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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뛰어난 비구 제자들
어떤 한 인물을 평가함에 있어서, 그 문하에 어떤 제자들이 있는가를 살펴보면 그 스승의 인물됨과 인격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훌륭한 스승 밑에는 반드시 훌륭한 제자가 있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인류의 스승이신 붓다의 제자 중에는 매우 특출한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그러한 제자들에 의해 스승의 가르침은 끊어지지 않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잘 전승되어 왔습니다.
붓다 재세시(在世時)의 초기교단에서는 뛰어난 출가 제자들도 많이 있었지만, 훌륭한 재가 제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초기교단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을 뿐만 아니라 매우 훌륭한 업적들을 많이 남겼습니다. 그래서 이들의 명성은 이미 당시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초기교단에서 출가 제자들은 스승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수행하여 거의 대부분 깨달음을 이루었으며, 또한 그 가르침을 널리 전파하였습니다. 그 결과 붓다께서 교화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이미 훌륭한 교단으로 성장할 수 있는 튼튼한 기반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불교 상가(Sangha, 僧伽)는 당시 사회로부터 가장 신뢰받는 모범적인 공동체가 되었던 것입니다.
붓다는 기회 있을 때마다 제자들의 훌륭한 장점들을 여러 대중 앞에서 칭찬하였습니다. 팔리어로 씌어진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nikāya, 增支部)]와 한역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에 의하면, 붓다는 그 제자들 중에서 여러 가지 점에서 각각 제일가는 모범적인 제자들의 이름과 그 장점들을 열거하고 격찬하였습니다. 그것은 다른 사람들도 그러한 제자들의 장점을 본받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2) 팔리 니까야에 언급된 비구들
먼저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에 나타난 붓다의 뛰어난 출가 제자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비구들이여! 내 제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출가한 사람은 안냐꼰단냐(Aññākondañña, 憍陳如)이다. 지혜제일은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1)이며, 초능력의 으뜸은 마하목갈라나(Mahāmoggallāna, 大目犍連)2)이고, 청빈으로 으뜸은 마하깟싸빠(Mahākassapa, 大迦葉)3)이고, 세속을 초월한 눈을 가진 이는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4)이고, 가장 높은 가문의 출신은 밧디야 깔리고다야뿟따(Bhaddiya Kāligodhāyaputta)이고, 아름다운 음성으로 제일은 라꾼따까 밧디야(Lakunttaka-bhaddiya)이다. 사자후(獅子吼)를 하기로 제일인 자(者)는 삔돌라 바라드와자(Pindola Bhāradvāja)이며, 설교자(說敎者)로서 제일인 자는 뿐냐 만따리뿟따(Punna Mantāniputta)5)이고, 짧게 설해진 것을 상세하게 해설하기를 제일 잘하는 사람은 마하깟짜나(Mahākaccāna, 大迦旃延)6)이다.”7)
“비구들이여! 내 제자로서 생각으로 형상(形相)을 나타내기를 제일 잘하고, 마음을 해탈하는데 있어 교묘(巧妙)하기로 제일인 자는 쭐라빤타까(Cullapanthaka, 周利槃特)이다. 지(智)에 있어 해탈하는데 교묘하기로 제일인 자는 마하빤타까(Mahāpanthaka)이다. 평화로운 마음에 머물기로 제일이고 보시를 받을만하기로 제일인 자는 수부띠(Subhūti, 須菩提)8)이다. 숲 속에 살기로 제일인 자는 레와따 카디라와니야(Revata Khadiravaniya)이다. 마음의 평안이 제일인 자는 깡카레와따(Kankharevata)이다. 싫어함이 없이 부지런히 노력하기로 제일인 자는 소나 꼴리위사(Sona Kolivīsa)이다. 아름다운 말을 하기로 제일인 자는 소나 꾸띠깐냐(Sona Kutikanna)이다. 탁발을 잘 받기로 제일인 자는 시와리(Sīvali)이며, 믿는 마음이 굳기로 제일인 자는 밧깔리(Vakkali)이다.”9) “비구들이여! 내 제자로서 배우는 것을 좋아하기로 제일인 자는 라훌라(Rāhula, 羅睺羅)10)이다. 신심으로써 출가한 제일인 자는 랏타빨라(Ratthapāla)이다. 맨 처음으로 음식표를 탄 자는 꾼다다나(Kundadhāna)이다. 제일가는 시인은 방기사(Vangīsa)이며, 모든 사람을 분기(奮起)시키기로 제일인 자는 우빠세나 방간따뿟따(Upasena Vangantaputta)이다. 숙소 배정의 제일인 자는 닷바 말라뿟따(Dabba Mallaputta)이다. 제천인(諸天人)이 좋아하기로 제일인 자는 삘린다왓차(Pilindavaccha)이며, 기민(機敏)한 천분(天分)을 가지기로 제일인 자는 바히야 다루찌리야(Bāhiya Dārucīriya)이다. 설법이 정성스럽기로 제일인 자는 꾸마라깟싸빠(Kumāra-kassapa)이며, 지장(支障)없는 배당(配當)을 찬양하기로 제일인 자는 마하꼿티따(Mahākotthita)이다.”11) “비구들이여! 내 제자로서 가장 많이 설법을 듣고 깊이 깨닫고, 기억력도 좋고, 태만하지 않고 그리고 또 내 옆에서 시봉하기로 제일인 자는 아난다(Ānanda, 阿難陀)12)이다. 많은 제자들로 둘러 쌓여있는 자는 우루벨라깟싸빠(Uruvela-kassapa)이며, 집집마다 기쁨을 주기로 제일인 자는 깔루다이(Kāludāyī, 迦樓陀夷)이며, 앓지 않는 것으로 제일인 자는 밧꾸라(Bakkula)이다. 전생에 관한 투시력이 제일인 자는 소비따(Sobhita)이며, 승단의 규율을 지키기로 제일인 자는 우빨리(Upāli, 優波離)13)이다. 여성 수행자들을 가르쳐 인도하기로 제일인 자는 난다까(Nandaka)이며,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 등 제근(諸根)의 문(門)을 잘 지키기로 제일인 자는 난다(Nanda, 難陀)이다. 제자들을 교도하기로 제일인 자는 마하깟삐나(Maha-kappina)이며, 불에 관해 교묘하기로 제일인 자는 사가따(Sāgata)이며, 문제를 내세우기로 제일인 자는 라다(Radha)이며, 녹의(鹿衣)를 입기로 제일인 자는 모가라자(Mogharāja)이다.”14)
2) [증일아함경]에 언급된 비구들
다음은 한역의 [증일아함경]에 나타난 붓다의 뛰어난 출가 제자들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내 성문(聲聞) 중의 첫째 비구로서, 너그럽고 어질며 아는 것이 많아, 능히 잘 권하고 교화하여 성스러운 무리[聖衆]들을 붙들어 기르면서 그 위의(威儀)를 잃지 않는 이는 바로 아약구린(阿若拘隣)15) 비구요, 처음으로 법 뜻을 듣고 네 가지 진리[四諦]를 생각한 이도 바로 아약구린 비구요, 능히 잘 권하고 인도하여 사람들을 복으로 제도하는 이는 바로 우다이(優陀夷) 비구요, 빨리 신통을 이루어 중간에 후회가 없는 이는 바로 마하남[摩訶男]16) 비구요, 항상 허공을 날아다니면서 발로 땅을 밟지 않는 이는 바로 선주(善肘) 비구요, 허공을 타고 다니면서 교화하되 영화를 바라는 마음이 없는 이는 바로 파파(婆破)17) 비구이니라. 천상에 살기를 좋아하고 인간에 살지 않는 이는 바로 우적(牛跡) 비구요, 항상 오로(惡露)의 더럽다는 생각으로 관하는 이는 바로 선승(善勝) 비구요, 성스러운 무리[聖衆]들을 붙들어 기르되 네 가지로 공양하는 이는 우유비가섭(優留毘迦葉)18) 비구요, 마음이 고요하여 모든 결박을 항복 받는 이는 강가섭(江迦葉)19) 비구요, 모든 법을 밝게 관찰해 조금도 집착이 없는 이는 바로 상가섭(象迦葉)20) 비구이니라.”21) “내 성문 중의 첫째 비구로서, 얼굴이 단정하고 걸음이 조용한 이는 바로 마사(馬師)22) 비구요, 지혜가 끝이 없어 모든 의심을 푸는 이는 바로 사리불(舍利弗)23) 비구요, 신령스런 발을 가볍게 들어 시방으로 날아다니는 이는 바로 대목건련(大目揵連)24) 비구요, 용맹스레 노력하여 고행을 견디는 이는 바로 이십억이(二十億耳) 비구요, 열두 가지 두타(頭陀)의 얻기 어려운 행을 행하는 이는 바로 대가섭(大迦葉)25) 비구이니라.
하늘눈이 제일[天眼第一]이어서 시방을 두루 보는 이는 바로 아나율(阿那律)26) 비구요, 좌선해 삼매에 들어 마음이 어지럽지 않는 이는 바로 이왈(離曰) 비구요, 능히 두루 권해 재강(齋講)을 베푸는 이는 바로 타라파마라(陀羅婆摩羅) 비구요, 승방을 세워 승려를 초대하여 베풀어 주는 이는 바로 소타라바마라(小陀羅婆摩羅) 비구요, 귀하고 큰 종족으로 집을 나와 도를 배우는 이는 바로 라타파라(羅吒婆羅)27) 비구요, 진리를 잘 분별해 도를 펴 연설하는 이는 바로 대가전연(大迦旃延)28) 비구이니라.”29) “내 성문 중의 첫째 비구로서, 중대[籌]를 잘 받아 금하는 법을 어기지 않는 이는 군두파막(軍頭婆漠)30) 비구요, 외도(外道)를 항복 받고 정법(正法)을 행하는 이는 바로 빈두로(賓頭盧)31) 비구요, 병을 잘 보아 약을 주는 이는 바로 식(識) 비구요, 옷과 음식 등 네 가지로 공양하는 이도 바로 식(識) 비구요, 게송을 잘 지어 여래의 덕을 찬탄하는 이는 바로 붕기사(鵬耆舍)32) 비구요, 언론으로 밝게 가려 의심이 없는 이도 바로 붕기사 비구요, 네 가지 변재를 얻어 어려운 질문에도 곧 대답하는 이는 바로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33) 비구이니라.
