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은 유명한 광개토대왕의 비석에서 아리수라고 하였을 만큼,
옛날 사람들에게 잘 알려진 강이었다.
이러한 한강은 북한강과 남한강의 두 줄기가 합쳐져서 더 큰 강이 되었다.
옛날에는 산과 하천이 많아서 반듯한 길이 없었다.
그래서 한강은 많은 물자들을 운반하는 통로가 되었다.
한강변에서는 강물을 끌어와서 논농사를 지었다.
뿐만 아니라 한강에서 잡힌 물고기들은 식탁을 풍성하게 하여 주었다.
이러한 고마운 강에게 옛날 사람들은 해마다 제사를 드렸다.
이러한 기록이 처음 보이는 것은 『삼국사기』제사 조에서
신라의 사독(四瀆-나라의 운명과 관련이 깊다고 여겨
해마다 제사를 지낸 태화강,낙동강, 금강, 한강 의 네 강)이다.
이 중에서 북독(北瀆)이 한강이다.
가장 위쪽에 있는 신성한 강이 한강이었다. 바로 지금의 광나루였다.
광나루에는 이러한 전설을 간직한 용당산(龍堂山)이 있다.
이곳에서 한강의 용에게 제사를 지냈는데, 이를 용신제라고 한다.
광나루에는 한강을 지켜주는 용이 용당산에 머무르고 있었으므로
이곳의 사람들은 풍요로운 삶을 누렸다.
한강은 가뭄이 드는 일이 없었고 또한 넘치는 일도 없었다.
물건을 가득 실은 돛단배들은 한강의 물살을 가르면서 넘나들었다.
어부의 그물은 가득 찼고 받아든 아낙네의 광주리는 물고기로 넘쳤다.
광나루 사람들은 신이 나고 흥에 겨워서 해마다 용신제를 크게 치렀다.
세월이 흐르고 흘렀다. 용당산의 용은 심술을 부리는 일이 없이
광나루 사람들을 위하여 좋은 일들만을 골라하여 주었다.
그리하여 하늘에서 부르심을 받는 증표인 여의주를 고대하고 있었다.
착한 용의 심성을 어여삐 여긴 하늘의 옥황상제는 금강산의 산신령에게 여의주를 내려주었다.
금강산에서 떠내려 온 여의주를 용당산의 용은 놓치지 않고 입에 물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승천의 날이 온 것이다.
용당산의 용은 하늘로 오르기 위하여 긴 꼬리를 휘저었다.
한강물이 갑자기 요동치기 시작하였다.
깜짝 놀란 광나루 사람들은 강변으로 모여들었고
자기들을 지켜주던 용(神)이 떠나려는 것을 알고 울먹거렸다.
그러나 누구하나 용의 승천을 막을 용기가 없었다.
용은 긴 꼬리를 풀고 드디어 승천하기 시작하였다.
모습을 드러낸 용의 머리는 여의주를 문 입으로부터 여러 갈래의 수염들이 황금갈기처럼 빛났다.
길게 오르는 용의 몸은 오색 찬란한 비늘로 덮혀 있었다.
광나루는 무지개 속의 세상처럼 형형색색의 빛으로 물들여졌다.
광나루 사람들은 넋을 잃고 황홀한 광경을 바라보고만 있었다.
용의 마지막 꼬리가 한강을 빠져 나와 용당산을 스칠 때 였다.
젊은 두 사람이 용의 꼬리에 매달렸다. 그리고 외쳤다.
용왕님, 용왕님,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
그러자 , 모여든 사람들이 울부짖었다.
용왕님, 용왕님, 떠나지 마십시오, 떠나지 마십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용은 긴 꼬리를 흔들었다.
두 젊은이는 떨어져 나갔고 용은 하늘로 서서히 올라가 버렸다.
울부짖던 광나루 사람들은 멍하니 주저앉고 말았다.
그들이 정신을 차리고 떨어져 나간 두 젊은이들은 찾아갔을 때였다.
두 젊은이들은 금빛, 은빛의 아름다운 판 조각을 안고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떠오르던 용의 비늘이었다.
용당산의 용은 광나루 사람들의 울부짖는 소리를 들어준 것이다.
그리고 떠나더라도 내가 여기에 너희들만 있노라, 하여 그 증표로 두 개의 비늘을 남겨준 것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광나루 사람들은 용이 남기고 간 두 개의 비늘을 정성껏 모시기로 하였다.
용이 머무르던 용당산의 굴 속 깊이 두 개의 비늘을 숨겼다. 그리고 이곳을 막고서 고운 흙으로 채웠다.
다시 용의 심령이 용당산을 떠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용이 있을 때보다 더 정성을 들여 용신제를 지냈다.
그러자 이번에는 새로운 일이 생겨났다.
광나루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행운이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로 옮겨온 사람들까지도 잘 살게 되었다.
그래서 두 개의 용 비늘은, 하나는 토박이의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옮겨온 사람들의 것이라고 하여 광나루가 더욱 부자의 마을이 되었다.
이러한 용당산에 수난이 있었다.
일본이 우리나라를 빼앗은 것이다.
그리고 신성스러운 용당산에 그들이 모시는 신을 위하여 신사를 짓게 하였다.
그러기 위하여 용당산을 자르고 길을 내는 공사를 먼저 하였다.
그런데 이게 웬 일인가?.
산비탈을 자르고 들어가자 흙 속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일하던 사람들이 혼비백산하여 모두 도망쳐버렸다.
이곳의 내력을 자세히 들은 일본 사람들은 자기들에게도 해가 미칠 것을 두려워하였다.
피가 흘러나온 곳을 다시 막고 그 옆으로 올라가는 길을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이러한 이야기는 강제로 끌려와서 일했던 사람들의 후손들이 전하여 주는 것으로써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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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당산은 아차산 자락의 야산으로 현재의 한강호텔 자리에 있었다.
조선 태종의 첫째 아들이었던 양녕대군이 셋째인 충녕대군(후에 세종대왕)이 왕위를 잇게 하고
도성을 떠나면서 경치가 너무 좋아 하룻밤 머물렀을 정도로 뛰어난 곳이었다.
개발로 인해 안타깝게도 지금은 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이글은 광진구와 광진문화원이 함께 낸 책 <아차산의 전설>에서 옮겨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