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가톨릭 문화유산 순례] (중) 오스트리아 - 1000년을 이어온 수도원의 오늘
누구에게나 열린 공간으로… “하느님의 숨결 느껴보라”
- 멜크 수도원 전경. 멜크 수도원 제공.
그리스도교 초기(서기 174년쯤)부터 현재의 국토에 신앙이 전파된 오스트리아 역시 앞서 소개한 폴란드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역사와 교회의 역사가 맥을 같이 한다.
오스트리아 동행 취재에서는 성 베네딕도회의 멜크 수도원과 성 아우구스티노회의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그리고 빈(Wien)대교구청과 주교좌성당인 성 슈테판대성당을 방문했다.
두 곳의 수도원 방문을 통해 1000년에 가까운 긴 세월 동안 수많은 부침을 겪으면서도 오스트리아의 대표적인 수도원이라는 자리를 확고부동하게 지켜 온 이유가 확실히 있음을 깨닫게 됐다.
교구청 방문 또한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나치에 맞섰고,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의 원조에 앞장서 온 오스트리아교회의 다양한 활동에 대해 들을 수 있었던 뜻깊은 자리였다.
성 베네딕도회 멜크 수도원
국가로서의 오스트리아가 발원한 장소에 자리 잡고 있는 멜크 수도원은 움베르토 에코의 소설 ‘장미의 이름’의 모티브를 제공한 도서관이 있는 곳이자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수도원 중 하나인 이곳에는 많은 관광객들이 찾는 성당, 도서관, 박물관 외에도 900명의 학생이 다니는 김나지움(우리나라의 중·고교과정)이 있다.
- 9월 25일 방문한 오스트리아 멜크 수도원에서 수도원 문화·관광 담당 마르틴 로테네더 신부가 수도원의 역사와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1089년 설립된 멜크 수도원에는 1160년 수도원 부속학교가 들어섰는데 지금까지 쭉 교육기관으로서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교사만 100여 명에 달하는 이 학교는 다양한 분야의 지도자들을 다수 배출해 왔다. 명문 사립 남녀공학인 이 학교의 학비는 월 85유로(약 11만 원). 재정적 부담을 줄이고 우수한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다른 사립학교에 비해 저렴하게 책정됐다. 또 수도원 본연의 피정, 영성수련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다. 원하는 기간만큼 수도원에 머물러 묵상하며 강의도 들을 수 있고, 담당 사제와 일대일 면담도 가능해 인기가 많다고.
성 베네딕도 수도회의 모토 ‘기도하고 일하라’에 맞게 모든 수도자들은 정원 가꾸기, 허브 재배, 신발 만들기, 술 담그기 등 다양한 육체활동도 병행하고 있다. 수도원 문화·관광 담당 마르틴 로테네더(Martin Rotheneder) 신부는 “가능하면 신자 여부를 떠나 모든 사람에게 수도원을 개방하려 한다”며 “모든 인간이 아름답고 조화로움을 직접 체험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것이 바로 하느님을 체험하는 시간, 하느님의 현현”이라고 덧붙였다.
- 오스트리아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에 있는 ‘베르둔 제단’.
성 아우구스티노회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또한 멜크 수도원 못지않은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1114년 오스트리아의 수호성인인 성 레오폴드 3세에 의해 세워진 이 수도원에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다. 레오폴드 3세의 아내 아녜스의 신부 베일이 바람에 날아가고 말았는데,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레오폴드 3세는 그것을 발견하는 장소에 수도원을 세우겠다고 서약했는데, 9년 후 한 나무 아래에서 베일을 발견해 약속을 지켰다는 것이다.
수도원 소개 영문 팸플릿 표지에는 ‘FAITH, WINE, CULTURE’(믿음, 와인, 문화)라는 세 단어가 적혀 있다. 이 단어들은 수도원의 모든 것을 압축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 아우구스티노 수도회가 운영하는 사제 공동체인 이 수도원에는 25명의 사제들이 살고 있다. 이 수도원 내의 포도밭은 수도원 설립 초기부터 있었던 것으로, 수도원 설명에 따르면 오스트리아에서 가장 오래됐다. 수도원에서는 와인 판매는 물론 와인 저장고를 둘러보는 와인 셀러 투어(wine cellar tour)도 실시하고 있다.
수도원 미술관 내에는 중세부터 현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형태의 보물, 작품들이 있다. 이 가운데 가장 귀한 두 가지를 꼽는다면 ‘베르둔 제단’(Der Verduner Altar)과 ‘오스트리아 대공의 관’(Der Österreichische Erzherzogshut)이다. 1181년 완성된 베르둔 제단은 성경의 내용을 담은 화려하고 정교한 에나멜 패널 51개로 만들어졌다. ‘오스트리아 대공의 관’은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의 아들인 대공 막시밀리안 3세가 1616년 수도원에 맡긴 것으로, 빈에서 새 대공의 즉위식이 열릴 때마다 가져와 경의의 표식으로 사용했다.
수도원 큐레이터인 볼프강 후버(Wolfgang Huber)씨는 “수도원은 약 4만 점에 달하는 작품들을 소장하고 있는데, 성물 외에도 직물, 가구 등 수집 품목이 매우 다양하다”며 “유물은 물론 현대 작품들도 모으고 있으며 살아 있는 신앙의 유산들을 보존하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오스트리아 빈대교구 프란츠 샤를 보좌주교. 뒤에 보이는 그리스도 성화에는 나치에 의해 훼손된 흔적이 남아있다.
빈(Wien)대교구청
빈대교구청에서는 프란츠 샤를(Franz Scharl) 빈대교구 보좌주교가 직접 기자단을 맞이했다. 샤를 주교는 ‘찬미 예수님’, ‘안녕하세요’ 등 미리 연습한 한국어 인사말을 전하며 환대했다. 성 슈테판대성당 인근에 자리한 교구청 건물은 나치가 점령했던 시기 수천 명에 달하는 유다인들을 보호했던 피난처이기도 하다.
기자단이 마주한 사무실 벽면에는 그리스도 성화가 나치에 의해 훼손된 그대로 걸려 있고, 같은 건물에는 1943년 희생된 복녀 마리아 레스티투타 플라츠 카프카 수녀를 기리는 경당도 마련돼 있다.
오늘날 오스트리아교회의 핵심 과제는 과거 성직자 중심의 교회에서 벗어나 평신도를 중심으로 한 신앙 공동체를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이에 오스트리아 내 도시를 순회하며 ‘Jesus in the city’(지저스 인 더 시티)라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또한, 청년 교리서 「YOUCAT」(현지 발음으로는 ‘유캇’)을 발간한 나라답게 오스트리아교회는 청소년·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신앙 교육에 힘쓰고 있었다. 예비 성소자에게 장학금을 지원하는 한편 청소년 연합 커뮤니티도 운영 중이다.
장구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도 꿋꿋하게 자리를 지켜 온 멜크 수도원과 클로스터노이부르크 수도원.
시대의 변화를 외면하지 않으면서 새로운 요구에 신앙을 담아 부응하는 것, 이것이 오스트리아 수도원이 1000년을 이어올 수 있었던 이유였다. 또한 불의에 침묵하지 않고 박해를 받으면서도 저항하고 약자를 보호했던 교회의 한결같은 모습이 있었기에 탈종교의 광풍이 몰아치는 오늘날에도 오스트리아의 가톨릭은 여전히 압도적인 다수의 종교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0월 13일, 오스트리아 김현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