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과 미국 유학을 거쳐 일찍이 구미 각국을 순방하여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로 일제하에 동아일보 기자와 만주국의 재무부 참사관을 지내고, 광복 후에는 미군정의 외자청의 구매처장을 거쳐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유엔총회에서 대한민국 정부를 승인하는 결의안 통과를 위해 1948년 9월부터 12월까지
프랑스 파리에서 활동한 한국 대표단.
앞줄 왼쪽부터 시계 반대 방향으로 모윤숙, 조병옥, 장면, 김활란, 성명 미상, 장기영, 김우평, 정일형.
호는 종산(種山)으로 김한승의 아들로 일본 유학을 거쳐 미국콜롬비아대학 경제학부를 졸업한 인물로 일찍이 구미 각국을 순방하여 견문을 넓힘으로써 해박한 지식의 소유자이기도 했다. 그는 일제하에 동아일보 기자와 만주국의 재무부 참사관을 지내기도 하였다. 광복 후에는 미군정에 참여하여 외자청의 초대 구매처장을 거쳐 여천군에서 민주당으로 입후보하여 제5대 민의원에 당선되기도 했다. 4·19학생의거로 자유당 정권이 붕괴되고 민주당 정권이 수립되자 부흥부장관을 역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