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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 국제공항. 유월 육일 밤 열시.
초여름이지만 밤공기는 서늘했다. 입국장 앞에서 진영은 손목시계를 보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승객들이 아직 나오지 않고 있었다. 다시 십오 분 가량 지났다. 드디어 승객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잠시 후 아나스타샤가 나타났다. 밤인데도 선 글래스를 쓰고 여행용 짐 가방을 밀고 나왔다. 몸에 붙는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이었다. 세련되고 육감적으로 보였다.
진영은 그녀가 나오기를 기다리면서 주위를 살펴보았다. 수상한 감시자는 없는 것 같았다. 그는 아나스타샤를 잠시 따라가다가 옆으로 슬쩍 따라붙으며 그녀를 불렀다.
“애라야, 지금 오니?”
“어머, 진영씨! 나 마중 나왔어?”
“그럼. 자기 말고 또 마중할 사람 있나.”
“별일이야. 진영씨 나올 줄 몰랐어.”
“왜 이래. 나도 알고 보면 다정다감한 사람이야.”
“알아. 그러니까 내가 당신 좋아하지.”
“야, 오늘 나오기 잘했구나.”
아나스타샤가 진영의 볼에 입을 맞췄다.
‘언제나 알쏭달쏭 하고 수상한 여자지만 매력은 있어’하고 진영은 생각했다.
“평양에서 엄마는 만났어?”
“응, 이제 엄마도 많이 늙으셨어. 엄마를 그곳에 두고 오려니까 발이 안 떨어져.”
그녀는 북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민 박사가 한국에서 기자회견을 한 후 아나스타샤는 인스펙터에서 본격적으로 발을 빼려는 공작을 시작했다. 그녀는 우선 모스크바의 아파트 등 근거지를 은밀히 정리하고 일을 핑계 삼아 북한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곳에서 어머니를 만난 뒤 생활자금을 건네주고 잠시 머무르다 돌아왔다.
진영도 이제 모스크바 특파원 임기가 다 되어간다. 그는 아나스타샤에게 한국으로 함께 가자고 제안했다. 그들은 인스펙터의 감시를 극도로 경계하고 있는 중이었다.
어머니 얘기를 하면서 아나스타샤는 슬픈 얼굴이 되었다. 이번에 어머니를 봤지만 그녀가 인스펙터에서 발을 빼면 언제 다시 만날지 알 수 없었다. 이번이 마지막 본 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의 가슴은 찢어질 듯 했다. 눈에 눈물이 괴었다.
“엄마를 이제 언제나 만나 볼지...”
“한민족의 비극이야. 왜 우리는 가족끼리 함께 살지 못하고 이렇게 이별의 고통을 맛봐야 하지?”
진영은 그녀의 어깨를 감싸 안고 공항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 때 건물 한 귀퉁이에 붙어 서 그들을 지켜보고 있는 그림자를 두 사람은 눈치 채지 못했다. 진영은 그녀를 자기 차에 태웠다.
“이번에 인스펙터의 임무는 수행하지 않은 거야?”
“하는 척 시늉만 했는데 이제 자꾸 의심하는 거 같애.”
진영은 그렇게 말하는 그녀의 표정을 날카롭게 관찰했다. 이중 스파이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할지...
“자기 왜 그렇게 봐. 아직도 날 믿지 못하는 거야?”
“글쎄. 믿기는 하지만...”
“하지만, 뭐야아... 날 아직 못 믿겠다 이거야?”
그녀가 토라지는 시늉을 했다. 진영이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애라, 자기 믿는다.”
“진심으로 하는 말 같지 않은데. 못 믿겠으면 나 여기서 내릴래.”
“됐어. 이 아가씨야. 여기 생활 정리하고 나 특파원 임기 끝나면 한국으로 함께 가야해.”
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거 봐. 아직 마음 결정이 안됐잖아.”
“진영씨. 생각할 시간을 조금 줘. 내 생활 근거지가 러시아 아냐? 여길 뜬다는 게 간단한 문제는 아냐.”
“그 얘긴 나중에 더 하고, 지금 북한 분위기는 어때? 민 박사 일가 탈출 후 분위기가 살벌하지?”
“응,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민채영씨 탈출을 방조한 세력들에 대한 숙청이 시작됐고 민 박사를 외국에 보내기로 한 관계자들도 조사받고 있어. 당정치국에서 이상국 위원이 조사받고 군부에서 박기웅 대장이 조사받고 있는가 봐. 대남 협상파들이 줄줄이 국가안전보위부로 불려가고 숙청되고 있어.”
“민 박사 비호세력들이 피해가 많구나. 백두산 작전은 어떻게 돼가고 있어?”
