 한 색깔만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인터넷에서 ‘광주광역시 서구청’ 홈페이지를 찾았다. 여기에는 서구의 색깔이 있을 것이라는 가슴 터지는 기대감을 안고 말이다. 여기서는 당연히 찾을 수 있겠지.
우선 홈페이지 메인 화면에서 ‘클릭서구’를 찾아가봤다. 첫 번째로 심벌마크가 푸른색을 강조하며 눈에 띠었다. 그곳에는 “심벌마크의 전체적인 도형은 하늘, 산, 강을 표현하여 아름다운 생활터전인 서구의 자연환경을 나타내며 역동적인 태양은 광주의 새 심장으로서의 서구, 쾌적하고 여유 있는 서구, 편리하고 기능적인 서구, 정감 있고 따뜻한 서구, 튼튼하고 생산적인 서구를 이루어 나가는 원동력으로서의 역할을 의미한다”라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 있었다. 그리고 상징나무는 느티나무, 상징 꽃은 목련, 상징 새는 해오리 등이 연이어져 있었다.
이 설명으로는 서구의 색깔을 찾기는 무언가 부족하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서구의 연혁과 구정 여건을 찾아봤다. 1973년 7월 1일 개청한 서구는 벌써 32년의 혈기왕성한 나이에 접어들었다. 2004년말 기준으로 102,125세대에 315,987명이 살고 있어 인구수로는 약 4분의 1에 가까울 정도다.
그리고 서구 지역 특성을 살펴봤더니 ▲광주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금당산, 개금산, 송학산이 병풍처럼 둘러있어 자연과 도시가 조화를 이룬 쾌적하고 살기 좋은 전원도시 ▲호남 제일의 양동시장, 광천종합버스터미널이 소재한 기존 도심과 개발여지가 많은 유덕, 서창지역의 농촌이 복합된 도시지역 ▲상무신도심, 풍암지구, 금호2지구가 개발되어 21C 광주의 상업·교통·문화·교육·정보 등의 중심역할이 기대되는 지역 등으로 소개되어 있었다.
참으로 미래 전망이 좋은 지역임에 틀림없는 것 같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정작 질문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서구의 색깔이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하는 수 없이 홈페이지의 열린 서구, 생활서구, 관광서구 등 여기저기 기웃거렸지만 역시나 서구의 색깔을 찾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혹시 내가 빠뜨린 색깔은 없는 것일까 하고 다시 한번 반문하기도 했다.
그러다가 결국 차라리 서구의 색깔을 만드는 것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말하는 색깔이라고 하는 것은 서구의 문화일 수도 있고, 서구 사람만의 특징 일수도 있고 주거환경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색깔을 만들거나 이야기하는 일은 쉬운 일도 아니며 도시지역이라는 특성상 주민단합도 어려운 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더라도 서구의 색깔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이라면 그 중심요소인 ‘색(色)’.을 먼저 알아야 할 듯싶다. ‘색(色)’.이라는 이 단어를 보면 어떤 생각이 먼저 들까. 사람마다 자신이 갖는 최근의 관심사에 따라 다른 많은 이야기들을 할 것이다. 그 것은 ‘색’이라는 단어가 갖는 의미 자체가 너무 다양하기 때문에 다양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우선 이 단어는 국어사전에서 ‘빛깔’이란 뜻을 갖고 있다. 빛깔은 물체의 거죽에 나타나는 빛의 성질이라 한다. 결국 색은 우리가 보는 물체에 대한 빛의 반사작용으로서의 피상적인 결과물인 것이다. 그런데 그 색에 현혹되어 심상이 흔들리며 몸이 달아오르는 것이라 생각한다.
