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일로 가는
[백두대간 6회차]
무룡고개-영취산-덕운봉-북바위-민령-깃대봉-육십령
7월 10일(토) 흐림
장마철에는 아무래도 산에 다니기가 조심스럽습니다.
선진국 기상청에 비해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 다는 우리나라 기상청도
장마철에 많큼은 하루에도 몇번씩 말바꾸기가 생활화 된 갈팡질팡한 예보를 합니다.
기상청도 예측 할수 없는 불순한 날씨를 우리가 맞춘다는 건 더욱 무리입니다
그런데 참 희안 하지요?
백두대간 14기가 산행을 떠나는 날이면 빗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우리 횐님들 중에 하느님과 통하는 특별한 분이 있는 듯 합니다.
구름이 따가운 햇볕을 가려주고, 해발 1,000m 고지엔 시원한 바람이 불어 주고....
오늘도 약60여명의 횐님들과 즐거운 백두대간 산행길에 오릅니다.
.......
[산행 개념도]
오늘은 "무룡고개"에서 "영취산"을 올라 "육십령"까지 北進을 합니다.
거리는 알려 주는 곳 마다 제각각입니다만, 대체로 약14km가 되겠습니다.
[무룡고개] 오전 10시 40분
지난 5구간의 들머리이기도 했던 "무룡고개 舞龍峙"에 다시 왔습니다.
'무룡고개'는 '백두대간'의 '영취산'과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으로 가는
산행 들머리여서인지 주차장과 휴게실이 제법 큰 규모로 마련되 있습니다.
[무룡고개]
주차장에서 고도를 약간 높이며 올라 가면 "무룡고개 에코 브릿지"가 나옵니다
지난번엔 안개 속에서 龍이 튀어 나올듯한 기분이 들었었는데.......
오늘은 날씨도 좋습니다.
[무룡고개에서 육십령까지 거리]
무룡고개 '영취산' 들머리에 있는 안내판에는
무룡고개 → 영취산 까지가 0.9km
영취산 → 육십령 까지가 11km라고 안내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곳에는 영취산 → 육십령 구간이 13km로 안내하고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중요한 사안은 아니니 저는 '무룡고개-육십령'을 약14km 정도로 짐작합니다.
[무룡고개-영취산-덕운봉 까지 구글어스]
이해를 돕기 위해 구글어스를 보여 드림니다.
보시다시피 '무룡고개'에서 '영취산'까지는 급경사 오르막입니다.
하지만 거리가 짧아 15~20분 정도만 고생하면 되겠습니다.
['영취산' 오르는 길]
10시 45분에 본격적인 산행을 시작 합니다.
지난번에 한번 경험한 길이고 날씨도 좋아 가뿐한 걸음으로 영취산을 오릅니다.
[영취산 정상] 11시 4분
'영취산' 정상에 금방 도착했습니다.
'영취산' 정상은 1,075.6m 높이라고는 실감이 나지 않는 조그만 뒷동산 같은 느낌을 줍니다.
[영취산 정상]
이 산이 '독수리'를 닮았는지 알수도 없고....
부처가 중생들을 구제하기 위해 설법을 하던 인도의 마가다국의 시체 버리는 산과
무슨 관련이 있는지도 잘 모르겠고......
하지만 이 산봉우리는 "백두대간"에서 가지를 치는 "금남호남정맥"이 分岐하는 "分岐峰"이기에
정맥꾼들에겐 매우 유명한 산입니다.
대간이 끝나면 여기에 다시와 '금남호남정맥'을 가는 분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영취산 정상석]
1,075.6m높이
'금남호남정맥'의 分岐峰이기도 하니 당연히 세개의 江도 分岐하는 分岐峰-三江峰입니다.
동쪽으로는 '낙동강', 서북쪽으로는 '금강', 서남쪽으로는 '섬진강'..........
여기에 떨어지는 빗방울은 조심해서 떨어져야 자기가 가고자 하는 곳으로 갈수 있습니다.
조금만 잘못 떨어져도 운명이 뒤바뀝니다.
[덕운봉 가는 길] 11시 7분
'영취산'을 뒤로하고 '北進'을 합니다.