“일단 계획이 세계에 알려졌으니까 시월 일일 공격계획은 취소될 거야. 그러나 돌아가는 걸 보니까 계획 자체가 완전 백지화된 거 같지는 않아. 무언가 꿍꿍이가 있나 봐. 러시아가 인스펙터 기지를 수사하고 있지만 그 조직이 그렇게 만만하게 당하고만 있지는 않을 걸. 핵무기로 선제공격 할지도 몰라. 그렇게 되면 큰일이야.”
“인스펙터와 북한이 선제공격하기 전에 막아야 할 텐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게 문제야. 그렇다고 이쪽에서 일방적으로 공격할 수도 없고... 인스펙터 기지는 선제공격으로 타격을 입힐 수도 있는데, 북한이 문제야. 저쪽이 가만있는데 이쪽에서 먼저 공격할 수도 없잖아. 북한이 움직이는 걸 기민하게 포착해야 해.”
“아 참. 민 박사 귀순 후 지섭씨와 채영씨는 극적으로 만나 본 거야?”
“기자회견장에서 얼핏 만나 봤는데 채영씨가 부상이 심하고 보안문제도 있어서 아직 둘이서 정식으로 만나지는 못했어.”
“어머나, 저를 어째. 채영씨 부상이 그렇게 심해? 지섭씨가 많이 상심했겠네.”
“그래서 그 녀석 지금 정신없어. 채영씨가 아직 목발을 짚고 있거든. 부상 후유증이 염려되기도 하고...”
“그렇게 심해? 후유증이 있으면 어떻게 해...”
“치료경과를 좀 더 지켜봐야지.”
두 사람은 잠시 말을 끊었다. 그때 진영이 백미러를 보며 중얼거렸다.
“이상한 차가 아까부터 미행하는 거 같은데.”
아나스타샤의 얼굴빛이 변했다.
“인스펙터 같은데. 자기 운전 자신 있지? 미행하는 차 따돌려 봐.”
진영은 차를 휘익 돌려 반대편으로 달리다 골목길로 꺾었다. 뒤따르던 차가 급히 유턴하는 모습이 보였다. 진영은 골목길로 달리다 다시 우회전해서 큰 길로 나와 자신의 아파트로 가는 우회도로로 접어들었다.
“오늘 우리 집으로 가는 게 좋겠어. 애라 집은 저자들이 다 알잖아?”
“저 사람들이 우리 집은 알아. 자기 집으로 가.”
미행하던 차는 앞차를 놓쳤는지 보이지 않았다. 아나스타샤는 마음이 불안해졌다. C-2가 요즘 집요하게 자신을 감시하는 것 같았다. 조직에서 발을 빼려면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자신을 미행하는 검은 그림자가 자주 붙어 다니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불안을 떨쳐버리려는 듯 머리를 흔들었다.
“애라야, 불안하니? 신변이 위험하면 한국대사관으로 망명하는 건 어때?”
‘진영씨. 망명에 재미 붙었나 봐. 나까지 망명하라고?“
“저 놈들이 미행하는 게 불길해.”
그들은 잠시 침묵했다. 얼마 후 진영의 아파트에 도착했다. 차에서 내려 두 사람은 주위를 살폈다. 특별한 상황은 없는 것 같았다. 진영의 아파트는 이층이기 때문에 손을 잡고 계단을 천천히 걸어 올라갔다. 오랜만에 만난 그들은 거실로 들어서면서 힘껏 껴안았다. 거실 유리문 거튼이 열려 있었다.
“자기야. 만일 나한테 무슨 일이 있으면 어떻게 할 거야?”
“애라, 오늘 왜 이러니? 뭔가 불안해?”
“글쎄. 뭐라고 설명할 수는 없는데 불길해. 아까 그 차 따돌렸지?”
“골목길을 벗어났을 때 사라졌어. 너무 불안해하지 마아.”
아나스타샤는 진영의 목에 팔을 감고 그의 눈을 드려다 보았다.
“진영씨, 사랑해. 나 떠나지 않을 거지?”
“그래, 애라야. 사랑한다. 어떤 일이 있어도 자기 떠나는 일은 없어.”
진영이 그녀에게 키스했다. 그녀의 달콤한 입술이 열렸다. 향긋한 냄새가 났다. 그들은 잠시 서서 키스를 계속했다. 진영이 더 힘껏 아나스타샤를 안자 그의 등을 안고 있던 그녀가 손에 힘을 주었다. 조금 후 두 사람이 식탁으로 가서 술 한 잔을 하려고 그 쪽으로 돌아서려는 순간이었다. ‘쨍그렁’하고 유리창이 깨지는 소리와 함께 창문 쪽에 등을 돌리고 있던 아나스타샤가 푹 고꾸라졌다.
