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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장 경운기 빼쇼. 몸 상해."
김혜형 전업농부·작가
귀농 초기, 야트막한 야산 아래로 길게 이어진 세 뙈기의 논을 구입한 후 옆사람은 의욕이 충만했다. 논을 갈려면 트랙터 가진 이에게 비용을 내고 맡겨야 하는데 그는 직접 하고 싶어 했다. 트랙터는 값도 비싼 데다 우리 농사 규모에 맞지도 않아 중고 경운기를 물색했다. 마침 건너마을 어른께서 오래 써온 낡은 경운기를 내놓으신다기에 바로 달려가 구입했다.
경운기를 몬 지 며칠 되지 않아 비탈길에서 곤두박질칠 뻔한 사고가 있었다. 경운기는 비탈에서 기어 변속을 하면 안 된다. 기어가 빠지면서 육중한 경운기가 자기 무게를 못 이겨 순식간에 뒤로 미끄러지기 때문이다. 그걸 몰랐던 초보운전자의 심장이 덜컥 떨어졌다. 아찔했던 순간, 어떻게 기어를 다시 넣었는지 기억도 안 난다며, 말로만 듣던 경운기 사망 사고가 남의 일이 아니란 걸 실감했단다.
논에 들어가려고 고무바퀴를 쇠바퀴로 갈아 끼우고 있다.
경운기로 수렁논을 갈다가 멈췄다.
경운기에 딸린 쇳덩이를 교체하고 연결하는 일도 초보자가 하기엔 만만찮다. 트레일러(짐칸)를 떼고 로타리(쟁기날)로 바꿔 달기, 고무바퀴 떼고 쇠바퀴로 갈아 끼우기 같은 필수적인 작업을 농업기술센터 농기계 수리팀에게 배웠다. 농기계는 자동차와 달라, 사용자가 기계에 대해 어느 정도 알아야 하고 기본적인 엔지니어 노릇도 해야 한다.
귀농 후 장만한 첫 논에서 중고 경운기로 논갈이를 하는데, 일이 생각처럼 되지 않았다. 땅을 깨부수며 앞으로 나가야 할 경운기가 우거진 풀과 뒤엉켜 꼼짝도 안 했다. 겨우 한 발 가다 서고, 다시 한 발 가다 서는 일의 반복, 시동은 계속 꺼지고, 과열된 엔진에선 검은 연기가 솟았다. 논 한가운데서 몇 시간째 경운기를 붙들고 진땀을 빼던 옆사람, 문득 뒤통수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봤다.
“뭣 허셔?”
논둑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
“아니, 뭣 허냐고?”
“모 심을라고 로타리...”
“당장 경운기 빼쇼. 몸 상해.”
그의 트랙터가 순식간에 논을 갈아버렸다.
좀 기다리라 해놓고 휭하니 사라진 그 남자, 잠시 후 트랙터를 몰고 나타나더니 곧장 논으로 들어갔다. 그가 순식간에 논을 갈고 써레질까지 해치워버리는 걸 옆사람은 입을 떡 벌리고 바라만 봤다. 일 마친 후 그와 함께 국밥집에 가서 술 한 잔 나누는데, 그가 우리 논을 잘 안다 했다. 몇 해 전 빌려서 농사를 지어봤다며 심각한 수렁논이란다. 자기가 한 살 아래란 걸 확인한 그가 대번에 옆사람을 ‘형님’이라 부른다. “형님, 모내기할 때도 부르쇼.”
어찌 안 부르겠는가. 모내기하는 날, 그의 낡은 승용 이앙기가 수렁논에서 한참 허덕였다. 그래도 진창에서 보행 이앙기 밀며 힘쓰던 때에 비하랴. 군데군데 모가 꽂히지 않은 빈자리가 많은 게 신경 쓰였는지 그가 말했다. “형님 혼자 뜬모하기 힘든께 날잡아 같이 해치웁시다.” ‘뜬모’란 모내기 후 모가 꽂히지 않은 빈자리를 손모로 때우는 것을 말한다. 괜찮다며 거절했지만, 그의 말이 진심인 걸 알기에 뭉클했단다.
