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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견율비바사 제4권[4]
[염(念)과 사(思)]
“염(念)과 사(思)에서 무엇을 염이라 합니까?”
“움직여 옮김[動轉]이니, 어째서 움직여 옮기는가?
관하는 곳[觀處]에 처음으로 마음을 놓아두기 때문이니 이를 염이라 합니다.”
“무엇을 사라고 합니까?”
“선정하는 사람들이 마음을 관하는 곳에 놓아두고 마음속은 관하는 곳을 배회하는 것입니다.
또 사라고 함은 연구하는 마음[硏心]ㆍ집착하는 마음[著心]ㆍ잇따르는 마음[連心]이라 하니,
비유컨대 종소리와 같아서 처음에는 컸다가 나중에는 작아지니, 처음의 큰 소리는 염과 같고 나중의 작아짐은 사(思)와 같습니다.
새의 날개와 같아서 처음에는 움직이다가 나중에는 머무르니[定], 움직임은 염과 같고 머무름은 사와 같습니다.
꿀벌이 꽃을 땀과 같으니, 처음에 가서 닿음은 염과 같고 나중에 선택함은 사와 같습니다.
[초선]
초선(初禪)에 다섯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염(念)이요, 둘째 사(思)요,
셋째 기쁨[喜]이요, 넷째 즐거움[樂]이요,
다섯째 정(定)이니,
이것이 다섯 가지입니다.
마치 큰 나무에 꽃이 있고 열매가 있음과 같고,
또한 초선에 염이 있고 사가 있어서 고요함으로부터 일어남과 같습니다.”
물었다.
“무엇을 고요함이라고 합니까?”
대답하였다.
“5개를 여읨을 고요함이라 합니다.
기쁨과 즐거움에서 기쁨이란 만족함입니다.
무엇이 만족하는가?
몸과 마음의 기쁨이 만족한 것이니, 즐겁고 기쁨의 가장자리 맛[邊味]이 기쁨입니다.
즐거움이란 두 가지 괴로움인 몸의 괴로움ㆍ마음의 괴로움을 버려 없애는 이것을 즐거움이라 하니, 즐거움은 그 생각의 맛[想味]에 닿는 것입니다.”
또 물었다.
“무엇을 기쁨이라 합니까?”
“마음이 살찌고 장하여 그 생각이 극히 좋은 것을 기쁨이라 하고, 즐거움이란 만족하여져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또 두 가지 법은 떠날 수 없습니다.
만약 기쁨이 있으면 즐거움이 있고, 즐거우면 기쁨이 있으니,
기쁨은 행음(行陰)을 포함해 들이고, 즐거움은 수음(受陰)을 포함해 들입니다.
마치 어떤 사람이 길을 걷다가 목이 마르나 물이 없었는데 물이 있는 곳을 듣고 기쁜 마음을 냄과 같으니, 이것을 기쁨이라 하며,
다다른 뒤에 물을 마시고 목욕하는 이것을 즐거움이라 합니다.
초선정에서 처음[初]이란 첫째의 선이요, 정이란 잘 태움[善燒]입니다. 또는 선사(禪師)가 관하는 법을 말합니다.”
“무엇을 잘 태운다고 합니까?”
“덮어 가리움[覆蓋]을 아주 잘 태우는 것이요, 또 번뇌를 끓음을 말함이요, 또한 봄[見]을 말합니다.”
“무엇을 본다고 합니까?”
“법의 모습을 자세히 살펴보아 위의 8삼매법(三昧法)을 접하여 지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사나아람마나(迦師那阿攬摩那)의 모습이며 가사나아람마나를 자세히 살피기 때문에 선정이라 하고, 이는 불도의 과를 봅니다. 왜냐하면 모습을 자세히 살피게 되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모습을 자세히 살핌[觀相]이라 합니까?”
“무상을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니, 자세히 살핌으로써 도를 이루고, 결과로써 멸제를 자세히 살피니, 그러므로 선정을 모습을 자세히 살피는 것이라 합니다. 율문 중에서 말씀한 바입니다.”