진영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안고 거실 바닥으로 뒹굴었다. 총알이 두 발 더 날아왔으나 그들을 더 맞추지는 못했다. 진영이 몸을 날려 창문 옆에 붙어 서서 밖을 내다보았다. 어떤 사내가 벌써 달아나고 있었다.
진영은 그를 따라 가는 것을 포기하고 급히 아나스타샤를 살폈다. 총알이 그녀의 등으로부터 앞 쪽으로 비스듬히 관통해 피가 흥건히 흘렀다. 그는 우선 자신의 와이셔츠를 찢어 그녀의 상처부위를 동여매 과다출혈을 막았다. 진영은 급히 그녀를 안고 밖으로 뛰었다.
“애라야, 죽으면 안 돼. 죽지 마. 애라!”
그는 뛰면서 부르짖었다.
서울 강남구 청담동의 한식집, 정원.
국회의원들의 검은 승용차가 연달아 들어왔다. 차에서 의원들이 줄줄이 내렸다. 그들은 구석진 곳에 있는 가장 큰 방으로 안내되었다.
이십여 명의 민국당 국회의원들이 자리를 잡자 음식이 들어왔다. 방안의 분위기는 상당히 무거웠다. 최철성 원내대표가 먼저 입을 열었다.
“지금 한반도는 육이오 전쟁 후 최대의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북한에서 귀순한 민영대의 말로는 북한에서 핵무기를 실전배치해 남한에 대한 공격준비를 마쳤다고 하는데 우리가 이러고만 있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당 대표 님과 여러 중진의원님들을 이 자리에 모신 것도 이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것입니다. 기탄없는 의견을 말씀해 주시기 바랍니다. 먼저 정치성 대표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정대표가 무겁게 말했다.
“사태가 이렇게 된 데는 집권당인 한국당의 책임이 큽니다. 우리의 햇볕정책으로 그동안 남북관계가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접어들었는데 한국당이 집권하고 북한에 퍼주기를 안한다니 뭐니 하며 남북관계를 이렇게 경색국면으로 망쳐놓았습니다. 더군다나 미국과 밀착해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으니 그 쪽에서는 마지막 자위수단으로 핵무기를 개발하지 않을 수 없지 않겠습니까. 이런 위기에 민영대 일가까지 귀순했으니 북한 입장으로는 선택의 여지가 없을 거요. 민씨의 이번 귀순 과정에선 국정원의 공작냄새가 너무 납니다. 자연스럽지가 않아요. 귀순 작전에서는 또 대한신문 등 특정 언론과 밀착된 느낌도 농후합니다. 이제 남북 대화채널은 꽉 막히고 돌이킬 수 없는 파국의 국면으로 접어들었어요. 핵전쟁의 막다른 길로 들어섰으니 남북한이 화해를 하기에는 이미 때가 너무 늦었습니다. 그래도 햇볕정책을 추진했던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을지, 오늘 이 자리에서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을 얘기해 봅시다.”
이어서 의원들이 한국당의 대북정책에 대해 성토를 했다. 한 의원이 이 위기를 넘길 수 있는 방법으로 북한에 국회의원 특별사절단을 보낼 것을 제안했다. 사절단은 여, 야 의원으로 구성하자는 것이다. 또 남한 대통령과 북한 국방위 제1위원장의 남북정상회담을 전격 추진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이러한 일을 성사시킬 수 있는 영향력 있는 대북채널이 과연 누구냐 하는 점에 대해서 의견이 분분했다.
아나스타샤가 실려 간 병원 중환자실.
대수술을 받은 그녀가 산소호흡기에 의지해 간신히 호흡을 하고 있었다. 진영은 침대에 엎드려 간절히 기도했다.
“애라야. 제발 살아만 다오.”
진영이 그녀의 손을 잡고 빌었다.
아나스타샤는 여섯 시간에 걸친 대수술을 받았다. 총알이 오른 쪽 등을 옆으로 관통하고 폐를 약간 스쳤다. 가슴에 들어 간 총알과 파편은 미세수술을 거쳐 제거했으나 폐가 손상되어 산소호흡기에 의존해 하루하루를 넘기고 있었다. 손상된 폐포를 잘라 내고 나머지 기능을 정상화 시켜 호흡을 할 수 있는 조치도 했다. 그녀의 생사 여부는 이번 주가 고비라고 의료진은 말했다. 그녀를 의료기술이 좋은 한국으로 옮기기에는 너무 고국이 멀었다.
치명적인 매력과 위험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던 이중스파이 아나스타샤. 진영은 그녀가 인스펙터 요원이라는 게 밝혀졌을 때 결별을 선언해야 하지 않을까도 생각했다. 그녀와의 불나방 같은 사랑은 안 된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그녀가 인스펙터 조직에서 점차 손을 떼고 북한을 드나들며 지섭과 채영의 사랑을 도왔을 때 고마움을 느꼈다.
