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신(新) 7대 불가사의 후보로 꼽히는 이스터섬 모아이의 비밀이 서서히 밝혀지고 있다.
최근 미국 하와이 대학 테리 헌트 교수와 캘리포니아 주립대학 롱비치 캠퍼스 칼 P. 립 교수 연구팀은 모아이 석상의 운반을 둘러싼 미스터리에 대한 새로운 학설을 제기했다.
1722년 네덜란드 선장에 의해 처음 발견된 이스터섬의 모아이 석상은 무게 40∼50t으로 섬 여기저기에 우뚝 서있어 그 정체에 대한 논란이 현재까지 이어져 왔다.
특히 수레나 동물의 도움없이 이 무거운 석상을 수 km나 어떻게 운반했는지는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급기야 외계인 제작설까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모아이 석상이 한마디로 ‘걸어서 갔다’는 학설을 제기했다. 연구팀이 수레나 동물의 도움없이 인간만의 힘으로 밧줄을 이용해 모아이를 이동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시연한 것.
헌트 교수는 “18명의 사람을 2그룹으로 나눠 모아이를 세운 후 한쪽에서 밧줄을 끌고 반대쪽에서 당기면 석상이 뒤뚱뒤뚱 걷는다.” 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이같은 결과를 애니메이션으로 제작해 내셔널 지오그래픽 6월호에 게재했다.
그러나 이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원주민 수리 투키(25)는 발끈하고 나섰다. 투키는 “전문가들은 그들이 원하는 것만 말하는 버릇이 있다.” 면서 “우리는 모아이가 진짜 스스로 걸어갔다고 믿는다.”고 밝혔다.
무분별한 개발의 미래, 이스터 섬과 모아이
태평양에 있는 섬, 이스터 섬을 아시나요? 잘 모르겠는 분들이라도 이 유명한 석상을 보시면 ‘아!’하고 생각이 나실 겁니다. 바로 유명한 석상, 모아이가 있는 섬입니다.
이스터 섬의 모아이는 굉장히 유명한 석상이라서 TV나 사진으로 한번쯤은 누구나 보았을 것이며, 때로는 외계인이 만들었다는 상상으로 영화나 만화에 등장하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이 모아이가 무분별한 개발이 가져오는 파멸을 상징한다는 것도 알고 계셨나요?
<이스터 섬(출처: Fotopedia)>
이스터 섬은 원주민들이 부르는 원래 이름은 라파누이(Rapa Nui)지만 네덜란드의 탐험가 야콥 로게벤이 마침 부활절(Easter day)에 발견하여 이스터 섬이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처음 이 섬이 발견되었을 때는 섬 안에 야생동물도 거의 없는, 황폐한 섬이었습니다.
하지만 이 섬이 처음부터 황폐한 건 아니었습니다. 여러 연구 결과 이스터 섬에는 폴리네시아에 살던 사람들이 태평양의 여러 섬에 진출하는 과정에서 원주민이 정착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입니다. 처음 원주민들이 왔을 때는 각 종 나무도 풍부하게 자라 숲도 있었고, 이를 바탕으로 숲에서 사는 새 같은 동물도 잡을 수 있고, 땅도 제한적이나마 농업이 가능한 수준이었습니다. 또한 바다에서는 배를 만들어 나가면 고래잡이도 가능해서 여러 가지로 풍족한 환경에 있었습니다. 대략적인 계산으론 정착 전만 해도 1억 그루의 야자나무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모아이 (출처: 위키피디아)>
덕분에 이스터 섬은 번영할 수 있었고, 그 시기에 만들어 진 것이 바로 모아이입니다. 모아이가 외계인의 작품이란 주장도 있었지만, 연구 결과 모아이는 제주도 돌하르방 같은 화산암으로 만들어져 조각이 쉬워 원주민들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모아이는 1세기에 가장 많이 만들어졌으며 17세기까지 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3.5 ~ 5.5m에 이르는 모아이는 약 900여 개가 이스터 섬 곳곳에 놓여 있는데, 보통은 무게가 20 톤 정도이나 큰 것은 10m의 높이에 무게도 90톤이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터 섬의 돌은 단순히 조각상은 재료가 아니었습니다. 이스터 섬에서 제한적으로 가능한 농업은 돌을 개서 그 위에 돌을 덮는 방식으로 가능했습니다. 이는 곧 거대한 모아이 하나가 세워질 때 마다 수많은 농지가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였습니다.
그리고 모아이는 크기와 무게가 대단한 만큼 절대 순수한 인력 만으로는 운반할 수가 없습니다. 당연히 도구가 필요한데 이 때 사용된 게 나무입니다. 원주민들은 나무를 베어 모아이 운반용 썰매를 만들었습니다. 모아이가 세워질수록 소요되는 나무의 수도 많아졌습니다. 게다가 모아이를 세우는데 종족 간 경쟁까지 벌어지면서 더욱 과열됩니다.
