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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기념 제90회 본부간부회, 제37회 학생부총회 ②
(1995.6.28, 창가국제우호회관)
고생이 바로 보배!
‘지지 않는 자신’을 만들어라
공명(孔明)의 자기교육
제갈공명(諸葛孔明, 181~234년)은 ‘삼국지(三國志)’의 정수(精粹)입니다.
공명(孔明)이라고 하면 ‘성락추풍오장원(星落秋風五丈原)’.
이 노래는 도다 선생님의 마음에 통한다고 내가 생각하여 선생님 앞에서 노래한 곡입니다.(1953년 1월). 노래를 들으신 선생님은 눈물을 머금고 계셨습니다.
그 추억을 담아 청년부 여러분에게 제갈공명의 성장과정을 들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제갈공명의 대활약은 유명하지만 그의 청년시절, ‘자기교육’ 시절은 그다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공명은 어떻게 자신을 만들었는가. 훗날 크게 활약한 ‘원인’은 어디에 있었는가. 공명의 성장과정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기 때문에 그 점을 감안하여 말하겠습니다.
공명은 열 살 때쯤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소년에게는 이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는 듯한 커다란 충격이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빛이 사라지는 듯한 -.
아버지는 후처(後妻)를 맞이합니다. 아버지는 어느 군(郡)의 부지사(副知事)(승<丞>)였습니다. 그런 아버지도 공명이 열두 살 때쯤 돌아가십니다.
공명은 이렇게 어려서 어머니와 아버지를 여의었습니다.
특별한 재산도 없습니다. 남은 사람은 계모와 공명의 형, 누나, 남동생이었습니다.
가족은 어떻게 살아야 할 지 망연자실했습니다. 상의한 끝에 숙부인 제갈현(諸葛玄)에게 의지하기로 했습니다.
가족은 고향인 쉬저우(서주<徐州>)를 버리고 숙부가 사는 징저우(형주<荊州>)로 갔습니다.
남으로 남으로, 중국은 넓습니다. 이동하던 중, 소년은 수많은 유민(流民)을 만났습니다.
세상은 난세(亂世)입니다. 후한(後漢)말기로 왕조는 쇠퇴하고 군웅(群雄)이 패권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전란으로 사람들이 죽고 마을이 불타고 파괴되었습니다. 유랑하는 난민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았습니다.
소년은 민중의 참상(慘狀)을 직접 보았습니다.
“어떻게 된 일 인가. 인간은 행복하기 위해 태어나지 않았는가? 그런데 어째서 인간은 이렇게도 불행한가?”
“나라는 왜 이렇게 혼란한가?”
소년은 틀림없이 고뇌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어지러운 세상을 구할 ‘무엇인가’를 원했습니다.
간신히 숙부 집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도 정착할 수 없었습니다.
숙부가 더 남쪽인 양저우(양주<揚州>)의 지사(태수)로 임명되었기 때문입니다.
또 자리를 옮겼습니다. 공명은 형과 헤어져 숙부와 함께 더 남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살아있는 학문, 지혜의 학문
이렇게 공명은 넓은 중국 각지를 옮겨 다니며 생명의 위험을 이겨내고 비바람과 싸우고 굶주림을 견디며 그 속에서 공부했습니다.
부유한 집의 깨끗한 책상에서 느긋하게 공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랬다면 절대로 ‘상승(常勝) 장군 공명’이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공명의 학문은 ‘살아 있는 학문’이었습니다. 나도 그랬습니다.
괴로워하는 민중과 사귀고 대화하며 서민의 마음 상태도 배웠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지키는 지혜도 몸에 익혔습니다. 정신을 수양했습니다. 몸을 단련했습니다.
옮겨 다닌 각지의 풍토와 지리 그리고 인정과 풍속을 조사하고 예리하게 관찰해 자기 것으로 습득했습니다.
또 각지의 상황을 보고 지도자의 선악(善惡)을 간파했습니다. ‘나 이외에 전부가 내 스승’이라는 작가 요시카와 에이지 씨가 말한 그대로였습니다.
