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봉의 털보 산장지기

오대산 월정사에서 동해 쪽으로 가기 위해서는
해발 900m의 진고개를 넘어 연곡으로 나가게 되고,
진고개 휴게소에서 우측 동쪽으로 뻗은 능선을 따라
두 시간 쯤 오르면 노인봉(1,338m)에 이르게 된다.
노인봉(老人峰)은 오대산과 황병산, 선자령, 대관령을 이어주는
백두대간의 주봉으로, 청학동 소금강 골짜기가 시작되는 지점이다.
정상 바로 턱밑엔 노인봉 산장(山莊)이 자리하여
오가는 산길 나그네들의 요긴한 쉼터 역할을 하고 있다.
산장은 관리인이 생활하는 낡은 통나무 오두막집과
산을 찾는 이들이 묵어가는 콘크리트 건물 두 채로 되어 있다.
16년 째 노인봉을 지키고 있는 산장지기 성량수(成量洙) 씨.
그는 산이 좋아 직장까지 버리고 산으로 들어온 산사나이다.
한 뼘도 넘을 것 같은 텁수룩한 수염과
등산모 밖으로 흘러내린 봉두난발이 세월을 겪으면서
이제는 백발의 모습을 한 산신령 그대로의 형상이다.
설악산 권금성 털보와 지리산 노고단 털보, 노인봉 성량수 씨
이 셋을 가리켜 산악계에서는 3대 털보로 부른다.
일간스포츠 신문에서 '기인열전(奇人列傳)'을 연재할 때,
제일 먼저 기사화된 인물이 바로 그였다.
그의 행적을 살펴보면 그를 기인으로 단정하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다고 느끼게 된다.
그는 괴산에서 태어나 청주교대를 졸업하고 7년 여를 교직에 몸담으면서도
한라산이 너무 좋아 지원자가 적은 제주도 발령을 스스로 원했고,
백두대간 품으로 찾아들기 위해 울진 산골로 들어가 근무하기도 했다.
산에 대한 미련은 그의 타고난 팔자라고나 해야 할까,
가장으로 나이 차가 아버지 뻘인 맏형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세속의 명리를 떨쳐 버린 채, 설악의 수렴동으로 들어가면서
그의 본격적인 산 속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그 때 마침 홀어머니께서 돌아가셔서 내게로 연락이 왔지만
설악산 인편을 수소문하느라 장례를 치루고도
오랜 날이 지난 후에 산소에나 찾아갈 수 있었다.
그와는 고향 친구에다 산을 아끼는 서로의 정서가
연결의 끈으로 작용해 평생 오나가나 연락을 하며 살아간다.
그래 나도 가끔은 그를 찾아가기도 한다.
어느 해 겨울, 2m가 넘도록 눈이 덮혀 눈으로 키 높이의 담을 쌓고
출입구는 눈을 뭉쳐 아치 모양으로 단장했던 산장의 정경이
아직도 기억의 저편에 인상깊게 남아있다.
또 언젠가는 외인은 절대 들이지 않는다는 그의 방에서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자며 밤새 지붕의 널빤지를 뒤흔드는
바람 소리에 떨며 꼬박 새우다시피 했던 일도 있다.
그의 결혼담은 각종 매스컴에 보도된 대로 매우 이채롭다.
소금강의 절경을 화폭에 담기 위해 겨울산을 찾았던
미대 대학원생이 눈 속에 조난 당한 것을 구출해 준 인연으로
400여 명 하객들의 축하를 받으며 노인봉에서 산상 결혼식을 올렸다.
나이 40에 늦복이 굴러왔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던 적이 있다.
산이 맺어준 인연을 기념하여 두 딸의 이름도 산희(山姬)와 산아(山娥).
산악계에서 그의 등정 기록은 기행에 가까울 정도로 알려져 있다.
태백산맥 동계 단독 초등(76일)에 한반도 단독 도보 해안 일주(107일),
소백산맥을 거쳐 국토의 남단 마라도까지의 초등(78일),
장애자 1번 국도 종주 지원대장(27일),
5대강 연속 카누 탐사(58일) 등,
신문사와 방송사의 후원으로 그가 작성한 기록은 이 외에도 허다하다.
물론 해외등반도 있지만, 주로 내 나라 내 땅을 찾고 뒤지는
국토애의 정신이 그가 추구하는 산행의 밑바탕에 깔려있다.
산장지기 털보가 올라왔다는 전화가 왔다.
처자식을 서울에 두고 있어 그도 세속의 연(緣)을 어쩔 수 없나 보다.
산에나 같이 나가보려 했으나, 요 며칠 쳇증으로 몸이 불편해
대신 차에 태우고 의정부 쪽으로 나가 수락산을 한 바퀴 돌았다.
50을 넘긴 나이에도 그의 패기와 활력은 여전하다.
5월 1일부터 통일 기원 백두대간을 마라톤으로 종주하겠다고
자세한 계획안까지 열 쪽 분량으로 묶어서 가지고 왔다.
지리산 천황봉을 출발하여 진부령, 향로봉까지의 897Km를
단독으로 15일에 주파하는 일정이다.
도보 산행으로 보통 65-70일 정도 걸리는 거리를 신기록에 도전하겠다 한다.
나로서는 쉽게 수긍이 가지 않지만, 언제나 무리하다는 것을
해내던 그였기에 이 번에도 믿을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조금이라도 재정적 후원을 해야할 것 같고,
주말을 이용해 지원조로 중간 기착지에 물품 보급을 나가야겠다.
2002. 3. 3.
첫댓글 우리 고향이 낳은 산악인 성양수- 신기학교 15회, 학교 옆 새터말이 고향인데, 울 님들 이름을 아시는지? 오래 전에 내가 소개했던 글인데 지금은 노인봉에서 내려와 상계동에서 주막을 하고 있어요. 울님들 성양수네 집에서 아무 때든 한번 만나야겠네.
아~~~고향분이셨군요.....글로좋은표현감상하며.잘봣읍니다..좋은우정쌓아가셔요......
오랜만에 지금 전화해 보니 지난 12월 도봉산에서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가 추락해 다리가 부러져 집에서 쉬고 있다 하네요. 원숭이가 나무에서 떨어진 격이 됐네. 주막은 남에게 맡기고........ 빨리 회복되기를.........
저는 매스컴을 통해서,그리고 실제로 양수선배님을 압니다...선배님은 기억을 하실지 모르지만 ...산행을 별로 덜 좋아해서...그곳에 계신다는 소식은 들어서 알지만 한번도 뵙진 못했어요...중 고등학교 다니실때도 매일 마라톤 선수처럼 뛰어 다니시곤 했지요...소식 반갑습니다....
산장에 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학교 졸업 하고 얼굴 한번 못봐으니 지금 봐도 서로 모을 거요 열심히 하는 상에 관심 박수을 보냅니다
좋은 소식을 접하게 되여 감사 합니다 . 저도 그분을 잘 알지요 . 상계동에 계시면 의정부서 가까운데 .... 상계동 어느 주막인지 위치라도 자세히 가르쳐 주세요 .
이제서야 선배님 존재의 진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