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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에드몬톤 한인 얼음꽃 문학회 원문보기 글쓴이: 얼 음 꽃
Aloha(안녕)
白夜 朴 能在
하와이(Hawaii)로 여행을 가기로 마음에 두고 그날이 오기를 기다렸다.
우리일행은 호텔에 짐을 풀고 나니 저녁때가 되었다. 당연히 한국음식점을 찾아 나섰다. 택시 운전사에게 코리안 타운으로 가자고 하니까 그는 알아차리고 그곳으로 우리를 태워다 주었다. 한국 상점의 간판들이 보이고 여기 저기 삼삼오오(三三五五) 모여 서서 혹은 앉아서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거의가 한국인들이다. 한국말에다 한국음식들을 입맛에 맞게 마음대로 골라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한국에 와있는 기분이다. 식사를 마치고 쇼핑몰에 잠시 들렸다. 모두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상점들이다. 아주머니 아저씨 어서 오세요 무엇이 필요하신가요? 한국의 작은 시장을 그대로 옮겨다 놓은 것 같았다. 시장을 둘러보고 약간의 물건들을 산 뒤에 한국인의 택시를 부르니 즉시 도착해서 호텔로 데려다 주는 동안 택시 기사는 여러 문제점을 이야기 하며 자기는 부인이 이민을 오자고 해서 왔는데 여기서 이혼을 하고 혼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면서 같은 처지에 있는 어려운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오죽하면 처음 보는 사람에게 자기의 처지를 말할까?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에게는 해줄 말이 생각나지 않는다. 어느새 호텔에 도착했다. 내리면서 열심히 사세요! 인연이 있으면 또 만날 수 있겠지요 안녕히 계십시오. 하고 헤어졌다. 다음날 아침에 일찍 일어나 유람선으로 가는 샤틀뻐스가 언제 오느냐고 묻기 위해 프론트 데스크(Front Desk)로 내려갔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주느냐고 물으니 식당을 일곱 시부터 연다고 해서 우리일행들은 당연히 호텔 측에서 식사를 제공하는 줄 알고 먹었는데 한 사람당 20불 정도를 지불하라고 하는 바람에 화는 났지만 어쩔 수 없이 식대를 지불하고 호텔을 출발했다.
또 배 안에 모든 분야에서 일을 하는 종업원들이 800여명이라고 하는데 이들이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맡은 분야에서 일을 하고 있으며 각 침실도 하루 두 번씩 정돈을 하고 있었다. 일하는 사람들 거의 모두가 계약직들인데 직책에 따라 보수도 다르겠지만 임금을 적게 받는 사람들이 자고 먹고 월 $1.000불을 받는다고 했다. 숙식까지 계산하면 적게 받는 임금이 아니다. 배에 승선해있는 사람들을 합쳐 약 3000여명 정도가 배 안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보아야 하는데 먹고 자고 그 비용은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인지 룸서비스를 하는 사람들에게 팁으로 하루 미화23불(夫婦)씩 을 지불해야 하는데 이것 역시 정해진 가격이다. 망망대해인 태평양 한복판을 항해하는 첫날은 누구나 기대에 부풀은 심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었다. 하루가 가고 이틀이 가고 물새 한 마리 없는 바다 한복판으로 며칠 동안 항해를 하니 좀 지루한 기분이 들기 시작했다.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문제가 하나 발생했다. 같이 동행한 분 중에 한 분이 뱃멀미를 예방하려고 귀밑에 조그마한 패치를 부치였는데 이 패치가 부작용을 일으켜 병원에 입원을 하고 말았다. 의사에 말로는 귀 밑에 붙인 패치 때문이니 곧 회복 될 것이라는 말을 듣고서야 안심 할 수 있었다. 이 약은 뇌신경을 마비시키며 정신분열을 일으키므로 일시적인 치매현상도 발작 할 수 있다고 의사는 말을 해주었다. 다행이 이틀 후에 그분이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을 보고 우리 일행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다. 의사(醫師)의 말을 인용하면 사람들이 이 패치를 사용하는데 많은 사람들이 이런 증상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예들이 있다고 하는 말을 하면서 되도록이면 이 약은 사용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의사의 권고를 들었다. 그분은 이 약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지만 우리들은 새로운 지식을 얻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을 했다. 이렇게 배가 밤낮으로 5일간 항해하여 하와이(Hawaii) 히로(Hilo)라는 항구에 도착했다.
