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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1.22. 20:24
© 제공: 한겨레 테오도르 갈레, <아메리카>, 1600년대, 동판화, 엘리샤 휘틀지 컬렉션• 뉴스레터 구독하기 ☞ https://bit.ly/319DiiE
얼마 전 한 캐나다 원주민(아메리칸 인디언) 기숙학교 터에서 어린이 215명의 유해가 발견돼 총리가 “캐나다의 부끄러운 역사”라며 사과한 일이 있었다. 과거 캐나다뿐만 아니라 미국 정부도 원주민 어린이를 가족과 강제로 떼어놓은 뒤 기숙학교에 집단 수용했고, 백인 사회 동화를 위해 원주민 문화 말살 정책을 폈다. 이 과정에서 육체적·정신적·성적 학대 등의 심각한 인권침해가 자행됐고, 많은 어린이가 목숨을 잃은 것이다. 백인들은 왜 이다지도 집요하게 원주민 문화를 없애려 애썼던 걸까.
“하느님께서 주신 이 대륙”
1492년 콜럼버스가 발을 내디딘 이래, 아메리카 대륙으로 쏟아져 들어온 백인들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선언했다. 아메리카 대륙에선 이미 원주민들이 자기들만의 독특한 문화를 일구며 살아가고 있었지만, 백인들은 원주민을 자신과 동등한 사람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플랑드르 화가 얀 반데르스트라트(1523~1605)의 그림을 독일의 테오도르 갈레(1571~1633)가 판화로 제작한 작품 에는 그러한 편견이 잘 드러나 있다.
는 이탈리아의 탐험가 아메리고 베스푸치(1451~1512)가 1497년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장면을 담고 있다. 그림 왼쪽에 보이는 대형 범선을 타고 온 그는 의복을 잘 갖춰 입고 십자가와 천체관측기를 든 채 막 상륙한 참이다. 그 앞 해먹에는 발가벗은 채 잠들어 있던 여성이 베스푸치의 기척에 놀라 일어나고 있다.
이게 무슨 상황일까. 작품 하단을 보면 라틴어로 “아메리쿠스(아메리고 베스푸치)가 아메리카를 발견했다. 그가 그녀를 한번 부르니, 이후로는 항상 깨어 있더라”라고 적혀 있다. 즉 야만의 상태로 잠들어 있던 여자는 아메리카이며, 그녀는 정복자 남성으로 형상화된 유럽 백인들에 의해 문명화되기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그들 뒤편에 있는 원주민들의 식사 장면으로 확증된다. 원주민들은 불을 피우고 뭔가를 굽고 있는데, 자세히 보면 다름 아닌 사람의 다리 부위이다. 원주민들은 미개하고 원시적인 타자인 것이다. 이제 유럽인들은 이 아메리카라는 여인이자 대륙을 미몽에서 구원할 남성 십자군이 될 터였다.
그들은 이 말도 안 되는 생각에 대한 나름의 근거를 마련했는데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존 오설리번의 ‘명백한 운명’(Manifest Destiny)이다. 미국의 한 신문사 주필이었던 그는 1845년 “해마다 수백만씩 인구가 증가하는 우리(백인)의 자유로운 발전을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이 대륙을 우리가 모두 차지하는 것은 명백한 운명이다”라는 기사를 썼다. 요컨대 미국은 북미 전역을 정치·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고 개발할 신의 명령을 받았다는 주장이다. 오설리번은 거듭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는 인류의 진보를 추구하는 민족이다. 누가 그리고 무엇이 우리의 전진을 막을 수 있단 말인가?”
‘명백한 운명’이 미국 백인의 ‘선민사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백인 화가 존 가스트(1842~1896)가 1872년에 그린
에서 엿볼 수 있다. 왼쪽에는 태평양이, 오른쪽에는 대서양이 보이는 가운데 미국을 상징하는 컬럼비아 여신이 전신선과 철도를 이끌고 로키산맥을 넘어 행진하고 있다. 여신의 뒤쪽으로는 역마차와 기차가 들어온다. 컬럼비아 여신은 서부로 금과 영토를 찾아 이동하는 백인들의 길을 터주고 이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이를 통해 미국의 팽창과 전진이 신의 계시이자 역사적 사명임을 보여준다.