평평한 능선이 아니고 '영취산'을 하산하여 다시 '덕운봉'으로 올라야 합니다.
[덕운봉 가는 길]
오늘 산행길, 즉 영취산에서 육십령까지에는 스토리, 히스토리가 별루없는 산길입니다.
물론 옆에 "논개 생가"가 있습니다만 지난 산행기에서 한번 써먹어 쓸만한 얘깃거리가 없습니다
이번 산행기도 읽을만 하겠지?라고 기대하신 분들은 또 실망이 크실겁니다.
산행한 기록들이나 한번 음미하시고 나중에 시간 날때 또 한번씩 읽어 보시기 바람니다.
그 때에 다시 읽으면 다시 내가 걸은 대간길이 생생하게 기억 날것입니다.
[덕운봉]
'영취산'을 내려 가는데,
나뭇잎 사이로 보이는 "덕운봉 德雲峰"이 '영취산'보다 오히려 '독수리' 모양입니다.
[논개 생가 갈림길] 11시 30분
"영취산"과 "덕운봉" 사이에 있는 고갯길인데
이곳에서 왼쪽, 즉 서쪽으로 내려 가면 지난번에 가 보았던
"논개 생가"가 나온답니다.
[덕운봉 갈림봉] 11시 43분
이정표에 "덕운봉"이라고 표기해놓은 "덕운봉 갈림봉"에 올랐습니다.
"덕운봉 德雲峰"정상은 여기서 동쪽으로 더 가야 하며, 백두대간 마루금을 약간 벗어나 있습니다
[덕운봉 갈림봉 이정표]
"덕운봉 정상"은 이정표 뒤로 보이는 산봉우리입니다.
['덕운봉' 갈림봉에서 뒤 돌아 본 '백운산']
우리가 가고 있는 "백두대간 白頭大幹"은 "여암 신경준선생"이 작성한 "산경표 山經表"를
기본으로 하고, 현대적 지도를 참고하여 마루금을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리지날 "山經表"를 읽어 보는 것은 필수 입니다.
하지만 100% 한문으로 되 있고 표기 방법도 이상하게 되 있어 읽기도 힘들고....
이해하기는 더더욱 곤혹스럽게 합니다.
그래서 가방끈이 짧지만 오로지 노력으로 산경표를 파악해서 '파란문'이 종종 알려 드리겠습니다
['덕운봉' 갈림봉에서 동쪽 방향 조망]
여기까지 왔으니 제 고향을 밝히지 않을 수가 없군요.
제 고향은 저 앞에 보이는 서상면 아랫쪽에 있는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입니다.
사진에 보이는 마을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인데, 서상면은 안의와 함께하는 생활권이죠.
"서상"은 경상남도의 서쪽 맨 끝에 있다고 "西上"입니다.
그러니까 안의면과 서하면, 서상면은 한 동네인 셈이지요.
중고등학교가 있는 곳이 '안의'여서 이곳의 학생들은 '안의고등학교'를 다닙니다.
저도 무지무지 촌에서 태어난 촌놈입니다.
안의국민학교 4학년을 마치고 서울 종로 "교동국민학교"로 전학을 갔습니다만.....
친구들이 부러워 선망의 대상으로 여겼을 정도였으니 '촌에서 출세한 놈'이 되었습니다. ㅎㅎ
그때 서울 가는 데 하루가 걸렸으니 얼마나 촌이었는지 짐작이 가시죠?
100여년 전까지만해도 "安義"는 전라도 북부지방과 서부경남, 즉 東西를 연결해 주는
유일한 길인 "육십령 六十嶺"으로 가는 길목이었습니다.
또한 서부경남에서 한양을 가려고 해도 '육십령'을 넘어야 했으니 "교통의 중심지"였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때는 함양군과 거창군이 "안의현 安義縣"에 포함되 있었으니 "안의"는 매우 큰
도시였던거죠
['덕운봉' 갈림봉에서 바라 본 가야할 '깃대봉']
安義縣監으로 재임 한 분들중에는 유명 인사들이 많습니다.
그 중에 1790년대에 "열하일기"로 유명한 "연암 박지원"선생이 安義縣監으로 재임 했었습니다.