육지로 상륙하니 정말 살 것 같다. 멀미기운이 싹 가시고 상쾌하기가 그지없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는데 모두다 관광버스에 승차하여 어디론가 떠나버린다. 우리일행들은 무조건 시내 쪽으로 약 100m 정도 걸어서 나오니 많은 차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온종일 관광을 해도 비용이 저렴하다.(배 안에서 계약금액의 삼분의 일도 안 들음) 사람들은 이런 것을 잘 모르기 때문에 비싼 돈을 들여서 관광을 하고 있다고 생각을 하니 우월감마저 들게 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네 사람이 일행이 되어 차를 렌트해서 직접 운전을 하며 다니는 데 하루 종일 백 불도 안 들고 구경을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 우리 일행은 택시를 렌트해서 희로 섬을 관광하기로 했다. 차에 타고 관광하는 도중 몇 가지 궁금한 점을 물었다. 우리를 안내하는 택시 운전사는. 하와이(Hawaii)의 역사는 약 8십만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이곳 원주민들은 누구를 만나던 알로하(Aloha. 안녕의 뜻)라는 말로 인사를 하는데 섬에서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로하 하며 인사한다고 했다. 우리 일행들은 Hilo(Hawaii제일 큰 섬)라는 섬에서 하루를 관광하는 날이다. 화산(Volcanoes National Park))을 헬리콥터로 45분간 구경하려면 어른이 $299불 정도이며 자동차로는 $89불이다. 이 밖에도 아카카폭포(Akaka Falls) 일본사람들이 자기나라의 풍경으로 꾸민 나니마우 가든(Nani Mau Gardens)등을 볼 수 있으며 무지개 폭포. 유명나무 공원 Hawaiian Culinary Home등 볼거리 등이 수도 없이 많다. 그리고 제주도처럼 불랙쌘드 비치가 있으며 1960 년에 Hilo섬에 쓰나미가 와서 도시를 싹 쓸었으며 지금도 많은 곳에 상흔이 남아있다고 했다 히로(Hilo) 섬을 다 보려면 2.3일은 더 있으면서 유명하다는 곳을 보아야 할 것 같다. 이 섬은 저 소득층의 사람들이 많이 살고 있으며 그래서 집값도 비교적 싼 편이라고 했다. 그리고 화산 연기와 화산재가 항상 공중에 덮여있어서 건강상 문제가 있다고 했다. 하나의 예로 어린애들이 기관지염을 않는 아이들이 50%를 웃돈다고 했다. 또 택시운전사의 말인데 하와이에는 여러 섬을 합쳐서 총 인구가 대략 백칠십 칠만 명(177) 되는데 그 중에 일본사람들이 55만 명 중국 사람들이 3만 명 한국 사람들이 약간 명 살며 그 외에는 원주민과 각국의 소수민족들이 살고 있다고 했다. 또 하와이에는 맹수들인 호랑이. 곰 늑대. 뱀. 등이 없다는 말도 들려주었다. 그래서인지 가는 곳마다 숲 속에나 들판에나 닭들이 평화롭게 살고 있다. 이것은 천적이 없는 까닭이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날은 마위(Maui)섬 라하이나(Lahaina)라는 항구에 도착했다. 육지에 오르니 특이한 나무들 나뭇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또 다른 가지에서 뿌리를 내리고 이런 형태로 공원 전체를 덮었는데 이 광경이 장관을 이룬다. 관광객들은 물론이고 섬사람들도 나무그늘에 삼삼오오 모여 앉아 있다. 히어카라 내쇼날 팍(Haeakala National Park) 이곳에서 화산 분화구가 보인다.(Volcanic Crater) 그 밖에도 여러 구경거리가 많이 있다. 하와이에서 자랑할 만한 특이한 선물들이 많이 있다. 대충 구경을 하고 남어지 시간을 이용해서 가족들에게 줄 선물을 사려고 이곳 저곳 많은 상점들을 다니며 몇 시간을 소비했다. 그리고 한국식당을 찾아가서 육개장을 한 그릇씩 사먹고 오후에는 배로 돌아왔다.