© 제공: 한겨레 존 가스트, <미국의 전진>, 1872년, 캔버스에 유채, 오트리 미국 서부 박물관여신이 가는 길에 걸림돌이 있어서는 안 되는 법. 역시나 앞길에 있던 원주민과 버펄로(원주민 생존의 원천이자 ‘형제’로 불렸던 들소)는 혼비백산하며 밀려나고 있다. 이 그림이 보여주듯이 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백인들의 영토 약탈을 합리화한 주장인 ‘명백한 운명’의 대표적인 희생자였다. 그들은 학살당하거나, 백인들에게 속아 불평등 계약을 맺고 대대로 살던 터전에서 쫓겨나거나 둘 중 하나였다. 갈레의
가 설파하듯이 원주민의 ‘야만’만이 이유가 아니었다. 이는 백인문화에 동화되어 알파벳을 모델로 문자까지 만들어 사용한 유일한 원주민인 체로키족조차 여지없이 내쫓겼다는 사실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
결국은 땅이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못 견디게 탐났기에 백인들은 그토록 모질게 원주민들을 핍박했던 것이다. 주저할 필요조차 없었다. ‘명백한 운명’이 모든 것을 합리화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원주민들은 원래 원주민들이 거주하던 토지의 5%에도 못 미치는 조그마한 ‘인디언 보호구역’에 고립되었다. ‘보호’라는 단어가 암시하듯, 이제 원주민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 신세다. 유럽인이 아메리카 원주민들과 만났던 15세기 당시 미국 내 원주민 인구는 500만명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초에는 25만명으로 95% 급감했다. 한때는 그들의 땅이었던 미국에서 이제 원주민은 전체 인구의 1%도 되지 않는 극소수 집단으로 전락했다.
그래서일까, 요즘 영화나 드라마에서 원주민은 더이상 괴성을 지르며 백인을 공격하는 악인이나 머리 가죽을 벗기는 원시인으로 재현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은 대평원에서 생태주의적 삶을 영위하는 초월자나 현자로 그려진다. 백인에게 영적인 각성을 주는 사람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런 신화적·낭만적 재현은 이제 원주민들이 백인에게 그다지 위협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방증이다.
그러나 원주민들이 침묵하지 않고 목소리를 내면 이런 낭만적인 시각은 곧바로 거둬진다. 2016~2017년 ‘석유 파이프라인 건설 반대운동’ 진압이 대표적이다. 당시 미국 정부는 원주민들이 살아가는 노스다코타주의 스탠딩록 보호구역에 거대한 송유관을 건설하는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프로젝트’를 수립했다. 최초 설계에서는 이 송유관이 노스다코타주의 행정수도인 비즈마크시를 지나도록 계획되어 있었지만, 그 도시의 주민은 90%가 백인이었고 결국 송유관 경로는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변경된 것이다. 당연히 원주민들은 강력하게 반발했다. 송유관이 샐 경우 원주민의 수원지이자 성지인 오와히 호수가 오염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송유관이 새든 말든 트럼프 행정부는 원주민들의 저항을 철저하게 무력화했고 결국 2017년 송유관을 완공했다.
1860~70년대에 대평원 지역 원주민과 버펄로 학살을 주도했던 필 셰리든 장군은 이런 말을 했다. “선한 인디언은 죽은 인디언뿐이다.” 죽어야 사는 존재, ‘인디언 잔혹사’는 현재도 진행 중이다.
이유리 작가 | 을 냈다. 그림을 매개로 권력관계를 드러내고, 여기서 발생하는 부조리를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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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딩 락 - 깨끗한 물을 위한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숭고한 투쟁
남수경
[이 글의 필자인 남수경은 미국 뉴욕에서 도시빈민, 이주민, 여성, 성소수자 등을 대변하는 공익인권변호사로 일하고 있으며, 법률서비스노동조합(Legal Services Staff Association UAW/NOLSW)의 조합원이다. 대구경북지역 독립 대안 언론인 <뉴스민>에 실렸던 글(http://www.newsmin.co.kr/news/14768/)을 다시 옮겨서 실을 수 있도록 허락해 준 필자와 <뉴스민>에 감사드린다.]
노스다코타(North Dakota) 주. 미국 중북부, 대평원 북부에 있는 캐나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주다. 많은 미국인에게 노스다코타는 특별히 알려진 관광 명소도 없는, 기껏해야 영화 <파고>(Fargo)로 알려진 머나먼 미지의 땅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많은 이들이 노스다코타를 주목하고 있다.