'연암 박지원'선생은 일찍이 조선 주류사회의 허위의식과 부조리에 대해 일갈했던
사회학자이자 박애주의자이며 페미니스트였지요.
또한 서양의 '괴테'나 러시아의 '톨스토이', 미국의 '헤밍웨이'에 비견되는 조선의 대문호 이십니다.
[산죽 군락지대]
"연암 박지원"현감이 '육십령' 아래에 있는 덕유산 자락의 "영각사"를 들렸다가
詩를 한수 남기셨는데......
천천히 수레 움직여
서글피 소나무 숲을 나오네
차마 청산은 이별하여도
저 녹수는 어찌할 거나
이곳의 山水가 어떠했는지를 한마디로 표현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은 '안의'에 국민 관광지로 "용추계곡"과 "화림동 花林洞"의 명성이 드 높습니다.
초등3학년 때에 저는 소풍을 "화림동 花林洞"으로 줄을 서서 걸으며 갔던 기억이 납니다
"화림동 花林洞"은 글자 그대로 "꽃숲"을 이루는 낙동강의 서쪽 최상류 계곡입니다.
그곳엔 또한 "농월정 弄月亭"이라고 있는데, 글자 그대로 "달을 희롱하는 곳"이라는 의미이니
그 경치를 가늠 할수 있겠지요?
"용추계곡"에 대해서는 다음 덕유산구간에서 설명 드리겠습니다.
[개미 집단 서삭처]
엄청난 숫자의 개미들이 서식하고 있더군요
진밤색은 모두 개미들입니다.
[영취산, 육십령 중간지접] 12시 38분
'영취산'과 '육십령'의 중간 지점이랍니다.
'무룡고개' 안내판에는 11km라고 했는데 여기에서는 13km라고 하지요?
'영취산'에서 무룡고개'까지 써비스 거리 900m를 합치면 오늘 약14km를 걷는게 되겠습니다.
['북바위'로 가는 대간길]
고향 이야기 하나만 더 하고 지나 갑니다.
"춘향전"에도 등장 하는 "安義"입니다. 춘향전에서 인용합니다.
이 도령 : "자고로 문장재사 文章才士도 아름다운 강산 구경하는게 풍월 읊는 근본이라
詩의 王 이태백이는 채석강에서 놀았고, 적벽강 가을 달밤에 소동파 놀았고,
심양강 밝은 달에 백낙천 놀았고, 보은 속리산 문장대에 세종대왕 노셨으니
아니 놀지는 못하느니라."
방자 : (이때 도련님 뜻을 이어 사방 경치를 더 읊는데....)
"한양을 이를진대 자하문 밖 내달아 칠성암, 청련암, 세검정과
평양 연광정, 대동루 모란봉, 양양 낙선대, 보은 속리 문장대,
"안의 수승대". 진주 촉석루, 밀양 영남루가 어떠 한지는 몰라도
전라도에 이를진대 태인 피향정, 무주 한풍루, 전주 한벽루 좋으나 '남원' 경처 들어보오
동문 밖 나가시면 장림숲 선원사 좋사옵고, 서문 밖 나가시면 관왕묘의 엄한 위풍
예나 지금이나 같사옵고, 남문으로 나가시면 광한루, 오작교, 영주각 좋사옵고....."
전국의 명승지를 춘향전에서 '이 도령'과 '방자'가 서로 판소리로 읊는 장면입니다.
여기에 등장 할 정도면 전국적으로 유명한 명승지라고 할수 있겠죠?
'수승대'는 현재의 행정구역으로는 거창군에 속해 있는데 덕유산 밑에 있습니다.
[북바위 앞] 1시 정각
산봉우리를 하나 치고 오르면 "북바위"앞이 나옵니다.
'깃대봉'은 오른쪽으로 갑니다만, 잠시 "북바위"를 구경하고 갑니다.
[북바위 안내]
옛날 삼국시대에 신라와 백제가 영토분쟁을 하던 경계선이 이 대간길이니,
전쟁에서 승리하면 이곳에서 북을 쳤다고 붙여진 이름이라 합니다.