다음날에는 호노루루(OAHU Honolulu)항구에 도착했다. 이곳에는 명승지들도 많이 있지만 제일 유명한 곳이 진주만 미 해군 기지와 와이끼끼 해변이다. 우리일행은
다음코스는 딱딱한 분위기도 풀 겸 말로만 듣던 와이끼끼 해변(Waikiki Beach)으로 가기로 했다. 수십 리 하얀 모래가 해변으로 펼쳐져 있다. 말로만 듣고 갖은 상상만 했던 해변이다. 언제고 꼭 한번은 와 보고 싶었던 그 유명한 해변에 왔다. 경치도 좋지만 전 세계에서 모여든 팔등신 미인들이 저마다의 미를 뽐내며 모래 위에 누어 일광욕을 하고 있는 광경은 한 폭의 수채화와도 같은 그림이 연상된다. 뭇 남성들의 시선을 끌고도 남을만하다. 하와이는 참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자연환경도 아름답고 용암이 분출하는 생화산(生火山)이 있고 세계에서도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관광지인 것 같다. 주어진 신간 관계로 모두다 구경을 할 수 없는 관계로 기회만 주어진다면 다시 한 번 와서 충분한 시간을 갖고 골고루 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다음 코스는 KAUAl Nawiliwili 항구에 정착했다. 이 섬이 하와이 관광으로는 마지막 날인 것 같다. 우리일행은 택시를 타고 Wailua 폭포를 보러 갔다. 같은 위치에 Hanalei Bay 바위에 부딪치는 파도가 공중으로 50히트 이상 치솟는 하얀 물결이 또한 볼만했다. 특별히 기억에 남는 것은 목적지를 가는 도중 길가 언덕에 정차를 했는데 내려다보이는 먼 곳이 우리나라 강원도와도 같았으며 작은 논 다락에 물이 가득히 차있었으며 농민(農民)들은 물이 차있는 논에 무엇을 심고 있었다. 흡사 우리나라 산골에 모내는 풍경을 연상케 했다. 보호조로 보호를 받는 예쁜 들 닭들이 한 낮을 알리는 울음소리는 내가 어릴 적 살던 고향에서 듣던 그 소리였다.
나에게는 더 없는 친근감을 주며 포근한 마음을 안겨주었다.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행복감을 느꼈으며 그 곳을 떠나고 싶지 않은 마음마저 들었다. 이렇게 하와이 관광을 모두 마치고 이제 몇 시간 후면 LA로 돌아가는 배에 오르게 된다. 가는 길에 잠시 멕시코에서 몇 시간 보내게 되며 다음날 아침에는 LA 도착하게 된다. 3월 14일에는 에드몬톤으로 돌아와야 한다. 오후 늦게 에드몬톤으로 돌아오니 공항 근처에는 아직도 영하의 추운 날씨에다 눈이 그대로 있다. 세상은 참 좋은 세상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고 덥고 추운 나라 어디든 오가며 살 수 있게 되었으니 말이다.
니카라과 宣敎地를 다녀와서
白夜 朴 能在
중미(中美)에 있는 잘 알려지지 않은 작고 가난한 Nicaragua 라는 나라는 외국의 여러 나라들의 도움을 받으며 살아가고 있는 극 빈국의 하나이다. 우리 교회에서 이 나라에 집중선교를 하기로 결정한 후 단기 선교를 하기 위해 일차로 다녀왔으며 이번이 두 번째 다녀오게 된 내용을 짤게 기록을 해보려고 한다. 출발한 시기와 날자는 작년
그래서 시간이 있을 때마다 이 나라의 국민들의 교육수준은 어떤 정도이며 또 Nicaragua의 역사에 대해서 이곳 사정을 잘 아는 선교사님에게 물어서 기록해 두었던 내용을 옮겨 본다. 먼저 니카라과 역사는 400년 정도를 스페인 식민지통치하에 살다가
또 이 나라 국민의 약점(弱點)은 오랜 식민생활(植民生活)로 인해 남에게 의존성이 강하고 거짓말을 잘하고. 피해의식과. 폭력. 마약. 성 문란 등의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으며 깊은 상처 또한 안고 있는 나라라고 했다. 그리고 우리 한인들이 살고 있는 수는 약 600명 정도이며 50%가 봉재 공장에서 많은 급여를 받고 종사하고 있으며 그 밖에 옷 가게 .도매. 소매. 중고자동차판매업. 식당. 슈퍼마켓. 미용사 등의 직업들을 갖고 있으며 19가정의 선교사들이 이 나라 안에 살고 있다고 했다. 정치구조는 사회주의이며 1972년 12월 대지진 이후 회복이 안된 상태에서 20년간 (사회주의와 민주주의 싸움)내전으로 인해 더욱 가난해 졌으며 지금은 사회주의국가 체제로 운영되고 있으며 그런 연유로 정치적으로 불안하고 투자이민 같은 것을 받지 않으며 산업시설 부족과 전기가 태부족이며 날씨는 덥고 사람들의 게으름 때문에 나라가 발전 못하는 첫째 요인이 되고 있다고 했다. 가정부나 우전기사 일급이 미화 $5불이면 되며 하루 숙박비는 $10안팎이면 가능하다고 했다. 지하자원은 동쪽 카리브해안 쪽으로 광물 석유의 만은 매장량이 있다고 하는데 개발기술이 부족하고 재정 또한 부족하기 때문에 개발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고 했다.