고물 이앙기를 왜 사?
그의 낡은 이앙기
3년 전부터 농사 규모가 늘었다. 기존 우리 논에 더해 친환경 단지 논까지 빌리게 된 것이다. 논이 3개 마을에 흩어져 있어 논과 논 사이 이동 거리도 만만찮다. 예전엔 농업기술센터에서 이앙기를 빌려 썼지만 농사가 많아지니 하루씩 빌려 쓰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큰맘 먹고 순창의 구보다 대리점에서 중고 이앙기를 구입했다. 이앙기가 생기니 기계 빌리는 일정에 모내기를 맞추려 애쓰지 않아도 되고, 짧은 일정 안에 해치우려고 무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앙기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옆사람이 웬 고물 이앙기를 트럭에 싣고 왔다. 겉모습은 이앙기지만 이앙 기능은 상실한 기계였다. “이걸 왜?” 물었더니 퇴비 포대를 나르려고 샀단다. 예전에 트럭으로 논에 퇴비를 나르다가 몇 차례 빠진 경험이 있고, 경운기로 나르자니 쇠바퀴를 단 채 트레일러에 무거운 퇴비를 싣고 논길을 오갈 수도 없는 노릇이라. (고무바퀴를 쇠바퀴로 바꿔야 논에 들어갈 수 있다.) 이앙은 못 해도 운행은 가능한 고물 이앙기를 퇴비 운반용으로 샀다는 것이다.
수년 전까지는 지게로 퇴비를 날랐다.
봄이 되면 논에 퇴비를 넣는다. 유기농 농사라 화학비료 대신 미강(쌀겨가루)과 퇴비, 유기질 비료 등을 넣는데, 수년 전까지만 해도 100포가 넘는 퇴비 포대를 지게로 져 날랐다. 퇴비를 트럭에 올리고, 내리고, 지게로 날라 논에 뿌리는 일은 몹시 고된 일이다. 지금은 비료 살포기가 있어서 유기질 비료는 살포기에 담아 등에 지고 다니며 뿌리지만, 퇴비는 살포기로 뿌릴 수 없으니 여전히 포대째 들고 논에 들어가야 한다. 그가 고물 이앙기를 산 건 나름의 고육지책이었을 것이다.
어린 우렁이를 넣다
초봄에 논둑을 점검하고 ‘논둑 바르기’를 한다. 논둑 바르기란, 트랙터 작업 시 조금씩 깎인 논 가장자리를 논흙으로 도톰하게 발라주는 일인데, 두더지가 낸 구멍도 막고 논둑을 보강해 물이 새지 않게 하는 조치이다. 수년 전까진 무릎 꿇고 엎드려 손으로 진흙을 떠서 바르며 하루종일 논둑을 기었다. 지금은 논둑 성형기를 단 트랙터가 순식간에 보강한다(물론 비용이 든다). 육중한 기계로 논둑을 만드니 그 단단함이 사람 손으로 바른 논둑에 비할 바가 아니다.
손으로 논흙을 떠서 바른 논둑
봄날, 우리 논은 푸르다. 지난가을에 씨 뿌린 녹비작물 헤어리베치가 자라고 있어서다. 헤어리베치는 공중 질소를 고정하는 콩과식물로 토양 지력을 높이는 풋거름 작물이다. 헤어리베치를 논에 윤작하는 것은 유기농의 조건 중 하나이기도 하다. 빈 논에서 겨울을 나고 봄에 파랗게 올라온 헤어리베치를 모내기 전에 베어서 땅으로 돌려준다. 헤어리베치를 베고 난 뒤엔 논에 물을 대어 풋거름을 충분히 부숙시킨다.
