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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Czech Republic)
시차: 한국보다 7시간 느림
통화: 체코 코루나(1CZK=51.78원)
수도: 프라하
대사관: (420)234-090-411
무사증 체류기간: 90일 협정
언어: 체코어
면적: 약 7만8천㎢(한반도의 0.357배)
인구: 약 1,062만 명(세계 87위)
체코의 정식 명칭은 체코 공화국(Czech Republic)이고, 수도는 프라하이다. 동쪽은 슬로바키아, 서쪽은 독일, 남쪽은 오스트리아, 북쪽은 독일과 폴란드로 둘러싸여 있는 중부 유럽의 내륙국으로 1993년 체코슬로바키아 연방이 해체되면서 분리 독립하였다. 국토 면적은 우리나라의 1/3인 약 78,864km2이며 인구의 대부분은 슬라브족의 한 갈래인 체코인이고 언어는 체코어이다. 종교는 가톨릭 39.2%, 무교 39.7% 정도로 비슷한 분포를 보이고 있다. 날씨는 우리나라와 거의 비슷하지만 여름엔 습도가 낮고 겨울엔 눈과 비가 자주 내린다.
▶체스키크룸로프(Ceský Krumlov)-체코
18세기 이후에 지어진 건물이 없는 마을로 인구 1만5천명의 작은 규모지만 300개 이상의 건축물이 문화유적으로 등록된 살아있는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이다. 프라하 남서쪽 200킬로미터 지점, 오스트리아 국경 근처에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는 완벽히 동화 속 그림 같은 마을이다. 마을의 절반은 문화유적이고 나머지 절반은 관광객을 위한 숙박시설과 가게들이다.
중세와 르네상스 양식의 건축물들이 잘 보존되어 있는 체스키 크룸로프는 카메라 렌즈 속에 가장 아름답게 담기는 동화 속 마을이다. 1992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체코를 넘어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도 잘 알려져 있다. 체코에서는 프라하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관광객이 찾고 있고 드라마, 영화, CF, 뮤직 비디오 촬영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체스키 크룸로프는 체코어로 ‘체코의 오솔길’이라는 뜻이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곳이 마을 곳곳에 있으며 마을을 끼고 휘어져 흐르는 블타바 강에서는 늦은 봄부터 초가을까지 레프팅을 즐길 수도 있다.
●체스키크룸로프 성
성 입장료: 영어 가이드 투어- 성인 250kč
55분 소요(르네상스와 바로크의 방, 예배당, 황금 마차와 가면의 방)
프라하 성에 이어서 체코에서 두 번째로 큰 성인 체스키크룸로프 성은 13세기부터 18세기까지 고딕 양식부터 시작하여 수차례 새로운 건축 양식들이 증축되면서 현재는 여러 양식이 복합된 성의 모습을 하고 있다. 1250년 이 마을의 영주들이 고딕 양식의 성을 세웠는데 그중 가장 힘 있는 비트코프치(Vítkovci) 가문을 대표로 내세워 비트코프치가의 문장이었던 5송이의 장미가 이 성의 상징적 의미가 됐다.
1302년 비트코프치 가문의 후손이 없자 친척이었던 로젠베르그(Rosenberg) 가문이 뒤를 이어 체스키크룸로프 최고의 전성기를 이루면서 고딕 양식이었던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증축했다. 16세기에 들어와 체스키크룸로프 성의 상징인 흐라덱(Hrádek)이 세워지게 되고 17세기 초 합스부르크가의 황제였던 루돌프 2세(Rudolf II)가 성을 매입하였는데 30년 종교 전쟁이 끝난 후 합스부르크가의 후손인 페르디난드 2세(Ferdnad II)가 17세기 말에 오스트리아 에겐베르그(Eggenberg) 가문에게 이 성을 선물해 주면서 에겐베르그 가문이 바로크 양식의 성을 추가로 증축했다.
하지만 에겐베르그 가문도 대를 이을 사람이 없게 되자 얼마 못 간 18세기 초 또 다른 가문인 슈바르젠베르그(Schwarzenberg) 가문에게 넘어가게 되고 그 후손들이 지금의 모습을 갖춘 체스키크룸로프 성을 마지막으로 개조하였다. 그러나 20세기 중반인 1950년 성은 결국 국가로 귀속됐다. 내부 관람은 가이드 투어로 진행되며 예배당과 각종 방을 돌아보는 코스와 미술 작품을 돌아보는 코스가 있다.