또 종교분포는 천주교가 80% 개신교 20%(몰몬교. 여호와증인. 안식교. 통일교. 이슬람교 포함) 중에 기독교도 포함 되어있다. 그리고 도시를 제외하고 지방에는 전체인구의 50%가 어린이와 청소년들인데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교회나 가정에서 소외된 계층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살아간다고 했다. 위에 말한 것처럼 이들이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자란 후에는 남녀 간에 성적 관념이 희박하여 문란함은 물론이며 그들은 결혼 같은 것은 하지 않고 남녀가 같이 살다가 남자가 일자리가 있는 곳으로 훌쩍 떠나가면 그만이며 그들은 아무런 의무와 책임감 같은 것을 느끼지 못하는 게 사실이라고 했다. 그런 관계로 많은 여성들이 아이들을 데리고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처지이며 이들이 빈민들로 살아가는 게 대부분이라고 했다.
이런 열악한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선교사님들은 존경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이 하는 일은 전기도. 물도. 학교도. 교회도 없는 난민촌에 들어가 근거지를 두고 그곳에 학교도 지어주고 교회도 세우고 유치원도 설립하여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모아 놓고 성경 공부도 시키고 학교 공부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일을 하고 있는데 교육도 못 받고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고장에 어른들과 어린이들 청년들이 수백 명씩 모여와서 열심히 배우고 열심히 찬양도 하고 하는 것을 볼 때 많은 보람과 사명감 같은 것을 느끼게 된다고 하는 박 선교사님의 간증을 들을 때 가슴이 뭉클할 정도로 감명을 받았으며 한편으로는 아직도 지구촌 중미 이곳에는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 문화생활이 무엇인지 모르며 사는 불쌍한 사람들이 있구나? 하는 인식을 갖게 했다. 하나님은 왜 어떤 사람들은 환경이 좋은 곳에서 문화생활을 하며 풍요롭게 살게 하고 어떤 사람들은 환경이 나쁜 곳에서 교육도 못 받고 먹을 것도 못 먹고 인간의 대우를 포기 한 채 가난하게 살아야 하나? 이유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며 불공평의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 바로 이곳 니카라과로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했다.
우리 일행은 삼사일 동안은 박 선교사님 그리고 사모님과 함께 그분들이 섬기고 관리하는 교회들을 하나하나 방문해서 그곳 사정들을 살펴보고 운영실태도 알아보고 하는 견문을 쌓았다. 박 선교사님이 지었다는 교회를 하나 둘 살펴보면서 하나같이 내 마음에는 흡족하지는 않았다. 이유인 즉 출입구에 문짝이 없는가 하면 창문도 하나 없이 사통오달하는 건물을 교회라고 지어놓았다. 왜 이렇게 지었느냐고 물으니 예산관계도 있고 또 추위를 걱정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햇볕만 가리면 된다는 식이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달랐다 비가 오면 교회 안은 온통 물바다가 될 수도 있으며 사람들이 없을 대는 짐승들이 들어와 오줌 똥 싸고 할 턴데 이런 지저분한 곧을 어떻게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만일 우리가 교회를 이곳에 건축한다면 이런 식으로 짓지 말고 교회의 면모를 갖춘 반듯하고 아름다운 건물을 지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했다
마지막으로 그가 계획하고 진행하는 선교센터 부지를 가보았다 땅 전체 면적은 4에이커의 넓은 땅이다. 그 안에 세워질 건물들은 아래와 같이 계획하고 있었다.
1. 예배실 및 세미나실(주방겸용) 18-40미터
2. 열린 공간 (예배실 및 체육관 -지붕만 되어있는 공간으로 농구장 및 풋볼 축구장)
3. 숙소 (26인승 4동)
4. 다목적 용 교실 2동(칸막이 3칸) 15-30미터
5. 중 단기 선교사 숙소4동(방 두 개 부엌 거실 화장실)
6. 수영장 (지붕이 있는)
7. 성전 (기도원 집회용) 7-14미터
8. 개인기도실(10개 지붕과 바닥이 되어있음)
9. 우물(자동펌프)2개
10.물탱크
11.경비실. 녹색공간. 주차장
그리고 그는 선교센터가 꼭 필요한 이유를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첫째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교육해야 하며 이들을 가르칠 교사양성이 필요하며 목회자들을 교육시키는 일이 급선무이기 때문에 선교센터는 꼭 필요하다고 하는 말을 들었을 때 우리 일행들이 며칠 동안 보고 들었던 이곳 사정을 볼 때 우선적으로 선교 센터가 건축되어서 교육이 선행 되어야 하겠다고 의견을 같이했다.