[북바위]
백두대간의 산세는 대부분 동쪽이 급경사이고 서쪽은 완만합니다.
그런데 이곳 "북바위"는 서쪽이 낭떨어지 입니다.
[북바위]
"북"처럼 생겼습니까?
아랫쪽으로 "논개 생가"가 보입니다.
['북바위'에서 바라 보는 '깃대봉']
경상도 고향 근처에 왔으니 경상도 말로 표현되는 유머 몇개 소개해 드림니다.
다른 얘깃꺼리도 없고 하니.....ㅎㅎ
"마누라"의 어원에 대해서 아시나요?
왜 와이프를 "마누라"라고 할까? 들어 본적이 없으시죠? ㅎㅎ 알려 드리지요
깅상도 신혼부부가 첫날밤에 신랑이 신부에게 한 말에서 유래 한답니다
깅상도 남자들의 육자배기식으로 내 지르는 말을 이해해야 이 유머가 잼있는데....
깅상도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아마 웃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웃거나 말거나~
신혼 첫날밤에 깅상도 신랑이 욕실에서 샤워를 하고 침실로 와서 아무른 애정 표현없이
신부에게 하는 한마디 말........
" 마! 누~라!"
이렇게 해서 "마누라"라는 말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믿거나 말거나~ ㅋㅋ
그 신랑은 지금은 아마도 자기가 밑에 누울껄?~ ㅎㅎ
[점심식사] 1시 5분
'북바위' 약간 지난 능선에서 약 40분간의 식사시간을 갖고.....
[깃대봉 가는 길]
깃대봉으로 가는 백두대간
"민령"으로 떨어졌다가 "깃대봉" 오르는 登路가 오늘 산행에서 가장 힘드는 구간이 되겠습니다.
전세계에서 "말 압축 능력" 최고가 경상도 사람들이라는거 아세요?
거의 모든 말을 풀어서 말하지 않고 "압축"해서 말 합니다. 진짜에요~
지금부터 쓸 얘깃꺼리도 없으니 例를 들어 드리지요. 맞으면 박수 치세요...ㅎㅎ
"고등학교 수학 선생님"은 간단하게.............. "고다꾜 쏵쌤"으로 말 합니다. ㅎㅎ
"할아버지 오셨습니까?"는 어떻게 압축할까요? → "할뱅교?"
"저기 있는 저 아이가 누군지 궁금하구나?" → "쟈 누고?"
"나 배고파! 밥 차려놨어? ......밥 먹어!" → "밥도! ... 자! 무라"
"어,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아? " → "우야노"
"왜 그러시는가요? " → "멍교?"
"이 물건 네 것이였니? " → "니끼가?"
"웅, 그건 내 물건이야 " → "인 도!"
"어디에 숨겨 놓았니?" → "우쨋노?"
정말 엄청난 압축 능력을 가진 종족 아닙니까? ㅎㅎ 정말 단순 명료하게 말합니다.
그래서 타 지방 사람들은 깅상도 사람들을 무뚝뚝하다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요즘은 사실 자기들 끼리도, 자기가 생각해도, 무뚝뚝하다고 생각합니다. ㅎㅎ
[옥토퍼스 소나무]
제가 생각 할때 아주 단순한 단어 몇개로 최고 압축하는 문장은.....
"니가 그렇게 말을 하니까 내가 그러는 거지, 니가 안 그러는데 내가 왜 그러겠니? "를
갱상도 사람들은 어떻게 말 할까요?
니 그카이 내 그카지, 니 안 그카믄 내 그카나?
[민령 이정표] 2시 12분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하신 "山經表"에는
"백운산"에서 "육십령" 사이에 "장안치 長安峙"와 "本月峙"가 있다고 표기 해 놨습니다.
그 "장안치 長安峙"가 현재의 "민령"이라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를 설명 드리지요.
"六十峙" - 南來 安義西六十里 長水北四十里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 정도는 모두 읽고 이해 하시죠? ㅎㅎ
'안의 서쪽 60리, 장수 북쪽 40리에 "육십령"이 있다'는 뜻입니다.
또한 그 아래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있습니다.