●스보르노스티 광장
구시가지 광장인 스보르노스티 광장은 13세기에 만들어진 광장으로 광장 한쪽엔 1715년 전염병이었던 페스트가 끝난 것에 대한 기념으로 세운 성 삼위일체 기둥이 있다. 광장 주변으로는 르네상스 타운이라고 불릴 정도로 귀여운 파스텔톤의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들이 광장을 감싸고 있다. 현재는 호텔, 시청사, 레스토랑, 기념품 상점, 관광 안내소 등이 자리 잡고 있고 관광 안내소에서는 무료 지도를 받을 수 있으니 체스키크룸로프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미리 들러 보자.
●시청사
♣슈니첼(맛 체험)
슈니첼(독일어: Schnitzel)은 오스트리아의 고기 요리이며 연육제 등을 이용해 고기를 연하게 한 뒤 밀가루, 빵가루, 달걀 등을 섞어 고기의 표면에 바르고 기름에 튀겨 완성한다.
송아지고기, 양고기, 닭고기, 쇠고기, 칠면조고기, 돼지고기 등 다양한 고기를 재료로 사용하며 프랑스 요리인 에스칼로프와 유사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이름의 유래는 '음식을 얇게 썬 조각'라는 의미의 중세 독일어의 단어인 Sniz에서 파생된 Snitzel이며 19세기 비너 슈니첼이 대중적으로 퍼지며 본격적으로 자리 잡았다.
슈니첼은 사용하는 재료에 따라서 송아지 고기로 만든 슈니첼 이외에도 돼지고기로 만든 포크슈니첼, 닭고기로 만든 치킨슈니첼 등 다양한 갈래로 나뉜다.
▶프라하(Praha)- 체코
프라하는 체코의 수도이며 영어로는 프라그(Prague)라고 한다. 체코 중서부, 블타바 강가에 위치해 있으며, 체코의 경제, 정치, 문화 중심지이자 유럽에서도 손꼽히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중세에 신성 로마 제국의 수도로써 번영을 누렸던 데다가 유럽의 다른 도시와는 달리 제1, 2차 세계 대전의 피해를 거의 입지 않은 덕분에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건축 양식의 멋진 고전 건축물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지붕 없는 건축 박물관’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또한 실력 있는 거리의 악사들이 거리를 무대 삼아 연주하는 모습을 쉽게 접할 수 있는 낭만적인 도시이기도 하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프라하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소개하곤 한다.
14세기에 구시가지가 포화 상태가 되자 카를 4세의 명으로 유럽 최초로 도시 계획에 의거해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었다. 마시장, 우시장 등의 가축 시장과 건초 시장이 있던 이 지역은 19세기에 들어서는 현재와 같이 아르누보 양식의 건물들이 들어서며 프라하에서 가장 번화한 상업 지구가 되었다. 호텔, 레스토랑, 쇼핑센터, 대형 마켓들이 모여 있다.
●프라하 성(Pražský Hrad)
프라하 성은 9세기 중반에 건설되기 시작하여 14세기 카를 4세 때에 지금과 비슷한 길이 570m, 너비 128m의 성의 모습을 갖추었다. 1918년부터 대통령궁으로 사용되면서 현재까지 사용되는 성 중 세계에서 가장 큰 성으로 기네스북에 올랐다.
성의 정문인 서쪽 문에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거인 타이탄의 전투를 묘사한 거인상이 세워져 있다. 그 아래에는 프라하 성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근위병이 서 있는데, 매시 정각에 열리는 근위대 교대식도 놓치지 말자. 정문을 통과하면 제1 광장이 나오고, 1614년 합스부르크가의 마티아스 황제(Matyášova)의 대관식을 기념하기 위해 만든 문을 통과하면 제2 광장이 나온다. 제2 광장엔 왕궁 미술관과 프라하 성 내부 관람을 위한 티켓을 판매하는 성 십자가 예배당이 관광 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왕궁 미술관 옆으로 난 문은 왕실 정원인 북정원으로 이어지는 문이고, 미술관을 바라보고 오른쪽으로 난 문이 제3 광장으로 이어지는 문이다. 제3 광장은 프라하 성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곳으로 성 비트 대성당과 현재 대통령이 집무하고 있는 대통령궁, 구 왕궁, 오벨리스크가 자리하고 있다. 성 비트 대성당과 구 왕궁으로 통과하는 통로 아래를 지나면 성 이르지 광장이 나타난다. 이곳을 지나면 성 이르지 성당, 성 이르지 수도원, 황금 소로, 달리보르카 탑, 장난감 박물관 등이 있다. 프라하 성은 체코를 대표하는 상징물이자 유럽에서도 가장 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이다.