‘생각하면 애라도 불쌍한 여자야. 부모의 사랑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람 여자. 외톨이로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던 여자... 그래 애라를 사랑하자. 아니 이미 사랑하고 있다.’
진영이 이렇게 마음을 굳혔는데 사고가 터졌다.
아나스타샤가 병원에 온지 일주일을 넘어 열흘 째 되는 날. 그녀는 아직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한 채 산소 호흡기에 의해 간신히 호흡을 할 뿐이었다. 의료진은 고비라고 말한 기간을 넘겼지만 그녀는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회생의 희망이 없어져 가는 것인가.
“애라야, 눈 좀 떠봐.”
진영이 안타까운 마음으로 말했으나 그녀는 여전히 반응이 없었다. 숨을 쉴 때마다 그녀의 가슴이 팔딱거리는 것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확인할 뿐이었다. 풍만하던 그녀의 몸은 날이 갈수록 여위어 갔다. 진영은 아나스타샤의 앙상해진 손을 잡고 눈물을 흘렸다. 이제 그녀의 아름답고 풍요로운 모습 을 어디서 찾을 수 있단 말인가. 윤기 있는 목소리와 달콤한 숨소리를 언제 들을 것인가. 그렇게 요염한 입술과 풍만한 가슴, 미끈한 다리를 가진 여자였다고 상상이나 할 수 있단 말인가. 진영은 절망 속으로 빠져 들어가고 있었다.
그때였다.
아나스타샤의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진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두 손을 마사지 하며 그녀의 얼굴 가까이에 귀를 대고 호흡소리를 들어보았다. 그렇게 생각해서인지 호흡도 한결 원할 해 진 것 같았다. 그는 비상벨을 눌러 간호사를 불렀다. 간호사가 달려왔다. 그녀는 아나스타샤의 용태를 살피더니 어깨를 으쓱하며 놀랐다.
“미스터리, 상태가 좀 좋아지는 것 같군요. 의사를 불러 올게요.”
간호사는 급히 나가 의사를 불러왔다. 두 명의 의사가 달려왔다. 그들은 아나스타샤의 손 움직임을 살펴보고 손바닥에 자극도 주어보았다. 호흡과 맥박, 혈압, 심폐상태를 급히 체크했다. 진영은 초조하게 의사들의 표정을 살폈다. 이윽고 주치의가 입을 열었다.
“미스터리, 축하합니다. 이제 상태가 조금 좋아지는 것 같군요. 환자를 검사실로 옮겨 정밀검사를 해봐야겠지만 일단은 위험한 고비는 넘긴 것 같습니다. 아직 낙관할 단계는 아니지만 환자의 체력이 워낙 좋아 한번 희망을 걸어 봅시다.”
“박사님, 이거 감사합니다.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뭘요. 다 이 특파원 정성 덕이지요.”
아나스타샤는 검사실로 옮겨져 여러 가지 정밀검사에 들어갔다. 검사실에서 중환자실로 돌아온 그녀의 증세는 차츰 호전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는데 시간이 지나며 입술도 조금 달싹거리고 발가락도 가끔 움직였다. 그러나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는 않았다.
중환자실로 들어 온지도 두 주일이 넘었다. 그녀는 생과 사의 갈림 길에서 투쟁을 계속하고 있었다. 아나스타샤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인스펙터가 안다면 또 다시 저격수를 보낼지도 모른다. 중환자 하나 쯤 없애는 것은 저들에게는 쉬운 일일 것이다. 진영과 한국대사관 측 요청에 따라 러시아 경찰이 그녀를 경호하고 있으나 형식에 불과했다. 러시아로서는 한 여자의 경호에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진영은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입원한 지 이십일 째 되는 날. 그날도 진영은 취재와 기사송고를 부지런히 해놓고 밤 여덟시 쯤 중환자실로 면회를 갔다. 아나스타샤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그동안 많이 수척해졌으나 증세가 조금씩 호전된 것만으로도 고마웠다. 그러나 아직 의식을 돌아오지 않았다. 그는 그녀의 손을 가만히 쥐었다.
“애라야, 이제 그만 눈 뜨고 말해 봐...”
그때 그녀의 숨결이 조금 거칠어지는 듯 하더니 입술이 조금씩 움직였다. 그녀의 입술이 좀 더 확실하게 움직였다. 눈꺼풀도 조금씩 파르르 떨렸다. 진영은 놀라서 아나스타샤의 손을 꽉 잡고 외쳤다.
“애라, 정신이 좀 드니? 눈을 떠. 애라야!”
그는 비상벨을 눌렀다. 간호사가 달려왔다.
“오, 환자가 눈을 뜨려나 봐요, 미스터 리.
“애라, 애라야. 나 좀 봐!”