깨끗하고 한가한 곳에 머물고 대중과 함께 있기를 좋아하지 않는 이는 바로 견뢰(堅牢) 비구요, 걸식하고 욕을 참으면서 비바람을 피하지 않는 이는 바로 난제(難提) 비구요, 혼자 고요히 앉아 알뜰히 도를 생각하는 이는 바로 금비라(金毘羅) 비구요, 한 번 앉아 한 번 먹고 자리를 옮기지 않는 이는 바로 시라(施羅) 비구요, 세 가지 옷을 가지고 먹고 쉬기를 떠나지 않는 이는 바로 부미(浮彌) 비구이니라.”34) 이 외에도 수많은 비구들의 이름과 그 특징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지면 관계상 생략하였습니다. 한역의 [증일아함경]에 언급된 제자들의 이름 중에는 전혀 원어를 확인할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위에서 인용한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의 출가 제자 부분과 한역의 [증일아함경] 제3권 제4 제자품(弟子品)은 같은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그 실제 내용에 있어서는 많은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학자들은 한역 [증일아함경]은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보다 후대에 성립된 것이 거의 확실하며, 현재의 형태는 대승불교 성립 이후에 편찬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증일아함경] 제1권 서품(序品)과 제2권 광연품(廣演品)에는 대승불교에서 주장하고 있는 법신상주설(法身常住說)과 정토사상(淨土思想)의 편린(片鱗)까지 포함되어 있기 때문입니다.35)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붓다께서 제자들의 이름과 장점을 언제 설했느냐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졌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를테면 [증일아함경]의 첫 번째에는 우루벨라 깟싸빠(Uruvela-kassapa, 優樓頻螺迦葉), 나디 깟싸빠(Nadi-kassapa, 那提迦葉), 가야 깟싸빠(Gayā-kassapa, 伽耶迦葉) 등의 삼형제가 나란히 언급되고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붓다께서 당시 결발(結髮)의 행자(行者)였던 깟싸빠(Kassapa, 迦葉) 삼형제를 교화하여 그들이 이끌고 있던 천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제자로 받아들인 것은 ‘전도선언(傳道宣言)’ 직후였습니다. 그때는 아직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와 같은 2대 제자들이 승단에 들어오기 전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리뿟따와 목갈라나의 이름이 빠져 있습니다. 어쨌든 붓다의 제자들은 각기 타고난 능력과 기질을 살려 그 스승의 가르침을 널리 펴는데 한 몫을 다했습니다. 이처럼 붓다의 뛰어난 제자들은 각자 자기의 특색을 살려가며 수행과 교화에 헌신하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 승단이 천편일률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북방불교에서는 붓다의 뛰어난 제자 가운데 열 명을 가려 뽑아 십대제자(十大弟子)36)라고 하여 높이 받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십대제자로 정형화 된 것은 후대일 것입니다. 원래 붓다께서 제자들의 장점을 강조한 것은 각자의 능력과 특질을 높이 평가한 것일 뿐, 결코 제자들 사이에 서열을 정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십대제자들만이 붓다의 최고 제자였다는 선입견을 버려야 할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붓다께서 언제 제자들의 이름과 장점을 언급했느냐에 따라 그 대상이 달라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비록 십대제자의 명단에는 들어있지 않지만 훌륭한 제자들도 많이 있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Notes: 1)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는 십대제자 중 지혜제일(智慧第一)로 알려져 있다. 마가다국의 바라문 출신이다. 원래 목갈라나와 함께 육사외도(六師外道)의 한 사람인 산자야(Sañjaya)의 수제자였으나, 최초의 다섯 비구 중 한 사람이었던 아삿지(Assaji, 阿說示, 馬勝)로부터 붓다의 가르침을 전해 듣고, 250명의 동료들과 함께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3) 마하깟싸빠(Mahā-kassapa, 大迦葉)는 십대제자 중 두타제일(頭陀第一)로 알려져 있다. 마가다국 출신으로, 엄격하게 수행하였다. 바라문의 여자와 결혼하였으나 가정생활을 싫어하여 아내와 함께 출가하여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붓다가 입멸한 직후, 라자가하(Rājagaha, 王舍城) 밖의 칠엽굴(七葉窟)에서 행한 제1차 결집 때, 의장이 되어 그 모임을 주도하였다. 4)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는 십대제자 중 천안제일(天眼)제일(第一)로 알려져 있다.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에 돌아왔을 때, 아난다(Ānanda, 阿難), 난다(Nanda, 難陀)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 붓다의 마지막 입멸을 지켜보았다. 5) 뿐냐 만따리뿟따(Punna Mantāniputta)는 십대제자 중 설법제일(說法第一)로 알려져 있다. 바라문 출신이다. 녹야원(鹿野苑)에서 붓다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되었다. 인도의 서쪽 지방에서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다가 거기서 입적하였다. 6) 마하깟짜나(Mahākaccāna, 大迦旃延)는 십대제자 중 논의제일(論議第一)로 알려져 있다. 인도의 서쪽에 있던 아반띠(Avanti) 나라의 끄샤뜨리야 출신이다. 왕의 명령에 따라 붓다를 그 나라로 초청하기 위해 찾아갔다가 출가하였다. 깨달음을 이룬 후 귀국하여 붓다의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교리 해석에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7) Anguttara-nikāya(PTS), Vol. Ⅰ, p.23. 8) 수부띠(Subhūti, 須菩提)는 십대제자 중 해공제일(解空第一)로 알려져 있다. 사위국(舍衛國)의 바라문 출신이다. 그는 공(空)의 이치를 설하는 경(經)에 자주 등장하여 설법하였다. 9) Anguttara-nikāya(PTS), Vol. Ⅰ, p.24. 10) 라훌라(Rāhula, 羅睺羅)는 십대 제자 중 밀행제일(密行第一)로 알려져 있다. 붓다의 친아들이다.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을 방문했을 때 출가하였다. 지켜야 할 것은 스스로 잘 지켰다고 한다. 11) Anguttara-nikāya(PTS), Vol. Ⅰ, p.24. 12) 아난다(Ānanda, 阿難)는 십대제자 중 다문제일(多聞第一)로 알려져 있다. 붓다의 사촌 동생으로, 붓다가 깨달음을 성취한 후 고향을 방문했을 때, 난다, 아누룻다 등과 함께 출가하였다. 붓다의 나이 50여 세에 시자(侍者)로 추천되어 붓다가 입멸할 때까지 시봉하면서 가장 많은 설법을 들었다. 붓다께 여성의 출가를 세 번이나 간청하여 허락을 받았다. 붓다가 입멸한 직후 개최된 제1차 결집 때, 법을 송출하였다. 이때 아난다 존자는 기억을 더듬어가며 세존의 법을 암송하면, 여러 비구들은 아난다의 기억이 맞는지를 확인하여 잘못이 있으면 정정한 후, 모두 함께 암송함으로써 경장(經藏)이 결집되었다. 13) 우빨리(Upāli, 優波離)는 십대제자 중 지계제일(持戒第一)로 알려져 있다. 우빨리는 노예계급인 수드라 출신이다. 석가족의 이발사였는데, 아난다, 난다, 아누룻다 등이 출가할 때, 그들의 머리털을 깎아 주기 위해 따라갔다가 붓다의 제자가 되었다. 계율에 엄격하였다. 붓다가 입멸한 직후, 라자가하 밖의 칠엽굴에서 행한 제1차 결집 때, 계율에 대한 모든 사항을 암송함으로써 율장(律藏)의 성립에 크게 기여하였다. 14) Anguttara-nikāya(PTS), Vol. Ⅰ, pp.24-25. 15) 아약구린(阿若拘隣)은 팔리어 안냐꼰단냐(Aññā-kondañña)의 음역이다. 안냐꼰단냐를 아약교진여(阿若憍陳如) 혹은 지자교진여(智者憍陳如)라고도 번역한다. 안냐(aññā)는 ‘깨달은 자’라는 뜻이다. 최초 다섯 비구 중 한 명이다. 16) 마하남[摩訶男]은 팔리어 마하나마(Mahānāma)의 음역이다. 최초 다섯 비구 중 한 명이다. 17) 파파(婆破)는 팔리어 밧빠(Vappa)의 음역이다. 최초 다섯 비구 중 한 명이다. 18) 우유비가섭(優留毘迦葉)은 팔리어 우루벨라 깟싸빠(Uruvela-kassapa)의 음역이다. 우루벨라 깟싸빠는 우루빈나가섭(優樓頻螺迦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19) 강가섭(江迦葉)은 팔리어 나디 깟싸빠(Nadi-kassapa)의 음역이다. 나디 깟싸빠는 나제가섭(那提迦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팔리어 나디(nadi)는 강(江)을 뜻한다. 따라서 강가섭은 의역과 음역의 혼합형이다. 20) 상가섭(象迦葉)은 팔리어 가야 깟싸빠(Gayā-kassapa)의 음역이다. 가야 깟싸빠는 가야가섭(伽耶迦葉)으로 번역되기도 한다. 팔리어 가야(gayā)는 코끼리[象]를 뜻한다. 따라서 상가섭은 위의 강가섭과 마찬가지로 의역과 음역의 혼합형이다. 21) [增一阿含經] 3권, 제4 弟子品(大正藏 2권, p.557上) 22) 마사(馬師)는 최초 다섯 비구 중 한 명인 앗사지(Assaji, 阿說示, 馬勝)를 가리키는 것 같다. 23) 사리불(舍利弗)은 팔리어 사리뿟따(Sāriputta)의 음역이다. 24) 대목건련(大目揵連)은 팔리어 마하 목갈라나(Mahā-moggallāna)의 음역이다. 25) 대가섭(大迦葉)은 팔리어 마하 깟싸빠(Mahā-kassapa)의 음역이다. 26) 아나율(阿那律)은 팔리어 아누룻다(Anuruddha)의 음역이다. 27) 라타파라(羅吒婆羅)는 팔리어 랏타빨라(Ratthapāla)의 음역이다. 28) 대가전연(大迦旃延)은 팔리어 마하 깟짜나(Maha-kaccāna)의 음역이다. 29) [增一阿含經] 3권, 제4 弟子品(大正藏 2권, p.557中) 30) 군두파막(軍頭婆漠)은 군두파한(軍頭婆漢)이라고도 표기한다. 31) 빈두로(賓頭盧)는 삔돌라 바라드바자(Pindola Bhāradvāja)의 음역이다. 32) 붕기사(鵬耆舍)는 방기사(Vangīsa)의 음역이다. 33) 마하구치라(摩訶拘絺羅)는 마하꼿타따(Mahā-kotthita)의 음역이다. 34) [增一阿含經] 3권, 제4 弟子品(大正藏 2권, p.557中) 35) 한글대장경 [증일아함경] 1권, pp.3-6 참조. 36) 십대제자는 ①지혜제일(智慧第一)인 사리뿟따(Sāriputta, 舍利弗), ②신통제일(神通第一)인 마하목갈라나(Mahāmoggallāna, 大目犍連), ③두타제일(頭陀第一)인 마하깟싸빠(Mahākassapa, 大迦葉), ④해공제일(解空第一)인 수부띠(Subhūti, 須菩提), ⑤설법제일(說法第一)인 뿐냐(Punna, 富樓那), ⑥천안제일(天眼第一)인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 ⑦논의제일(論議第一)인 마하깟짜나(Mahākaccāna, 大迦旃延), ⑧지계제일(持戒第一)인 우빨리(Upāli, 優婆離), ⑨밀행제일(密行第一)인 라훌라(Rāhula, 羅睺羅), ⑩다문제일(多聞第一)인 아난다(Ānanda, 阿難)를 일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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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뛰어난 비구니 제자들
