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일(5월 14일. 땅끝-남창리-북일) 육지의 끝 땅끝에 서다
맑음. 22℃
땅끝에
왔습니다.
살아온 날들도
함께 왔습니다.
저녁
파도 소리에
동백꽃 집니다. -고은의 땅끝-
어제 저녁 해양경찰서 땅끝 파출소에서 밤 12시까지 PC에 종주기 올리고 졸린 눈을 비비며 민박집(은희민박)에 돌아오니 마당 평상에서 대학생으로 보이는 일행들이 술판을 벌리고 있었다. C와 K는 이미 꿈나라를 헤매고 있다. 옆자리에 살며시 누워 잠을 청해보는데, 마당에서 밤늦게까지 술 취해 어찌나 떠드는지 금방 잠을 이룰 수 없다. 참다못해 주인 할머니가 한마디 주의를 주는데도 그 때 뿐이다. 난 겨우 새벽녘에야 잠이 들었는데 습관적으로 6시에 절로 눈이 떠진다.
우리는 배낭을 메고 새벽을 가르며 땅끝 탑으로 향했다. 다시 한 번 가슴이 벅차오른다. 국토 최남단인 마라도에서 출발했는데, 이번엔 육지의 끝인 땅끝에 선 것이다.
이곳은
우리나라 맨 끝의 땅
갈두리 사자봉 땅끝에 서서
길손이여
토말의 아름다움을 노래하게
먼 섬 자락에 아슬한
어룡도 백일도 흑일도 당인도까지
장구도 보길도 노화도 한라산까지
수묵처럼 스며가는 정
한 가슴 벅찬 마음 먼 발치로
백두에서 토말까지 손을 흔들게
수천년 지켜온 땅끝에 서서
수만년 지켜갈 땅끝에 서서
꽃밭에 바람일듯 손을 흔들게
마음에 묻힌 생각
하늘에 바람에 띄워 보내게
-손광은의 땅끝탑 글-
땅끝 탑 앞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그리고 사자봉 정상의 전망대를 지나 육지의 첫 발걸음을 시작한다. 자, 이제 통일전망대를 향하여!!! 나그네님한테서 축하 전화가 온다. 민박집에 다시 들려 주인과도 작별 인사를 했다.
콩나물 해장국으로 아침 식사를 한 후, 땅끝
파출소에 들려 고맙다는 인사를 드리고 슈
퍼에 들려 물집방지용으로 여자용 스타킹을
하나씩 사서 신었다. 그리고 아침 햇살이 찬
란한 77번 도로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오른쪽으로 바다 경치가 계속 따라온다. 이 길은 '전망 좋은 길'로 지정된 아름다운 길이
다. 도로 곳곳에 정자가 있어서 누구나 쉬어
가게 만들어 놓았다. 까만 염소가족이 풀을
뜯다가 우리를 물끄러미 쳐다본다.
마늘밭에서 할머니 한 분이 잡초를 뽑고 있다.
- "수고하십니다. 할머니"
- "예, 걸어 가니라 고생 마니 허요잉."
길가 전망 좋은 정자에 잠시 올라가서 양말
을 벗고 어쩌다 주인 잘못만나 고생하는 발
을 시원하게 거풍시킨다. 이러고 나면 발걸
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전화 벨이 울린다. 이
시간에도 잊지 않고 격려의 전화를 걸어주는
후배들이 너무 고맙고 힘이 되어준다.
해당화가 피어있는 아름다운 사구리 해수욕
장 바닷가로 내려가 모래사장에서 잠시 휴식
을 취하며 한라봉을 까먹었다. 바닷물에 손
을 담가보기도 했지만 결국 발은 못 담갔다.
반창고를 붙인 물집에 바닷물이 들어갈까
봐 염려되어서다. 걷는 속도는 시간당 4km
정도로 천천히 걷는다. 시간이 지체된들 뭐
어떠랴. 우리 마음을 용케 알고 나그네님한
테서도 ‘쉬엄쉬엄’ 가라는 문자가 온다.
12시가 넘어 영전마을에 도착했는데 식당이
없는 마을이다. 슈퍼에 들어가 컵라면을 사
서 먹고 커피 한 잔씩 뽑아 마시고 다시 길을
걸었다.
평암마을을 지나는데 갓길에 두더지 한 마리
가 죽어있다. 갓길을 가다보면 제비도 죽어
있고 심지어는 하늘을 한가롭게 날던 잠자리
까지도 차량 유리창에 부딪혀 죽기도 한다.