진영의 소리에 그녀는 눈을 뜨고 멍하니 앞을 보았다. 그리고는 입술을 조금씩 움직이며 손을 움직이며 신호를 했다.
“응? 나 가까이 오라고?”
진영이 그녀 입 가까이에 귀를 대자 그녀는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물었다.
“여기가 어디?”
“모스크바 병원이야. 나 알아 보겠어?”
그녀는 희미하게 표정을 지으며 긍정하는 표시를 했다.
“오우, 미스터 리. 축하해요. 의사 선생님을 모셔올게요.”
조금 있다가 야간 당직의사가 달려왔다. 그는 아나스타샤의 호흡상태와 맥박, 혈압을 체크했다. 심장과 연결된 기계의 화면 그래프도 보았다.
“자, 숨을 크게 쉬고 말을 해봐요.”
의사가 말하자 아나스타샤는 그렇게 하려고 노력했다. 의료진이 그녀를 급히 검사실로 이송해 정밀검사를 했다.
서울 경찰청 기자실.
지섭의 휴대폰이 울렸다. 알 수 없는 번호였다. 지섭이 전화를 받았다.
“지섭씨, 저 채영이야요.”
“아아! 채영씨. 휴대폰을 지급받았네요. 그동안 연락이 안 돼 얼마나 애를 태웠는데...”
“걱정 많이 했죠. 지섭씨 그럴 줄 알고 휴대폰 달라고 막 떼를 썼어요. 받자 말자 전화하는 거예요.”
“잘했어요. 채영씨 상처가 너무 걱정돼서... 좀 어때요.”
“병원에서 치료받고 있는데 좋아지고 있데요.”
“목발 아직 짚고 다녀요?”
“아직은...”
“...”
“또 걱정하는 거죠. 곧 괜찮아진다니까요.”
“그래. 다 나을 거야. 채영씨, 언제나 잘 극복하잖아요.”
“열심히 치료해 볼게요.”
“재활치료도 해요?”
“네. 다리 운동도 하고 걷는 연습도 해요. 나 목발 짚은 거 보기 싫지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목발을 짚으나 안 짚으나 채영씬 그대로야.”
“담에 지섭씨 볼 때 목발 없이 나가볼게요.”
“너무 무리하진 말아요.”
“참, 지섭씨. 기쁜 소식 있어요.”
“뭔데요?”
“담 주 금요일에 우리가족 공식 나들이 한데요.”
“정말? 그럼 유월 십칠일이네! 그때 사회부장에게 자원해서라도 취재 나갈 게요”
“그럼 그때 지섭씨 볼 수 있겠네.”
“그때 만날 수 있어요.”
“모든 게 꿈만 같아요.”
“그런데 숙소는 어디예요?”
“여기서는 비밀로 하라도 그러는데, 강남구 우면동이라고 해요.”
“집은 어때요. 지낼 만 해요?”
“너무 깨끗하고 넓어서 우리 집 같지 않아요. 북에 살 때 비하면...”
“공식나들이 말고 자유로운 외출은 언제부터 할 수 있어요?”
“아직은 신변이 위험하다고 좀 기다려 보래요.”
“채영씨, 너무 보고 싶다.”
“나도요.”
지섭이 저녁 때 경찰청 기자실에서 나와 신문사로 가서 편집국으로 들어섰다. 편집국은 민 박사 일가와 백두산 작전, 인스펙터에 대한 후속 기사 때문에 어수선하게 시끄러웠다. 정치부와 사회부, 국제부 주변에 일부 기자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고 일부 기자들은 기사쓰기에 여념이 없었다.
사회부 손 부장이 지섭을 보자 손짓해서 불렀다.
“귀순한 민영대 박사 일가의 공식 나들이 일정이 나왔어.”
“아, 네.”
지섭은 이미 알고 있는 사항이지만 내색하지 않았다.
“이번 금요일에 서울 시내 백화점을 둘러보고 지방에 가서 전자회사, 자동차 생산 공장, 경주 등지를 돌아보게 되어 있으니까 사건기자 한 명하고 따라가 봐.”
“네, 알겠습니다.”
손 부장은 대답하는 지섭을 보며 빙긋이 웃었다.
‘마, 자네 마음은 내가 안다. 얼마나 가고 싶겠나.’
부장은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자기 자리로 돌아 온 지섭의 가슴이 쿵 쿵 뛰었다.
채영은 총상을 입은 다리치료를 위해 거주지에서 가까운 종합병원에 도착했다. 그녀는 여자 경호원이 부축을 받으며 차에서 내렸다. 내리면서 목발을 짚었다. 아직 목발을 의지해야 걸을 수 있었다. 매스컴을 통해 그녀의 얼굴이 알려졌으므로 모자와 선 글래스로 얼굴을 가렸다. 그녀는 경호원의 경호를 받으며 일반 환자들이 드나들지 않는 별도의 진료실로 들어갔다.
