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쥬빌리 고양파주 칼럼>
김인천 목사
이 글은 북한 선교를 품었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입술에만 머물고 있는, 부끄러운 자화상의 고백입니다. 제 심령의 강퍅함과 아버지의 시간표와 마음을 말하고자 함이니, 글에 대해 오해(?) 마시기 바랍니다.
언제부턴가 반복적인 일정한 흐름이 생겼습니다. 해외에서까지도 사람을 만나면 북한을 가슴에 품은 자이고, 기도원에서 배정 받은 곳이, 많고 많은 방 중에서 하필 북한 사역자가 묵고 있는 곳입니다. 우연히 방문한 교회들에선 북한관련 영상이 상영되거나 간증 또는 북한선교 헌신예배를 드립니다. 메스미디어를 접할 때 마다 북한관계 정보를 만나는데, 심지어 연예프로그램을 봐도 북한관련일 때가 있습니다. 물론 이런 일들은, 관심사가 이 일에 있고, 우리사회가 북한에 관한 논의가 많아진 측면도 일각 있겠지만, 이는 아버지의 북한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노정된 것이고, 그 마음을 알아, 행하길 바라시는 섭리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비슷한 경험을 한 이들이 국내외 적으로 수다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의 말에 따르면 어느 날 북한에 관심을 갖게 하고, 이쪽으로 향하도록 이끔을 느꼈다는 겁니다.
여하튼 저로 하여금, 이 섭리와 마음을 보고 갖게 하는 것에 대해, 의문을 가져 본 적이 있습니다. 기실 거동이 불편할 뿐 아니라, 말마저 어눌한 중증 장애인으로 희귀성 난치병과 싸우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쩌면 의학적 판단처럼, 수 년 내에 수명을 다할지도 모릅니다. 비유의 적절성은 논외하고, 투자대비 이익률과 효용성 그리고 효율성이 현저히 떨어질 뿐 아니라, 당사자의 적극성에도 하자가 있는 상품입니다. 그럼에도 이러한 상품이라도 필요했다면, 그 사정이 궁금했고, 나름 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하나는, 아버지의 예정하신 때가 도달 했다는 것이고, 또 다른 것은, 그 때를 위해 당신의 사람들을 찾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곡식 상태를 보면 추수 때를 아는 것처럼, 저간의 되어진 일들은, 북한을 향한 아버지의 때를 짐작케 합니다. 완성의 때를 단정할 수 없으나, 하나님이 잃어버린바 된 북한을 회복하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아버지의 마음이 시급 하고 긴박하니, 분명 그 시기가 멀지 않은 것만은 맞습니다. 얼마나 급하시면, 하자 투성이인 문제아에게까지 당신의 경륜을 펼치시겠습니까. 또한 초대에 응한 사람은 누구든 잔치에 참석케 했던 예처럼, 이때를 알아 순응하는 사람은, 어떤이든 이 일에 사용키로 하신 것도 맞을 듯합니다. 그런 까닭이 아니라면, 언감생심 이 성업에 기척도 못할 사람이 끼일리 만무합니다. 아버지는 당신의 마음을 대변해줄 사람을 찾고 부르고 계십니다. 만약 이 초청에 응하지 않는다면,"돌들이 소리 지"를 지도 모릅니다.
이러저러한 연유로 북한을 가슴에 심었습니다. 그리고 시간을 정하여 기도 하고, 북한선교 예배와 기도회를 드리며, 한 날을 북한을 위해 헌신하고 있습니다. 그리함에도 북한으로 인해 슬람미 여인 같은 사랑 병이 들지는 않습니다. 가급적 북한 관련 집회와 서적과 뉴스를 접하려고 하고, 실제 그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요나처럼, 그 땅에 대한 낯설음은 존재 합니다. 많은 협회와 단체로부터 통일전략과 선교방법을 열심 내어 듣고 배웁니다. 하지만 어떻게 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바울 같은 비전이, 명료해지지는 않습니다. 북한 주민의 참상과 탈북민의 사연을 듣고, 볼 때 가슴이 먹먹해지고 눈물이 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같이, 그 아픔으로 간장이 녹고 뼈 속까지 아리며 심장이 멎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한 상황입니까? 그런데 이러한 모습이 마냥 불만스러워도, 스스로 위안 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부어지길, 당신의 계획하신 때에 사용될 수 있길, 그 땅과 그에 속한 모든 것에 아버지의 긍휼과 사랑이 증가되길, 기도하는 것에 열심을 내고, 마음을 드린다는 것 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나마도 아버지의 끊임없는 북한을 향한 사랑이, 부족한 자를 인도하심 때문임을 밝힙니다. 그러고 보니 자랑할 것 없는 부끄러운 사람이 자명해집니다.
그럼에도 이 일에 기웃거리다 귀한 것을 얻은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일천한 경험이긴 하지만, 자의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체득한 것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 하게 하시는 일을, 당신의 마음으로 해야, 실패의 가능성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찌되었든, 아버지의 일은 아버지의 뜻을 따라야 하고, 당신의 방식과 방법으로 행해야 하며, 그분의 마음에 들어야 합니다.
연 날리기 초보일지라도 바람을 타면, 연을 높은 하늘까지 띄울 수 있습니다. 지혜자가 시대를 읽고 그 흐름을 자신의 삶속에 활용할 줄 아는 것처럼, 하나님의 흐름에 발맞추어 나가는 자가 되길 소망합니다. 그런 자가 복 있는 사람입니다. 암튼, 부끄러운 자화상을 이제 그만 부여잡아야겠습니다. 불러주신 아버지 마음 헤아려, 아버지의 사랑 병을 대신 지고, 부족함을 인정하며, 그분이 쓰시는 때까지 뚜벅뚜벅 걷기를 다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