환경과 생태를 지키려는 중요한 싸움이 지금 노스다코타에서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4월부터 노스다코타 스탠딩 락(Standing Rock) 원주민 보호구역에서는 아메리카 원주민 수(Sioux) 부족을 중심으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스러운 땅과 물을 지키려는 대형 송유관 건설 반대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프로젝트(Dakota Access Pipeline Project)라 불리는 이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는 다코타 액세스 사의 모기업인 ETP(Energy Transfer Partners)라는 거대 에너지기업이 추진하고 있다. 노스다코다 북부의 바큰(Bakken) 유전에서 시작하는 송유관은 사우스다코다, 아이오와, 일리노이 등 4개 주를 약 1,900㎞에 걸쳐 남북으로 잇는 대규모 공사다.
38억 달러 규모의 이 거대한 공사는 2014년에 시작되었는데, 별 저항이 없었다면 올해 말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현재 수 부족이 이끄는 원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해 공사는 오와히 호수 주변 수 부족 성지를 통과하는 구간을 완성하지 못하고 있다.
원주민들은 송유관 건설 현장에 성스러운 돌(Sacred Stone)이라 불리는 캠프를 세우고 저지 투쟁에 나섰다. 수천 명의 원주민과 연대자들이 텐트와 원형 천막을 세운 캠프에서 몇 달째 노숙하며 투쟁을 만들어 냈다.
“우리는 시위대가 아니라 물의 수호자들이다”
예정대로 완공된다면 송유관은 원주민들의 유일한 식수원인 미주리 강을 포함해 약 209개의 크고 작은 물길을 지난다. 투쟁에 나선 원주민들은 송유관이 조상 대대로 내려온 성지와 식수원을 오염시킬 것이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들은 자신들을 시위대가 아닌 ‘물의 수호자들’이라고 부른다. 투쟁에 참여하고 있는 한 원주민은 그들이 왜 싸우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우리는 생사의 갈림길에 있다. 우리는 단지 우리들만의 깨끗한 물을 위해 싸우는 것이 아니다. 젊은 세대들과 그들의 아이들, 손자들의 생존을 위해서는 깨끗한 물이 꼭 필요하다. 송유관이 당장 새지 않더라도, 그건 만약에 일어날 일이 아닌, 언제 새느냐의 문제일 뿐이다.”
이런 원주민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실제 송유관 사고는 빈번히 일어나고 있다. 이달만 해도 정유회사 수노코(Sunoco)의 송유관이 폭우로 파열되면서 5만5천 갤런의 원유가 펜실베니아의 강으로 방류됐다. 2016년 한 해에만 지금까지 200건이 넘는 송유관 사고가 보고되고 있다.
그 결과 수많은 사람과 다양한 생명이 생존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한 물과 땅이 오염되고 파괴된다. 한번 오염된 환경을 복구하는데 수십 년, 심지어 수 세대가 걸리기도 한다. 그러기에 스탠딩 락 원주민들은 ‘물은 생명’이라며 송유관 건설 저지를 위해 싸운다.
보도에 따르면 송유관은 원래 노스다코타 주도인 비즈마크를 지나도록 설계됐다고 한다. 비즈마크는 인구의 90%가 백인인 도시다. 그러나 환경오염을 우려하는 반발을 예상해 송유관 라인이 비즈마크에서 인디안 보호구역인 스탠딩 락으로 변경됐다고 한다.
전형적인 환경 인종주의(Environmental Racism), 즉 힘없고 가난한 유색인종이 사는 곳에 환경과 보건에 유해한 물질이 배치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원주민들은 더욱더 필사적으로 자신들의 땅과 물을 지키기 위해 나섰다. 미국 역사에서 지금까지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어떤 존재로 취급당해 왔는지를 상기한다면, 그들의 투쟁이 얼마만큼 절박한지 잘 이해할 수 있다.
9월 초 원주민들은 연방정부로부터 송유관 공사 중단 임시가처분을 받아냈다. 하지만 불과 한 달 후 연방항소법원은 이 가처분을 기각했다. 원주민들에 의하면 공사는 법원의 중단 명령에도 불구하고 계속 진행됐다고 한다. 공사뿐 아니라 이에 반대하는 사람들에 대한 탄압도 계속됐다.
송유관 반대 투쟁 초기부터 ‘물의 수호자들’에 대한 탄압은 무자비하게 진행됐다. 흡사 전쟁터에 출동하듯 중무장한 진압 경찰은 평화로운 시위자들 얼굴에 페퍼 스프레이를 뿌리고, 고무탄을 쏘아대고, 장갑차를 동원했다. 평화롭게 행진하는 사람들 머리 위로 헬기가 뜨고, 총구를 겨눈 무장경찰이 그들을 에워쌌다.
