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천왕반야바라밀경 제6권
11. 현화품(現化品), 화신불
그때 선사유(善思惟)보살마하살이 승천왕에게 물었다.
“여래께서 지으신 화신불이 다시 화현하신 것입니까?”
그러자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말하였다.
“이제 세존을 대하여 증명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변화하신 부처님은 다시 항하강 모래수와 같이 한량없는 부처님으로 변화하여 가지가지 모습과 신통설법으로 중생을 이익하게 합니다.
선남자야, 모든 부처님께서는 숙세의 원력이 청정한 까닭으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숙세원력이 청정하여 매우 깊은 법을 설하셨습니다.
대왕이여, 부처님의 신통력으로 이 반야바라밀이 세간에 오래 머물러서 숨어 없어지지 않게 되기를 청합니다.”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말하셨다.
“선남자야, 반야바라밀은 모든 부처님께서 가호[護持]하시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문자로 설한 반야바라밀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문자는 생기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으며 숨어 없어짐도 없으며, 글자에 나타난 뜻도 생기지도 않고 다하지도 않으며 숨어 없어짐이 없습니다.
선남자야, 모든 부처님 여래의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도 숨어 없어지지 아니합니다.
왜냐 하면 법은 생겨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만약 법이 생김이 없다면 이것은 멸함이 없는 것이며,
이것은 여래 비밀의 가르침이라 만약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거나 나오시지 않더라도,
성품과 모양은 항상 머물러 있어 이것을 법계라 이름하며, 또한 여여(如如)하다고 합니다.
이름과 실제가 다르지 않고 인연에 수순하여 거슬러 어기지 아니하니, 이것을 정법이라 하며, 그 성품이 항상 머물러 있어 숨어 없어짐이 없습니다.”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정법을 옹호할 사람은 바로 어떤 사람입니까?”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만약 일체법을 어기거나 거스르지 않는 이를 정법을 옹호한다고 할 것입니다.
무슨 까닭인가? 다투어 토론함이 없고 도리를 어기지 않으면 정법을 옹호한다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도리를 어기지 않는다 합니까?”
“문자에 순종하고 도리를 어기지 않으며 다투어 토론하지 않으면 정법을 옹호한다 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세간의 범부는 다 모든 견해에 집착하지만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항상 공을 설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세간에는 다투어 토론함을 일으키나니, 이와 같이 범부는 존재하는 법[有法]을 사랑하고 존중하며,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이것을 가벼이 여깁니다.
또한 세간은 존재[有]를 설하면서 항상하고[常] 즐거우며[樂] 나[我]가 있고 청정하다[淨]고 하며,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무상(無常)이요 고(苦)요 부정(不淨)함이요 나가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까닭으로 세간에서 다투어 토론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선남자야, 일체 범부는 세간의 흐름에 순종하고,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세간의 흐름을 거역합니다. 이런 까닭에 세간은 다투어 토론을 일으킵니다.
일체 범부는 음(陰)ㆍ계(界)ㆍ입(入)에 집착하고,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일체법은 어느 것도 집착할 것이 없다고 말합니다.
이런 까닭에 세간은 다투어 토론을 일으킵니다.
선남자야, 세상을 수순하는 자는 도리를 행하지 않고 도리에 순종하는 자는 세상과 서로 어긋나는 것입니다.”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말하였다.
“대왕이여, 지금은 어떤 법을 취합니까?”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말하였다.
“나는 사람을 취하지도 않고, 법을 취하지도 않습니다.”
보살이 물었다.
“어떻게 취하지 않습니까?”
승천왕이 대답하였다.
“나는 중생을 여의고 법을 여읨도 여의었으며 이 여읜다는 것도 얻지 못하며 과거ㆍ미래ㆍ현재를 여의고, 여의었다는 것도 얻지 못합니다.
모든 부처님을 여의기도 하고 모든 부처님을 여의지 않기도 하며,
불국토를 여의기도하고 불국토를 여의지 않기도 하며,
법을 여의기도 하고 법을 여의지 않기도 합니다.
선남자야, 이와 같은 행을 도리에 순종하여 취함도 없고 취하지 않음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자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을 찬탄하였다.