색과 관련된 단어도 꽤 많다. 불교에서 형상과 색채를 가지고, 직관적 감각으로 인식되는 모든 존재 또는 물질을 이르는 말로서 색을 말하기도 하고, 여자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여색, 오색 빛깔의 헝겊을 층이 지게 차례로 잇대어 만든 아이들의 색동저고리, 눈에 선뜻 드러나 보이는 물건의 맵시와 빛깔을 말하는 깔색 등 우리네 말로 색깔을 표현한다면 정말 한없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세상 만물은 다 고유한 색이 있을 뿐 아니라, 그 속성을 색으로 표현할 수도 있다. 성공하는 사람에게도 고유의 색깔이 있다고 한다. 도전하는 사람에게는 빨강을, 포기하지 않는 낙관주의자에게는 주황을, 끊임없이 성장하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초록을 부여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빨강 주황 초록 파랑 보라 노랑, 여섯 가지 색깔을 통해 성공의 바다를 건너봄이 어떨까.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당연히 빨강 노랑 파랑 등 수많은 색을 이야기 할 것이며, 시를 쓰는 이는 마음의 색을 형상화 할 것이며, 춤을 추는 사람은 그 색을 온 몸으로 표현할 것이다. 이 정도 되면 보통 사람은 좀 어려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요즘엔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우리가 먹는 채소나 생선도 색에 따라 다른 기능을 한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다. 과일과 채소의 고유한 색깔은 우리 몸속에서 저마다 서로 다른 기능을 하는 데 빨간색은 항암효과가 탁월하고, 초록색은 폐와 간의 건강에 좋다고 한다. 또 검정색은 노화를 방지하고 젊음을 되돌려 주는 등 형형색색의 과일과 채소, 알고 먹어야 100% 건강을 섭취할 수 있다는 이야기에 빠져들고 있는 것이다.
이야기가 본질에서 잠깐 벗어났다. 이제 서구의 색깔을 찾아야겠지요. 색깔에 따라 이렇듯 다양한 생각과 논의가 있을 수 있다. 사람마다 하는 일에 따라 색깔에 따른 다른 견해를 각기 마련이다. 필자 역시 그러한 범주에서 벗어날 수 없다. 때문에 서구에다가 어떤 특정한 색깔을 입힐 수 없는 일이다. 자연스레 색깔이 만들어지길 바랄 뿐이다.
다만 몇 가지 제안을 해보고자 한다. 순전히 개인적인 견해이긴 하지만 주민편의와 볼거리를 만들어가는 차원에서 행정을 책임지는 서구청은 물론 서구 주민들의 합심을 기대해봄직 하다. 이 제안은 빛깔이라는 단어의 뜻처럼 피상적인 색깔을 만들어가는 일이다.
우선은 눈에 잘 띄는 아파트는 물론 학교의 담과 도심 곳곳의 옹벽에 그림을 그려 넣는 일이다. 그렇다고 각자가 아무 그림이나 그릴 수는 없는 일이기 때문에 서구 전체의 미관을 고려하며 지역별 특성이나 역사성을 살려 형상화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서 서구의 심벌마크 색깔을 잘 이용하는 방안도 덧붙여볼 수 있다. 이는 관련기관의 협조가 뒤따라야 하고 아파트의 경우 민간기업이나 주민자치위원회와 협의하여 비용의 일부를 지원하는 예산상의 문제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더 욕심을 부린다면 흔히 스카이라인이 있는 것처럼 서구의 스카이컬러도 생각해볼 수 있다. 인근의 산 정상에서 내려다보거나 비행기나 헬기 등에서 서구를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스카이컬러를 만드는 일이다. 이는 단색으로 표현하든 아니면 서구의 심벌마크를 그려 넣든 모든 건물의 옥상을 정해진 색상으로 칠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은 건축허가를 낼 때 조건부로 지정한다면 그리 어렵지는 않다고 본다. 그것 건축규제완화에 위배된다고 하면 건물주의 협조사항으로 요청할 수 있을 것이다. 어차피 색깔을 칠할 것이므로 서로의 협조가 이루어지도록 상생문화를 만들 필요가 있다.