담당 외과의사는 그녀의 상처부위를 살펴보았다. 그는 채영의 다리를 구부렸다 폈다 해보았다.
“어때요. 아파요?”
“네. 아직 조금은...”
“자, 내가 잡아 줄 테니 목발 없이 한 번 걸어 볼래요.”
채영이 의사에 의지해서 억지로 몇 걸음 걸어 보았다. 의사는 채영의 걸음걸이를 유심히 살폈다. 채영이 의사의 표정을 보았다.
“상태가 어떤가요?”
“외과적 치료는 조금만 더 하면 되고요... 물리치료는 잘 받고 있지요?”
“네. 그런데 선생님, 목발은 언제까지 짚고 다녀야 할까요?”
“총알이 무릎 관절을 관통해서 지금 걷는데 불편할거에요. 신경을 조금 건드려서... 일단 통증이 없게 하고 재활치료를 통해서 운동신경을 살리면서 좀 기다려 볼까요.”
“재활치료 하면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나요?”
“그렇게 되도록 노력해 봅시다.”
채영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주저하던 질문을 던졌다.
“선생님, 혹시 영원히 다리불구가 되는 건 아닌지...”
“그렇게 되면 안 되지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말씀은 그렇게 하시지만 장애자가 될 수도 있지 않나요?”
“민채영씨, 우리 희망적으로 생각합시다.”
민영대 박사의 첫 나들이가 있는 날 을지로의 백화점 앞.
보도진이 진을 친 가운데 선도하는 경호차가 도착해 경호원들이 차에서 내렸다. 이어서 민 박사 가족이 탄 차가 도착했다. 먼저 민 박사가 내렸다. 사진기자들이 플래시를 터뜨리고 티브 카메라가 돌아갔다. 이어서 수영이 내렸다.
잠시 후 채영이 내렸다. 그녀는 목발을 짚지 않았다. 조심스럽게 한발, 두발 내디뎠다. 그러나 채영은 왼쪽 발을 절름거렸다. 이전에 보던, 호신술로 다져진 그녀의 가벼운 걸음걸이가 아니었다. 보도진의 카메라가 일시에 집중되었다. 그녀는 잠시 걸음을 멈추었다가 다시 의연하게 걸으려고 애썼다.
보도진에 끼어있던 지섭은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쓰리고 아려왔다.
‘채영, 당신을 한국에 오게 하려고 결국 장애자를 만들었어. 어떻게 하면 고쳐질 수 있을까...’
지섭의 눈에는 눈물이 고였다.
전담 코디가 민 박사와 수영 모두 산뜻하게 옷매무새를 꾸며주어서인지 준수하고 건강해 보였다. 채영도 초여름에 맞는 세련된 투피스에 스카프를 맸다. 화장한 피부가 유월 햇볕에 빛났고 치렁한 긴 머리가 어깨 아래까지 찰랑거렸으나 지섭에게는 슬프게만 느껴졌다.
‘우리의 의학기술로도 더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인가...’
지섭은 한숨을 쉬었다. 채영이 주위를 둘러보았다. 민 박사 일행 가까이에 있는 취재진에 끼어 서 있던 지섭을 발견했다. 그녀는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나 아직 재활치료 중이니까 다음번에는 꼭 잘 걸을 거예요.’
‘당신은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꼭...’
그들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민 박사 일행은 백화점 직원들의 인사를 받으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안으로 들어갔다. 먼저 일층 화장품 점포에 들어갔다. 국산과 외국제 화장품이 줄줄이 진열된 점포들을 천천히 돌았다. 채영은 싱가포르에서 백화점 구경을 했지만 민 박사와 수영은 남한 백화점의 화려함에 놀라는 표정이었다. 그들이 한 점포에 들르자 점원들이 환한 미소와 함께 화장품들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했다. 특히 여성인 채영에게 여러 가지 화장품을 보여주며 설명했다. 카메라가 집중되었다. 그녀는 여성용 화장품을 두 점 샀다. 민 박사와 수영은 남성용 스킨과 로션을 샀다.
민 박사 가족은 일 층을 천천히 돌아본 뒤 의류점포로 올라갔다. 그들은 너무도 많은 의류가 화려하게 진열된 점포들을 둘러보고 어쩔 수 없이 북한의 형식만 갖춘 초라한 백화점이 떠올랐다. 그들이 들어간 의류점에서는 여러 가지 여름 신상품을 보여주며 입어 보기를 권했다. 이들을 둘러싼 기자들이 백화점에 대한 인상과 첫나들이에 대한 소감, 언제쯤 자유로운 외출이 가능한지 질문공세를 폈다. 민 박사가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기자 중 한 명이 채영에게 물었다.