◐구 왕궁(Starý Královský Palác)-프라하 성
구 왕궁은 1135년에 처음 지어져 16세기까지 왕궁으로 사용되었으며, 합스부르크 통치 기간에는 정부 청사와 법정, 구 보헤미아 의회가 있었다. 왕궁 안의 블라디슬라브 홀은 높이 13m, 폭 16m, 길이 62m로, 유럽의 중세 시대 성 중에서 가장 큰 홀이다. 성에서 벌어지는 모든 축제와 행사는 대부분이 홀에서 진행됐다. 보헤미아 대법관의 방, 말을 타고 들어올 수 있는 기사들의 통로, 의회당, 예배당 등 몇 군데의 방도 함께 개방 중이다.
◐비트 대성당(Katedrála Sv. Víta)-프라하 성
신고딕 양식의 이 웅장한 성당은 1344년에 착공하여 1929년에야 완공되었다. 제단 오른쪽에 1000여 개의 화려한 보석으로 장식된 방은 바츨라프 왕의 예배당으로 그의 왕관과 보석이 보관되어 있고, 지하에는 그의 무덤과 함께 왕실 무덤이 있다. 또한 성 얀 네포무츠키의 묘도 성당 안에 있는데, 체코 최대의 은광 지역인 쿠트나호라에서 가져온 약 3톤의 은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제단을 바라보고 왼쪽 세 번째 스테인드글라스는 그림으로 그려진 아르누보 양식의 알폰스 무하 작품이고, 정문 위의 장미창은 천지창조를 묘사하고 있다. 성당의 남쪽 탑은 좁은 계단을 어렵게 올라야 하지만, 프라하 최고의 전망을 선물한다.
◐프라하 성의 화약탑(Prašná věž)
성 비트 대성당을 마주하고 왼쪽에 서 있는 원형 탑이다. 1496년에 대포 요새로 지어졌으나 나중에는 연금술사들의 연구실이나 화약 창고 등으로도 사용되었다. 현재는 연금술과 종 제작에 관해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구시가 광장(Staroměstské Náměstí)
체코의 역사를 그대로 떠안고 있는 구시가지 광장은 1437년 종교 개혁자 얀 후스의 추종자들이 처형되었던 장소이자 30년 전쟁 때인 1621년 발트슈테인 장군에게 프로테스탄트였던 27명의 귀족들이 참수를 당했던 장소이다. 틴 성당과 마주하고 있는 천문 시계탑 아래 바닥엔 그때 당시 처형되었던 귀족들의 머리가 놓였던 자리가 있어 십자가 표시와 함께 1621년이라는 숫자가 그때의 슬픈 역사를 남기고 있다.
1948년에는 공산당의 수장이었던 고트발트가 8만 명이 모인 프라하 시민들에게 체코슬로바키아 민주공화국의 몰락을 선언했다. 1968년 ‘프라하의 봄’ 당시 소련군의 탱크가 이곳 구시가지 광장 안까지 들어왔으며, 1989년 ‘벨벳 혁명’이 선포된 곳도 바로 이곳 구시가지 광장이다. 광장을 둘러싸고 있는 건물들의 양식을 보면 로마네스크,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로코코, 아르누보 양식 등을 모두 찾아볼 수 있어 유럽의 건축 박물관이라고도 불린다. 구시가지 광장과 잘 어울리도록 관광객을 위한 마차도 항상 대기 중이다. 프라하에서 이벤트와 행사가 가장 많이 열리는 곳으로 겨울에는 체코에서 가장 큰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리고 대형 트리가 제작된다.
구시가지 광장에서 보는 360도로 펼쳐진 파노라마 야경은 유럽에서도 가장 아름답기로 유명하다.
●틴 성당
틴 앞의 성모 마리아 성당(Church of Our Lady Before Týn , Kostel Matky Boží před Týnem)이 정확한 표현이며 아담과 이브라는 이름을 가진 두 개의 첨탑이 인상적인 곳이다. 아담 탑이 조금 더 큰데 그 이유는 뜨겁게 내리쬐는 햇볕을 그림자로 가려 보호해주기 위함이란다.