‘로드킬’이다. 이렇게 온갖 생명들이 비명횡
사한 것을 보게 되면 마음이 좋을 리 없다.
길을 설계하고 만드는 사람들은 동물들의
이동로도 좀 신경 써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길 뿐만이 아니다. TV에서 보면, 물고기들도 자기가 태어난
곳을 찾아 강을 거슬러 올라가다가 ‘어도’가 없어서 우왕좌왕하다가 죽어가지 않던가?
이진마을에서 가게에 들려 아이스바 한 개씩을 사 먹었다. K는 지금 제일 먹고 싶은 게 팥빙수와 냉면이라
고 한다. 이제 슬슬 원초적으로 변해가는 걸까? 발, 어깨, 목이 뻐근해 진다. 이럴 때 안마 좀 받았으면 얼
마나 좋으랴. 나그네님, 안마 잘하는 '이 씨스터즈' 좀 보내주면 안 되겠수?
남창에 도착하니 오후 3시 25분. 눈에 띄는
기사식당에 들어가 낙지비빔밥으로 늦은 점
심을 먹고 나니 졸음이 밀려온다. 우리는 너
나할 것 없이 의자에 앉은 채로 꾸벅꾸벅 존
다. 커피 한 잔씩 뽑아 마시고 다시 걷기 시
작했다.
남창에서 북일까지 걸은 55번 도로는 이날
우리에겐 정말 최악이었다. 그림자를 길게
늘어뜨리며 해는 서산 너머로 지려하는데 우
리 발걸음은 지쳐만 간다. 일요일 저녁때라
그런지 집으로 돌아가는 차량들이 줄을 잇는
다. 우리는 안전상 차량을 마주보고 걷는데, 마주 오는 차량들의 질주는 공포 그 자체였다. 오로지 운명에
맡기고 걷는데 어떤 차량은 추월하느라 중앙
선을 넘어 우리를 겁주듯이 아슬아슬하게 스
치고 지나간다. 길가에는 '장례식장' 광고 현
수막도 걸려있어 분위기를 맞춰준다. 우리가
출발 전에 여행자보험을 가입하려고 했는데
보험사에서 거절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
다. 차량 매연을 고스란히 마시며 쇄노재를
넘어 해남군 북일면 신월리에 오후 6시 20분
에 도착하였다.
신월리엔 묵을만한 숙소도 없고 밥 먹을 식
당도 없었다. 하는 수 없이 조금 전에 지나온
북일면 좌일리까지 300m를 되돌아갔다. 이
곳엔 기사식당이 몇 개 보였다. 그러나 숙소
는 없었다. 교회를 찾아갈까 하다가 혹시나
해서 '북일면 사무소'에 들렸다. 마침 당직자
가 있기에 사정 얘기르 했더니 두말없이 당
직실을 내 줘서 얼마나 고마웠는지 모른다.
아직 시골 사정을 모르는 우리는 당직실에서 차례로 샤워하고 빨래해서 널어놓고 슬슬 식당을 찾았더니
이미 모두 문을 닫았다. 서너 군데 허탕을 치다가 마침 한 곳에 불이 켜져 있어 들어갔더니 인근 공사장 인
부들이 그때까지 앉아 술자리를 펼치고 있었다. 덕분에 생태탕을 시켜서 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오늘 걸은 거리 : 31.2km(9시간)
▶코스 : 땅끝-(77번 도로)-남창-(55번 도로)-해남군 북일면 좌일리
<식사>
아침 : 콩나물해장국(땅끝)
점심 : 된장찌개(남창)
저녁 : 동태찌개(북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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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화백)오늘은 마음이 아프네요. 80리 길이면 인천서 서울 아닌가벼? 시상에 마상에다. 꿈엔들 걸을 길인
가! 3인방의 운명일쎄. 밥은 제발 굶지 말고 다니세요. 그대들에게 밥은 곧 차의 휘발유거늘.... 06.05.15
23:15
(나광식)점점 따가운 태양으로 더워 질텐데 건강 조심하십시요.(썬크림도 바르시구요, 얼굴이 중요하거덩
요) 06.05.16 09:35
(파랑새)해당화가 피는 남쪽나라 가는 곳마다 새로운 경치와 만나는 사람들도 달라서 여행에 참 맛을 느끼
시는군요.... 06.05.16 11:29
(wanju42)민박집, 전망 좋은 아름다운 길, 그리고 반창고 붙인 캡의 발가락, 기기에 아름다운 장미, 그런데
열심히 걸어가는 두 나그네의 뒷모습은 코끝이 찡해 오네요.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