“민채영씨, 실례되는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
채영이 괜찮다고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다리가 좀 불편하신 것 같은데, 언제쯤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을까요?”
그녀의 얼굴에 곤혹스러운 표정이 지나갔으나 잠시 후 답변했다.
“지금 재활치료를 하고 있는데 잘 모르겠어요. 의사 선생님은 정상적으로 걷게 되도록 희망을 가져보자고 말씀하셨습니다.”
기자들 사이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알았습니다. 난처한 질문 용서하세요.”
질문한 기자가 사과했다. 지섭은 가슴이 무너져 내리는 것 같았다. 채영이 슬픈 표정의 지섭에게 잠간 시선을 주었다.
박사 일행은 전자제품 점포로 이동하려고 엘리베이터 쪽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함께 움직였다. 지섭은 채영이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에 재빨리 그녀 쪽으로 따라 붙었다. 그리고는 신속한 동작으로 그녀의 손에 조그만 카드를 전달했다. 경호원이 놀라서 지섭을 제지하려 했으나 채영이 그냥 두라는 신호를 보냈다.
민 박사 일행은 전자제품 등 점포들을 둘러보았다. 백화점을 나오자 민 박사는 당초 일정에는 없는 언론사 두 곳을 둘러보겠다고 강력하게 요청했다. 그는 지섭이 근무하고 있는 대한신문에 가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자연스럽게 하려고 방문 언론사에 일부러 방송사 한 곳도 추가했다.
먼저 대한신문사에 들렸다. 일행이 이층 편집국에 들어섰다. 지섭이 미리 전화를 해서 강인태 편집국장 이하 데스크들과 적지 않은 기자들이 그들을 맞이했다. 박수가 터졌다. 민 박사는 먼저 강 국장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했다. 부국장 급 에디터들과 각 부장 급 데스크들과도 악수와 인사를 나눴다. 민 박사가 강 국장에게 말했다.
“저희 가족을 위해 여러 가지로 도움을 주신 것으로 압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저희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것보다 대한민국으로 오기로 결단하신 것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반도를 전쟁의 위기에서 구하고 평화를 이룩하는데 많은 역할을 해주실 것을 바랍니다.”
데스크들과 인사를 나눈 민 박사는 천천히 걸어 정치부를 거쳐 사회부 쪽으로 갔다. 채영과 수영이 그 뒤를 따랐다. 손태영 부장이 그들을 맞이했다.
“민 박사님,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고생 많으셨죠.”
“무사히 남쪽으로 오도록 도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두 사람은 굳게 악수를 나눴다. 민 박사는 사회부 쪽에 와 있는 지섭에게로 천천히 다가섰다.
“박 기자, 그동안 수고 많았어요. 우리 따로 만나는 시간을 만들어 봅시다.”
민 박사는 낮은 소리로 말하고 지섭을 안았다. 지섭과 채영의 가슴이 뜨거워졌다.
‘지섭씨, 이 곳이 당신이 근무하는 곳이에요? 당신의 숨결, 손때가 묻은 이 곳, 자세히 봐둘게요.’
‘그래요. 당신이 모스크바에 있을 때, 싱가포르에서 근무할 때, 잠시 귀국해서 애태우며 있었던 곳이에요.’
이번에도 두 사람은 마음속으로 이렇게 대화를 나눴다.
언론사 시찰을 마친 민 박사 일행은 다시 차를 타고 지방나들이에 나섰다. 차안에서 채영은 급히 지섭이 준 카드를 보았다. 카드 안에는 지섭이 지난봄에 딴 진달래꽃을 책갈피에 곱게 펴서 말려 붙여 놓았다. 채영은 진달래꽃에 입을 맞추고는 사연을 읽었다.
“채영씨, 우리를 맺어준 진달래꽃을 지난봄에 따서 당신을 생각하며 간직해 두었어요. 다리가 완쾌되지 않았다는 소식에 가슴 아팠어요. 그렇지만 부상에 관계없이 당신은 그대로 변한 게 없어요. 그렇게 생각하니 가슴이 조금 덜 아팠어요. 지금 내 방에서 보이는 창밖으로는 달빛이 푸르게 빛나고 있어요. 싱가포르 내 숙소에서 채영씨와 함께 보던 그 달빛이야. 싱가포르에서 당신이 들려준 푸시킨의 시처럼 우리 자유로운 작은 새가 되어 창공을 훨훨 날아가요. 채영씨는 이제 그 많은 시련을 넘어 행복을 찾을 권리가 있어요.
어떻게든 자유로운 외출을 해서 곧 만나요. 언제나 당신을 사랑하는 ‘섭’”
채영은 사연을 읽고 또 읽었다.
아나스타샤가 입원해 있는 병실.
“애라야, 오늘 기분이 어때?”
“아주 좋아. 근데 진영씨, 바쁜데 이렇게 매일 와도 돼?”