그 속에서 그는 ‘책’을 공부했습니다. 책의 가르침을 체험을 통해 하나하나 몸에 익혔습니다. ‘지식’을 ‘지혜’로 바꿨습니다. 이 점이 위대합니다.
게다가 그의 ‘배움’은 목적이 분명했습니다. 이 혼란한 세상을 어떻게 구할까. 미래를 어떻게 하면 가장 좋은가 - 여기에 초점이 있었습니다. 목적이 명확했기 때문에 배운 것은 무엇 하나 헛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하여 모든 고생은 공명이 성장하는 ‘거름’이 되었습니다.
상승장군 공명의 맹세
‘싸움은 절대로 지면 안 된다’
공명은 숙부와 함께 숙부의 임지(任地)인 양저우(양주)에 도착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사건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른 실력자(實力者)에게 임명 받은 또 다른 ‘지사’가 찾아왔습니다.
“내가 바로 진짜 지사다” “아니, 바로 나다.” 그 무렵 국가의 명령 계통이 문란해 이런 혼란이 적지 않았습니다.
‘두 지사’가 다투었습니다.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실력으로 결말을 맺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숙부가 패배해 추방되고 말았습니다. 공명은 패전의 비참함을 뼈에 사무치도록 깨달았습니다.
그는 패배한 병사들과 함께 겨우 목숨을 건져 도망쳤습니다. 숙부도 도망치던 중에 살해되었다는 설도 있습니다.
“좋다!” 공명은 맹세했습니다.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에게 말했습니다.
“두 번 다시 지면 안 된다. 반드시 이겨야 한다. 패배하면 이 보다 더한 불행은 없다.”
‘인생은 승부(勝負)’입니다. ‘불법도 승부’입니다. 석존도, 니치렌 대성인(日蓮大聖人)도 “단연코 승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석존은 마군(魔軍)에게 승리했기 때문에 승자(勝者)라고 불렸다. 니치렌 대성인은 “불법이라 함은 승부를 우선으로 하고”(어서 1165쪽)라고 말씀하셨다.>
공명은 다시 유랑하는 몸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열일곱 살이었다고 합니다.
징저우(형주)로 돌아가 이후 10년 동안 자신을 끝없이 단련하며 ‘칼’을 갈고 또 갈았습니다. ‘불패(不敗)’와 ‘상승(常勝)’의 지혜 그리고 힘을 키웠습니다.
일어설 ‘그때’를 향해 고생하고 공부하고 모든 것을 흡수했습니다.
‘그때’가 왔습니다. 스물일곱 살에, 주군이 되는 유비 현덕을 만납니다. 여기에서부터 ‘삼국지’의 대활약이 시작됩니다.
정확히 청년부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입니다. 늙고 나서는 너무 늦습니다. 젊었을 때부터 마음껏 활약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인생에 후회를 남깁니다.
난세(亂世)의 등대이어라
‘공명’이라는 이름은 ‘굉장히(孔) 밝다(明)’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처럼 청년시절의 깊은 어둠을 부수고, 세상의 깊은 어둠을 부수어 사람들을 비추는 등대처럼 되자고 정했습니다. 끝까지 단련하여 지자(智者)는 밝게 우뚝 솟았습니다.
여러분도 한사람의 ‘공명(孔明)’이기 바랍니다. 어디에 가도 지혜로 승리를 비추고, 인격으로 사람들을 비추는 지도자이기 바랍니다.
금방 화를 낸다거나, 불평하는 약한 마음이어서는 안 됩니다. 강하고 강하게 태양과 같은 밝음으로 광포를 지휘하기 바랍니다.
결론으로 말하자면 불세출(不世出)의 천재 공명의 스승은 누구였는가. - 그것은 ‘노고(고생)’이라는 두 글자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만들어진 환경에 안주하지 말라
‘노고’ 즉 ‘기쁨’입니다.
루소의 교육의 서(書) ‘에밀’. 이 책에 대해서도 도다 선생님과 자주 대화했습니다. 전차 속에서도 대화하곤 했습니다.
‘에밀’에서 루소는 썼습니다.