"長安峙" - 安義西六十里 長水東十里라고 표기 했습니다.
'안의 서쪽 60리, 장수 동쪽 10리에 "장안치 長安峙"가 있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그리고 長水와 安義 사이에 있는 고개여서 "長安峙"라고 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므로 "민령"의 본명은 "장안치 長安峙"가 분명합니다.
본명을 찾아 줍시다!~
그 다음에는
"本月峙"가 있는데 지금의 "무룡고개 舞龍峙"근처를 말하는듯 합니다. 그리곤...
"白雲山" - 安義西三十里 咸陽西四十里 光陽北三十里라고 표기 되 있습니다
* 산경표는 현재의 정확한 지도와 비교하면 오차가 많이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산경표'를 너무 신봉하지 맙시다~!
['민령' 아래로 지나는 '대전-통영 고속도로']
'安義'에서 60리 떨어져 있고, 고개 고개가 60개가 된다는 험준한 "六十嶺"을
이제는 터널을 뚤어 단 몇분이면 통과 하는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보이는 마을은 경남지방에서 가장 서쪽에 있다고 "서상 西上"이라고 하는 '안의'와 붙어있는
마을 입니다.
비포장 '육십령' 고갯길을 시외버스를 타고 먼지와 함께 터덜거리며 넘던 옛생각이 아련합니다.
이 고속도로로 서부 경남이 우물 속에서 나왔다는거 아닙니까
옛날에 제가 서울 갈때 하루가 걸렸는데 지금은 3시간이면 간다니....
지금은 말이 고향이지 연고라고는 5촌 당숙이 살고 있을 뿐......
서울에서 오십여년을 살았으니 이제는 잊혀진 고향이고 오히려 타향이 고향이 되었습니다.
['깃대봉'을 오르며 뒤돌아 본 지나온 길]
지나온 길을 뒤돌아 보면 스스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제 "지리산 구간"을 벗어나 "덕유산 구간"으로 갑니다.
山群들은 일렁이는 파도처럼 하늘을 넘나 들고 있습니다
아!~ 백두대간- - -
['깃대봉' 정상] 2시 45분
"민령"에서 오르막 33분을 걸어 "깃대봉"에 도착합니다.
['깃대봉' 정상]
깃대봉 정상에는 깃대가 3개 서 있고, 정상석이 우람하게 "구시봉"이라고 알림니다.
"구시봉" ? ? "구시"가 뭔 말이지? ? 의문부터 들기 시작 합니다.
모든 지도에 "깃대봉"이라고 표기하고 있는데, 정상석은 "구시봉"이라고 합니다.
옛날 제가 왔을 때에는 정상석이 없어서 그냥 생각없이 넘어 갔는데.....
['깃대봉' 정상석]
최근 2006년에 이곳에 정상석을 세우며 "구시봉"이라고 새로 지명을 바꾸었다는 군요.
정상석 뒤에 산림청에서 공식적으로 밝혀 놓은 산 이름의 유래가 보이시죠?
"이곳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대로서 그 아래 주둔하고 있던 군사들이 기를 꽂았다고 하여
'깃대봉'이라 불렸었으나, 옛날 한 풍수가 이 산에 올라 산의 형태가 구시형이라 하여
2006년 1월 6일 '구시봉'으로 지명이 변경되었습니다. 산림청"
현대의 지리적 과학적 전문가도 아닌 "옛날 한 풍수가"가 한마디 씨부린 걸로 고유명사를 바꿔?
꼭 바꿔야 할 이유도 없이 그냥 꼴리는데로 바꿔? 산림청이 작명소란 말인가!
고유명사, 즉 地名을 바꿀때는 신중에 신중을 더해야 합니다.
"옛날 한 풍수가"는 누구인가? 이름을 밝혀라!~실제 그런 말을 했다는 기록이나 증거가 있는가?
어느 한 사람이 한마디 씨부린게 地名을 바꿔야 할 정도로 그렇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인가!
현직 대통령이 한마디 해도 이유와 타당성이 없으면 못 바꾼다!~
더더욱 "구시"라는 말의 뜻은 무었인가? 내가 사전을 아무리 뒤져도 그런 단어는 없던데...