심지어는 조상들이 묻혀 있는 성지가 불도저에 파헤쳐진 것에 항의해 기도문을 외우며 행진하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포함된 시위대에게 성난 개들을 풀어 공격하기도 했다. 시위 중 체포된 사람들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짐승들처럼 팔에 번호가 매겨진 뒤 개를 사육하는 막사에 구금됐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무자비한 탄압은 투쟁을 지지하러 각지에서 모인 연대자에게도 예외가 없었다. 영화 ‘다이버전트’ 시리즈로 한국 팬들에게도 잘 알려진 배우 쉐일린 우들리는 투쟁 초기부터 투쟁을 지지하고 함께 해왔다. 그녀가 원주민들과 함께 평화시위를 벌이다 중무장한 장갑차를 타고 나타난 경찰에게 수갑이 채워져 끌려가는 모습은 페이스북 동영상을 통해 수백만 명이 볼 수 있었다.
다코타 주 검찰은 진보저널리스트이자 라디오 쇼 <데모크라시 나우!>(Democracy Now!)의 호스트인 에이미 굿먼을 스탠딩 락 투쟁을 보도했다는 이유로 폭동죄로 기소했다. 나중에 증거 불충분으로 기각되었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다. 미국 대선 후보 중 유일하게 다코타 액세스 송유관 건설에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는 녹색당 질 스타인 후보 또한 스탠딩 락을 방문해 투쟁에 지지를 표명한 후 불법침입죄 혐의로 체포영장이 발부됐다.
탄압은 투쟁의 확산을 막을 수 없다
이외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탄압의 표적이 되고 있다. 바로 며칠 전인 10월 27일, 중무장한 경찰이 원주민 캠프를 철거하기 위한 대대적인 진압작전을 벌였다. 그 과정에서 18세 소년과 그가 타고 있던 말이 총격을 당했고, 수많은 사람들이 곤봉과 최루탄 공격을 받으며 체포됐다. 이날 하루 동안 체포된 사람은 141명이었다.
‘물의 수호자들’에 대한 탄압이 커질수록 연대도 더 커지고 있다. 스탠딩 락 투쟁은 북미 원주민들 사이에서 지난 100여 년 동안 가장 큰 연대를 끌어내면서, 지금까지 약 320여 원주민 부족이 스탠딩 락 수 부족의 투쟁을 지지하고 나섰다.
하지만 송유관 반대 투쟁은 원주민들만으로 제한되지 않고 있다. 송유관 건설 루트에 있는 아이오와 주의 농부들도 송유관 건설을 반대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 전역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지지와 연대를 표명하고 있고, 지지방문단을 모으고, 각지에서 스탠딩 락 투쟁을 지지하는 집회와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인종주의 경찰폭력에 반대하며 싸워온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도 이 지지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기후변화와 환경 파괴, 환경 인종주의에 맞서 싸우는 여러 인종을 아우르는 운동이 건설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스탠딩 락 투쟁은 역시 원주민들이 앞장서 저지해낸 미국과 캐나다를 잇는 거대 송유관인 키스톤 XL 건설 반대 투쟁의 연장이기도 하다.
이런 지지와 연대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도 원주민들이 결사적으로 싸운 것이 지지를 모아낸 결정적 힘이었다. 예를 들면 투쟁을 알리기 위해 지난여름 원주민 청년들은 노스다코타의 캐논볼에서 워싱턴까지 3000km가 넘는 거리를 릴레이로 달려서 갔다.
마침내 워싱턴에 도착한 그들은 미연방대법원 앞에서 송유관 건설에 반대하는 집회를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물을 위한 달리기(Run for Our Water)”로 알려진 원주민 청년들의 목숨을 건 달리기는 많은 미국인에게 노스다코타에서 벌어지는 투쟁을 알리는 데 큰 도움이 됐다.
노스다코다의 스탠딩 락은 머나먼 남의 나라 얘기가 아니다. 스탠딩 락은 또 다른 밀양이고, 청도이고, 성주다. 거대 에너지기업에 맞서 물과 조상들의 성지를 지키려는 싸움도, 국책사업이란 명목으로 진행된 초고압 송전탑 건설 반대 싸움도, 한반도에서 전쟁위협을 가속화하는 사드에 반대하는 싸움도, 모두 똑같다. 대대로 살아온 땅과 자연을 지키려는, 땅의 공기를 호흡하고 물을 마시며 사는 보통 사람들의 숭고한 싸움이다. 삶의 터전을 지키려는 모든 이들의 투쟁이 꼭 승리하길 바란다.
출처: https://www.anotherworld.kr/345 [다른세상을 향한 연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