트랙터로 써레질 하기
매일 아침 동이 트면 그는 논으로 간다. 물을 대기 어려운 논의 수로 상태를 살피고, 매일 조금씩이라도 물을 받는다. 물 대기 좋은 논이야 그럴 필요가 없지만, 물이 귀한 논은 이렇게라도 물을 저축해둬야 나중에 써레질을 할 수 있다. 물이 충분해야 흙이 곤죽 상태가 되어 잘 밀리고 수평 잡기가 수월하다. 써레질은 해마다 트랙터를 가진 이 씨 어른께 부탁드린다.
귀농 초기 “몸 상해” 사건 이후에도 그는 경운기 논갈이를 포기하지 않았다. 첫해의 경험 부족, 운전 미숙을 극복하고 경운기로 논 가는 일에 나름의 노하우를 쌓았다. 그러나 농사 규모가 3배로 늘면서 더는 경운기를 고집할 수 없게 됐다. 수천 평 논을 경운기로 가는 건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 (경운기도 얼마 못 가 수명이 다했다.)
경운기로 논을 가는 옆사람
써레질 마치고 어린 우렁이를 논에 넣었다.
우렁이 키우는 농가에서 치패(어린 우렁이)를 받아와 써레질 끝낸 논에 뿌렸다. 해마다 우렁이를 넣는데도 한여름 풀을 이기지 못해 김매는 고생이 자심했었다. 성장기의 치패를 넣으면 풀을 더 잘 먹는다는 농업기술센터의 조언에 따라 올해는 그렇게 했다. 써레질한 논물에는 부숙된 헤어리베치와 퇴비가 들어 있다. 흙탕물에 뒤섞인 퇴비를 2~3일 정도 가라앉힌 후 물을 적당히 빼고 모내기를 한다.
이 많은 모판을 어찌 옮기지?
모내기를 하려면 먼저 못자리에서 자란 모판을 논으로 옮겨야 한다. 작년엔 심 이장이 트랙터로 옮겨 줬는데, 그렇잖아도 일 많은 집에 우리 일거리까지 더하는 꼴이라 참 염치가 없었다. 고민하던 옆사람이 퇴비 나르려고 산 고물 이앙기를 비닐집 창고에서 끌어냈다. 못자리 논에서 모판 나르는 용도로 쓸 수 있을 것 같아서다.
모판 옮기는 날, 심 이장이 트랙터로 날라주겠다는 걸 극구 사양하고, 고물 이앙기 뒤에 철판을 달아 못자리에서 꺼낸 모판을 실었다. 이앙기 양옆 빈자리까지 채우니 모두 20개. 한 번에 20개씩 3번 날라 트럭 짐칸에 60개를 실어 모내기할 논에 가져다 놓았다, 먼지만 뒤집어쓴 채 무용지물로 방치되던 고물이 드디어 역할을 하는구나 싶었다.
고물 이앙기 뒤에 철판을 달아 모판을 옮겼다.
다시 못자리로 돌아와 고물 이앙기에 모판을 싣고 출발하려는데 이앙기 바퀴가 헛돈다. 아무리 애써도 진흙 속에 빠진 바퀴가 꿈쩍도 안 한다. 엔진이 과열되더니 왼쪽 바퀴 축에서 요란한 소리가 나고 시동이 꺼진다. 바퀴 앞을 삽질해서 터주고 재시도했지만 소용없다. 앞이 캄캄하다. 이 많은 모판을 어찌 옮기지?
“심 이장한테 전화해볼까?” 했더니 그가 고개를 젓는다. 지금쯤 모내기하느라 심 이장도 바쁠 것이다. 옆사람이 고물 이앙기에 달아맨 철판을 떼어내서 모판을 예닐곱 개 얹는다. 무거워서 끌 수가 없다. 5개를 얹고 끌어당기니 끌 만하다. 고물 이앙기가 작동했다면 20개씩 3차례 반복할 일을 5개씩 12차례를 왕복해서야 트럭 짐칸이 채워졌다. 둘 다 녹초가 됐다.
