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조로 재탄생한 통제영 303년 문화와 현대시조의 고향성
김민정(문학박사, 한국문인협회 상임부이사장)
1. 현대시조로 재탄생한 통제영 303년 문화의 서사시조집 『통일의 바다』
이국민의 시조집 『통일의 바다』는 1592년 일본이 조선을 침략했을 때
조선수군 제1대 이순신장군부터 조선수군통제영이 폐영된 1895년
마지막 통제사 홍남주 장군까지 303년의 역사를 시조로 담은 한 편의
서사시조집이다. 조선삼도수군통제사는 209대까지 197명의 통제사가
부임하였다. 12명은 재부임받았고, 13명의 통제사가 재임 중 순직하였다.
이 많은 이들의 업적을 고증하며 특징을 잡아 시조화 작업을 했다는 것은
그때 그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을 표현한 일반 서정시조와는 달리
많은 인내심과 노력을 해야 하는 작업임이 분명하다.
이 시조집은 제1대 이순신 장군부터 제209대 통제사 홍남주 장군까지
197명의 통제사 한 사람 한 사람의 특징을 시조로 나타내고 있다.
단시조가 많고 두 수 시조도 간혹 보인다. 이 시조집의 발문을 쓴
이연지 교수에 의하면 이 시조집의 통제사 명단이나 업적은
한국학중앙연구원 규장각의 자료와 부합되며 이를 고증하는 작업도 진행되었다고 한다.
또한 이국민 시인은 자신의 조상들 유품을 보면서 이 시조집을 만들 생각을 했다고 한다.
그가 이 시조집의 제목을 ‘통일의 바다’라고 한 것은 우리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조선시대부터 그렇게 많은 통제사분들이 노력해 왔는데,
지금은 분단된 바다를 가지고 있음을 안타까워하면서 통일된 바다를
가져야 한다는 생각과 갈망에서 『통일의 바다』라고 시조집 이름을 정한 것 같다.
지금은 하나가 아닌 하늘과 땅의 바다
갈수도 올수도 없는 사이 강물은 흘러
하나로 통했던 그 바다
다시 잇고 싶은 핏줄
내가 죽은 곳은 노량바다가 아니다
차라리 숨기고자 살아서 욕될 목숨
동짓달 지킨 새벽의 바다
하나 뿐인 이 약속.
- 「제1대 이순신(李舜臣, 1545~1598)」 전문
「이순신李舜臣」 작품에서 그는 현재의 분단된 조국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분단된 땅과 바다, 그래서 이순신 장군은 ‘내가 죽은 곳은 노량바다가 아니다’라고 한다.
‘동짓달 지킨 새벽의 바다/ 하나뿐인 이 약속’이라고 표현한다.
조국을 사랑하는 이순신의 마음이 아직도 우리 민족의 가슴속에
약속의 날(통일된 바다, 통일의 날)을 기다리며 죽지 않고 살아있음을 이 시조는 말하고 있다.
통치권자의 잘못된 명령으로 제2대 통제사를 원균으로 하는 바람에 많은
국민들(백성들)을 주검으로 몰아넣었던 내용도 보여줌으로써 군주의
착오를 경계하며 지휘자 한 사람의 잘못이 국민들의 피해로 이어지는
사고에 대한 고찰의 사례를 시조로써 보여주고 있다.
승전한 물 위에서 뿌린 몇 갑절의 혈투
역풍으로 몰려온 진격의 명命과 벌罰
오판한 명령이 죽인 삼만명의 젊음
죽고 싶지 않았던 칠천량 앞바다
그렇게 산화한 청춘은 몇송이든가
미래는 승리만 기억하네
듣지 않은 수부水夫의 외침.
- 「제2대 원균(元均, 1540~1597)」 전문
또한 1604년 통제영을 현위치(세병관)으로 옮긴 이경준의 업적을 말하기도 한다.
이렇게 각 통제사들의 업적을 요약하여 통제사의 서사를 보여주고 있다.
남해안을 둘러보다 발 멈춘 두룡포
여우 토기 뛰노는 잡초 무성한 포구
갯가는 사람과 때를 만나 다시 태어난 통제영.
중무장한 황당선荒唐船 얼씬도 못한 통영
덕천가강 주인선 격침당한 당포 앞바다
최강의 조선수군 본부 세병관에 자리 잡다.
