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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이 꽃 피운 비단 한 필
김우연
안녕하세요? 저는 대구에 살고 있는 김우연입니다. 직장은 구미 사곡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 재직 중입니다. 소중한 시집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을 잘 읽었습니다.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천천히 읽으면서 느낀 소감을 써 보았습니다. 축하의 인사로 올립니다.
Ⅰ. 들어가며
김영애의 세 번째 시조집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에는 15편씩 6부로 나누어 실었는데 모두 90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그 형식이 단시조 위주로 되어 있는 것이다. 단시조는 80%이며 연시조는 20%이다. 연시조 중에는 2수의 연시조가 12편으로 13.3%, 세 수의 연시조는 5.6%, 4수의 연시조는 1.1%로 나타났다.
그리고 배행의 특징으로는 종장은 첫 음보를 한 행으로 하여 모두 3행으로 처리한 것이 91%나 되었다. 이처럼 이번 시조집의 형식상 특징으로는 시형은 단시조이며, 종장을 3행으로 처리한 것이 특징이다. 현 시조단에는 단시조보다는 연시조의 비율이 높게 나타나고 있으나 근래에는 시조의 모체인 단시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단시조가 시적 긴장이 높아서 시조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김영애의 이번 시조집은 그 형식에 있어서는 시조가 가야할 방향을 앞서 실천하고 있는 시인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시조 미학의 핵심은 종장에 있다. 김영애 시인은 종장을 특별히 의식하여 창작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종장의 미학을 터득한 것으로 보인다.
내용으로는 크게 눈에 띄는 것으로 1) 사물을 통한 삶의 의미를 부여한 시 2) 순수 서정(그리움, 아름다움) 3) 인생의 달관(유한한 존재의 깨달음, 순리에 따르는 삶) 4. 체험(기행 포함)에서 오늘 인생의 깨달음 등이 있었다.
시집 해설에서 원용우(문학박사, 전 교원대 교수)는 “김영애 시인은 긍정적인 인간형이다. 그의 작품집 전체를 읽어보면 남을 공격하거나 비판하는 내용이 없다. 사물을 따뜻한 눈으로 바라보고, 남을 이해하고, 사랑으로 감싸는 정신이 들어 있다.”고 하였다. 그의 긍정적 인생관이 빚어낸 작품의 결정체를 어떻게 형상화하였는지 간단히 살펴보도록 한다.
Ⅱ. 살펴보기
사물을 통한 삶의 의미 부여
사물을 통한 삶의 의미를 부여한 작품으로는「조각보」, 「씀바귀」,「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 「어머니의 독백」, 「잡초」등이 시적 형상화가 잘되었다.
잊혀진
사연들이
몰려와서 추억되듯
버려진
쪽, 쪽들이
박음질로 거듭난다
아팠던
순간이라도
엮어 두면 내 인생.
-「조각보」전문
이 작품은 이 시집에 첫 작품으로 실은 것으로 시인의 애정을 엿볼 수 있다.
우리의 삶에서 지난날의 “잊혀진 사연들”들이 추억이 되듯이 쓸모없던 헝겊 조각들이 조각보로 새롭게 변한 것에 화자의 시선이 간다. 그러다가 종장에서 비약하여 “아팠던/ 순간이라도/ 엮어 두면 내 인생”이라고 한다. 보통 사람들은 좋았던 추억은 되새기고 아팠던 기억은 잊으려 한다. 그러나 김영애 시인은 “아팠던 순간”도 모으려고 한다. 그만큼 삶을 진지하게 돌아보고 내면을 정화시키는 긍정적인 인간성이 드러나고 있다. 초장의 “추억”과 종장에서 “인생”은 같은 것이다. 그러나 반복하면서 한 차원 더 비약을 시키고 있다. 즉, 정리되고 정화되고 아픈 것도 수용하는 삶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윤금초는 “시조의 종장은 옷을 다 입은 다음 옷고름을 매는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종장이 시조의 생명입니다. 시조창작의 기본 원리인 선경(先景)(먼저 서경을 묘사하고, 혹은 시상(詩想)을 펼치고) 후정(後情)(나중에 작자의 사상·정(情)을 진술하는 것)의 과정을 거친 다음에 종장에 이르러서는 쥐었다 펼치는 확산의 경지를 이끌어내야 하는 것입니다. 초장·중장에서 이끌어낸 이미지(詩想)을 종장에 가서는 확 뒤집는(反轉) 효과를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라고 하였는데 이 작품은 종장에서 반전의 효과를 잘 살리고 있는 것이다.
