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정씨는 우리나라 정씨의 대종으로서
가장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하나로 신라(新羅)를 구성한 진한국 사로(斯盧) 6촌 중의 하나인 자산 진지촌[本彼部] 촌장인 지백호공(智伯虎公
: 신라 좌명공신)을 시조로 받들고 있다. 서기전 117년(한무제 원수 6) 경주 화산(花山)에 강림하여 부족국가이던 사로의 여섯 고을 중 자산
진지촌을 다스렸으며 그 뒤 서기전 69년 3월초하루 다른 다섯 촌장과 함께 자제들을 거느리고 알천(閼川) 언덕위에 모여 임금을 세울 것을
논의하다가 이 때 나정(蘿井)곁에서 난생아(卵生兒)인 혁거세를 얻어 거슬한(居瑟邯 : 또는 거서간居西干)으로 추대하고 서기전 57년 그를 왕으로
삼았다고 한다.
서기 32년(유리이사금 9) 봄에 그의
현손대(玄孫代 : 동충東沖)에 와서 사로 육촌의 촌장들과 사성(賜姓)을 받을 때 본피부로 개칭되면서 낙랑후(樂浪侯)로 봉훈과 아울러
정씨(鄭氏)로 사성 받았다.
신라를 세운 원훈으로 서기
516년(법흥왕3) 문화(文和)로 시호를 받았고 이어 656년(태종 무열왕 3) 감문왕(甘文王)으로 추봉되었다.
그 후손 중 본손은 문헌공파(文獻公派),
양경공파(良景公派), 월성위공파(月城尉公派), 평장공파(平章公派) 등 4파로 이어졌으며, 지손 계통에서는 동래(東萊), 영일(迎日),
진주(晋州), 온양(溫陽), 초계(草溪), 하동(河東), 함평(咸平), 청주(淸州) 등 30여 성씨로 분관(分貫)되어 우리나라 모든 정씨의
대종(大宗)을 이루고 있다.
경주정씨는 오랜 유래를 지닌 씨족의
후예로서 역사상 숱한 석학, 명현 관인, 장상을 배출한 명문으로 오늘날에도 높은 긍지를 가지고 조상의 빛난 전통을 이어받아 국가와 사회발전에
헌신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