“훌륭하십니다, 대사(大士)여. 훌륭하십니다,
정사(正士)여. 이와 같이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은 취할 것도 없고 집착할 것도 없고, 이름도 없고 글자도 없고, 모든 희론을 멸하고 분별하거나 사유함도 여의었다고 설하였습니다.”
그때 대중 가운데 현덕(賢德)이라는 한 천자가 있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오른쪽 무릎을 땅에 대고 부처님을 향하여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발에 예배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승천왕이 말한 바와 같은 분별이 없다는 것은 어떤 법입니까?”
부처님께서 현덕천자에게 말씀하셨다.
“분별이 없다는 법은 고요함[寂靜]이다.
무슨 까닭인가? 취한다고 하는 것도 취할 것이 없으며[取可取無] 나와 내 것을 여의어 일으키지 않고 쉬지도 않는 이것을 분별이 없는 법이라 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로써 이와 같이 보는 자는 정법을 옹호하되, 옹호하는 자와 옹호되는 것을 보지 않느니라.”
이러한 법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십천(十千) 비구가 마음에 해탈을 얻고 일천 천자가 번뇌를 멀리하고 때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었다.
그때 선사유보살이 승천왕에게 물었다.
“어떤 변재가 이와 같은 매우 깊은 법을 설합니까?”
승천왕이 선사유보살에게 대답하였다.
“선남자야, 일체 번뇌의 습성이 없는 자가 얻은 변재가 이와 같이 설하며, 언어의 도를 넘어서서 이름으로 나타낼 수 없는 제일의(第一義)의 지혜라서 이와 같은 변재로 이것을 설합니다.”
그러자 선사유보살은 현덕천자에게 물었다.
“선남자야, 무엇을 무생법(無生法) 가운데서 변재로 설한다고 합니까?”
현덕천자가 선사유보살에게 대답하였다.
“보살마하살은 생겨남도 없고 멸함도 없는 법 가운데 머물지 않으며, 곧 변재도 없이 매우 깊은 법을 설합니다.
무슨 까닭인가? 희론을 멀리 여의어 인연되는 것도 보지 않고, 인연하는 자도 보지 않으며 마음에 머무는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설하며 사람과 법에 머물지 않고 이것 저것에 머물지 않으며, 오직 청정한 제일의제(第一義諦)에 머뭅니다. 이런 까닭으로 설하는 것입니다.”
그때 선사유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현덕천자는 매우 희유하여 깊은 법을 통달하여 변재가 끝이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선사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 현덕천자는 묘희(妙喜)세계 부동(不動)부처님의 처소에서 이 사바(娑婆)세계에 오셔서 매우 깊은 반야바라밀을 받아 듣는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다시 선사유보살에게 말씀하셨다.
“현덕천자는 이미 과거 한량없는 백천억 겁에 다라니문(陀羅尼門)을 닦아 익혔고, 겁이 다하도록 설법하고 또한 다하여 마칠 것이 없느니라.”
선사유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엇이 다라니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이른바 중법불입다라니(衆法不入陀羅尼)이다.
선남자야, 이 다라니는 모든 문자를 넘어서서 말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마음으로 헤아리지 못하며 안팎의 온갖 법으로 모두 얻지 못한다.
선남자야, 조그마한 법도 여기에 들어갈 수 없기 때문에 중법불입다라니라 하느니라.
무슨 까닭인가?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고 또한 나가고 들어옴도 없으며,
하나의 문자도 밖에서 들어오는 것이 없고 또한 한 자도이 법에서 나감이 없으며,
또 한 자도 이 법 가운데 머무름이 없고 또한 문자를 같이 서로 보는 것도 없으며,
또한 법과 법 아님을 분별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이 모든 문자로 설해도 덜하지 않고 설하지 않아도 더함이 없으며,
본래부터 만들어 일으킨 것도 없고 허물어 없어지는 것도 없느니라.
선남자야, 문자와 같이 마음도 그러하며, 마음과 일체가 같아 법도 이와 같나니,
무슨 까닭인가? 법은 언어를 여의었고 또한 사량(思量)도 여의었으며 본래 생기고 멸함이 없기 때문이니라.
그런 까닭에 나가고 들어옴도 없으니, 이것을 중법불입다라니라 하느니라.