마지막 날 우리일행은 시간을 내서 이곳에 명승지를 찾아 구경을 하기로 했다. 레온 지역에 있는 화산과 용암은 상하신또 용암(Hervidero Sanjacioto)이라고 하는 곳인데 연기가 솟아오르며 흙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당장이라도 화산이 폭발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빨리 그곳을 떠나고 싶은 심경의 변화를 가져오게도 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은 이 흙을 떠다가 관광객들에게 판다. 특효는 여인들 어굴 피부를 곱게 하는 팩에 좋으며 또 관절염 에도 특효가 있다는 현지사람들의 말을 듣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조금씩 사가지고 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 나라사람들이 일 년에 한 번씩 처녀를 제사 지냈든 곳 지금도 많은 연기가 솟아오른다)
두 번째 간 화산은 마사야 화산(Volcan Masaya)인데 깊이가 약 150미터 정도 깊은 곳에서 연기가 솟아오르는데 강약이 심하며 때로는 그곳에서 들려오는 용암이 끓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언제 다시 폭발 할 줄 모르는 그런 곳이다. 그런데 여기는 신화 같은 이야기가 하나가 전해지고 있다고 했다. 그 전설의 내용인즉 언제부터 그런 제사를 지내왔는지는 모르지만 1521년 까지 계속 되어 왔다고 그곳 사람들은 말하고 있다. 그 지방 토속종교인들은 신의 노여움을 면하려고 연례행사처럼 매년 처녀 한 명씩을 제물로 그 화산 불 속에 던졌다고 했다. 이 전설 같은 이야기가 실지로 있었던 사건이었음을 들었을 때 분로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도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 높은 언덕에는 철탑이 세워져 있는데 철탑 위에는 십자가가 있었다. 그 당시 처참했던 일들을 증명이라도 해주는 것 같았다. 용암이 부글부글 끓는 불 속으로 던져져 힘없이 죽어간 여인들의 영혼이 지옥 불 속이 아닌 하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를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지역은 화산으로 인해 생긴 곳들인데 어떤 곳은 사화산(死火山)이 되어있고 어떤 곳은 지금도 연기가 솟아오르는 곳들이 있다. 언제 화산이 폭발할는지 모르는 그런 곳이 많이 있다. 라고 그 레나데 라는 호수가 있는데 화산 폭발로 인해 300여 개의 섬이 생겨서 돈 있는 외국인들이 섬을 사가지고 집을 짓고 사는 별천지였다. 또 하나의 볼만한 것은 60년 전에 태풍이 불었을 때 어디서 큰 바위가 날아와서 나무 위에 얹혀 있다는 그 바위를 보면서 자연의 위대함을 실감 할 수 있었다.
(300년 전에 화산이 폭발했는데 지금은 맑은 물이 고인 라고 까따르르 호수)
그리고 라고 까따르르 라는 호수는 해발 1000미터가 넘는 곳에 호수가 있는데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워 보였다. 이런 호수가 되려면 화산이 폭발한 후로 300년의 세월이 흘러야 물이 고여 호수가 된다고 안내자가 알려주었다.
끝으로 우리교회가 선교지역으로 선정한 Leon 지역은 덥고 건조해서 곡식이 안 되며 채소 역시 자라지 못한다고 했다. 북쪽으로 차로 몇 시간 가면 기후차이 때문에 채소도 잘되고 논에 모를 심어 쌀도 생산하고 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집들이 규모가 짜여있고 부촌 같았다. 그곳에 검은 숲(Selva negra)이라는 산이 있는데 산 정상에는 숲 속에 별장들이 있고 호수 위에는 백조들이 떠있고 교회와 식당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휴양 차 와서 머물기도 하고 신혼부부들이 신혼여행을 오는 곳이기도 한다는 그런 곳이라고 했다. 커피 특산지인 이 나라에는 산 전체에 커피나무를 재배하여 많은 소득을 내고 있는데 그 주인이 독일 사람이며 여러 대를 이곳에서 농장을 하고 산장을 운영하고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고 했다. 그곳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는데 산장 주인이 다가오더니 다음에 찾아오면 저렴한 가격으로 산장을 빌려주겠다고 하며 친절을 베풀었다.
(검은 숲 속에 있는 산장호수)
이렇게 5박6일의 짧은 선교 일정을 마치고 Edmonton으로 돌아왔다. 영하의 칼 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고 있다. 잠깐 동안 체류했던 니카라과 이었지만 30도를 오르내리는 알맞은 날씨와 원시림이 울창한 곳에 아침이면 새 울고 닭이 울고 개가 짖어대는 그곳이 다시 가고 싶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