다음으로 최근 광주시가 거리 표지판이나 건물 번호를 새로 부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느 아파트단지에 들어서면 초행자이거나 몇 번 가본 사람이라도 어느 아파트를 찾아가기가 쉽지 않다. 많은 사람들이 아파트단지에 들어서면 한두 번 정도 길을 잃거나 헤맨 적이 있을 것이다. 더욱이 자신이 사는 아파트단지여도 자기가 사는 근방만 대충 알 뿐 같은 아파트 단지일지라도 다른 아파트 이름을 대며 누가 길을 물어볼 경우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때가 있을 것이다.
풍암지구나 금호지구, 상무지구 등 대형 아파트단지의 경우 아파트 이름은 다를지라도 전체를 하나의 아파트단지라는 개념으로 일산지구처럼 순차적으로 동번호를 붙여가는 일이 필요하다. 그렇다면 어떤 초행자라 할지라도 길을 쉽게 찾아갈 수 있다. 이 정도는 행정절차로 주소변경의 의미로 접근하다면 어렵지는 않을 것이다.
다음으로 모 방송프로그램에서 보면 골목의 담을 없애는 일을 하고 있다. 오히려 담이 없어지니 길이 넓어지고 범죄가 줄어드는 효과도 있다고 한다. 이제는 좁은 골목동네에서 ‘내 땅, 네 땅’이라는 생각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우리 땅’이라는 생각으로 골목 동네 담 없애기 운동을 벌여야 한다. 이웃이 누구인지 알고 함께 살아가는 동네이며 이웃집을 봐주는 일도 서로서로 할 수 있는 동네야말로 화목한 동네가 아니겠는가.
여기에다 이왕이면 서구의 랜드마크를 의식적으로 키워내야 한다. 연예계에서 스타를 만들기 위해 몇 년 동안 작업을 하는 것처럼 서구에서도 가볼만한 지역이나 기업, 업소 그리고 특정 인물을 행정이나 주민홍보, 언론을 통해서 만들어내는 작업이 필요하다. 자칫 특정지역이나 특정업체, 특정인 지원이라는 일부 반발도 예상되지만 서구발전과 미래를 생각한다면 과감한 의사결정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이러한 랜드마크의 선정은 담당 공무원과 자문위원 의견도 중요하지만 지역주민의 의견, 필요하다면 주민투표를 통해서라도 만들어가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
또 청소년 페스티벌이나 예술인들의 작품발표회 등을 월드컵경기장 앞 광장이나 시청 앞 광장 등에서 주말이나 특정 일 등 정례적으로 개최하여 그 날에 그곳에 가면 가족들이 함께 즐기는 공간을 운영하여 문화의 중심지역으로 만들어야 한다. 또 국악전수관에서 정례적으로 열리는 국악연주회와 같은 특정 공간 내에 숨어있는 행사 등을 아파트단지 마당이나 주민자치센터 등에서 화려하지 않지만 순회공연을 하는 것도 문화의 향유를 베푸는 일일게다.
지금까지 서구의 색깔을 입히기 위한 몇 가지 논의를 해보았다. 이는 실제로 색깔을 칠하는 일도 있고 서구의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는 색깔과 같은 일도 있다. 아마도,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어떤 일은 주민 공청회가 필요하고 다른 일은 예산도 들어가고 용역도 필요할 것이며 공무원들의 배가된 노력이 뒤따를지 모르겠다. 정작 중요한 것은 하고자 한다는 의지가 필요하다.
의지만 있다면 모든 일은 뛰어다니면서 예산을 줄여가며 할 수 있을게다. 돈과 행정절차로만 이를 시도하기보다는 주민의 합의를 이끌어내고 설득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운 때이긴 하지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색깔 있는 동네가 서구이길 진심으로 바란다.
정인서/무등일보에서 경제부장과 문화부장 정치부장 논설위원 등을 지냈고 한국지역문화콘텐츠개발원장을 역임했다. 현재는 광고디자인전문회사 (주)나래콤 이사로 있으며 조선대와 광주대 등에서 리더십과 커뮤니케이션 과목을 담당하는 겸임교수이며 경영학박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