1365년에 건립되기 시작해 17세기까지 다양한 건축 양식을 거치면서 지금의 모습인 고딕 양식이 되었다. 하지만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고딕 양식의 외관과는 다르게 성당 내부는 바로크 양식으로 되어 있어 분위기가 어두운 편이다. 프라하 성의 성 비트 대성당과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고 있는 이 성당은 15세기~16세기까지 후스파의 본거지로 이용되기도 했다. 높이 80m의 두 개의 첨탑은 아담과 이브의 탑으로 외형상 똑같아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크기가 조금 다르다. 두 첨탑 사이엔 보헤미아 왕의 조각상과 후스파를 상징하는 금으로 만들어진 성배가 있었으나 30년 전쟁 후 가톨릭이 정권을 잡으면서 왕의 조각상을 녹여 성모 마리아의 초상으로, 성배는 후광으로 제작했다. 성당 내부에는 루돌프 2세 아래서 일했던 덴마크의 천문학자 TychoBrahé(티코브라헤)가 잠들어 있다. 현재 관광객들에게는 완전 개방은 하지 않으며 미사 시간 전후로만 개방하고 있다.
●천문시계(Orloj, Astronomical Clock)
구 시청사 건물 중 가장 중요한 건축물인 천문 시계 앞에는 매 시 정각(9:00~21:00)에 시계가 울리는 것을 보기 위해 전 세계인이 모여든다. 시계가 정각을 알리면 오른쪽에 매달린 해골이 줄을 잡아당기면서 반대편 손으로 잡고 있는 모래시계를 뒤집는 것과 동시에, 두 개의 문이 열리면서 각각 6명씩 12사도들이 줄줄이 지나가고 황금 닭이 한 번 울고 나면 끝나는데, 이 과정을 다 합쳐도 채 1분이 안 된다. 천문 시계는 1490년 하누슈(Hanus)라는 이름의 시계공에 의해 제작되었는데 당시 시의회 의원들은 그 시계공이 다른 곳에서 똑같은 시계를 만들 것을 걱정하여 그의 눈을 멀게 했다고 한다. 그 뒤 시계공은 복수를 하기 위해 시계에 손을 집어넣어 시계를 멈추게 했다는 설이 전해지고 있다. 그 이후로 시계는 여러 차례에 걸쳐 수리되었고 지금은 전동 장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시계 볼 땐 가방 조심!
백화점이나 놀이공원에 가면 흔히 볼 수 있는 이 움직이는 시계는 어쩌면 기대했던 것보다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이 시계가 왜 그렇게 유명한지 조금 의아할 수 있겠지만 이 천문시계가 약 500년 전에 만들어졌다는 점을 생각하면 정말 대단한 기술이다. 그렇기 때문에 하루에 13번 울리는 천문 시계를 보기 위해 매 시각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것이다. 그런데 시계가 울릴 때는 모든 이의 시선이 시계탑을 올려다보고 있기 때문에 소매치기들에게 절호의 기회가 된다. 이곳에선 시계를 볼 때도, 사진을 찍을 때도 가방을 꼭 움켜쥐고 내 물건이 남의 물건이 되지 않도록 조심 또 조심해야 한다.
●구시청사(Staroměstská Radnice)
천문 시계탑: 성인 120Kč
구 시청사 : 성인 100kč
콤비(천문 시계탑+구 시청사) : 성인 160kč
(투어로만 진행)
1338년 지어진 구 시청사는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부터 고딕 양식의 천문 시계탑으로 이어지는 구조가 색다른 건물로 밖에서 볼 땐 모두 다른 건물 같아 보이지만 안에서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1층엔 관광 안내소와 화장실이 있고 예전에 입구로 쓰였던 입구 홀 안에는 프라하 건립 전설을 이야기하고 있는 모자이크화가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2층에는 결혼식장으로 사용되는 예배당이 있고, 3층에는 시계탑에 올라갈 수 있는 매표소와 함께 로케트가 발사되는 듯한 모양의 엘리베이터가 있고, 4층엔 그림을 감상할 수 있는 갤러리가 있다.
성 미쿨라셰 성당을 마주하고 있는 분홍색 건물의 한쪽 벽면에는 파괴된 흔적이 남아 있는데 2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에 의해 무너진 것을 다시 복구하지 않고 아픈 역사의 흔적으로 그대로 남겨 둔 것이다. 구시가지 광장 방향으로 탑 아래의 바닥을 보면 모자이크로 된 27개의 십자가와 함께 1621이란 숫자가 적혀 있는데, 그것은 30년 전쟁 중인 1621년 구시가지 광장에서 발트슈테인 장군에게 참수형을 당한 27명의 프로페스탄트 귀족들을 기리기 위함이다. 구 시청사 입장은 투어로 이루어지므로 투어 시간을 사전에 확인한다.
●화약탑(Prašná Brána)
요금: 성인 90kč
화약탑은 1475년 블라디슬라프 2세가 초석을 놓고 카를교탑을 모델로 만들었는데 원래는 구시가지를 지키는 13개의 성문 중 하나였기 때문에 프라하 시내에는 이와 비슷한 건물들이 많다.