- 「제9대 이경준」 전문
또한 영내의 농어민들의 원통한 한을 풀어주기도 한 통제사에 관한 이야기도 있다.
철산부사 재임시 장화 홍련의 억울한 원혼을 풀어준 통제사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만큼 농어민들의 억울한 일, 사정들을 잘 풀어주고 잘 돌보아 준 통제사의 역사다.
민간에 전하는 하나의 옛날 이야기로만 알았던 것을 실제 역사로 있었음을 알게 해 주는 부분이기도 하다.
장화 홍련 원혼冤魂도
풀어준 철산부사
부관청 선고직청
창건하고 통제영統制營 정비整備
영내營內의 농어민農漁民들이
생사당生祠堂 짓고 제향하다.
- 「제60대 전동흘」 전문
그 외에도 통영의 서민들의 어려운 삶을 이해하고 중앙정부보다는
서민들을 위해 노력한 청백리의 삶을 살다간 통제사 민섬이나,
나라에서 금한 벌목까지 서민을 위해 허가한 통제사 김영의 삶을 예찬하고 있다.
요직要職을 수차數次에 걸쳐
사임辭任을 원願해도
청백리淸白吏로 발탁돼
재기용된 무장武將
뜨락에 선 충렬묘비가
혼자 기억記憶하고 있네.
- 「제61대 민섬」 전문
화재火災로 집 소실燒失된
서민庶民에게 벌목伐木 허가許可
묘당은 경계 미준수로
삭직을 내려
백성은 선善한 마음을
들에 그린 덤바우비碑.
- 「167대 김영」 전문
독도를 우리나라 국토로 확인한 정홍좌에 대해서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다.
안용복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 역사적 이야기가 시조 속에서 드러난다.
역사를 확인하는 일은 우리의 현재를 알게 하는 중요한 것이다.
수군水軍의 사기使氣와 북소리
들리는 기생청妓生廳
일본 간 안용복安龍福
독도獨島 영유권 주장하고
우산도 출몰하는 왜인
다시 못 오게 하다.
- 「제74대 정홍좌」 전문
이렇게 각 통제사의 업적을 간략히 쓰기도 하고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 잡혀가
옥사한 통제사의 한스러운 역사를 시조로 쓰고 있다.
사화士禍 태풍 때마다
죽어 나간 통제사
파도는 아랑곳 없이
방파제防波堤를 부순다
차라리 돌벅수로 남아
동남東南바다 지키네.
- 「제77대 류성추」 전문
역풍逆風의 피해에
거듭 퍼 붓는 폭우
물 건너 왜적은
선박船舶 가득 무기 사들이고
우리는 우리끼리 싸우다
떠나보낸 세월바다
- 「제97대 남태징」 전문
이 두 작품 뿐만 아니라 몇 몇 작품에는 사화士禍(士林의 禍)로 인해 잡혀가서
옥사하거나 파면을 당한 통제사에 관한 이야기도 나온다. 바다를 지키고자 한
통제사들이 태풍(정치 당쟁의 소용돌이)으로 하여 그러지 못했음을 한스러움을
시조화하기도 했다. 한반도의 바다를 지키려 애썼던 통제사들이 정변의
태풍 속에 휘말리며 쓰러질 때도 일본의 재침략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되고
있음을 말하며 안타까움을 드러내고 있다.
왜란倭亂보다 더 험한
남북 내란內亂 속에
칼끝은 동족同族 향해
내려치고 있다
한바다 지키려 해도
밀려드는 일만 파도波濤.
- 「제20대 이수일」 전문
역시 내분이나 내란 속에서 통일의 바다는 이루어지지 않음을 안타까워하고 있다.
현재의 우리나라는 남북의 대치 상황이며 휴전의 상황이다. 통일의 바다를 원하고
있는 이국민의 안타까움이 나타나는 부분이다. 그가 이 시조집을 집필한 이유도
우리의 통일을 바라고 있기 때문이다. 통일을 바라는 마음들이 작품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2. 고향 통영의 역사를 노래한 시조집 『통일의 바다』
통영하면 떠오르는 시조시인으로 김상옥이 있다.