별수 없이 사람 힘으로 끌었다.
이앙기에 모판을 넣고 있다.
논으로 가서 모내기를 시작한다. 그는 이앙기로 모를 심고, 나는 이앙기에 모판을 올려준 후 빈 모판을 수로로 가져가 씻는다. 이앙기가 논 저편까지 갔다가 돌아오면, 다시 트럭의 새 모판을 이앙기로 올려주고 빈 모판을 수로로 가져가 씻는 일을 반복한다. 아침부터 모판 옮기느라 힘을 다 써버려 기운이 바닥을 친다. ‘힘들구나….’ 장갑 낀 손으로 모판을 문지르며 속말을 한다. ‘그래도 도시 떠난 걸 후회한 적은 한 번도 없었네.’ 후회라니, 참 낯선 단어다. 모판에 붙은 거머리를 떼어내며 슬쩍 웃었다. 선택한 삶이라고 힘들지 않은 건 아니지. 힘들어도 감당하는 거다. 내 삶이니까.
수로에서 모판 씻기
120개의 모판을 다 썼는데도 농소리 논 4단지를 채우지 못했다. 다시 못자리 논으로 가서 모판을 실었다. 철판을 이용해 끌어당기고, 트럭에 올려 싣는 일이 반복된다. 60개 모판을 트럭 짐칸에 싣고 나니 다리가 휘청거린다.
농소리 4단지 모내기를 마친 시각이 저녁 8시 반, 주위가 어둑어둑하다. 마을의 불빛이 반짝이고 가로등이 길을 비춘다. 식당도 문 닫은 시각, 지친 몸으로 집에 들어가 저녁 지을 쌀을 씻었다.
은주 씨한테 들키다
다음날, 못자리에 처박힌 고물 이앙기를 한 번 더 움직여보려고 시도하던 옆사람이 심 이장의 아내 강은주 씨한테 들켰다. 아내의 전화를 받은 심 이장이 즉시 트랙터를 몰고 와 이앙기를 빼낸다. 같이 금방 하면 되지, 말씀을 왜 안 하시냐고, 부부가 이구동성으로 야단이다. 서늘해지는 오후 5시 반에 만나 나머지 모판을 나르기로 하고, 무용지물 고물 이앙기를 집으로 가져왔다.
오후 5시 반, 농로 저편에서 철제 구조물을 실은 트랙터가 덜커덕거리며 나타난다. 트랙터 뒤를 청색 트럭이 따라온다. 트랙터는 심 이장이, 트럭은 은주 씨가 몰고 있다. 수렁에 빠진 우리를 구하러 온 구조대다.
트랙터에 모판을 실어 트럭으로 옮기고 있다.
그때부터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된다. 네 사람이 달려들어 모판을 트랙터에 착착 싣고, 그 트랙터를 트럭 가까이 바짝 붙인 후 다시 네 사람이 달려들어 트럭에 착착 싣는다. 트럭 두 대에 모판 180개를 순식간에 나눠 실었다. 모판을 싣고 앞서거니 뒤서거니 다음 모내기할 의암리 논으로 갔다. 네 사람이 줄 서서 릴레이로 내리니 순식간에 끝난다.
저녁 7시, 각자 집에 가서 씻고 다시 만나 식당으로 갔다. 식당 문 닫기 전, 우리가 마지막 손님이다. 저녁을 먹으며 심 이장이 말한다. “형님, 이런 일 있으면 꼭 말하셔야 합니다. 저는 하나도 힘들 것 없습니다. 트랙터로 하면 금방 하지 않습니까. 형님이 말 못하시면 형수님이라도 저한테나 이 사람한테 꼭 전화해주세요.” 옆에서 은주 씨도 맞장구를 친다. “그래요, 언니. 꼭 같이해요. 안 힘들어요. 동생처럼 그렇게 해요. 네?”
참 고마운 사람들, 참 감사한 하루다.
모판을 논에 내렸다. 해가 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