온몸이 찢어지게
땅을 헤쳐 나왔으니
삭아서 고인 눈물
쓰잖고 어찌하리
어머니 시집살이를
꾹꾹 짜면 이 맛일레.
-「씀바귀」전문
초장에서는 씀바귀가 돋아날 때 “온몸이 찢어지게 땅을 헤쳐”라고 하여 한 생명이 태어날 때의 산고(産苦)를 연상케 한다. “4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라고 한 T.S. 엘리어트의 말을 떠오르게 하는 말이다. 그런데 그 고통은 어머니의 고된 시집살이로 비유함으로써 시상이 전환되고 확대되고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옛날의 가난하던 시절이나 고된 시집살이 얘기하면 전설 같은 이야기로 들릴는지 모를 일이다. 그러나 시인은 어머니의 고생을 떠올리고 있다. 당연히 효심(孝心)이 지극한 분임을 알 수 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아기를 낳고 부모가 되면 자기 자식을 무한히 사랑함을 쉽게 볼 수 있다. 옛 사람들은 어른들 앞에서는 자식에 대한 애정을 깊게 표시하지 않았다. 그렇게 함으로써 할아버지 할머니들의 사랑을 손자·손녀들이 받으며 자라났다. 옛날이라고 해서 부모가 자식을 지금보다 사랑하지 않았겠는가. 그런데 요즘은 어른 공경은 잊어버린 사람들을 흔하게 볼 수 있다.
윤금초는 “문학 작품의 현대성이란 당대의 정서, 그 시대의 인간 삶을 다루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였다. “당대의 정서”란 현실비판적인 것도 있을 수 있지만, 인간 삶에서 가장 기본적인 단위가 가정이요 가족이다. 그런데 요즘은 핵가족화가 되어 가족이란 개념에는 어버이가 제외되는 일이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인간성의 상실인 것이다. 이런 시대에 김영애 시인의「씀바귀」은 무한한 감동을 주며 우리들을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바람에 시달리고
뙤약볕에 그을리며
명을 잇는 비름풀이
제 아무리 곤고한들
내 평생
굴곡진 걸음
질긴 삶에 비하랴.
-「어머니의 독백」전문
앞에서 살펴본 「씀바귀」는 화자의 입장에서 ‘어머니의 고생’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이 작품의 화자는 ‘어머니’이며 어머니가 독백하는 형식으로 나타났다. 물론 시인이 어머니를 생각하는 극진한 마음은 같은 것이다.
여기서 비름풀은 참비름보다는 ‘쇠비름’일 것 같다. 흔히 ‘오행초’라는 풀이다. 밭에서 뽑아서 뙤약볕에 던져두어도 비가 오면 다시 살아난다. 생명력이 무척 강한 풀이다. 그런데 그 ‘비름풀’이 아무리 “곤고한들” 어머니의 “굴곡진 걸음”에는 비할 수 없다는 것이다.
‘보릿고개’를 겪던 ‘어머니의 세대’는 목숨을 견뎌 낸 것만으로도 경이로운 일이다. 너무나 숭고한 일이다. 아무리 그 고생을 칭송한들 끝이 있으랴. 그러나 요즘은 너무 먹어서 살 뺀다고 야단이다. 복지를 외치며 더 받겠다고 야단이다. 연금이다 무엇이다 무엇인가 손해를 본 듯이 야단이다. 정상적인 사회는 아니다. 이 시집 해설에서 원용우은 “우리 한국사회가 발전하지 못하는 것도 이러한 부정적인 인간이 좌지우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시집을 다 읽고 나서도 「어머니의 독백」은 내 가슴속에 나도 모를 슬픔의 울림의 메아리가 끝없이 들려왔다. 그래서 이 시집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울림이 큰 작품이었다. “굴곡진 걸음” 속에는 함축적 의미도 넓고 깊은 것이다. 그래서 나는『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에서 이 작품을 가장 절창이라고 본다.
다만 종장에서 “내 평생/ 굴곡진 걸음/ 질긴 삶에 비하랴.”는 중의적으로 해석될 수도 있는 것 같다.