1) 초기의 비구니 상가
불교의 상가(Sangha, 僧伽)는 비구와 비구니의 이부중(二部衆)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비구니 상가는 비구 상가보다 나중에 성립되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비구 상가와 비구니 상가에 우열(優劣)이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불교교단사에서 비구니 상가가 성립된 것은 특기할만한 사건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의 인도사회에서 여성이 집을 나와 집 없는 유행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그 유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보다 더 어려웠던 점은 당시 바라문들의 반발이었습니다.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게 되면 바라문의 사회제도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여성이 출가하여 수행하는 것에 대하여 결사적으로 반대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붓다는 양모(養母)였던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의 간청을 받아들여 여성의 출가를 허락하였습니다. 이처럼 어려운 상황에서 비구니 상가가 탄생했기 때문에, 아주 특출한 비구니 제자들이 많이 배출되었습니다. 비록 지금의 남방불교에서는 비구니 상가가 없어졌지만, 붓다시대에는 비구니 상가가 잘 운영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초기불교 교단에서 비구니들의 활동상황은 여러 문헌에 많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2) 팔리 니까야에 언급된 비구니들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nikāya, 增支部)]에는 붓다의 뛰어난 제자들에 대해 붓다께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 실려 있습니다. 그 중에서 비구니 제자들에 관한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들이여! 나의 여성문(女聲聞, sāvikā) 비구니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기다린 이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 비구니요, 큰 지혜를 가진 이는 케마(Khemā) 비구니요, 초능력을 갖춘 이는 웃빨라완나(Uppalavannā) 비구니요, 계율에 능숙한 이는 빠따짜라(Patacāra) 비구니요, 설법을 매우 잘한 이는 담마딘나(Dhammadinnā) 비구니요, 선정에 뛰어난 이는 난다(Nandā) 비구니이니라. 지칠 줄 모르고 정진한 이는 소나(Sonā) 비구니요, 투시력을 가진 이는 사꿀라(Sakulā) 비구니요, 속히 통달한 이[速通達]는 밧다 꾼달라께사(Bhaddā Kundalakesā) 비구니요, 과거의 생을 기억한 이는 밧다 까삘라니(Bhaddā- kapilānī) 비구니요, 대신통력을 얻은 이는 밧다 깟짜나(Bhaddā-kaccānā) 비구니요, 조잡한 가사를 두른 이는 끼사고따미(Kisāgotamī) 비구니요, 믿음을 실현한 이는 시갈라마따(Sigālamātā) 비구니이니라.”1) 위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에 언급된 열세 명의 비구니들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①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 비구니는 붓다의 양모이며,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의 아내였습니다. 그녀가 최초로 상가에 들어옴으로써 비구니 상가가 형성되었습니다. ② 케마(Khemā) 비구니는 빔비사라(Bimbisāra) 왕의 왕비로서 외모가 아름답기로 유명했습니다. 붓다는 신통력으로 아름다운 요정(妖精)을 불러내어, 그 요정이 늙어가는 과정을 그녀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녀는 자신의 미모에 대한 자만심을 꺾고 붓다께 귀의했습니다. ③ 웃빨라완나(Uppalavannā) 비구니는 몸이 푸른 연꽃의 색깔과 비슷했기 때문에 그렇게 불렸습니다. [테리가타(Therīgāthā, 長老尼偈)]에 그녀가 남긴 시 12편이 실려 있는데, 참으로 눈물겹습니다.2) ④ 빠따짜라(Patacāra) 비구니는 율장의 숙련자(vinaya-pitake cinna-vasī)였습니다. 그녀는 많은 여성 제자들을 두었습니다. [테리가타]에 그녀가 남긴 시 5편이 실려 있으며,3) 그녀의 제자들이 읊은 시들도 많이 실려 있습니다. ⑤ 담마딘나(Dhammadinnā) 비구니는 비사카(Visākha)의 아내였는데, 남편의 동의를 얻어 출가했습니다. 그녀의 남편은 황금 가마에 아내를 태워 비구니 승원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그녀는 한적한 곳에 머물며 정진하여 네 가지 무애해(無碍解, patisambhidā)와 함께 아라한과를 이루었습니다. 나중에 그녀는 붓다께 예배드리기 위해 라자가하로 돌아갔는데, 전 남편 비사카가 그녀에게 법에 대해 질문했습니다. 그 질문과 답변이 [쭐라웨달라 숫따(Cūlavedalla Sutta, 有明小經)]4)에 실려 있습니다.5) [테리가타]에 그녀의 시 1편이 남아있습니다.6) ⑥ 난다(Nandā) 비구니는 순다리 난다(Sundari Nandā) 또는 자나빠다 깔랴니(Janapada-kalyānī)로 불렸습니다. 자나빠다 깔랴니는 ‘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이라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나라의 미인[國美] 또는 ‘지방의 미인’ 으로 번역됩니다. 그녀도 케마 비구니와 마찬가지로 붓다의 신통력에 의해 출가하게 되었습니다. ⑦ 소나(Sonā) 비구니는 열넷 명이라는 많은 자녀를 두었던 때문에 바후뿟띠까(Bahuputtikā)라고 불렸습니다. 그녀는 전 재산을 자식들에게 넘겨준 뒤, 자식들의 박대에 충격을 받고 출가하였습니다. 그녀는 늦게 출가하였기 때문에 귀중한 시간을 낭비할 수가 없어서 아주 열심히 수행에 전념하였습니다. [법구경] 제115게7)는 소나 비구니에게 붓다께서 설한 가르침입니다. ⑧ 사꿀라(Sakulā) 비구니는 빠꿀라(Pakulā) 또는 바꿀라(Bakulā)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그녀는 제따와나(Jetavana, 祇園) 봉정식에 참석했다가 붓다를 뵙고 믿음을 일으켜 재가 신자로 신행하다가 나중에 출가하였습니다. 그녀는 명상을 통해 아라한과를 얻었으며, 붓다로부터 천안(天眼)제일로 칭송받았습니다. ⑨ 밧다 꾼달라께사(Bhaddā Kundalakesā) 비구니는 처음 자이나교에 입단하여 자신의 머리카락을 쥐어뜯어 버렸습니다. 그런 뒤 다시 빽빽하게 곱슬머리로 자라났습니다. 그래서 ‘곱슬머리’라는 뜻의 꾼달라께사(Kundalakesā)가 그녀의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녀는 자이나교도들의 지혜가 빈약한 것에 불만을 품고 자이나교를 떠나 아라한과를 얻기 위해 승단에 들어왔습니다. ⑩ 밧다 까삘라니(Bhaddā-kapilānī) 비구니는 [아빠다나(Apadāna, 譬喩經)]에 의하면,8) 그녀의 어머니는 수찌마띠(Sucīmatī)였고, 그녀의 아버지는 까삘라(Kapila)였습니다. 그래서 ‘까삘라의 딸’이라는 뜻의 까삘라니(Kapilānī)로 불렸습니다.9) 그녀는 마하빠자빠띠 고따미에 의해 승단에 들어왔습니다. ⑪ 밧다 깟짜나(Bhaddā-kaccānā) 비구니는 그녀의 머리까락이 황금색이었기 때문에 깐짜나(Kañcanā, 黃金)로 불렸다고 합니다. 그녀는 라훌라(Rāhula, 羅睺羅)의 어머니, 즉 야소다라(Yasodharā)라고 합니다. 하지만 야소다라라는 이름은 여기에 언급되어 있지 않고, [테리가타]나 [아빠다나]에도 이 이름은 나오지 않습니다. 다만 [아빠다나]10)에 ‘야소다라’라는 이름이 한번 나옵니다.11) ⑫ 끼사고따미(Kisāgotamī) 비구니는 고따마족 출신이었는데, 죽은 아들과 그 아들을 살려내기 위해 겨자씨를 구하고자 쓸데없이 집집마다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는 매우 유명합니다.12) ⑬ 시갈라마따(Sigālamātā) 비구니는 미얀마 필사본에서는 삔갈라마따(Pingala-mātā)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테리가타]에는 그녀의 이름이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녀는 정확히 ‘시갈라(Sigāla)의 어머니’로 불렸습니다. [아빠다나]13)에서 그녀는 싱갈라까 마따(Singālaka-mātā)와 시갈라까 마따(Sigālaka- mātā)로 불렸습니다. 시갈라는 여섯 방위에 예배했던 청년이었는데, 붓다께서 그에게 설한 가르침이 바로 [시갈로와다 숫따(Sigālovāda Sutta, 敎誡尸迦羅越經)]입니다. 그녀는 믿음에 의해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습니다. 위에서 살펴본 비구니들의 명단은 비교적 초기에 두각을 나타낸 비구니들입니다. [테리가타]에는 92명의 장로니(長老尼)들의 이름과 시구(詩句)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 소개한 13명은 이 중에서 극히 일부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13명의 비구니 중에서 밧다 깟짜나와 시갈라마따를 제외한 나머지 비구니들이 남긴 시가 [테리가타]에 실려 있습니다.