“아이들을 불행하게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무엇인가. 그것을 당신은 알고 있는가. 그것은 언제든지 무엇이라도 손에 넣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제2편에서)
무엇이라도 자유롭게 손에 넣으면 이간은 타락해 버린다. 결국 약하고 불행한 인생의 패배자가 된다.
풍요로운 환경 속에서도 불행해지는 경우가 많은 것은 이 때문입니다.
‘노고가 없다.’는 것은 ‘승리의 원인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년은 만들어진 환경 위에 안주해서는 안 됩니다. 만들어진 조직위에서 뽐낸다거나 허세를 부려도 소용없습니다. 그런 역직이나 입장뿐이라면 허상입니다. 반딧불과 같습니다. 참된 인간의 빛이 아닙니다. 혼(魂)의 빛이 아닙니다.
청년은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고생’으로, ‘자신의 행동’으로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야 합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역사를 만들었습니다. 오직 홀로 대난(大難)을 받으면서 전 세계에 광선유포의 위대한 역사를 남겼습니다.
이제는 여러분입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의 자리에서 길을 열어야 합니다. 마음을 정하고 끝까지 고생해 위대한 사람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묘법(妙法)을 수지 했습니다. 고생이 전부 살려지지 않을 리 없습니다.
이상적인 직업이란
청년으로서 직업에 대한 고뇌는 큽니다. 나에게는 어떠한 직업이 맞을까. 지금의 직업으로 좋을까 - 이렇게 고뇌하는 사람도 틀림없이 많을 것입니다.
나도 청년시절에 고뇌했습니다.
처음에 나는 도다 선생님의 출판사에서 소년잡지의 편집을 했습니다. 동경하던 직업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영이 악화되어 잡지는 폐간.
나의 일은 가장 싫어하는 금융에 관한 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게다가 월급마저 받을 수 없는 시기가 계속되었습니다. 겨울이 되어도 외투도 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불평 한마디 하지 않았습니다. 소원은 단지 도다 선생님의 고경을 타개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 오로지 일했습니다.
나는 도다 선생님을 나의 스승으로 정하고 있었습니다. 한번 그렇게 정했기 때문에 관철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제는 ‘제자(弟子)가 어떻게 싸우는가’로 결정됩니다.
도다 선생님도 마키구지 선생님을 스승으로 정했기 때문에 함께 감옥에 들어가 괴로움을 다 맛보셨습니다.
그러나 도다 선생님은 “당신(마키구치 선생님)의 광대무변한 자비는 나를 감옥까지 데리고 가 주셨습니다”라고 감사를 바치신 것입니다.
얼마나 숭고한 제자의 모습인가. 이것이 ‘진짜’의 사제입니다. 사제(師弟)는 제자로 결정됩니다.
사제(師弟)란 제자의 투쟁의 역사
도다 선생님은 직업에 대해 고뇌하는 청년에게 이렇게 지도하셨습니다.
“직업을 선택하는 기준. 이것은 세 가지가 있다. 즉 미(美)․ 이(利)․ 선(善)의 가치이다. 자신이 좋아하고(美), 득이 되고(利),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善) 일을 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이상적이다. 그러나 실사회는 여러분이 생각하는 만큼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처음부터 희망대로 이상적인 직업을 갖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생각지도 않았던 일을 해야만 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 “생활이 되고 상회에 도움이 되지만 아무래도 적성이 맞지 않는다. 좋아지지 않는다” (이<利>가 있고 선<善>이지만, 미<美> 아니다.)
“좋아하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직업이라도 생활이 되지 않는다” (미<美>와 선<善>이 있어도, 이<利>가 없다)
“돈을 벌 수 있고 좋아하는 일이라도 사회에 폐를 끼친다” (이<利>이고 미<美>이지만, 악이다)
이렇게 현실적으로 미(美) 이(利) 선(善)의 세 가지 가치는 좀처럼 갖추어지지 않습니다. 특히 지금은 불경기이기도 하여, 취업난은 심해지고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은가. 도다 선생님은 가르치셨습니다.
“이러한 때, 청년은 결코 주저앉아 버려서는 안 된다. 자신의 지금의 직장에서 전력을 기울여 분발하는 것이다. ‘없어서는 안 될 사람’이 되는 것이다.