1) 내 평생의 굴곡진 걸음이 (비름풀의) 질긴 삶에 비하랴.
2) 내 평생의 굴곡진 걸음과 질긴 삶을 (쇠비름의 곤고함과) 질긴 삶에 비할 수가 있으랴
물론 시인은 (1)과 같이 썼을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 평생/ 굴곡진 걸음(이)/ 질긴 삶에 비하랴”라고 주격조사 ‘–이’가 생략된 때문이다.
주격조사를 생략한 것은 종장 둘 째 음보를 5자로 맞추기 위하기 때문인 것 같다. 이번 시집에서 종장의 둘째 음보를 5자로 쓰고 있는 것이 92%나 되었다. 이렇게 볼 때 김영애 시인은 둘째 음보를 가급적 5자로 고정시켜 표현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 그런데 종장의 둘 째 음보는 6자가 되어야 정형시가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그래서 위에서 6음절이 되어도 괜찮다고 본다.
색색이 핀 꽃밭에서
쓸모없다 뽑았더니
뿌리 덜렁 내놓고도
맥을 잇는 잡초 너는
젖물린
겨드랑 사이로
호미 잡은 아낙이다.
-「잡초」전문
꽃밭에서 뽑아서 버린 잡초가 뿌리를 내놓고도 죽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을 “젖 물린/ 겨드랑 사이로/ 호미 잡은 아낙이다.”라고 비유하였다. 시집 해설에서 원용우는 “새롭고 기발한 착상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에게 젖을 먹이면서도 호미를 잡고 김매는 여인에 비유한 것이다. 그 여인의 삶의 모습이나 잡초의 생명력이나 대동소이하다고 생각한다. 언어를 절제하면서도 기발한 착상을 한 데에 이 작품의 백미가 있는 것이다.”고 칭찬하고 있다.
“잘 된 시나 시조를 보면 거의가 작자의 새로운 발견에 의해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은 것”이라고 한다. 이 작품은 상상력을 발휘하여 참신한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 것이 돋보인다. 문학 작품은 상상력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보여주는 모범이 되는 작품이다. 이런 작품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어머니의 고생에 대한 생각과 그리움과 극진한 효심이 발동하여 이런 작품을 낳게 된 것이다. 참신한 발상도 그냥 책상에서 머리로 짜낸다고 되는 것은 아니다. 설사 짜내었다 할지라도 감동을 주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작품은 가슴으로 쓴 시이기에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에 흐르고 있는 여인은 주로 ‘어머니’를 나타내고 있는 것으로 보아 여기서의 “호미 잡은 아낙”도 고생하시던 어머니를 회상하면서 쓴 것으로 보인다.
척박한 땅일수록 살 맛은 배가 되어
쓰디 쓴 맛을 위해 심지 굳게 내려놓고
이 땅의
어머니 주름
그 깊이를 닮는다.
눈물에 젖어 찢긴 인고의 순간들이
삼동을 견뎌내고 열어젖힌 봄 하늘에
작아도
선명한 꽃을
다부지게 찍는다.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일부
「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은 이 시집의 표제로 삼은 작품이다.
이 작품에도 앞에서 살펴본 작품과 같이 어려운 시절을 헤쳐 온 ‘어머니’에 대한 생각들이 흐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씀바귀’를 노래하고 있지만 실상 그것은 어머니를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어머니의 주름”이라는 말을 볼 때 ‘척박한 땅에 심지를 굳게 내려놓은 씀바귀’은 ‘어머니’를 표상하고 있다. 그렇기에 마지막인 셋째 수에서는 씀바귀는 긴 삼동의 “눈물에 젖어 찢긴 인고의 순간들”을 이겨내고 봄 하늘을 활짝 열어젖힌다. “작아도/ 선명한 꽃”이란 이 땅의 이름 없이 살다간 세대들이 아닌가. 씀바귀는 작은 꽃이다. 그렇지만 “꽃을 다부지게 찍는다.”고 하여 어떤 고난도 이겨내고, 화려하지 않지만 끝내 당당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김영애 시인의 깊은 사유와 삶의 연륜이 배어 있는 작품이다.
