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짜 : 2013년 7월 13일 (토)
- 위치 : 전라남도 장흥군
- 산행 코스
11:24 기잿재 도착, 산행 시작
12:24 부곡산
12:55 397봉
13:32 공성산
14:10 308봉
15:09 고추밭, 포도과수원
15:25 아주머니 쉼터(여기서 등목을 하다)
15:45 신리 도착
- 산행 거리 7.1㎞, 산행 시간 4시간 21분(산행 속도 1.8㎞/h)
• 사당역에서 출발. 며칠째 그리고 밤새 내린 비는 여전히 쏟아지고 있다. 옆 차선에서 가는 차들을 보니 모두 타이어가 빗물을 몰아내면서 모터보트처럼 달리고 있다. 여기는 이렇게 비가 억수같이 퍼붓는데 남쪽으로 가면 정말 일기예보처럼 비가 거짓말같이 멈추고 하늘이 갤까, 살짝 의심스런 마음이 들었다.
한데 버스가 서울을 벗어나자마자 빗줄기가 가늘어지더니 신갈을 지날 무렵부터는 소강상태에 접어들었고, 평택 부근에서는 완전히 그쳤다. 천안은 흐리기만 할 뿐 비는 오지 않았는지 길 상태가 뽀송뽀송하고, 전북 김제는 지날 때는 구름이 슬슬 벗겨지며 햇빛까지 비추기 시작했다.
전남 함평에서는 파란 하늘을 보았고, 강진으로 더 내려오니 여기는 화창한 여름날이다. 하늘은 파랗고 한쪽에서만 뭉게구름이 뭉게뭉게 일어날 뿐 장마와 폭우는 남의 나라 얘기였다. 손바닥만 한 나라가 이래도 되나 싶다.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열흘씩이나……. 어쨌든 오늘 산행이 비 때문에 지장을 받을 일은 없겠다 싶어 마음이 놓였다.
기잿재 도착
저속전기차처럼 저속으로 출발
• 비가 오지 않고 날씨가 맑다는 것은 참 다행이었다. 비가 우리를 피해 가는구나. 기맥 산행을 한 이후 단 한 번도 비를 만나지 않았다. 운이 좋다.
그런 생각을 하며 산행을 시작한 지 5분이 채 지나지 않아 이마에서 땀이 ‘주르르’ 흘려 내렸다.
‘어머나!’
이런 적은 처음이다. 땀을 많이 흘리지 않는 나였다. 산행을 해도 남들보다 나중에 땀이 나왔고, 몽글몽글 솟아난 땀이 한두 방울씩 떨어질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은 땀방울이 떨어지는 게 아니라 땀이 몇 줄기로 나뉘어 시냇물처럼 얼굴을 타고 흘러내렸다.
날은 맑았지만 남부지방은 며칠째 폭염이 땅을 달구고 있었고, 여기에 북쪽에서 비가 퍼부으니 습도까지 높아 댐의 수문이 열리듯 온몸의 땀방울이 순식간에 활짝 열리며 땀을 방류하기 시작했다. 땀의 양은 기온 곱하기 습도에 비례했다. 습도도 땀의 양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였다. 추위가 기온만이 아니라 바람의 세기에도 비례하듯 말이다.
우중 산행은 운 좋게 피해 갈 수 있었지만, 산행 시작 30분 만에 온몸과 몸을 둘러싼 옷은 우중 산행 이상으로 척척하게 젖어들었다.
돌무더기만 보면 이게 뭐의 흔적일까 생각해 본다.
철조망 옆으로...
지나온 길을 잠시 되돌아보다.
첫 번째 봉우리 부곡산(424.6m)
부곡산 지나 작은 봉우리
그리 오랜 산행 시간이 아님에도 몸은 서서히 지쳐 갔다.
두 번째 봉우리 397봉
머리를 구름에 감추고 있는 천관산
• 2구간부터 우리를 괴롭힌 가시 달린 풀들은 오늘도 여전히 위력을 발휘했다. 다만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젠 가시 달린 풀에 대한 나의 태도가 무덤덤해졌다는 것. 그리고 2~3구간 산행을 하면서 입은 지 얼마 되지 않은 등산복 바지가 수많은 가시에 긁혀 보푸라기가 일면서 너덜너덜, 폐기처분 상태까지 갔고, 오늘은 막 입는 싸구려 바지를 입고 왔기에 바지에 가시가 긁히건 말건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래도 가시는 여전히 아팠고, 산행이 거의 끝날 무렵 포도과수원에서 길을 찾느라 헤매다가 가시 달린 풀 종합 3종 세트와 맞닥뜨리며 팔다리는 온통 긁힌 자국투성이로 변했다.
한 분이 사자지맥을 한마디로 평해 주셨다.
“아~ 사자가 무섭긴 무섭다. 이름값 한다.”
가시는 다름 아닌 사자의 발톱이었다.
<가시 달린 풀과 나무 종류>
세 번째 봉우리 공성산(365m).
여기에도 돌로 쌓은 자취가 남아 있다. 혹시 봉수대가 아닌지...
이게 네 번째 봉우리.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힌다.
앞으로 나란히 대형... 길을 개척하느라 선두 진행이 더디기만 하다.
혼미해지려는 정신을 가다듬으며 있는 힘을 다해 산을 오른다.
하지만 길은 험하기만 하다.
• 산이 얘기했다.
“한마디로, 길은 없다. 가려면 만들어서 가라.”
그러면서 덧붙였다.
“가시도 좀 걷어야 할 것이다.”
뒷말이 더 끔찍하게 들렸다.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만들면서 가다 보니 선두의 진행 속도가 느리고, 선두 진행이 더디니 후미가 따라붙어 전체가 한 덩어리가 되곤 했다. 길이 없는 곳에서는 선두에 선 ‘준족’의 고생이 훨씬 더 심했다.
오늘의 마지막 봉우리가 된 308봉
가시밭길이란 게 이런 것인가?
드디어 시야에 나타난 신리와 오성산
고추밭 너머 신리 마을과 멀리 보이는 옹암산(사자지맥 마지막 산)
고추가 여물어 가고...
키가 늘씬한 허수아비
포도도 익어 가고...
도라지꽃
평온한 신리 마을
동네 아주머니들의 아지트. 농사가 한가해지면 모여서 맛있는 것도 만들어 먹고, 이야기도 나누고, 이렇게 고스톱도 즐긴다.
77번 국도와 만나다.
사자지맥 끝 옹암마을의 200년 된 팽나무. 어부의 무사귀환을 빌던 당산나무다.
아름드리 나무를 작은 줄기가 휘감고, 그 줄기를 더 작은 나무가 휘돌며 기괴한 모양을 만들어냈다.
옹암마을에서 맛있는 식사를 하다.
오늘은 초복, 오늘 메뉴는 삼계탕
첫댓글 정신이 혼미해진다는 말씀에 동감이됩니다.
사진과 함께 훌륭한 산행기 잘 읽고 갑니다..
찌는듯한 무더위에 수고 많으셨습니다.
자세한 산행기와 멋진사진~, 감사합니다.^^
산돌님의 산행기가 점점 훌륭해지십니다 200년된 나무가 팽나무였군요 무조건 느티낭구인줄알고 ㅎㅎㅎ
그동안 정신줄 놓고 있다가 산돌님의 산행기를 보니 정신이 돌아오기 시작합니다. 자~~ 지금부터 새로 시작함다.
재미있게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