2) [증일아함경]에 언급된 비구니들
다음은 한역의 [증일아함경] 제5 비구니품(比丘尼品)에 나타난 붓다의 뛰어난 비구니 제자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1) “내 성문(聲聞) 중의 첫째 비구니로서, 오랫동안 집을 나와 도를 배워 국왕의 존경을 받는 이는 대애도구담미(大愛道瞿曇彌)14) 비구니요, 지혜롭고 총명한 이는 식마(識摩)15) 비구니요, 신족(神足)이 으뜸이어서 모든 신들을 감동시키는 이는 우발화색(優鉢華色)16) 비구니요, 두타법의 열한 가지 제한에 걸림 없이 행하는 이는 기리사구담미(機梨舍瞿曇彌)17) 비구니요, 하늘눈이 으뜸이어서 걸림 없이 비추는 이는 사구리(奢拘梨)18) 비구니이니라. 앉아 참선해 선정에 들어 마음이 흩어 지지 않는 이는 사마(奢摩) 비구니요, 이치를 분별해 널리 도를 펴는 이는 파두란사나(波頭蘭闍那) 비구니요, 계율을 받들어 가져 범하지 않는 이는 파라차나(波羅遮那)19) 비구니요, 믿음의 해탈을 얻어 다시는 물러나지 않는 이는 가전연(迦旃延) 비구니요, 네 가지 변재를 얻어 두려워하지 않는 이는 최승(最勝) 비구니이니라.”20) (2) “내 성문 중의 첫째 비구니로서, 자기 전생의 수없는 겁의 일을 아는 이는 발타가비리(拔陀迦毘離) 비구니요, 얼굴이 단정하여 남의 존경과 사랑을 받는 이는 혜마사(醯摩闍) 비구니요, 외도를 항복받아 바른 교를 세우는 이는 수나(輸那) 비구니요, 이치를 분별하여 널리 갈래를 설명하는 이는 담마제나(曇摩提那)21) 비구니이니라. 더러운 옷을 입고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는 이는 우다라(優多羅) 비구니요, 모든 감관이 고요하고 그 마음이 한결같은 이는 광명(光明) 비구니요, 옷을 잘 바루어 언제나 법다운 이는 선두(禪頭) 비구니요, 여러 가지를 논의하되 의심이나 걸림이 없는 이는 단다(檀多) 비구니요, 게송을 잘 지어 여래의 덕을 찬탄하는 이는 천여(天與) 비구니요, 많이 듣고 널리 알며 은혜와 지혜로 아랫사람을 대하는 이는 구비(瞿卑) 비구니이니라.”22) (3) “내 성문 중의 첫째 비구니로서, 항상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사람 속에 살지 않는 이는 무외(無畏) 비구니요, 몸을 괴롭혀 걸식하면서 귀천을 가리지 않는 이는 비사거(毘舍佉) 비구니요, 한 곳에 한 번 앉아 쉽게 자리를 옮기지 않는 이는 발타바라(拔陀婆羅) 비구니요, 두루 다녀 구걸하면서 사람을 널리 제도하는 이는 마로가리(摩怒呵利) 비구니요, 도의 결과를 빨리 이루어 중간에 지체하지 않았던 이는 타마(陀摩) 비구니요, 세 가지 옷을 가져 끝내 버리지 않는 이는 수타마(須陀摩) 비구니이니라. 항상 나무 밑에 앉아 뜻을 쉽게 바꾸지 않은 이는 협수나(拹須那) 비구니요, 늘 노지(露地)에 머물면서 덮개 있는 집에 머물기를 생각하지 않는 이는 사타(奢陀) 비구니요, 호젓하고 고요한 곳을 즐겨 사람 속에 있지 않는 이는 우가라(優迦羅) 비구니요, 항상 풀 자리에 앉아 옷차림을 하지 않는 이는 이나(離那) 비구니요, 다섯 가지 누더기 옷을 입고 차례로 걸식하는 이는 아로파마(阿奴波摩) 비구니이니라.”23) (4) “내 성문 중의 첫째 비구니로서, 쓸쓸한 무덤 사이를 즐기는 이는 우가마(優迦摩) 비구니요, 생물들을 가엾이 여기는 자비로운 마음으로 많은 여행을 한 이는 청명(淸明) 비구니요, 도에 이르지 못한 중생을 슬피 여기는 이는 소마(素摩) 비구니요, 도를 얻은 이를 기뻐하고 소원이 일체에 미치는 이는 마타리(摩陀利) 비구니요, 모든 행을 단속하여 뜻이 멀리 떠나지 않는 이는 가라가(迦羅伽) 비구니이니라. 공(空)을 지키고 빈 것을 잡아 ‘없음’을 깨달은 이는 제바수(提婆修) 비구니요, 마음이 생각 없음을 즐겨해 모든 집착을 버린 이는 일광(日光) 비구니요, 구함 없기를 닦아 익히어 마음이 항상 넓은 이는 말나바(末那婆) 비구니요, 모든 법에 의심이 없어 한량없이 사람을 제도하는 이는 비마달(毘摩達) 비구니요, 진리를 널리 설명해 깊은 법을 분별하는 이는 보조(普照) 비구니이니라.”24) (5) “내 성문 중의 첫째 비구니로서, 마음에 욕됨을 참는 것을 품어 땅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것과 같이 하는 이는 담마제(曇摩提) 비구니요, 사람을 잘 교화해 시주 모임을 만들게 하는 이는 수야마(須夜摩) 비구니요, 자리를 준비하는 이도 또한 수야마(須夜摩) 비구니요, 마음이 아주 평온해 어지러운 생각을 일으키지 않는 이는 인타사(因陀闍) 비구니요, 모든 법을 밝게 관찰하되 만족할 줄 모르는 이는 용(龍) 비구니이니라. 뜻이 굳세고 용맹스러워 물들지 않는 이는 구나라(拘那羅) 비구니요, 물 삼매[水三昧]에 들어 일체를 두루 적시는 이는 바수(婆須) 비구니요, 불꽃 빛 삼매[焰光三昧]에 들어 모든 중생을 두루 비추는 이는 항제(降提) 비구니요, 오로(惡露)의 더러움을 관하여 연기(緣起)를 분별하는 이는 차바라(遮婆羅) 비구니요, 그의 모자람을 주어 여러 사람을 기르는 이는 수가(守迦) 비구니요, 내 성문 중에서 최후로 제일가는 비구니는 발타군타라구이국(拔陀軍陀羅拘夷國)25) 비구니이니라.”26) 위에서 인용한 한역 [증일아함경]의 제5 비구니품의 첫 번째 부분이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와 그 내용이 가장 비슷합니다. 그 나머지 부분에 언급된 비구니 스님들은 대부분 그 원래 이름을 확인할 수가 없습니다.
Notes: 1) Anguttara-nikāya(PTS), Vol. Ⅰ, p.25. 3) Therīgāthā, v.112-121. 4) Majjhima-nikāya(PTS), Vol. Ⅰ, p.299ff. 5) G. P. Malalasekera,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Vol. Ⅰ, pp.1142-3. 6) Therīgāthā, v.12. 7) Dhammapada v.115; “성스러운 부처님의 가르침을 모르고, 백 년을 사는 것보다는, 단 하루라도 부처님의 위없는 성스러운 가르침을 알고 사는 것이 훨씬 낫다.” 8) Apadāna(PTS), Vol. Ⅱ, p.583 (vs.57). 9) G.P. Malalasekera,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 Vol. Ⅱ, p.354, no.1. 10) Apadāna(PTS), Vol. Ⅱ, p.584. 11) F. L. Woodward, The Book of The Gradual Sayings(Anguttara-nikāya), London: PTS, 1932, p.22, no.3. 12) DhpA. Ⅱ, 270; SA. on S. I, 129. 13) Apadāna(PTS), Vol. Ⅱ, p.603f. 14) 대애도구담미(大愛道瞿曇彌)는 팔리어 마하빠자빠띠 고따미(Mahāpajāpatī Gotamī)의 번역이다. 대애도(大愛道)는 마하빠자빠띠(Mahāpajāpatī)의 의역이고, 구담미(瞿曇彌)는 고따미(Gotamī)의 음역이다. 그러므로 대애도구담미(大愛道瞿曇彌)는 의역과 음역의 혼합형이다. 15) 식마(識摩)는 참마(讖摩)의 오식(誤植)으로 보이며, 이것은 팔리어 케마(Khemā)의 음역이다. 16) 우발화색(優鉢華色)은 팔리어 웃빨라완나(Uppalavannā)의 번역인데, 음역과 의역의 혼합형이다. 이것을 연화색(蓮華色)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팔리어 웃빨라(Uppala)는 푸른 연꽃[靑蓮]이고, 완나(vanna)는 색(色)이다. 그러므로 연화색은 완전한 의역이다. 17) 기리사구담미(機梨舍瞿曇彌)는 팔리어 끼사 고따미(Kisā-gotamī)의 음역이다. 18) 사구리(奢拘梨)는 팔리어 사꿀라(Sakulā)의 음역이다. 19) 파라차나(波羅遮那)는 팔리어 빠따짜라(Patācārā)의 음역이다. 20) [增一阿含經] 3권, 제5 比丘尼品(大正藏 2권, p.558下) 21) 담마제나(曇摩提那)는 팔리어 담마딘나(Dhammadinnā)의 음역이다. 22) [增一阿含經] 3권, 제5 比丘尼品(大正藏 2권, p.559上) 23) [增一阿含經] 3권, 제5 比丘尼品(大正藏 2권, p.559上-中) 24) [增一阿含經] 3권, 제5 比丘尼品(大正藏 2권, p.559中) 25) 발타군타라구이국(拔陀軍陀羅拘夷國)은 팔리어 밧다 꾼다라께사(Bhaddā Kundalakesā)의 번역이다. 26) [增一阿含經] 3권, 제5 比丘尼品(大正藏 2권, p.559中-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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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뛰어난 남자신도
1) 팔리 니까야에 언급된 우바새
초기교단에서는 출가 제자들 외에도 훌륭한 재가신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초기불교 교단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이름과 그 활동 사항은 출가 제자들에 비해 많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초기경전에는 재가신자이면서도 출가하여 아라한과를 얻은 성자와 다름없는 안심(安心)과 법열(法悅)을 얻은 사람들의 예가 많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또 붓다의 가르침을 듣고 안심을 얻은 남녀 재가 불제자가 강한 신앙의 힘이나 법력을 지녔다고 하는 사실도 자주 설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초기불교 교단에서 왕과 귀족을 비롯한 자산가들의 헌신적인 외호가 없었다면, 그토록 짧은 기간 내에 교단으로서의 확고한 위치를 확보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초기불교 교단 발전에 크게 기여한 재가자들의 업적과 활동 상황들은 여러 문헌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nikāya, 增支部)]에는 붓다의 뛰어난 재가자의 이름과 그 특징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경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들이여, 나의 제자인 우빠사까(Upāsaka, 優婆塞)들 가운데에서 제일 먼저 귀의(歸依)한 자는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likā)1) 두 상인이다. 보시자 중 제일은 수닷따(Sudatta) 장자 즉 아나타삔디까(Anāthapindika, 給孤獨長者)이다. 많은 설법자 가운데 제일은 찟따(Citta) 장자 즉 맛치까산디까(Macchikasandika)이다. 사섭법(四攝法)으로써 대중을 통솔하는 자 가운데 제일은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이다. 음식을 베풀기를 좋아하는 자 가운데 제일은 석가족의 마하나마(Mahānāma)이다. 