지금까지 어떤 사물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여 시적 형상화를 이룬 몇 작품을 살펴보았다. 사물을 적적히 비유하여 삶의 의미를 부여하였으며, 기발한 착상이나 비유를 통하여 시적 형상화를 잘 이루었다. 일관되게 흐르고 있는 것은 어머니에 대한 생각이 겉으로 또는 저변에 흐르고 있었다. 그것은 시인의 효성이 지극한 성품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효(孝)란 서양에는 단일어로는 없는 단어라고 한다. 효란 지난 유교 시대의 이념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꼭 필요한 것이라고 본다. 우리의 전통 사상인 효를 잃는 것은 인간성의 상실이기 때문이다.
2. 순수 서정
순수서정을 노래한 것으로는 (1) 그리움 (2) 아름다움의 두 가지가 있었다.
‘그리움’을 노래한 것으로는 「함박눈」,「도라지꽃」,「봄눈 오는 날」,「추억」등이 있다.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으로는 「담너머 봄」, 「만추에」등이 있다.
가. 그리움
명꽃이
몽글몽글
허공을 흐르면서
귀잠 든
산천 위에
수묵화를 치고 있네
그리움
한 점 다가와
낙관으로 앉는다.
-「함박눈」전문
‘명꽃’을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길가에 핀 목화’라고 나와 있다. 초장에서는 함박눈이 내리는 모습을 시각적으로 실감나게 잘 표현하였다. ‘몽글몽글’이라는 단어가 실감이 나도록 적절하게 쓰였다. 둘째 수에는 한 폭의 수묵화를 그리고 있는 중임을 시각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종장에서는 시상을 비약시켜 ‘그리움’이 다가온다고 하였다. 눈이 내릴 때 누구나 그리워하는 감정들은 평범한 감정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낙관으로 앉는다”고 하여 참신한 은유적 표현을 하고 있다. 도저히 잊을 수 없는 선명한 추억을 떠올린다는 것이다. ‘명꽃’ , ‘귀잠’ 등 우리 고유어를 잘 살려서 쓰는 것이 돋보인다. 우리 고유어를 찾아내어 쓰고, 심지어 사어가 된 말 중에도 좋은 말을 되살리는 노력을 우리 시인들은 해야 한다. 특히 시조시인들은 앞장 서야 한다고 본다.
시는 서정 갈래의 대표적 장르이다. 서정의 정서는 예부터 ‘그리움’의 정서를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이 표현하였다. 그러나 서정이 보편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자아도취적인 서정으로 머물면 흔히 말하는 ‘음풍농월’이 되기 쉽다. 그런데 김영애 시인의 시에는 한결같이 자신의 삶이 녹아 있어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다.
기웃대는 봄을 막고
흰 눈이 내리는 날
눈발에 묻어오는
촉촉한 그리움을
명치 끝
손으로 비며
속탈인 양 재운다.
-「봄눈 오는 날」전문
이 작품도 제목만 보면 평범한 제목이다. 그리고 그리움의 정서를 노래한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작품은 종장에서 “명치 끝/ 손으로 비벼/ 속탈인 양 재운다”라고 표현한 것이 참신한 표현이다. 원용우는 해설에서 “종장의 표현은 너무 재미있다.”며 “우리가 어렸을 적에 배가 아프면 어머니나 할머니가 명치 끝을 쓸어 주면서 통증을 갈아 앉혀주시던 기억이 난다. 그처럼 명치 끝을 손으로 비벼서 그리움을 잠재운다고 했으니 그러한 묘약은 세상에 없을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된다. 필자도 이 작품을 통하여 ‘그리움’을 잠재우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고 하였다. 평범한 것을 새롭게 표현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런데도 김영애 시인은 평범한 그리움의 정서를 참신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 평소 시인이 시를 쓸 때 절차탁마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다.
나. 아름다움
날마다 바라봐도
입술 꼭꼭 여미더니
애타는 동박새가
봄 한 입 물고 왔나
홍매화
터지는 웃음
온 동네가 발가네.