화약탑은 아르누보 양식의 시민 회관과 나란히 서 있으며 체코 왕들의 대관식 행렬이 지나가던 ‘왕의 길’인 첼레트나 거리의 시작점이다. 17세기 초 연금술사들의 연구실 겸 화약 창고로 사용되면서 지금의 ‘화약탑’이란 이름을 얻었다. 18세기 중반 프러시아 전쟁 때 심하게 파괴되었지만 1876년 지금의 모습으로 재건되었다.
●카를교(Charles Bridge , Karlův most)
구시가지와 말라스트라나를 이어주는, 체코에서는 처음 만들어진 돌(석조) 다리다. 블타바 강 위에 세워진 다리 중 유일하게 보행자 전용 다리이면서 프라하 성, 천문 시계와 함께 프라하를 대표하는 관광의 중심이다. 전체 길이는 약 520m, 폭은 약 10m이며 30개의 성상들이 좌우 난간에 각각 마주보며 서 있다. 말라스트라나 쪽과 구시가지 쪽으로 양끝으로는 고딕 양식의 교탑이 각각 서 있다. 카를교 위의 성상들은 원본도 있지만 복제품도 마치 원본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져 있으며 복제품의 원본은 국립 박물관과 비셰흐라드 포대에 보관 중이다.
카를교 위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드는데 초상화와 캐리커처를 그리는 화가들, 아기자기한 기념품을 파는 노점상, 발길을 멈추게 하는 거리의 음악가들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준다. 또한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에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전설 때문에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은 늘 소원을 비는 관광객들로 붐빈다.
※카를교에서 소원을 빌어 보자
카를교도 보았고 성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이야기도 들었으니 이제 소원을 빌어 보자.
①소원을 빌 때 가장 처음 해야 할 일은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를 당했던 자리를 찾는 것이다. 카를교의 석상 17번과 19번 사이에 얀 네포무츠키 신부가 가슴에 십자가를 들고 머리 위로 별이 뜬 모습으로 누워 있는 부조물이 보일 것이다. 그 부조물 아래 바로 카를교 난간 위로 다섯 개의 별이 십자가에서 반짝이는 걸 볼 수 있다.
②왼손을 그 다섯 개의 별 위에 올려놓고 오른쪽 다리 무릎 정도 되는 위치에 보면 동그란 버튼 같은 게 보이는데 그 위에 오른쪽 엄지손가락을 가져다 댄 후 오른발 위치의 바닥에 박혀 있는 동그란 버튼 위로 오른발을 올린다. 그런 후 얀 네포무츠키 성인이 순교를 당한 블타바 강을 바라보며 속으로 소원을 빌어 보자.
③소원을 다 빌었으면 그대로 얀 네포무츠키 성상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한다. 소원을 다 빌 때까지 절대 말을 하면 안 되며 별을 만졌던 왼쪽 손은 아무것도 만지면 안 된다. 얀 네포무츠키 성상 앞까지 다 왔다면 성상을 바라보자.
④성인의 동상 아래도 얀 네포무츠키 성인의 이야기를 담은 두 개의 동판이 있다. 사람들의 손이 타서 반짝이는 동판들 중 오른쪽 동판을 보면 카를교에서 순교를 당하는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손가락 만하게 작은 모습)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별을 만졌던 왼손으로 동판을 만지면서 다시 한 번 소원을 빌자.
◐성 얀 네포무츠키(존 네포묵)
(Sv. Jan Nepomucký(St. John Neopmuk)
체코에서 가장 존경받는 가톨릭 성인으로 1380년 성 비트 성당의 제단 성직자를 지낸 뒤 1383~1387년 이탈리아 파도바에서 교회법을 공부하고 프라하로 돌아와 1389년 프라하 대주교 대리를 거친 후 1390년 성 하벨 교회의 본당 목사가 되었다. 3년 뒤인 1393년 3월 20일 바츨라프 4세 왕(카를 4세의 아들)에 의해서 암살당하게 되었다.
그는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혀 있는 십자가를 안고 머리엔 다섯 개의 별이 떠있는 형상으로 다리를 지키는 수호성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얀 네포무츠키 신부의 성상은 카를교 위 30개의 성상들 가운데 가장 오래됐으며 유일하게 청동으로 만들어졌다. 다리의 수호신답게 카를교 위에서뿐만 아니라 유럽의 여러 다리에서도 얀 네포무츠키 성인상을 자주 만나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