보시를 하여 마음을 기쁘게 한 자 가운데 제일은 베살리 출신의 욱가(Ugga) 장자이다. 승가를 가까이서 받든 자 가운데 제일은 핫티(Hatthi) 마을 출신의 욱가따(Uggata) 장자이다. 절대적 신앙을 가진 자 가운데 제일은 수라 암밧타(Sūra Ambattha)이다. 사람들로부터 총애를 받은 자 가운데 제일은 지와까 꼬마라밧짜(Jīvaka komārabhacca)이다. 신뢰할만한 자 가운데 제일은 나꿀라삐따(Nakulapitā) 장자이다.”2) 우선 위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에 언급된 남자신도들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① 따뿟사(Tapussa)와 발리까(Bhalikā) 두 상인은 불교역사상 최초로 불(佛)과 법(法) 이보(二寶)에 귀의한 재가신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율장(律藏)에 의하면, 이 두 상인은 대상(隊商)을 이끌고 붓다가야를 지나가다가 그때 마침 깨달음을 이룬 붓다를 발견하고 최초로 공양을 올렸던 사람들입니다. 이때는 아직 교단이 성립되기 전이었습니다. ② 수닷따(Sudatta) 장자는 후일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준다’는 뜻의 아나타삔디까(Anāthapindika, 給孤獨長者)로 널리 알려진 사람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너무나 유명합니다. 그는 소유주 제다(Jeta) 왕자로부터 금 조각을 표면에 덮는 값을 치루고 제따 숲을 샀습니다. 그리고 그 동산에 기원정사라는 절을 세워 승단에서 사용하도록 붓다께 기증했던 사람입니다. ③ 찟따(Citta) 장자는 맛치까산디까(Macchikasandika)라고도 하는데, 그는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와 함께 우바새로서 가장 이상적인 재가불자의 대표로 거론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훌륭한 설법자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④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 장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입니다. 그에 관한 정보는 극히 단편적입니다. [팔리고유명사사전]에 의하면, “새벽녘에 알라와까(Ālavaka) 왕의 신하들이 어린 왕자인 알라와까 꾸마라(Ālavaka-Kumāra)를 약카(Yakkha, 夜叉)에게 제물로 바치기 위해 데리고 왔다. 그들은 붓다의 설법이 끝날 무렵 약카가 기뻐하는 큰소리를 듣고 크게 경탄했다. 그들은 알라와까 왕에게 제물로 바칠 아이를 데리고 왔다고 보고하고, 그 아이를 왕에게 건넸다. 그때 왕은 그 자리에 붓다께서 참석해 계셨기 때문에 매우 부끄럽게 생각했다. 알라와까 왕은 그 아이를 붓다께 주었고, 붓다는 다시 그 아이를 왕의 심부름꾼으로 주었다. 그 소년은 약카의 손에서 붓다께 전해졌고, 다시 왕의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손에서 손으로 전달되었다’는 뜻의 ‘핫타까 알라와까’로 알려지게 되었다”3)라고 합니다. 그는 성장하여 진리의 길에 들어갔으며, 자비(慈悲), 애어(愛語), 이행(利行), 동사(同事)의 사섭법(四攝法, cattāri sangaha-vatthūni)으로 대중을 통솔하여 많은 추종자를 거느리게 되었다고 합니다.4) ⑤ 마하나마(Mahānāma, 摩訶男) 장자는 아미또다나(Amitodana)의 아들로서 숫도다나(Suddhodana, 淨飯王)의 뒤를 이어 석가족의 왕위를 계승했던 인물입니다. 그는 아누룻다(Anuruddha, 阿那律)의 형이었고, 붓다의 사촌이었습니다. 까삘라왓투의 석가족 사람들이 특별한 혈연관계에 있는 상가에 들어가고자 했을 때, 마하나마는 동생인 아누룻다의 출가를 출가시켰습니다. 왜냐하면 아누룻다는 세속의 일을 전혀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마하나마는 상가에 크게 보시하였기 때문에 ‘비구들에게 보시한 사람 가운데 제일’이라는 극찬을 받았던 것입니다.5) ⑥ 욱가(Ugga, 郁伽)는 베살리(Vesālī, 毘舍離城) 출신의 장자로서 키가 크고 도덕이 고상(uggatā)했기 때문에 ‘욱가(Ugga)’라고 불렸다고 합니다.6) 그는 위 [앙굿따라 니까야]의 명단에서 ‘모든 재가 보시자 가운데 가장 유쾌하게 베푼 자’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7) 그의 원래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는 키가 크고 도덕적으로 인품이 고상하였고, 특히 매력 있는 성격 때문에 ‘욱가 쎗티(Ugga-setthi, 郁伽長者)’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그는 처음 붓다를 친견하고 곧바로 소따빤나(Sotāpanna, 預流者)가 되었으며, 나중에는 아나가미(anāgāmin, 不還來者)가 되었다고 합니다.8) ⑦ 욱가따(Uggata)는 욱가(Ugga)로 불리는데, 앞에서 언급한 베살리 출신의 욱가가 아니고, 밧지(Vajji)국의 핫티가마(Hatthigāma, 코끼리 마을) 출신의 장자입니다. 욱가따는 자기의 집이 코끼리 마을에 있었기 때문에 ‘핫티가마까(Hatthigāmaka)’라고 불렸습니다. 그는 상가를 시중 든 사람들 가운데 제일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 그는 쎗티(setthi, 財務官)에 임명되었습니다. 한때 붓다께서 여행 중 핫티가마를 방문하여 그곳의 나가와누야나(Nagavanuyyāna)에 머물고 계실 때였습니다. 욱가는 7일간의 음주 축연을 마치고 마지막에 이르러 무용수들과 함께 유원(遊園)으로 왔습니다. 그는 붓다를 뵙자 큰 부끄러움이 엄습하여 취기가 사라졌습니다. 붓다는 그에게 법을 설하였는데, 그는 곧바로 아나가미(anāgāmī, 不還來者)가 되었습니다. 그는 그 후 즉시 자기의 무용수들을 떠나게 하고, 상가의 스님들을 돌보는 일에 전념하였습니다. 밤에 신들이 그를 찾아와 여러 스님들이 깨달음을 이루었다고 말하고, 자기의 보시를 수용할 저명한 스님들을 선발하라고 제안했으나, 그는 누구나 기뻐하도록 평등하게 보시하였습니다. 붓다는 한때 욱가는 여덟 가지 특별하고 훌륭한 자질을 갖추었다고 말했습니다.9) ⑧ 수라 암밧타(Sūra-Ambattha)10) 장자는 확고한 믿음에 있어서는 붓다의 재가신자 가운데 으뜸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던 저명한 분입니다. [팔리고유명사사전]에 따르면, “그는 빠두뭇따라 붓다(Padumuttara Buddha) 시대에 태어났을 때에도 이러한 명성을 얻기로 결심했다. 그는 이 붓다시대에는 사왓티(Sāvatthi, 舍衛城)에 있는 은행가의 가문에 태어났으며, 이교도의 추종자가 되었다. 어느 날 붓다는 수라(Sūra)를 개종시킬 수 있는 적당한 시기임을 알고, 탁발을 위해 그의 집 문 앞에 섰다. 붓다에 대한 존경심이 없이 수라는 그를 안으로 초대했고, 편안한 자리에 앉도록 권했으며, 음식을 대접했다. 공양 후 붓다께서 설법을 마쳤을 때, 수라는 예류자(預流者)가 되었다. 얼마 후 붓다가 떠난 뒤, 붓다로 변장한 마라(Māra, 惡魔)가 수라를 방문하여 그가 먼저 말했던 잘못된 진술을 번복하기 위해 되돌아오게 되었다고 말했다. 그는 모든 조건 지어진 것[諸行]은 무상하다. 하지만 어떤 상까라(sankāra, 行)는 영원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수라는 그가 마라임을 알고 그를 쫓아버렸다.”고 합니다.11) ⑨ 지바까 꼬마라밧짜(Jīvaka-Komārabhacca)는 유명한 의사였습니다. 그는 라자가하의 매춘부 살라와띠(Sālavatī)의 아들이었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자 곧바로 바구니에 담겨져 쓰레기 더미 위에 버려졌는데, 아바야라자꾸마라(Abhayarājakumāra)에 그곳에서 구조되었습니다. 아바야(Abhaya)가 물었을 때, 사람들이 ‘그는 살아 있다(jīvati)’라고 말했기 때문에 그 아이는 지와까(Jīvaka)라고 불렸으며, 왕자에 의해 데려왔기 때문에 꼬마라밧짜(Komārabhacca)로 불렸습니다. 그가 성장했을 때, 자신의 출신 내력을 알고, 아바야에게 알리지 않고 딲까실라(Takkasilā)로 가서 7년 동안 의학을 공부했습니다. 그의 스승은 약간의 돈을 그에게 주고 의술을 펼칠 적당한 곳으로 가라고 보냈습니다. 그의 첫 번째 환자는 사께따(Sāketa)의 백만장자의 아내였는데, 그녀를 완치시킨 대가로 엄청난 돈과 남자 하인과 여자 하인, 그리고 말과 함께 대형 마차를 답례로 받았습니다. 그가 라자가하로 돌아왔을 때 아바야는 그가 머물 수 있는 집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거기서 그는 골치 아픈 병에 걸린 빔비사라(Bimbisāra) 왕을 치료해 주었습니다. 그 답례로 빔비사라왕의 오백 명의 부인이 장식한 모든 것을 받았습니다. 그는 왕과 부인들 그리고 붓다를 비롯한 승단의 의사로 임명되었습니다.12) ⑩ 나꿀라삐따(Nakulapitā)의 부인은 나꿀라마따(Nakulamātā)입니다. 그는 박가(Bhagga)국의 숭수마라기리(Sumsumāragiri)에 살았습니다. 붓다께서 이 마을을 방문하여 베사깔라와나(Bhesakalāvana)에 머물고 있을 때, 그는 부인 나꿀라마따와 함께 붓다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순간적으로 그를 보자 ‘아들아!’ 왜 이렇게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오백 번이나 보살의 전생의 부모였으며, 그보다 많은 생애를 가까운 친척이었다고 합니다. 붓다께서 그들에게 법을 설했을 때, 그들은 예류자(預流者)가 되었습니다. 그들이 늙었을 때, 붓다는 그들의 마을을 한번 더 방문했습니다. 그들은 붓다를 기쁘게 했으며, 각자 이생에서 붓다께 귀의한다고 말하고, 내생에서도 마찬가지로 자기들을 지켜줄 가르침을 청했습니다. 붓다는 상가의 모임에서 많은 제자들 가운데 붓다와 가장 친밀한 관계는 그들이라고 말했습니다.13)
[앙굿따라 니까야]의 다른 부분에서는 위에서 인용한 열 명의 재가신자 외에 다시 열 명의 재가신자 명단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따와깐니까(Tavakannika), 뿌라나(Pūrana), 이시닷따(Isidatta), 산다나(Sandhāna), 위자야(Vijaya), 왓지야마히따(Vajjiyamahita), 멘다까(Mendaka), 와쎗타(Vāsettha), 아릿타(Arittha), 사락가(Sāragga) 등입니다.14) 이들은 붓다, 담마, 상가에 대한 확고한 믿음과 성스러운 계율[聖戒], 성스러운 지혜[聖慧], 성스러운 해탈[聖解脫]을 통해 불사(不死)를 성취한 재가자들입니다.