-「담 너머 봄」전문
봄 경치의 아름다움에 경탄하고 있는 것이다. 꽃이 피어도 꽃 핀 줄을 모르고 사는 현대인들이 많다. 도시인들은 달이 떠도 보름달의 은근한 빛을 못 느끼고 사는 것이 현실이다. 아름다운 경치에 감동은 느끼는 것은 시인이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심성일 것이다. 아름다운 것을 보고도 감동을 받지 못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초장에서는 화자가 홍매화를 바라보면서 꽃을 피우기 기다리는 심정이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봄은 쉽게 오지 않고 꼭꼭 입술을 여미고 있다. “입술을 꼭꼭 여민더니”란 표현도 시각적 이미지가 잘 형상화 되었다. 중장에서는 드디어 매화가 피기 시작한 것을 “동박새가/ 봄 한 입 물고 왔나”라고 하여 상상력을 통하여 형상화함으로써 시를 효과적으로 살리고 있다. “시조 작품에서는 이처럼 상상력의 비중이 확대되었을 때, 그 시적 효과는 배가되고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를 내릴 수 있는 것이다.”라고 한다. 이 작품은 상상력을 잘 발휘하고 있다.
종장에서 온 동네에 홍매가가 붉게 핀 모습을 묘사하였다. “홍매화/ 터지는 웃음”이라 하여 청각적으로 표현하였다. 홍매화가 피어나는 순간의 소리를 웃음이라 하였으니 그 상상력도 대단한 것이다. 이것은 홍매화가 붉게 핀 상태를 “터지는 웃음”이라 하였다면 시각적 이미지를 청각으로 바꾼 공감각족 표현이 될 것이다. 독자들의 입장에서는 둘 다 상상할 수 있는 것 같다.
부스슬 가을비로
비어 가는 월악산에
늦물 든 단풍나무
분결 같은 고운 빛이
잦아 든
가슴 속으로
노을 한 채 옮기네.
-「만추에」전문
한 폭의 그림 같은 단아한 작품이다. 초장에서는 공간적 배경이 월악산으로 나타나 있다. 월악산은 사계절 아름답지만 가을의 단풍으로 아름답기로 소문난 산이다. ‘부스슬’이란 말은 ‘부슬비’에서 따와서 시인이 조어한 것 같다. 또는 ‘부슬부슬’이란 말을 변형한 것 같기도 하다. 방언에서 쓰고 있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정확히는 알 수 없으나 가을비가 내리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것으로 적절히 표현한 것 같다.
중장에서는 “분결 같은 고운 빛”이라 하였는데, 단풍나무는 나무 중에서는 껍질이 매끄럽고 고운 빛깔을 하고 있다. 종장에서는 “잦아 든/ 가슴 속으로/ 노을 한 채 옮기네”라고 하였다. 단풍의 붉은 빛이 노을로 은유되면서 그 아름다움을 가슴속에 추억으로 담는 것을 “노을 한 채 옮기네”로 표현하여 상상력이 극대화되고 있다.
한편 원용우는 해설에서 “자신이 처한 상황이 저녁노을이 지는 시기에 도달했음을 암시(暗示)해 주고 있는 것이다.”고 하였다. 좋은 시조는 이처럼 겉으로는 서경을 노래하는 것 같으면서도 서정을 노래하거나 상징이 되기도 한다.
3. 인생의 달관
나이가 들어가면 모두가 철학자가 되는 것 같다. 인생의 달관을 노래한 것으로는 (1)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 (2) 순리에 따르는 삶을 엿볼 수 있었다.
(가) 유한한 존재임 깨닫는 것
절집마당 항아리는
풍경소리 스며들고
산그늘 집 항아리엔
뻐꾹 소리 소복하고
잔금 간
어머니 항아리
흙으로 갈 채비한다.
-「항아리」전문
제재인 ‘항아리’도 예스럽다. ‘절집’, ‘풍경소리’ ‘뻐꾸기’ 등도 예스러운 소재들이다. 예스러운 소재들을 가지고 현대의 정서를 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런 것을 외형적으로 노래한 것이 아니다. 초장과 중장이 대구가 되도록 표현한 것이 돋보인다. “뻐꾹 소리”는 청각인데 “소복하다”는 시각적이다. “뻐꾹 소리가 소복하다”고 표현한 공감각적 표현은 빼어났다. 예스러운 소재들이지만 개성적인 표현을 함으로써 현대성을 획득하고 있다. 종장에서는 “어머니 항아리”은 흙에서 만들어졌으니 흙으로 돌아갈 채비한다며 유한한 삶을 상징하고 있다. 우리의 유한한 인생이 바로 항아리라고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이 세상 만물 중에 무한한 것은 없다. 그래서 석가가 깨달은 세 가지 진리를 삼법인이라 하며 첫째로 모든 것은 변한다는 것이다(諸行無常). 시인은 유한한 존재임을 깨닫고 있으며 그래서 한 이 세상을 순리대로 살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무량수전 뜰에 서서 노을에게 물어본다.
