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광상곡 (11)
“어머, 선생님. 왜 그러세요?”
권여인의 말을 알 듣지 못한 것일까. 아니면 입이 얼어붙기라도 한 듯 유우종은 묵묵부답이었다. 핏발 선 그의 눈이 노려보고 있는 것은 침대 위에 앉아 있는 고양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사모님이 기르시는 고양이잖아요!”
이때 고양이가 풀썩 침대에서 뛰어 내려 왔다. 고양이는 방울소리를 내며 문 쪽으로 다가왔다. 유우종이 그 놈을 발길로 걷어찼다. 고양이는 첫새벽의 적요 속에서 날카로운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다. 야옹, 야옹, 야옹, 야옹.
유우종이 두 손으로 귀를 막더니 앞으로 꼬꾸라졌다. 권여인이 다급하게 외쳤다.
“선생님, 선생님! 정신 차리세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후 유우종이 간신히 입을 열어 같은 말을 냈다.
“술, 술 좀······”
권여인이 가져온 위스키 병을 받아 들자 컵에 따르지도 않고 병째로 나발을 불기 시작했다. 벌컥벌컥 술을 마신 그는 이윽고 알코올 끼가 퍼지면서 나른해진 것 같았다. 도대체 가는 곳마다 고양이가 출몰하니 이게 어떻게 된 일인가. 한 숨 자고, 자고 나서 생각해 보자. 그는 침대로 걸어가더니 썩은 고목 쓰러지듯이 엎어졌다.
권여인은 의사를 불러야 될지 말아야 할 것인가, 가늠해 보듯이 유우종을 지켜보다가 조용히 문을 열고 방에서 사라져갔다.
술 때문이었을 것이다. 혼란한 와중에서도 유우종은 설핏 잠이 들었다. 꿈이었을까. 이때 안개가 서서히 피어나기 시작했다. 안개는 마치 쇼프로그램을 제작할 때 쓰는 드라이아이스처럼 서서히 피어오르고 있었다. 유우종은 호흡이 가빠지는 것을 느꼈다. 몸을 일으켜야 한다. 몸을 일으켜야 한다고 부르짖었지만 천근같은 몸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몽롱한 의식 속을 헤매다가 솥뚜껑처럼 내려 덮여 있는 눈꺼풀을 치켜 올렸다. 그러자 백색의 드레스를 입고 있는 여인의 하체 부분이 눈에 들어 왔다. 마치 구름을 밟고 서 있는 듯 치렁치렁한 드레스의 밑 부분이 안개에 묻혀 있었다. 그의 시선이 위로 올라가자 머리를 산발하고 있는 여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그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그러자 콧구멍으로부터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어두워서 윤곽만 잡히던 얼굴의 주인공이 조명이 밝아지면서 아내 노은미였던 것으로 들어났다. 산발한 채 코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아내는 살아 있는 것이 아니라 영락없는 귀신이었다. 죽어 귀신이 되어서 찾아온 것이 아니라면 귀신으로 보이게 특수 분장을 했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그는 외마디 비명을 토하며 벌떡 일어났다.
그 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권여인이 문을 열고 모습을 나타냈다.
“선생님, 정신이 좀 드세요?”
온 몸이 땀투성이였다.
“악몽을 꾸셨나봐요. 무슨 일이 있으세요?”
“아무 일도 없어요.”
“정형사라는 분한테서 전화가 와 있어요. 벌써 세 번째에요”
“지금 전화 받을 기분이 아닙니다.”
“알았어요. 그럼, 아직도 주무신다고 할게요.”
“그렇게 좀 해 주시오.”
“정오가 지났는데, 식사를 하셔야죠?”
“생각 없소.”
“국을 끓였으니까 조금이라도 좀 드세요?”
“알겠습니다.”
권여인이 먼저 방 밖으로 나가고 유우종이 곧 뒤 따랐다. 권여인이 수화기에다 대고 언성을 높이고 있었다.
“이것 보세요. 고의적으로 전화를 기피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선생님께서는 밤새워 글을 쓰시다가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셨기 때문에 아직도 주무신 다구요. 사모님은 집에 계시지 않아요. 그래서 바꿔 드릴 수가 없으니까 그런 줄 아세요.”
권여인이 수화기를 내려놓으며 중얼 거렸다.