싫은 일에서 도망치지 말고, 어본존께 기원하면서 노력해 가는 속에 반드시 최후에는 자신이 ‘좋아하고 득이 되고, 게다가 사회에 커다란 선을 가져다주는’ 일을 하게 된다. 이것이 신심의 공덕이다.
그것만이 아니다. 그때에 되돌아보면 지금까지 해 왔던 노고가 하나도 헛되지 않고 귀중한 재산으로서 살아나는 것이다. 전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나 자신의 체험에서도 이렇게 단언할 수 있다. 신심즉생활, 신심즉사회이고 이것이 불법의 힘이다.” 라고.
도다 선생님은 불세출(不世出)의 천재적인 지도자이셨습니다. 선생님의 말씀이 올바르다는 것은 나의 경험으로도 정말 잘 실감할 수 있습니다.
직장은 인간수행의 도량(道場)
자신이 지금 있는 장소에서 승리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불법에서도 ‘본유상주(本有常住= 본래 갖추어져 있어 삼세에 걸쳐 존재하는 것)’ ‘사바즉적광(娑婆卽寂光= 현실의 사바세계가 본래 부처가 사는 훌륭한 세계라는 것)’이라고 설합니다.
그 장소에서 빛나는 것입니다. 당면한 일을 피하지 않고 전력으로 끝까지 분발해 가면 반드시 가장 좋은 방향으로 길이 열려 갑니다.
이윽고 “지금까지의 노고에는 전부 의미가 있었다. 전부 나의 재산이 되었다.” - 이렇게 알게 됩니다. 그 때야말로 제군의 승리자입니다.
우치무라 간조는 말했습니다.
“인생의 성공이란 실은 다른 것이 아니다. 자신의 천직(天職)을 알고 이를 실행하는 것이다.” 라고.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에 천직(天職)은 발견되지 않고 또 실행되지 않은 채, 사람은 자신이 원하지도 않으며 자신에게 적합하지도 않은 일을 하면서 그 일생을 마치는 것이다.”라고. <1924년의 수필 ‘지위의 만족’에서>
인생의 진실을 꿰뚫는 말입니다. 현실은 확실히 엄합니다.
이에 비해 묘법을 수지한 청년은 행복합니다. 반드시 ‘이것으로 좋다’라는 인생으로 해 갈 수 있습니다.
“나는 ‘행복한 청년’이다. 노고 그 자체가 행복이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경애가 되기 바랍니다. 그 편이 현명합니다.
그 사람의 생명의 진실은 모습에 나타납니다. ‘제법실상(諸法實相)’입니다.
자기의 처지를 한탄하여 언제나 아래만 보고 우울해 있다면 자신이 비참하고, 주위도 평가해 줄 리가 없습니다.
언제나 쾌활하고 생기발랄하게 행동한 편이 이득입니다. 그 편이 길을 열 수 있습니다. 일념으로 모든 것은 결정됩니다.
전원이 성공자로
한 사람 한사람이 각자의 길에서 ‘성공자’가 되기 바랍니다. ‘성공자’란 ‘도중에 포기하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정한 길을 끝까지 관철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직장’을 ‘자신을 성장시키는 인간수행의 장(場)’이라고 자각하는 것입니다. ‘인간수행의 장’이란 ‘불도수행의 장’이고 ‘신심수행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받아들이면 모든 불평은 사라집니다.
언제나 쓸데없이 불평하고 있는 인간만큼 불쌍한 것은 없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자주 말씀하셨습니다.
“거짓말을 하거나, 다른 사람을 속이는 교활한 여우같은 청년으로는 되지 말아라!”라고.
올해도 7.3을 힘차게 맞이할 수 있게 되어 기쁩니다.
부디 모두가 ‘대승리 빛나는 7월’이기 바랍니다.
몸을 소중히 하며 건강하게 장수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창가학회답게 사이좋고 기세 좋게 명랑한 전진을 해 갑시다!
오늘은 정말로 감사합니다. 전국의 여러분, 수고하셨습니다. (대 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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