제 고향 산 이라 이렇게 큰 관심을 갖는 것입니다.
"구시"라는 말은 무었을 의미 할까? 사전에는 없고....생각~생각~생각 해 봤습니다.
섬광처럼 스치고 지나가는 단어의 어원이 ...........이것은 오로지 '파란문'의 생각입니다.
소, 돼지, 말에게 먹이를 주는 밥그릇통을 "구유"라고 하지요? 주로 통나무를 파서 만들었습니다.
예수도 마리아가 좋은 집 놔두고 '구유'에다 애를 낳아 태어 났지요?
그 "구유"의 서부경남지방 사투리가 "구시"입니다. 다른 경상도지역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쇠죽 끓여 주는 밥그릇통 "구유"의 서부경남지역 사투리 "구시"를 닮았다고 지어진 이름인가?
그렇다면 '소 돼지 말 밥그릇통'이 '깃대봉'보다 더 좋은 이름이란 말인가?
아니면 다른 뭔 큰 뜻이 있는가.... 위에서 의문을 갖는 것들에 대해 대답하라!~
그런 것들을 정상석에 써 놔야 하는거 아니냐?
산림청은 대답하라!~ 대답 못하면 다시 "깃대봉"으로 되돌려 놓아라!~
'깃대봉'도 하자가 없는 오리지날 좋은 이름이다!~ 모든 지도에도 '깃대봉'으로 나오고 있다~!
[깃대봉에서 '육십령'으로 가는 길]
제가 "깃대봉"을 뜻도 모를 "구시봉"으로 이름을 바꿔놔서 열을 많이 받았습니다.
저의 고향에 있는 산이라 관심을 과도하게 가졌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전국의 산을 돌아 다니다 보니 이런 의문스런 사례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성질 내서 이 글을 읽는 분들에게 미안합니다만, 대부분 전시행정으로 밝혀지고 있었습니다.
"X도 모르는 놈들이 XX 보고 탱자 탱자 한다"고....
[깃대봉에서 '육십령'으로 가는 길]
'깃대봉 정상'에서 쇠주 몇잔하며 3~40분정도 놀다가 '육십령'으로 하산 합니다.
'깃대봉'에서 '육십령'으로 가려면 앞에 보이는 저런 봉우리를 몇개 넘어야 하더군요
마냥 내리막만 있다는게 아니라는 걸 강조 하는 겁니다.
[육십령 가는 길] 4시 20분 ★ 길주의★
'깃대봉' 정상에서 약35분 정도 부지런히 하산하니 앞에 보이는 삼거리 갈림길이 나옵니다.
이 삼거리 이정표에 "육십령" 방향을 혼돈하도록 표기해 놨습니다.
그리고 백두대간길을 나무가지로 막아 놨습니다. 더 이상 못 가도록.....
아마 왠만한 사람들은 오른쪽으로 내려 갈것입니다.
하지만 대간길은 나무가지 빗장을 풀고 '남덕유산' 방향으로 직진해야 합니다.
이런 행위는 전국의 정맥이나 지맥에서도 많이 있는 사례인데.....
대부분 음식점들이 자기 음식점 앞을 지나 가라고 산객들을 유인하는 술책이니
항상 주의 하시기 바람니다.
[육십령 가는 길]
삼거리 갈림길에서 3분 정도 직진하면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무덤이 나오고....
다른 산행기에서 한번 써 먹은 적인 있는 유머 하나 더 소개해 드림니다.
무뚝뚝 하기로 유명한 깅상도 부부에 대한 ....
[서울夫婦와 慶尙道夫婦의 差異]
서울부부와 경상도부부가 배를 타고 여행을 가고 있었습니다.
서울부인이 마침 하늘에 떠있는 달을 보고 애교스런 음성으로
"자기야~ 저기 저 달 너무 예쁘다 그지?”
하고 말하자 .........
서울 남편은“아냐, 자기가 더 예뻐~”
이걸 옆에서 보고 있던 깅상도부인이 셈이 나서 가만히 있었겠습니까
깅상도부인도 나름대로 모처럼 애교스런 말투로.....깅상도 남편에게 한마디 합니다.
