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3년 어느 날 나는 성당 벽보에서 마리아 수녀회 팜프렛을 보게 되었다. 반갑게도 그팜플렛의 주인공이 나의 친구언니인 심세시리아 수녀님이셨다. 그러던 어느 날 휴가 나오신 심세시리아 수녀님을 만나게 되어 수녀님 저도 수녀가 되고 싶어요 라고 말씀 드렸더니 기뻐 하시며 마리아수녀회에 대하여 자세히 알려 주셨다. 그 이후 나는 설레이는 마음으로 생전 처음으로 부산행 완행 열차에 몸을 싣고 부산 마리아 수녀회에 도착 하였다.
수녀님들의 소박하시고 기쁘게 사시는 모습이 참으로 좋아 보였다.
김소피아 원장수녀님을 따라 사제관으로 면접을 하러가는 날이었다. 신부님 안녕하세요? 야, 안녕 하십니까? 신부님께서는 우리 마리아 수녀회를 어떻게 알게 되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우리성당 벽보에 붙어있는 마리아회 수녀회 팜프렛을 보고 또 심세시리아을 통해서 마리아수녀회를 알게 되었다고 자신있게 말씀 드렸다. 야, 그렇습니까? 왜 수녀가 되고 싶습니까? 하고 물으셨다.
나는 가난한 아이들을 보면 눈물이 나고 도와주고 싶고 그들을 위해봉사하고 싶다고 말씀 드렸다. 신부님께서는 성당에서 무슨 활동을 했느냐고 물으셔서 가톨릭노동 청년회를 하였다고 말씀 드렸다.
그런데 신부님께서는 나를 위 아래로 쳐다 보실 때마다 나를 탐탁히 여기시는 것 같지가 않았다. 아니나 다를까 원장 수녀님이 사제관에 들어 갔다가 나오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자매는 우리집 성소가아닌것 같다고 하셨다고 전해 주셨다.
나는 멍 ~ 한 마음으로 몇 발자국 걸어 나오면서 생각 하였다. 내가 말을 실수 한 것일까? 무엇이 문제였을까? 순간 나는 나의 옷차림이 문제였음을 알아 차릴수 있었다.
바지는 통 넓은 나팔바지에다가 빨간 체크무늬 난방에다가 머리는 그 당시 최신 유행이었던 긴머리 거지캇트 머리였으니신부님이 보시기에 얼마나 걸렁패 같이 보였을까? 하는 생각이 머리에 스쳤다.
언제 오셨는지 밖에는 심세시리아 수녀님이 와계셨고 나를 두고는 혼자 사제관으로 들어 가셨다 나오시더니 환하게웃으시면서 자매 신부님께서 오 케이 하셨다면서 입회 준비를 하라고 하셨다.
심세시리아 수녀님께서는 신부님께 형제들도 많고 자매도 괜찮은 사람이니 받아도 좋을 것 같다고말씀 하셨단다. 나는 입회를 하여 수도생활을 하면서도 늘 신부님을 의식하여 잘 보이려고 무단히 노력하던 중 절호의 챤스가 주어졌다.
80년도 신부님 영명 축일에 의사 선생님과 학교 선생님 여러분들을 모시고 연극을 하게 되었는데 맹인 거지 주인공이 되었다. 거지가 예수님의도움으로 눈을 뜬 순간 너무 좋아서 깡통을 집어 던지고 그 당시 유행 이었던 트위스트를 추어 신부님과손님들을 기쁘게 해드려 신부님께서 야, 자매 잘했습니다라고 하셨을 때비로소 마음에 쌓였던것이다 사라져 버리는 것 같았다
그리고 기회 있을 때마다 수녀님들이 추천하면 오웬더세이 고마침인을 추어 -신부님을 기쁘게 해드렸다. 사랑하는 신부님 저의 이런 속 마음을 모르셨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