하지만 이스터 섬은 우리나라의 안면도보다 약간 넓은 면적이므로 그 자체의 자원이 남을 만큼 풍족할 순 없었습니다. 이런 섬에서 농사에 사용할 돌이 줄어들고, 나무도 마구 베면서 숲도 줄면서 새들도 살 곳을 잃어갔습니다. 또한 배를 만들 목재마저 부족해지면서 고래를 잡으러 나갈 수도 없어 식량난이 가중됩니다. 그 결과 식인풍습마저 나타나면서 섬은 점점 황폐해져 갑니다.
이스터 섬의 원주민들은 긴 혼란을 겪고 겨우 앞길을 모색하여 부족 간의 합의로 모아이의 건립을 중지하고 자원을 분배하기로 합니다. 하지만 이미 많은 자원이 허비되어 섬의 앞날은 여전히 불투명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터 섬이 유럽인에게 발견되면서 그나마의 희망도 사라집니다. 원주민들 중 상당수는 노에로 팔려가고, 남은 사람 사이에도 유럽인으로부터 섬에 없던 전염병이 옮겨오면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습니다. 또한 유럽인의 배를 타고 쥐가 섬으로 들어오면서 야자씨를 먹어 그나마 남은 나무도 사라지고 황폐화가 가속화 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스터 섬은 자체 농업은 거의 불가능한 척박한 섬이 되었습니다. 역설적으로 섬이 황폐화하는데 큰 영향을 준 모아이가 관광자원으로 그나마 섬의 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스터 섬의 비극은 인류에게 큰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앞날을 생각하지 않은 무분별한 개발과 자원 낭비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증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앞날을 생각하지 않고 무분별하게 개발만 한다면, 지구 전체가 거대한 이스터 섬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적잘한 자원 분배와 절약을 실행하고, 개발을 하더라도 자연을 생각하고 당장의 이득에 눈이 멀어 삶의 터전을 파괴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스터섬 모아이석상 하체.... 머리만 있는게 아니었다니...
참고로 이 섬은 칠레에 있다카네예.
1722년 부활절에 유럽 인에 의해 처음 발견되어 「이스터」라는 이름을 얻기 전까지, 이 외딴 섬은 그렇게 불렸다. 「큰 라파섬(島)」이라는 뜻의 「라파 누이」(Rapa Nui)도 1863년 이후부터 통용된 이름. 프랑스 령의 작은 폴리네시아 섬인 「라파」를 닮아 그 런 명칭을 갖게 됐다.
그러나 이스터섬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는 것은 그러한 격절감이나 특이한 이름 때문이 아니 다. 그곳에 서 있는 800여개의 거대한 석상들 때문이다. 이들은 흔히 「모아이」(Moai)로 통칭 되는데, 평균 4m의 높이에 무게가 14t이나 될 만큼 거대하다. 개중에는 높이 22m, 무게 145~165t에 이르는 초대형 석상까지 있다. 이 들은 하나같이 바다를 등지고, 섬을 바라보는 자세로 서 있다.
누가 이 거대한 석상들을 만들었을까. 만든 목 적은 무엇일까. 이스터섬의 험준한 지형을 헤 치고, 10여km 떨어진 해변까지 어떻게 모아이 들을 옮겼을까. 대체 모아이는 무엇을 의미하 는 것인가. 지난 250여년 동안 이스터섬을 찾 은 탐험가와 학자들은 이러한 물음과 씨름해 왔다. 여러 가설과 주장이 제기됐다. 그러나 어 느 것도 제대로 증명되지 않았고, 이스터섬은 여전히 「수수께끼의 섬」으로 각인돼 왔다.
오롱고의 암각화
** 오롱고 마을에는 1000여개의 암각화가 각기 역사와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박물관에 있는 모아이의 눈(야외에 서 있는 모아이는 대부분 눈이 없다)
태평양이 보이는 해변의 모아이
** 완벽한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아래 사진의 모아이는 이 사진의 오른편에 홀로 서 있는 모아이이다.
이 일대가 제단과 모아이, 의식을 거행하던 장소등이 한 군데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어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눈을 가진 모아이
제사 지내던 의식의 장소
쓰러진 모아이
옮기다 중단한 모아이
통가리키(Tonga riki) 마을의 모아이
** 섬에서 가장 큰 제단에 15개의 모아이가 세워져 있다.
" 일곱 개의 모아이"
넓은 초원의 내륙에 세워진 7개의 모아이로 수백개의 모아이 중에서 유일하게
얼굴을 바다를 향하고 서 있다.
여러가지 모양의 모아이
돌 집
아나케나 비취
** 1772년 네델란드의 선장 야곱 레게벤(Jacob Reggeveen)이 3척의 배로 최초로 이 섬에 상륙한 장소로서
그 날이 부활절(Easter day)이 었기에 이스터 섬(Easter Island)으로 명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