돌아 된 선묘 아직 떠 있나 앉아 있나
스님은
독경소리를
봉황산에 심는다.
구름같이 뜨는 것이 어디 인생뿐이던가
물 바람 낙엽 마음 앉지 못해 도는 것을
공연히
제 자리라고
털고 닦다 마치는 생.
-「부석사에서」전문
나이가 들면서 가까운 사람의 죽음을 갑작스럽게 대하게 되면 대부분 삶을 ‘한 조각의 구름’이라고 느낀다. 그래서 어느 선사는 태어나는 것을 한 조각의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의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라고 하면서 생사에 집착하지 말라고 하였다.
이 시에서는 인생뿐만 아니라 ‘물’, ‘바람’, ‘낙엽’, ‘마음’ 등이 도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만큼 생각을 깊게 한 것이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종장에서처럼 “공연히/ 제 자리라고/ 털고 닦다 마치는 생.”이라고 하였다. 집착 때문에 인생을 망치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제 자리”라고 집착하는 것이다.
김영애 시인은 이 한 작품만으로도 ‘생을 달관한 시인’이라 불러도 모자람이 없을 것 같다.
이 한 작품을 두고서는 한 달을 두고 얘기한들 끝이 있겠는가. 우리의 인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들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첫째 수에서 부석사의 ‘부석’이 된 선묘를 통하여 실감 있게 표현하였으며 둘째 수에서는 뜬 구름 같은 인생에 집착하지 말아라고 말하고 있다. 선경후정(先景後情)의 방법을 쓰고 있어 연시조의 효과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앞에서 예를 든 대부분의 작품들도 선경후정의 방법으로 전개하고 있다. 시집 전체에 흐르고 있는 시상 전개 방법이다. 선경후정은 시조 표현의 가장 기본적인 표현방법으로 기초를 탄탄히 익히지 않고서는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임종찬은 “시조는 시조형식이 주는 음악성에 얹어서 읽혀져야 하기 때문에 들어서 쉽게 이해되어야 한다. 이해가 쉽다는 말이 의미의 단순성을 뜻하지 않는다.”고 한다. 이 작품은 이런 면에서도 좋은 작품이다. 그는 또 “난해를 위한 난해는 시조가 갈 길이 아니라고 본다.”고 하였다. 이런 점에서도 이 시는 좋은 작품이다. 이것은 이 시집 전체 작품에 해당되는 말이기도 하다.
(나) 순리에 따르는 삶
자식을 키우는데
하늘을
탓 하리오
가물면 가문대로
내 몸을 짜는 게지
어미 몸
말라 간 자리
진한 눈물
감자알.
-「감자」전문
농부에게 있어서 농작물을 가꾸는 것은 자식을 기르는 것과 같다. 그래서 초장에서는 농부들은 하늘이 가뭄을 주든지 홍수가 나든지 하늘을 원망하지 않듯이 화자도 그렇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나타나 있다. 물론 가문 현실을 전제로 한 표현이다. 중장에서는 가물어 농작물이 제대로 클 수 없는 극한 상황에 도달했음을 나타내고 있다. 도저히 농작물이 될 것 같지 않은 고통 속에서도 땅은 수분을 짜내고 있다. 그리하여 종장에서는 “어미 몸/ 말라간 자리/ 진한 눈물/ 감자알/”이라고 노래하고 있다. 결국 땅은 수분을 다 짜내어서 감자를 맺은 것이다. 그것은 결국 어머니인 대지의 진한 눈물의 결과물인 것이다. 한편으로는 그 감자를 보는 시인이 ‘진한 눈물’로 바라본다는 의미도 뜻하기도 한다.
가뭄 뿐만 아니라 꿩과 두더지 등이 농작물을 해치고 있음을 노래한 작품도 있다. 모두 순리를 따르는 삶을 노래하고 있는 것이다. 시인의 인생관이 나타난 것이다.「감자」는 감자 농사뿐만 아니라 부모가 자식을 기르는데도 이와 같을 것임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자식을 기르는데 잘되든 못되는 누구를 원망하리오. 모든 것을 받아들이고 포용하는 자세를 볼 수 있다.