김상옥은 1940년대 시조시인이라 할 수 있는데 그는 「사향」, 「변씨촌」, 「봉선화」
등을 작품을 통해 통영의 정서적 특징을 잘 말해주고 있다.
눈을 가만 감으면 구비 잦은 풀밭길이
개울물 돌돌돌 길섶으로 흘러가고
백양숲 사람을 가린 초집들도 보이구요
송아지 몰고 오며 바라보던 진달래도
저녁 노을처럼 산을 둘러 퍼질 것을
어마씨 그리운 솜씨에 향그로운 꽃지짐!
어질고 고운 그들 멧남새도 캐어오리
집집 끼니마다 봄을 씹고 사는 마을
감았던 그 눈을 뜨면 마음 도로 애젓하요
- 「사향思鄕」 전문
김상옥은 이 작품에서 향토적인 고향과 토속적인 정서를 그리워하고 있다.
풀밭길, 개울물, 길섶, 백양숲, 사립, 초집, 송아지, 진달래, 저녁노을, 산,
어마씨, 꽃찌짐, 멧남새, 집집, 마을 등 그가 고향을 생각하며 쓰는 소재들은
우리의 고향에서 흔이 볼 수 있는 토속적인 풍경이며 정서였다.
내 한때 두만강 豆滿江ㅅ가 邊氏村에 살았는데
고향을 묻길래 統制使 通門이던 통영
진사립 자개장롱 나는 곳이래도 모르데요
아메야 에미네야 웃음이 마구 터지는데
가수내 이 문둥이 말끝마다 흉을 봐도
비빔밥 꽃찌짐 얘기는 숨도 없이 듣던데요
되땅은 하로 아침길 慶尙道는 꿈의 나라
동삼 내 눈이 싸여도 한우리의 고장인데
아득한 먼 옛말같은 겨레들이 삽데다요.
- 「변씨촌邊氏村」 전문
시조시인 김상옥의 고향 경상도 통영과 그곳의 특산품인 명주갓과
자개장롱 등의 소재가 나타나는 작품이다. 필자도 이 시조를 읽고
통영의 자개장롱과 명주실로 촘촘하게 늘여 만든 갓이 유명한 줄 알게 되었다.
김상옥 시조시인의 고향 통영에 대해 소개한 작품이다. 현대시조의 고향성이 잘 나타난 작품이다.
그의 유명한 작품 「봉선화」도 마찬가지다. 김상옥의 애향정신은 필자가 쓴 논문
『현대시조의 고향성』이란 논문 속에서 잘 나타난다.
김상옥 시조시인의 고향이 통영이듯 이국민 시조시인의 고향 역시 통영이다.
그는 통영의 특징인 통제사에 대해서 시조를 썼다. 통영이란 조선삼도수군통제사가
있던 곳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통영의 역사에 대한 작품을 쓴다는 것은
고향에 대한 깊은 애착에서 시작된 것이라 볼 수 있다.
그가 시인의 말에서 밝혔듯이 “통제사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신 할아버지,
낙도 분교 교사로 여러 섬마을을 나를 데리고 다닌 아버지,
시조를 가르쳐 주신 초정 김상옥 선생님, 나의 첫 희곡집 『바다위에 뜬 별』출판기념회
사회를 맡아준 독도탐험대 장철수 대장” 등이 이 시조집을 있게 해 주었던 것이다.
그가 어릴 적부터 보고 들은 이야기와 지극한 애향심에서 탄생된 것이
이번 시조집 『통일의 바다』인 셈이다.
자기가 나고 자란 고향에 대한 애정, 즉 애향심이 커져서 애국심이 되는 것이다.
특히 외국에서 살다 보면 자신의 고국에 대한 애국심이 커진다고 하는데,
고향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그렇다고 볼 수 있다. 이국민 시인 역시 중국에서
산 경험 등이 고향에 대한 사랑을 더욱 간절하게 했을 수도 있다.
그만큼 『통일의 바다』 시조집에는 통영의 통제사 역사를 돌아보며
이 나라의 통일을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음을 알아야 한다.
때문에 『통일의 바다』 서사시조집은 이국민 시조시인의 애향심과
애국심이 들어 있는 시조집으로 현대시조의 고향성이 짙게 드러나는 작품집이라 볼 수 있다.
초정 김상옥 시인과 이국민 시인[1979년 봄/ 통영 용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