2) [증일아함경]에 언급된 우바새
다음은 한역의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권 제6 청신사품(淸信士品)에 나타난 붓다의 뛰어난 남자신도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⑴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優婆塞)로서, 처음으로 법의 약[法藥]을 듣고 성현의 진리를 성취한 이는 바로 삼과(三果)의 장사꾼이요, 지혜 제일은 바로 질다(質多)15) 장자요, 신덕(神德) 제일은 바로 건제아람(犍提阿藍)이요, 외도를 항복 받는 이는 바로 굴다(掘多) 장자요, 깊은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우파굴(優波掘) 장자요, 늘 앉아 참선하는 이는 바로 가치아라바(呵侈阿羅婆)16)요, 악마 궁전을 항복 받은 이는 바로 용건(勇健) 장자요, 복과 덕을 많이 가진 이는 바로 사리(闍利) 장자요, 큰 시주(施主)는 바로 수달(須達)17) 장자요, 일가 친척이 많은 이는 바로 민토(泯兎) 장자이니라.”18) ⑵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로서, 이치 묻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생루바라문(生漏婆羅門)이요, 성품이 지혜롭고 밝은 사람은 바로 범마유(梵摩兪)요, 모든 부처님을 믿는 사자는 바로 어마마납(御馬摩納)이요, 몸에 ‘나(我)’가 없다고 생각하는 이는 바로 희문금(喜聞笒) 바라문이요, 이론으로 이길 수 없는 이는 바로 비구(毘裘) 바라문이요, 게송을 잘 짓는 이는 바로 우파리(優波離)19) 장자요, 말이 빠른 이도 바로 우파리 장자이니라. 좋은 보배를 기꺼이 주어 아끼는 마음이 없는 이는 바로 수제(殊提) 장자요, 선(善)의 근본을 이룩한 이는 바로 우가비사리(優迦毘舍離)20)요, 묘한 법을 잘 설명하는 이는 바로 최상무외(最上無畏) 우바새요, 주장에 두려움이 없고 사람의 성질을 잘 살피는 이는 바로 두마대장영비사리(頭摩大將領毘舍離)이니라.”21) ⑶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로서, 은혜로운 베풀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비사왕(毘沙王)22)이요, 보시함에 소심하지 않는 이는 바로 광명왕(光明王)이요, 선(善)의 근본을 이룩한 이는 파사익왕(波斯匿王)이요, 뿌리 없는 좋은 믿음을 일으켜 환희심을 얻은 이는 바로 아사세왕(阿闍世王)이요,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향해 뜻이 변하지 않는 이는 바로 우전왕(優塡王)이요, 바른 법을 받들어 섬기는 이는 바로 월광왕자(月光王子)이니라. 성스러운 무리를 받들어 공양하되 뜻이 언제나 평등한 이는 바로 기원왕자(祇洹王子)23)요, 항상 남 건지기를 좋아하고 자기를 위하지 않는 이는 바로 사자왕자(師子王子)요, 남을 잘 공경히 받들되 높고 낮음이 없는 이는 바로 무외왕자(無畏王子)요, 얼굴이 단정하여 남보다 뛰어난 이는 바로 계두왕자(鷄頭王子)이니라.”24) ⑷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새로서, 항상 자비로운 마음을 쓰는 이는 바로 불니(不尼) 장자요, 마음으로 항상 모든 중생을 가엾이 여기는 이는 바로 석가 종족 마하나마[摩訶納]25)요, 항상 기뻐하는 마음을 쓰는 이는 바로 석가 종족 발타(拔陀)요, 항상 보호하는 마음을 써서 착한 행을 잃지 않는 이는 바로 비사선(毘闍先) 우바새요, 욕됨을 잘 참는 이는 바로 사자(師子) 대장이니라. 여러 가지로 잘 이론하는 이는 바로 비사어(毘舍御)26) 우바새요, 성현의 침묵을 잘 행하는 이는 바로 난제바라(難提婆羅) 우바새요, 착한 행을 부지런히 잘 닦아 쉬지 않는 이는 바로 우다라(優多羅) 우바새요, 모든 감관이 고요한 이는 바로 천마(天摩) 우바새요, 내 제자 중에서 맨 마지막으로 깨달은 이는 바로 구이나마라(拘夷那魔羅)이니라.”27)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팔리본과 한역본의 내용이 전혀 일치하지 않습니다. 뿐만 아니라 팔리본에서는 청신사의 사례가 하나뿐인데 반해서 한역의 [증일아함경]에서는 청신사품에 네 가지 사례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역의 [증일아함경]은 후대에 많은 부분이 첨가되었습니다.▣
Notes: 1) 주석서의 철자는 Tapassa Bhallika이며, 버마 장경에는 Taphusso, Tapussa로 되어 있다. A.Ⅳ, p.438에는 Tapussa로 되어 있다. 3) G. P. Malalasekera, Dictionary of Pali Proper Names(=DPPN), First Indian edition (New Delhi: Oriental Books Reprint Corporation, 1983), Vol.Ⅰ, p.292. 4) F. L. Woodward tr., The Book of the Gradual Sayings (London: PTS, 1932), Vol.Ⅰ, p.23, no.3. 5) DPPN, Vol.Ⅱ, p.514. 6) Kindred Sayings, Ⅳ, p.67; A.Ⅲ, p.49 ff(Ugga-sutta); Gradual Sayings, Vol. Ⅰ, p.23, no.5. 7) Kindred Sayings, Ⅳ, p.67, no.1. 8) DPPN, Vol.Ⅰ, p.334. 9) DPPN, Vol.Ⅰ, p.333. 10) 버마의 원전에 따르면, 수라붓도(sūrabuddho)와 수라반도(sūrabandho)로 표기되어 있다. 11) DPPN, Vol.Ⅱ, p.1274; Gradual Sayings, Vol.Ⅰ, p.23, no.7 참조. 12) DPPN, Vol.Ⅰ, p.957; Gradual Sayings, Vol.Ⅰ, p.24, no.1. 13) DPPN, Vol.Ⅱ, p.3; Gradual Sayings, Vol.Ⅰ, p.24, no.2. 14) Anguttara-nikaya(PTS), Vol.Ⅲ, p.451. 15) 질다(質多)는 팔리어 찟따(Citta)의 음역이다. 16) 가치아라바(呵侈阿羅婆)는 팔리어 핫타까 알라와까(Hatthaka Ālavaka)의 음역으로 보인다. 17) 수달(須達)은 팔리어 수닷따(Sudatta)의 음역이다. 18) [增一阿含經] 3권, 제6 淸信士品(大正藏 2권, p.559下) 19) 우파리(優波離)는 우파리(優婆離)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팔리어 우빨리(Upāli)의 음역이다. 20) 우가비사리(優迦毘舍離)는 팔리어 욱가 베살리까(Ugga Vesālika)의 음역이다. 21) [增一阿含經] 3권, 제6 淸信士品(大正藏 2권, pp.559下-560上) 22) 비사왕(毘沙王)은 병사왕(甁沙王)으로 표기하기도 하는데, 팔리어 빔비사라(Bimbisāra)의 음역이다. 빔비사라왕은 붓다 당시 마가다국의 국왕이었다. 23) 기원(祇洹)을 기환(衹桓)으로 표기하기도 한다. 24) [增一阿含經] 3권, 제6 淸信士品(大正藏 2권, p.560上) 25) 마하납(摩訶納)은 팔리어 마하나마(Mahānāma)의 음역이다. 26) 비사어(毘舍御)는 비사카(毘舍佉)라고도 표기한다. 27) [增一阿含經] 3권, 제6 淸信士品(大正藏 2권, p.560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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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뛰어난 여자신도
1) 팔리 니까야에 언급된 우바이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Anguttara-nikāya, 增支部)]에는 붓다의 뛰어난 제자들의 이름과 그 특징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즉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순입니다. 이제 마지막으로 붓다의 뛰어난 여자신도(우바이)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경전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비구들이여, 나의 제자인 우빠시까(Upāsikā, 優婆夷)들 가운데에서 뛰어난 여성신자로서 최초의 귀의자는 세나니(Senāni)의 딸인 수자따(Sujātā)이다. 승단에 공헌한 자 가운데 제일은 미가라(Migāra)의 어머니인 위싸카(Visākhā)이다. 박식한 자 중 제일은 쿳줏따라(Khujjuttarā)이다. 자비심을 가지고 머무는 자 중 제일은 사마와띠(Sāmāvatī)이다. 선정(禪定)의 힘을 가진 자 가운데 제일은 웃따라 난다마따(Uttarā Nandamātā)이다. 특별한 음식을 보시한 자 가운데 제일은 숫빠와사 꼴리야디따(Suppavāsā Koliyadhītā)이다. 간병인 가운데 제일은 숫삐야(Suppiyā)이다. 흔들리지 않는 성실한 이 가운데 제일은 까띠야니(Kātiyānī)이다. 친밀한 관계자 가운데 제일은 나꾸라마따(Nakulamātā)이다. 소문으로까지 믿음을 일으킨 자 중 제일은 꾸라라가라(Kuraraghara)의 우바이 깔리(kālī)이다.”1) 위 팔리어 [앙굿따라 니까야]에 언급된 여자신도들은 어떤 인물이었는지에 대해서 간략하게나마 살펴보겠습니다.