4. 체험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음
굽지고
깊은 골을
물소리 따라 간다
옥빛 물
괸 곳 마다
마음자락 내리다가
빈 듯한
절집에 서서
가벼워진 나를 본다.
-「백담사 가는 길」전문
백담사 기행에서 욕심을 비운 자신을 돌아본다는 시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벗어날 때 자신을 돌아보기도 한다. ‘굽지고’란 말은 ‘굽이지다’에서 조어(造語)한 것 같다.
금을 캐 물고 웃는
어린선수 검은 얼굴
맺히는 눈물 위로
하염없이 흐르는 땀
절어서
더 향기 짙은
꽃송이로 피었다.
-「눈물 꽃」전문
금메달을 목에 거는 선수들은 영광스럽다. 남들의 축복과 부러움을 받는다. 그러나 그들은 검은 얼굴이 되도록 노력했으며, 영광의 눈물 뒤에는 남모를 땀을 흘렸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종장에서는 “절어서/ 향기가 짙은/ 꽃송이로 피었다”고 역설적으로 표현하여 시적 묘미를 살렸다.
Ⅲ. 나오며
이상으로 간단히 김영애의 세 번째 시조집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형식적 특징으로는 단시조가 80%였으며 정격을 지키고 있었다. 오늘날에 ‘단시조’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김영애 시인은 이런 경향을 앞서 가고 있으며 단시조에 대한 시관이 뚜렷한 것으로 보인다. 종장은 3행으로 처리한 것이 약 90%였다.
내용으로는 (1)사물을 통하여 삶의 의미를 부여한 것 (2) 순수서정(그리움, 아름다움) (3).인생의 달관(유한한 존재임을 깨닫는 것, 순리에 따르는 삶) (4) 체험에서 삶의 의미를 깨달음 등이 있었다.
대부분의 작품이 선경후정(先景後情)법으로 전개하여 시적 효과를 올리고 있었다. 또 참신한 비유로 개성적인 표현을 한 점이 뛰어났다. 특히 종장에서 의미의 비약이나 반전을 통하여 시의 의미구조를 단단히 하여 시적 형상화가 뛰어났다.
오늘날의 시조 중에는 난이하게 표현하는 경향의 작가들이 있는데 원래 시조는 청자에게 전달이 잘 되도록 하는 것이 특징인 시 양식이다. 이런 면에서『씀바귀가 여는 봄 하늘』은 뛰어난 것이다.
다만 한 가지 욕심을 낸다면 종장을 거의 3행으로만 배행을 하여 변화가 부족한 것 같다. 그 시형이 좋아서 사용하더라도 내용에 어울리도록 1행이든 2행이든 적절하게 배행할 수 할 수 있도록 한번 숙고해 보았으면 한다.
김영애 시인은 시인이라면 누구나 소원하듯이 문학사에 남을 작품을 쓸 각오를 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 늦게 뜻을 세웠지만 절차탁마하는 모습을 엿볼 수 있다. 둘째 수 종장에서 “천 년을 어루만져 줄 따슨 말을 꿈꾼다”로 했는데, 시집 해설에서 원용우가 말했듯이 긍정적인 인간관을 느낄 수 있는 말이다.
작품을 돌아보면 글을 마친다.
어느 날 눈 떠 보니 내 모습 작디 작다
솜씨 설고 재주 없이 반평생 훌쩍 넘어
이제야 뒤척여 본다 뜻 하나를 세운다
두드려 윤이 나는 비단으로 살기 위해
날기를 마다하고 몸 사르는 누에처럼
천년을 어루만져 줄 따슨 말을 꿈꾼다
자는 듯 기는 듯이 눈 비 서리 다 넘으면
내 사연 날줄 삼고 네 사연 씨줄 삼아
우리네 가슴 덮어줄 비단 한 필 짜련다.
-『비단을 꿈꾸며』전문
“우리네 가슴을 덮어 줄 비판 한 필 짜련다”고 하였는데, 한 필이 아니라 백 필, 천 필을 짜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2013. 12. 14일 새벽 김우연
* 저는 남의 글을 평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있지는 않습니다만, 시집을 읽고 가슴에 와 닿은 것이 많아서 저의 소감문을 써 보았습니다. 혹 뜻을 왜곡한 것이 있더라도 널리 이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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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우연 시인은 영남시조(낙강) 같은 회원인데
낙강에 입회하시지요. 박영교. 이무식 시인도
회원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