“이상한 형사에요. 사모님 집에 들어 왔느냐 않았느냐 하는 것을 도대체 왜 물어 보는 건지 모르겠어요. 대한민국 경찰이 그렇게 할 일이 없나!”
“별일 아니니까 신경 쓰지 마세요.”
국에 밥을 말아 몇 숟갈 뜨는 둥 마는 둥 시늉을 낸 다음 물 잔을 드는 유우종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권여인이 말했다.
“선생님 병원에 한번 가보셔야 겠어요. 몸이 많이 야위셨거든요.”
“특별한 병이 있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염려 마십시오. 푹 쉬면 괜찮아 질 겁니다.”
“아니에요. 악몽까지 꾸시는 걸 보니까 예삿일이 아닌 것 같아요.”
그럼 그게 꿈이었던가?
꿈이라고 밖에 여길 수 없었다. 생시에서의 일이라면 아내가 그런 모습으로 나타날 리가 없었다. 그러나 꿈이라고 하기에는 코에서 피가 흐르던 모습이 너무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었다는 것은 아내가 죽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닐까. 분명 아내를 익사시키기 위해 준비해 놓았던 욕조의 저수지물 속으로 집어넣었던 것은 아니었다. 초인종소리를 듣고 황급히 욕실 바닥으로 내려놓았었는데, 혹 그때 바닥에 머리가 세차게 부딪치면서 뇌진탕이라도 된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코에서 피를 흘리며 죽었을는지도 모른다. 그때 아내가 죽었다면 시체가 발견되어야 할 텐데, 시신은 온데간데없고 그 대신 고양이가 한 마리 출현했다. 아내가 죽어서 고양이로 현신했다는 말인가?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아무래도 납득이 되지 않는 미스터리였다.
오후에 방송국으로부터 노은미가 집에 돌아왔느냐고 묻는 전화가 한 번 더 걸려 온 것을 제외하면 다른 전화도 없었고, 비교적 평온한 가운데 날이 저물었다. 그리고 다시 어둠이 찾아 왔다. 이를테면 오후 동안의 평온은 폭풍 전야의 고용함 같은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최초의 태풍은 정형사가 오후 7시에 몰고 나타났다.
“전화를 받지 않으시기 때문에 할 수 없이 직접 찾아뵈었습니다.”
유우종이 언성을 높이지 않도록 애쓰며 말했다.
“도대체 형사면 형사지 왜 남의 가정사에 이렇쿵 저렇쿵 개입하는 겁니까?”
“소가 뒷걸음치다가 쥐 잡는다는 속담 아시죠?”
“지금 내 앞에서 속담 풀이를 하자는 겁니까?”
“소설가 선생님 앞에서 문자 쓰는 것은 아니고, 다만 제가 우연찮게도 어떤 사건을 해결할 기회를 잡았다는 느낌이 들어서······”
“무슨 뜻이오?”
“노은미 씨가 아직도 댁으로 돌아오시지 않고 있다는 것은 단순한 가출이 아니라 여기에 어떤 범죄가 개입한 것이 아니냐는 냄새가 납니다.”
“당신이 진돗개라도 된단 말이오?”
“너무 고깝게 듣지는 마십시오. 선생님이 밀수 혐의에 연루되어 수사를 하던 중 밀수 혐의는 진범이 잡히면서 풀렸는데, 그 수사 때문에 우연히 사모님께서 실종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입니다.” “내 아내는 실종된 것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 여러 정황상 제가 보기에는 실종됐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지금 제 기분은 마치 신문기자가 특종을 앞에 논 것처럼 흥분이 됩니다. 우리나라의 정상급 탤런트가 실종이 됐는데, 그것을 제가 제일 처음 알고 수사에 착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니 흥분이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사모님께서 불행한 일을 당했을 지도 모르는데 이런 말씀을 드리다니 죄송합니다.”
“내 아내는 곧 돌아옵니다.”
“끝내 돌아오시지 않으면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럴 리가 없다니까요!”
그러나 그렇게 말을 하는 유우종으로서도 아내가 증발해 버린 이 마당에서는 돌아온다는 확신을 가질 수가 없었다.
“만약 돌아오시면 다행이지만 그렇게 되지 않는다면 전 일단 선생님을 의심하고 수사에 착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 내가 의심을 받아야 한단 말이오?”