① 수자따(Sujātā)는 우루웰라(Uruvela) 근처의 쎄나니 마을[將軍村]의 지주 쎄나니(Senāni)의 딸이었습니다. 그녀는 반얀 나무(banyan-tree)의 신, 즉 수신(樹神)에게 만일 아들을 낳으면 밀크-라이스(milk-rice, 우유로 밥을 뭉친 것)를 공양 올리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져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공양을 올릴 준비를 위해 뿐냐(Punnā)라는 하녀를 반얀 나무가 있는 곳으로 보냈습니다. 그 날은 바로 고따마(Gotama)께서 깨달음을 이룬 날이었습니다. 뿐냐는 반얀 나무 아래 앉아 있던 고따마를 발견하고, 그가 공양을 받기 위해 사람으로 현신한 목신(木神)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뿐냐는 곧바로 수자따에게 그 소식을 전했습니다. 수자따는 크게 기뻐하며 황금 발우에 음식을 담아 그에게 공양을 올렸습니다. 고따마는 발우를 들고 강가로 가서 쑷빠띳티따(Suppatitthita)라는 여울에서 목욕하고 그 음식을 드셨습니다. 이것은 그가 49일 만에 처음으로 먹은 음식이었습니다.2) 수자따의 음식은 붓다와 신들에게 올린 공양 중에서 가장 중요한 공양으로 여겨졌으며, 그것은 신의 맛과 향기가 더해졌다고 합니다. 그날 수자따는 귀의게(歸依偈)를 세 번 읊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붓다께 귀의한 여성신도 가운데 최초의 귀의자가 되었던 것입니다.3) ② 위싸카(Visākhā, 毘舍佉)는 붓다의 여자신도 가운데 으뜸이었으며, 승단에 공헌한 자 중 제일[dāyikānam aggā, 布施第一]이라고 붓다에 의해 직접 선언되었습니다.4) 그녀의 아버지는 다난자야(Dhanañjaya), 어머니는 수마나(Sumanā)였습니다. 그녀는 앙가(Anga, 鴦伽)국의 밧디야(Bhaddiya)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일곱 살 때 밧디야를 방문한 붓다를 친견하고, 직접 법을 듣고 예류자(預流者)가 되었습니다.5) 나중에 그녀의 아버지 다난자야는 빔비사라 왕에 의해 꼬살라국으로 이주하게 되었습니다. 위싸카는 사왓티의 부자 미가라(Migāra)의 아들 뿐냐왓다나(Punnavaddhana)와 결혼했습니다. 시아버지 미가라는 나체 고행자들의 추종자였으나, 나중에 붓다께서 그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개종했습니다. 미가라는 며느리를 통해 예류과를 얻었기 때문에 자기의 어머니에게 하는 것처럼 위싸카에게 깍듯이 예를 표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그녀에게 ‘미가라의 어머니(Migāramātā, 鹿母)’라는 호칭이 붙게 되었습니다.6) 위싸카는 시집올 때 값비싼 옷을 입고 왔는데, 그 옷을 팔아 정사를 건립했습니다. 그 정사가 바로 유명한 ‘미가라마뚜빠싸다(Migāramātupāsāda, 鹿母講堂)입니다. 이 승원의 원래 이름은 뿟바라마(Pubbārāma, 東園)였습니다.7) 그녀는 불교의 가장 이상적인 여자신도로 간주되었습니다.8) ③ 쿳줏따라(Khujjuttarā)는 부잣집의 유모로 태어났지만,9) 그녀는 나중에 사마와띠(Sāmāvatī) 왕비의 하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태어나면서부터 쿳자(Khujja, 곱추)였기 때문에 ‘쿳줏따라’라고 불렸습니다. 왕비는 왕의 허락을 받아 매일 꽃을 사라고 여덟 개의 동전을 쿳줏따라에게 주었습니다. 꿋줏따라는 수마나(Sumana)라는 정원사로부터 꽃을 사는데 네 개의 동전을 쓰고, 네 개는 보관해 두었습니다. 어느 날 붓다께서 수마나를 찾아와 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 꿋줏따라는 곧바로 예류과를 얻었습니다. 그 날은 그녀가 꽃을 사는데 여덟 개의 동전을 모두 사용했습니다. 왕비가 평소보다 많은 꽃을 보고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녀는 왕비에게 그 날 있었던 모든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 날 이후 왕비는 쿳줏따라를 존경하게 되었고, 향수 물로 목욕하고 그녀로부터 법을 들었습니다. 쿳줏따라는 사마와띠 왕비를 어머니로 삼고, 정기적으로 법을 들기 위해 붓다께 갔으며 돌아와 왕비와 오백 명의 궁녀들에게 설법했습니다. 쿳줏따라의 가르침을 받고 그들은 모두 예류과를 얻게 되었습니다. 사마와띠 왕비가 붓다를 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쿳줏따라는 왕비에게 궁전의 담에 구멍을 뚫어 지나가는 붓다를 지켜보라고 제안했습니다. 사마와띠 왕비가 죽은 뒤, 쿳줏따라는 붓다의 설법을 듣는 종교적인 신앙에만 전념한 것으로 보입니다. 붓다는 그녀가 가장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다고 선언했습니다.10) ④ 사마왓띠(Sāmāvatī)는 우데나(Udena, 優塡王)의 왕비 세 명 중 한 명이었습니다. 그녀는 밧다와띠(Bhaddavatī)의 대부호 밧다와띠야(Bhaddavatiya)의 딸이었습니다. 그녀의 아버지 밧다와띠야는 꼬삼비(Kosambī)의 고싸까(Ghosaka)와 친구였습니다. 밧다와띠에 전염병이 창궐했을 때, 그녀는 부모들과 함께 꼬삼비로 피난을 갔습니다. 그곳에서 고싸까가 마련한 급식소에서 음식을 얻어먹었습니다. 그런데 첫째 날 아버지가 죽고, 둘째 날 어머니가 죽었습니다. 급식소에는 사람들이 음식을 얻기 위해 우왕좌왕하여 큰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사마와띠는 이 혼란을 막기 위해 급식소에 칸막이를 세워 입구와 출구를 구분했습니다. 그러자 소란스럽지 않고 질서를 유지할 수가 있었습니다. 고싸까는 사마와띠 때문에 혼란을 해결하게 된 것을 알고 그녀를 친자식으로 삼았습니다. 사마와띠의 본래 이름은 사마(Sāmā)였는데, 급식소에 칸막이(vati, 울타리, 담)를 세운 뒤, ‘사마와띠’로 불렸습니다. 축제일에 우데나 왕이 목욕하기 위해 강으로 가고 있는 사마와띠를 보고 사랑에 빠져 고싸까에게 왕궁으로 보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고싸까는 왕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왕은 다시 그에게 돌아와서 그의 부인이 밖으로 나가자 그의 집을 폐쇄해 버렸습니다. 사마와띠는 이것을 보고 고싸까에게 왕궁으로 보내 달라고 했고, 우데나 왕은 그녀를 첫 번째 왕비로 삼았습니다. 얼마 후 우데나 왕은 다시 마간디야(Māgandiyā)를 왕비로 채택했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마와띠 왕비의 하녀였던 쿳줏따라가 붓다를 직접 보고 싶어 하는 왕비에게 왕궁의 담에 구멍을 뚫어 지나가는 붓다를 뵙도록 하였습니다. 둘째 왕비 마간디야가 이 사실을 알고 이를 핑계로 사마와띠를 왕궁에서 추방시킬 음모를 꾸몄으나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마간디야는 결국 사마와띠의 처소에 불을 질러 왕비와 하녀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마간디야는 사마와띠를 죽여 자기가 첫째 왕비가 되기 위해서 그와 같은 엄청난 일을 저질렀다고 합니다.11) 사마와띠는 붓다를 따르는 가장 저명한 여자신도의 명단에 포함되었으며, 가장 자비스럽게 살았던(aggam mettāvihārinam) 우바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12) ⑤ 웃따라 난다마따(Uttarā Nandamātā)는 웰루깐따끼 난다마따(Velukantakī Nandamātā)와 같은 사람으로 보고 있습니다.13) ‘웃따라 난다마따’란 글자 그대로 ‘난다의 어머니 웃따라’라는 뜻입니다. ‘웃따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너무 많았기 때문에 서로 구별하기 위해 ‘웃따라 난다마따’라고 불렸던 것 같습니다. 그녀는 붓다를 모셨던 여자신도 가운데 으뜸이었습니다.14) [앙굿따라 니까야]에서는 여자신도 중에서 그녀가 선정의 힘, 즉 선정력(禪定力, jhāyīnam)이 으뜸이었다고 묘사되어 있지만,15) 이것은 다른 ‘웃따라’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16) 그녀는 팔재계(八齋戒)의 포살을 준수한 여자신도의 명단에 다시 언급되어 있습니다.17) ⑥ 숫빠와사 꼴리야디따(Suppavāsā Koliyadhītā)는 시왈리(Sīvalī) 존자의 어머니입니다. 시왈리가 태어나기 전 7일 동안 그녀는 극심한 산고의 고통을 겪고 있었는데, 그녀는 죽기 전에 붓다께 공양을 올리고 싶다고 전했습니다. 붓다께서 찾아와 축복해 주자 곧 아기를 낳을 수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어머니의 자궁 속에 7년간 있었는데, 그 이유는 [아싸따루빠 자따까(Asātarūpa Jātaka)]에 설해져 있습니다.18) 숫빠와사는 꼴리야(Koliya) 왕의 딸이었습니다.19) 그녀의 남편은 릿차비(Licchavi) 족의 마할리(Mahāli)였으며, 삿자넬라(Sajjanela)라는 꼴리야족 마을에 살았습니다. 붓다께서 그 마을을 방문하여 그녀에게 음식을 보시하면 어떤 공덕이 있는가에 대해 설해주었습니다.20) 그녀는 특별한 보시를 행한 사람 가운데 으뜸(aggam panītadāyikānam)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으며,21) 그녀는 빠두뭇따라 붓다(Padummuttara Buddha, 燃燈佛) 시대에 열반을 얻기로 진지하게 결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22) 그녀는 유명한 우빠시까(Upāsikā, 優婆夷)의 명단에 포함되었으며,23) 스님들에게 널리 보시를 베푼 아나타삔디까(Anāthapindika), 쭐라 아나타삔디까(Culla Anāthapindika), 위싸카(Visākhā)와 함께 언급되고 있습니다.24) ⑦ 숫삐야(Suppiyā)는 베나레스(Benares)의 여자신도였습니다. 그녀의 남편 이름도 숫삐야(Suppiya)였는데, 둘 모두 승단에 크게 헌신하였습니다. 어느 날 숫삐야는 사찰을 방문하여 고깃국이 꼭 필요한 병든 비구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곧장 시종에게 고기를 사오라고 보냈습니다. 하지만 베나레스 전체에 고기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칼로 자신의 넓적다리를 잘라 병든 스님을 위한 국을 끊이도록 하녀에게 시켰습니다. 그 뒤 그녀는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누었습니다. 남편이 집에 돌아와 이 사실을 알고 몹시 기뻐하여 사찰로 가서 내일 공양을 위해 붓다를 자기 집으로 초대하기로 하였습니다. 다음 날 붓다는 제자들과 함께 그의 집에 도착하여 아내 숫삐야에 대해 물었습니다. 