이 법문을 통달하는 자는 변재가 끝이 없을 것이니,
무슨 까닭인가? 끊어지지도 않고 다함도 없는 법을 통달했기 때문이니라.
선남자야, 허공에 들어가는 자는 이 다라니문에 들어갈 수 있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은 이 다라니문을 통달하여 마음에 청정함을 얻고 몸과 입도 그러하느니라.
행한 바는 이치에 부합하고 반야는 견고하며 일체의 온갖 마가 어지럽힐 수 없고, 일체 외도는 감히 보지 못하며 일체 번뇌가 허물지 못하고, 몸의 힘을 성취하며 마음에 겁약(怯弱)함을 여읜다.
설한 것이 다함이 없어 매우 깊은 일체의 성스러운 진리[聖諦]를 베풀며,
다문(多聞)의 지혜는 마치 큰 바다와 같고,
삼매에 안주하니 비유하면 수미산과 같고,
대중 가운데 처하되 두려움이 없고 사자의 왕과 같으며,
세상법에 물들지 않음이 저 연꽃과 같으니라.
중생을 이익 되게 함은 마치 비유하면 대지와 같고,
모든 더러운 때를 씻음을 비유하면 큰 물과 같다.
세간을 성숙시킴이 바야흐로 큰 불과 같으며,
맑고 시원함이 평등하게 중생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것이 비유하면 달과 같고,
모든 어둠을 깨뜨림은 태양에 비유되느니라.
번뇌의 원수를 꺾는 것을 용건(勇健)하다 하고,
심성을 길들여 복종시킴은 큰 용과 같으며 진동하는 법의 우레 소리는 큰 구름에 비유된다.
온갖 법을 널리 쏟아 내림은 비유하면 큰 비와 같으며,
모든 중생을 위하여 번뇌의 병을 없애줌은 병을 잘 고치는 의사와 같고,
법으로 세상을 다스림은 비유하면 국왕과 같으니라.
중생을 보호하고 정법을 옹호함은 사천왕과 같고,
사람과 하늘 가운데 재물[財富]이 가장 으뜸됨을 비유하면 제석과 같으며,
마음에 자재를 얻음을 비유하면 대범왕이 자유롭게 사바세계를 통솔하는 것과 같고,
몸이 걸림 없음은 가루라(伽婁羅)새와 같다.
중생에게 가르쳐 보임은 세간의 아버지와 같고,
법의 보배가 나옴은 비사문(毘沙門)왕에게서 온갖 보배가 나오는 것과 같으니라.
공덕지혜의 장엄한 것을 중생이 보면 이익 되지 않음이 없어 모든 부처님 세존께서 칭찬하시는 바요, 일체 천중들이다 옹호하느니라.
선남자야, 보살마하살이 이 중법불입다라니를 얻으면 여러 가지에 자재로워지며 중생을 이익하게 하고 방편의 설법이 다함이 없으며, 마음이 피곤함이 없고 명리를 구하지 않는다.
또한 법의 보시가 평등하여 질투함이 없고,
지계가 청정하여 몸과 입과 뜻에 영원히 허물됨이 없으며,
인욕이 청정하여 모든 성냄의 고통을 여의고,
정진이 청정하여 짓는 바를 갖추어 세우며,
선정이 청정하여 마음을 잘 길들여 복종시키고,
반야가 청정하여 다 의심하여 막힘이 없느니라.
또 4무량심(無量心)을 구족하여 마치 범왕(梵王)과 같으며, 모든 삼매와 삼마발제(三摩跋提)를 행하여 세간의 가장 으뜸인 무상도(無上道)를 닦고, 모든 공덕과 일체지혜를 갖추어 관정의 지위[灌頂位:성불의 지위]를 받느니라.”
이러한 다라니 법문을 설할 때,
대중 가운데 육만 사천 보살이 물러나지 않는 지위[不退轉]를 얻었고,
삼만 보살이 무생법인을 얻었으며,
이만의 사람과 하늘이 번뇌[塵]를 멀리하고 때[垢]를 여의어 법의 눈이 청정함을 얻고,
한량없고 끝이 없는 사람과 하늘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의 마음을 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