“선생님은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어요. 오랫동안 수사관 생활을 한 사람의 직감입니다. 선생님은 왜 진실을 밝히려 하지 않는 거죠?”
정운묵의 말이 날카로운 비수가 되어 유우종의 가슴을 도리고 있었다. 그 비수보다 더 날카로운 말로 반격을 가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막상 떠오르는 말이 없었다.
이때 전화벨이 울렸다. 그 전화벨이 유우종을 구원한 셈이었다. 우선은 반론을 제기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었다. 유우종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그러자 사내의 굵직한 바리톤 음성이 흘러 나왔다.
“유우종 선생이오?”
“그렇소.”
“당신은 살인을 했어요. 당신이 아내 노은미 씨를 살해했다는 것을 부인하시오?”
자연 유우종의 음성이 한 옥타브 올라간다.
“당신 누군데 이 따위 협박이오?”
“당신이 살인을 은폐하려고 하면 할수록 당신은 구제받지 못할 것이오. 자수를 하는 길만이 당신이 살 수 있는 길이라는 충고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나는 그런 말을 듣고 있을 만큼 한가한 사람이 아니오!”
유우종은 수화기를 집어 동댕이치듯 거칠게 내려놓았다. 그런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고 있던 정운묵이 말했다.
“선생님한테 누가 협박 전화를 한 것입니까?”
“당신이 관계할 일이 아니니까 이젠 돌아가시오.”
“가라니 가기야 하겠지만 이 말만은 분명히 드리고 가겠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분명 노은미 씨의 실종과 관련해서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선생님께서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 놓으십시오!”
“난 아무 할 말이 없소이다.”
정운묵이 일어났다. 그 순간 다시 전화벨이 울렸다. 밖으로 나가려던 정운묵이 멈추어 서며 말했다.
“혹시 사모님인지도 모르니까 전화 받아 보십시오.”
묵묵히 유우종이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여보세요?”
그러자 바리톤 음성을 지닌 좀 전의 사내가 다시 말했다.
“유우종 씨 당신은 살인을 했습니다. 아내 노은미 씨를 별장으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것을 저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니까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유우종은 이번에도 수화기를 집어던지듯 내려놓았다. 방금 전 들었던 사내의 말이 메아리가 되어 그의 귀청을 뒤 흔들고 있었다.
(유우종 씨 당신은 살인을 했습니다. 아내 노은미 씨를 별장으로 유인하여 살해하는 것을 저의 두 눈으로 똑똑히 목격했으니까 숨기려고 하지 마십시오!)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유우종은 두 귀의 구멍을 손으로 가리며 주저앉았다. 문득 정운묵을 바라보니 이번에는 그의 말이 이명(耳鳴)이 되어 다그치고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분명 노은미 씨의 실종과 관련해서 무엇인가 숨기는 것이 있습니다. 진실을 밝히지 않으면 선생님께서는 큰 곤경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을 숨김없이 털어 놓으십시오!)
이때 고양이가 방울소리를 딸랑이며 주방 쪽에서 걸어 나왔다. 야옹. 야옹
유우종은 망막에 뿌연 안개가 끼며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환각에 사로 잡혔다. 야옹. 야옹.
고양이가 유우종을 향해 계속 걸어오고 있었다. 유우종이 일어섰다. 그리고 뒷걸음치기 시작했다. 고양이와 노은미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고양이가 노은미였고, 노은미가 곧 고양이였다. 뒤로 물러나던 유우종이 벽에 부딪쳤다. 유우종은 웅크리며 쪼그리고 앉았다. 그의 두 눈에 공포가 어렸다. 그 공포가 어떤 번뜩임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것은 광인 특유의 광기 같은 것이었다. 유우종은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손으로 귀를 막으며 떨고 있었다.
유우종을 지켜보는 정운묵의 눈으로부터 어느 순간 차가운 광채가 폭사되기 시작했다. 이때 전화벨이 다시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유우종은 두 다리 사이에 얼굴을 묻고 귀를 막은 자세에서 헤어나지 않고 있었다.
그는 전화 벨소리를 듣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다. 끈질기게 울고 있는 전화기를 바라보던 정운묵이 망설이다가 수화기를 집어 들었다. 송화기를 타고 들려온 목소리는 바리톤이 아니라 소프라노였다.
“여보세요, 거기가 소설가 유우종 선생님댁 아닌가요?”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