그녀가 아프다고 하니, 붓다는 그녀를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붓다께서 그녀를 보는 순간 상처는 모두 나아졌습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붓다는 자진해서 준 것일지라도 비구들이 사람의 고기를 먹어서는 안 된다는 율을 제정하게 되었습니다.25) 숫삐야는 이생에서 선행의 과보를 받았던 사람 중의 한 사례로 소개되고 있습니다.26) 그녀는 병든 사람을 간호한 사람 중에서 제일이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으며,27) 연등불 시대에 열반을 얻기로 결심한 것으로 유명합니다.28) 그리고 그녀는 저명한 여자신도의 명단에 포함되었습니다.29) ⑧ 까띠야니(Kātiyānī)는 절대적으로 청정한 믿음(aveccappasāda, 不壞淨)을 가진 가장 유명한 재가 여자신도라고 붓다에 의해 선언되었습니다.30) 그녀는 연등불시대에 열반을 얻겠다고 결심했었습니다. 그녀는 꾸라라가라(Kuraraghara)라는 도시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깔리(Kālī)라는 친구에게 헌신적이었습니다. 어느 날 그녀는 친구 깔리와 함께 소나 꾸띠깐냐(Sona Kutikanna) 장로에게 법을 듣고자 찾아갔습니다. 법문을 듣는 동안 그녀의 집에 도둑이 들었습니다. 불을 밝히기 위해 기름을 가져오라고 보냈던 하녀가 도둑이 침입했다는 소식을 전했습니다. 하지만 까띠야니는 장로의 법문이 끝나기 전까지는 떠날 수 없다고 거절하였습니다. 이 사건의 진행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도둑의 두목은 그녀에게 감동을 받아 훔친 모든 값진 물건들을 제 자리에 되돌려 놓도록 부하들에게 명령했습니다. 까띠야니는 법문이 끝나자 예류자가 되었습니다. 다음 날 도둑들이 와서 그녀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그녀는 도둑들을 장로에게 데리고 가서 출가시켰습니다. 그들은 나중에 모두 아라한이 되었습니다.31) ⑨ 나꿀라마따(Nakulamātā)는 남자신도였던 나꿀라삐따(Nakulapitā)와 부부간입니다. 이들은 박가(Bhagga)국의 숭수마라기리(Sumsumaragiri)에 살고 있었습니다. 붓다께서 이 마을 방문했을 때, 이들 부부는 붓다를 보자마자 즉시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들 부부는 과거 오백 생 동안 붓다의 부모였던 것입니다.32) 붓다의 재가신도 가운데 가장 친밀한 관계였다고 선언되었습니다.33) ⑩ 깔리(kālī)는 꾸루라가리까(Kururagharikā)라고도 불렸는데, 그녀는 여자신도 중에서 소문으로 믿음을 일으킨 이 중에서 제일이라고 묘사되었습니다.34) 그녀는 소나 꾸띠깐냐(Sona Kutikanna)의 어머니였고, 그녀의 남편은 아완띠(Avantī)의 꾸루라가라(Kururaghara)족 사람이었습니다. 그녀는 어릴 때 부모를 따라 라자가하(Rājagaha)에 가게 되었는데, 그곳 발코니에서 산들바람을 즐기고 있는 동안, 붓다와 그의 가르침에 관해 사따기리(Sātāgiri)와 헤마와따(Hemavata)가 주고받는 대화를 듣고 붓다에 대한 믿음을 일으켜 예류자가 되었습니다. 같은 날 밤 소나(Sona)가 태어났습니다. 나중에 깔리는 꾸루라가라로 돌아와 그곳에서 마하깟짜나(Mahā Kaccāna, 大迦旃延) 존자를 섬겼습니다. 소나가 자라서 깟짜나의 제자로 승단에 들어갔을 때, 붓다를 친견하고 그녀는 붓다의 방에 깔도록 값이 비싼 양탄자를 보시하였습니다. 이 방문 후 소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 깔리는 아들 소나가 일찍이 붓다께 설법하여 붓다와 일만 세계의 신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던 법문과 똑같은 내용을 자기에게 설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깔리는 예류자가 된 여자신도 중에서 가장 으뜸이었다고 합니다.35) 그녀는 까띠야니(Kātiyānī)와 변치 않는 동료이자 절친한 친구였습니다.36) 그녀와 마하깟짜나 간의 대화는 깔리 숫따(Kāli Sutta)에 실려 있습니다.37)
2) [증일아함경]에 언급된 우바이
다음은 한역의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 제3권 제7 청신녀품(淸信女品)에 나타난 붓다의 뛰어난 여자신도들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⑴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이(優婆夷)38)로서, 처음으로 도를 잘 깨달은 이는 바로 난타난타바라(難陀難陀婆羅) 우바이요, 지혜가 제일가는 이는 바로 구수다라(久壽多羅)39) 우바이요, 언제나 좌선하기를 좋아하는 이는 바로 수비야녀(須毘耶女)40)우바이요, 지혜가 밝은 이는 바로 비부(毘浮) 우바이요, 설법을 잘 하는 이는 앙갈사(鴦竭闍) 우바이요, 경전 뜻을 잘 연설하는 이는 바로 발타사라수염마(跋陀娑羅須焰摩) 우바이요, 외도를 항복 받는 이는 바로 바수타(婆須陀) 우바이요, 음성이 맑고 트인 이는 바로 무우(無優) 우바이요, 여러 가지로 논리에 능통한 이는 바로 바라타(婆羅陀) 우바이요, 용맹스럽게 정진하는 이는 바로 수두(須頭) 우바이이니라.”41) ⑵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이로서, 여래를 공양하는 이는 바로 마리(摩利) 부인이요, 바른 법을 받들어 섬기는 이는 바로 수뢰바(須賴婆) 부인이요, 성스러운 무리를 공양하는 이는 바로 사미(捨彌) 부인이요, 미래와 과거의 어진 선비를 우러러 보는 이는 바로 월광(月光) 부인이요, 보시하기에 으뜸인 이는 바로 뇌전(雷電) 부인이요, 항상 자비삼매를 행하는 이는 바로 마하광(摩訶光) 우바이요,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쓰는 이는 바로 비제(毘提) 우바이요, 기뻐하는 마음이 끊이지 않는 이는 바로 발제(拔提) 우바이요, 업을 지켜 행하는 이는 바로 난다(難陀)의 어머니42)인 우바이요, 믿음의 해탈을 얻은 이는 조요(照曜) 우바이이니라.”43) ⑶ “내 제자 중의 첫째 우바이로서, 항상 욕됨을 참는 이는 바로 무우(無優) 우바이요, 공삼매(空三昧)를 닦는 이는 바로 비수선(毘讎先) 우바이요, 생각 없는 삼매[無想三昧]를 닦는 이는 바로 우나타(優那陀) 우바이요, 소원 없는 삼매[無願三昧]를 닦는 이는 바로 무구(無垢) 우바이요, 남을 가르치기를 좋아하는 이는 시리(尸利) 부인인 우바이요, 계율을 잘 가지는 이는 앙갈마(鴦竭摩) 우바이이니라. 얼굴이 단정한 이는 바로 뇌염(雷焰) 우바이요, 모든 감각 기관이 고요한 이는 바로 최승(最勝) 우바이요, 많이 듣고 널리 아는 이는 바로 니라(泥羅) 우바이요, 게송을 잘 짓는 이는 바로 수달(須達)의 딸 수마가제(修摩迦提) 우바이요, 겁내지 않는 이도 바로 수달의 딸이요, 내 성문 가운데서 최후에 깨달은 우바이는 바로 람(藍) 우바이이니라.”44) 한역 [증일아함경]에 나오는 여자신도의 원래 이름을 추정할 수 없는 것이 매우 아쉽습니다.▣
Notes: 1) Anguttara-nikāya (PTS) Vol.Ⅰ. p.26; “Etad aggam bhikkhave mama sāvikānam upāsikānam pathamam saranam gacchantīnam yadidam Sujātā Senānidhītā. dāyikānam yadidam Visākhā Migāramātā. bahussutānam yadidam Khujjuttarā. mettāvihārīnam yadidam Sāmāvatī. jhāyīnam yadidam Uttarā Nandamātā. panītadāyikānam yadidam Suppavāsā Koliyadhītā. gilānūpatthākīnam yadidam Suppiyā upāsikā. aveccappasannānam yadidam Kātiyānī. vissāsikānam yadidam Nakulamātā gahapatānī. anussavappasannānam yadidam kālī upāsikā Kuraragharikā ti.” 3) SNA. I, p.154; cf. D.Ⅱ, p.135; DPPN, Vol.Ⅱ, p.1187에서 재인용. 4) A.Ⅰ, p.26. 5) DPPN, Vol.Ⅱ, p.900. 6) Edward J. Thomas, The Life of Buddha as Legend and History, First Indian edition (New Delhi : Munshiram Manoharlal, 1992), pp.105-6. 7) [望月佛敎大辭典] 5권, p.5061上. 8) A.Ⅳ, p.348. 9) AA.Ⅰ, p.232. 10) A.Ⅰ, p.26; DhA.Ⅰ, p.208 ff.; AA.Ⅰ, p.226, 237 f.; ItvA. p.23 f.; PsA. p.498 f.; DPPN, Vol. Ⅰ, p.719에서 재인용. 11) Visuddhimagga (PTS), p.380 f. 12) A.Ⅰ, p.26; cf. Ⅳ, p.348; DPPN, Vol.Ⅱ, pp.1102-4. 참조. 13) DPPN, Vol.Ⅱ, p.22. 14) Buddhavamsa (PTS), xxvi. 20. 15) A.Ⅰ, p.26. 16) DPPN, Vol.Ⅰ, p.361. 17) A.Ⅳ, p.347; AA.Ⅱ, p.791. 18) 여기서 7년은 아마 그녀가 일곱 번 연속적으로 유산한 것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한다. DPPN, Vol.Ⅱ, p.1222, no. 2 참조. 19) Jātaka, Ⅰ, p.407. 20) A.Ⅱ, p.62 f. 21) A.Ⅰ, p.26. 22) AA.Ⅰ, p.244. 23) A.Ⅳ, p.348. 24) DhA.Ⅰ, p.339. 25) Vinaya Pitaka (PTS), Ⅰ, p.216 f. 26) Mindapañha, ed. Tranckner, p.115; cf. p.291. 27) A.Ⅰ, p.26. 28) AA.Ⅰ, p.244 f. 29) A.Ⅳ, p.348. 30) A.Ⅰ, p.26. 31) AA.Ⅰ, p.245 f. 32) DPPN, Vol.Ⅱ, p.3. 33) A.Ⅰ, p.26; Ⅱ, p.61 f.; AA.Ⅰ, p.216 f.; p.246; Ⅱ, p.514; SA.Ⅱ, p.182. 34) A.Ⅰ, p.26. 35) AA.Ⅰ, p.245. 36) AA.Ⅰ, p.133 ff.; SnA.Ⅰ, p.208 f. 37) DPPN, Vol.Ⅰ, p.587. 38) 한역 [증일아함경]에서는 우바사(優婆斯)로 표기되어 있다. 39) 구수다라(久壽多羅)는 팔리어 쿳줏따라(Khujjuttarā)의 음역이다. 40) 수비야녀(須毘耶女)는 팔리어 숫삐야(Suppiyā)의 음역이다. 41) [增一阿含經] 3권, 제7 淸信女品 (大正藏 2권, p.560上). 42) 난다[難陀]의 어머니는 Uttarā Nandamātā이다. 43) [增一阿含經] 3권, 제7 淸信女品 (大正藏 2권, p.560中). 44) [增一阿含經] 3권, 제7 淸信女品 (大正藏 2권, p.560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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