"자기야, 달이 참 밝제?” .......하자
깅상도 남편이 하는 말
.
.
.
“와, 달이 니보고 뭐라 카더나”
[육십령 휴게소]
삼거리에서 무덤을 지나 3분쯤 오니 바로 "육십령 휴게소" 장수 방향 주차장이 나옵니다.
오늘은 차량들이 한대도 없군요.
이제는 "육십령 터널"이 뚫려 육십구비 육십령을 넘어 다니는 사람들이 없어서 이겠지요
[육십령] 오후 4시 25분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넘어가는 시외버스가 마침 지나 가고 있습니다.
이 고개 하나를 넘으면 "언어, 관습, 풍습등 모든 생활상"이 다른 異國같은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좀 그러리라 생각됩니다만, 제가 어릴 때는 완전히 異國이었습니다.
경상도와 전라도의 오랜 지역감정까지 더해져서......
이제는 백두대간에 터널을 뚫고... 그것도 헤아릴수 없을 정도로 많이 뚫고....
서로가 소통하며 옛날의 지역감정을 용해시키며 더불어 살아 가는 시대로 가고 있습니다.
대단한 대~한민국은 결국 서로 한몸뚱아리라는 것을 "육십령"이 증명 할것입니다.
[육십령]
"六十嶺"은 이제 우리같은 대간 종주 산객들이나 橫으로 넘는 곳이 되었습니다
장정 육십명이 모여 힘을 합쳐 넘어야 산적들로부터 안전을 보장 받을 수 있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들이....
지금은 산적들이 여기서 영업을 하다가는 산적이 굶어 죽을수 있을 정도로 한적한 '육십령'...
저에게는 많은 감회를 불러 일으킵니다.
[덕유산 구간 들머리] [함양방면 육십령 휴게소]
'육십령 정상'에는 다음에 갈 "덕유산 구간"의 들머리가 또 오라고 손짓하고...
대간꾼들에게 유명한 "조경자 할머니"가 운영하는 함양방면 휴게소가 오늘의 종착지 임을
알려 줍니다.
여기서 30분 정도만 가면 '안의'인데.......
[육십령 마을]
"여암 신경준"선생이 집필하신 "山經表"에
"六十峙" - 南來 安義西六十里 長水北四十里라고 쓰여 있습니다.
'안의'에서는 60리이지만, '장수'에서는 40리라고 표기 하고 있으니
'안의, 장수'에서 각각 60리라고 이곳 저곳에서 설명하는 것은 믿지 마시고....
'육십령 마을' 뒤로 다음 구간에 가야할 덕유산의 "할미봉" "서봉"이 보입니다.
다음 구간은 날씨도 최고로 더운 때이기도 하지만 山勢도 만만치 않고 거리도 멀어
힘 좀 듭니다. 각오하고 준비해서 나오세요~
[뒷풀이]
오늘 뒷풀이는 오른쪽에 손을 들고 열심히 설명하는 "부루스님"이 쏘셨습니다.
삼겹살에 다양한 '주님'.........제가 말하는 '주님'은 모두 "酒님'을 말하는 것입니다.
"부루스님" 이렇게 좋은 일 많이 하면..... "돈 많이 벌면 부자 될거에요"
감사히 잘 먹었습니다.
[육십령에서 깃대봉까지 구글어스]
1. 총산행시간 : 5시간 40분
무룡고개 출발 오전 10시 45분
육십령 도착 오후 4시 25분
식사및 음주 : 1시간 30분
2. 총 산행 도상거리 : 11.9km
흘러가는 뜬 구름은 바람에 가고,
허무한 내청춘은 세월에 가네.
취한 김에 부르는 노래
끝도 없는 인생의 노래
아~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웃음이야 주고 받을 친구는 많지만,
눈물로 마주앉을 사람은 없드라.
취한 김에 부르는 노래
박자없는 인생에 노래
아~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
돌아보면 그다지도 먼 길도 아닌데,
저만큼 지는 노을 날 보고 웃네.
취한 김에 껄껄 웃지만
웃는 눈에 맺힌 눈물은
아~아 뜨거운 눈물 사나이 눈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