“하루라도 당신 안보면 이제 살 수 없어.”
“피이, 환자라고 많이 봐주네.”
“환자라고 그러는 거 아냐.”
“정말?”
진영이 누워 있는 그녀를 껴안았다. 그녀는 진영의 목에 팔을 걸고 키스했다.
아나스타샤는 며칠 전 중환자실에서 일반 병실로 옮겼다. 그녀의 증세는 나날이 좋아졌다. 워낙 건강체라 한번 회복되기 시작하니까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 이제 대화는 물론 화장실 출입 정도는 가능했다.
“진영씨, 난 아직 인스펙터 킬러들이 들이닥치는 꿈을 꿔. 무서워.”
“내가 보호해 줄 테니까 안심해.”
“나도 이제 많이 약해졌나봐. 전에는 까짓 거 아무 것도 아니었는데...”
“다시 옛날의 당당했던 당신으로 돌아가.”
그녀가 진영의 팔에 얼굴을 묻었다.
“이렇게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난 어디가 조국인지 모르겠어.”
“나와 결혼하면 대한민국이 조국이야.”
“진영씨, 지금 나한테 청혼하는 거야?”
“그래, 당신 다 나으면 우리 한국에 가서 결혼하자.”
“청혼을 이렇게 시시하게 해?”
“자기 일어나면 제대로 해줄게.”
“근데 한국에선 연인을 오빠라고 부른다며...”
“요새 젊은 애들 그렇게 해.”
“우리도 젊잖아, 오빠...”
그들은 오랜만에 환하게 웃었다. 진영이 누워있는 그녀의 상체를 안고 키스했다.
“나 인스펙터 조직에 있던 스파이였어. 그래도 괜찮아?”
“지금은 아니잖아.”
“이저도라 아나스타샤에서 나애라로 돌아올게.”
그녀는 진영의 손을 잡았다.
“나 좀 일으켜 줄래.”
진영은 침대 등받이를 높이고 그녀 상체를 일으켜 주었다. 그녀는 상처가 아픈지 얼굴을 찌푸렸다.
“많이 아프니? 무리하지 마.”
“으응, 견딜 만 해.”
그녀는 병실 창문을 통해 이제 초여름이 되어가는 바깥의 신록을 바라보았다.
“난, 언제 저 밖으로 나가 마음 놓고 다닐 수 있을까. 밖에 나가보고 싶어.”
“답답해도 조금만 기다려.”
“나 다 나으면 할 일이 있어. 인스펙터가 자체 분열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게 아냐. 사브로프스키 박사님을 만나서 소식을 알아봐야 해. 아마 C-1 같은 인물은 무모한 전쟁은 반대할 거야. B-1도 같은 생각일 거고. 또 한 가지 A-2는 A-과 사이가 안 좋아. 이런 걸 잘 이용해야 해.”
“러시아와 미국이 이 정보를 알고 있을까.”
“자세히는 모를 거야. 무조건 인스펙터 기지를 공격하다 핵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어. 전쟁을 막으려면 내부 분열을 유도해야 돼.”
“사브로프스키 박사가 동지들과 함께 움직이는 거 같던데...”
“내가 나가서 C-1을 만나 자체 분열을 유도하는 게 더 빨라.”
“그건 위험해. 다시 그들에게 노출됐다간 끝장이야.”
그들은 잠시 무거운 마음으로 침묵했다. 진영이 화제를 돌렸다.
“참, 부상당한 채영씨가 빨리 호전되지 않아 지섭이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냐.”
“그래에? 관통상이라 그런가?”
“지금 재활치료 중인데 아직 잘 걷지 못하나 봐.”
“어머, 저를 어째. 목발을 짚고 다닌다더니...”
“목발은 이제 안 짚는데, 아직 다리를 절어.”
“저런, 지섭씨가 가슴 많이 아프겠다. 장애자가 될 가능성이 있는 거야?”
“아직 판단하기 이르지만 낙관적이지만은 않은가 봐. 참 두 사람이 북한에서의 일로 자기한테 고맙다고 전해 달래.”
아나스타샤가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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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오랜 만에 김광섭의 소설 '진달래 꽃 필때면'을 펴들었다. 지난 줄거리가 생각나지 않아서 다시 읽었다.
북의 백두산 작전은 만방에 알려지고, 민박사 가족은 남한에 안주하고, 인스펙터인 아나스타샤도 진영과 안락한 생활을 꿈꾸게 되고
채영의 다친 다리도 아물어 가는데 지섭은 정식으로 프로포즈를 한다.
평화가 깃들것만 같은데 아나스타샤의 배신을 눈치 챈 인스펜터의 총상을 입고..
박진감에 숨을 쉴수가 없습니다.
잘 읽었읍니다. 흥미 진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