“무엇을 초선이라 합니까?”
“염이 있고, 사가 있고, 기쁨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정이 있는 이것을 초선이라 합니다.
사람에게 물건이 있음과 같고 사람에게 권속이 있음과 같으니, 물건을 버리고 권속을 버리고서 따로 이름이 있겠습니까?”
“따로 이름이 없습니다.”
“선정도 그와 같습니다.
염을 버리고 사를 버리고 기쁨을 버리고 즐거움을 버리고 정을 버리면 다시는 딴 이름이 없으니, 이것이 선정입니다.
비유컨대 군사의 진지에 사람ㆍ병기ㆍ코끼리ㆍ말ㆍ공격 도구가 있음으로써 군사라 하고,
사람ㆍ병기ㆍ코끼리ㆍ말ㆍ공격 도구가 흩어져버리면 군사라는 이름이 없는 것처럼,
선정도 그와 같아서 위의 구절인 다섯 가지 법을 버리면 선정이란 이름이 없습니다.”
들음[入]이란 이르름이요, 또한 성취됨을 말합니다.
머무름이란 보리수 아래서 선정을 하면서 머무름입니다.
[들숨과 날숨]
“부처님은 보리수 아래 앉으시어 무엇을 관하셨습니까?”
“날숨과 들숨을 관하였습니다.”
“다른 선정도 있습니까?”
“있습니다.”
법사가 말하였다.
“선정의 법은 『정도경(靜道經)』에 있습니다.
내가 자세히 설명하면 그 뜻이 깊고 멀므로 곧 어지러워 질 것이니, 『아비담비바사(阿毘曇毘婆沙)』에서 그대들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지금 말하는 바는 『정론비니비바사(正論毘尼毘婆沙)』에서 인데 나머지를 간략히 설명하리니, 이는 선정 제1품입니다.
[제2선]
‘염(念)과 사(思)가 없어짐’이란 염과 사이의 두 가지의 법이 지나가면 제2선정에 들게 되고, 제2선(禪)이 일어나면 이 두 가지의 법이 없어집니다.
왜냐하면 둘의 큰 가지를 지나가게 하기 때문이니, 제2선정이라 합니다.
또 제2선정 중에 초선정의 법이 없고 다른 법이 있으며, 초선정 중에 닿임의 법[觸法]이 처음이 되어 이 가운데 두 가지의 큰 가지를 지나면 곧 제2선정의 법을 얻는다고 하니,
그러므로 율문에서 ‘염과 사가 없어지고 제2선정에 든다’고 하였습니다.
내법(內法)이란 나타남[現]입니다.”
물었다.
“무엇을 나타남이라 합니까?”
대답하였다.
“나타남이란 몸에서 생기는 것입니다.
‘맑음[淸]’이란 때가 없음입니다. 선정도 맑음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푸른 옷은 푸른 빛깔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푸른 옷이라 하는 것처럼,
선도 그와 같으니, 맑은 법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맑은 선[淸禪]이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선정의 청정[淸定]이라고 합니까?”
“염과 사는 움직임의 바탕이니, 염과 사가 이미 없어지면 청정이라 합니다. 1상(相)이란 1법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무엇을 1법이 일어난다고 합니까?”
“염과 사를 돌보지 않게 되기 때문이니 이를 1법상(法相)이라고 합니다. 또한 위없다고 합니다.
또 1상이란 염과 사가 이미 떠난 것이며, 두 개가 없다고도 하니 이를 1상이라 합니다.”
“1법상이란 무엇을 1법상이라고 합니까?”
“삼매가 이것입니다.”
“무엇을 삼매라고 합니까?”
“한결 같은 마음이요, 둘이 없는 것입니다.
또한 정이라고 하며, 움직이지 않음[不動]이라고도 하니, 그러므로 제2선은 1상입니다.
왜냐하면 이름[名]이기 때문입니다.”
“무엇을 이름이라고 합니까?”
“나[我]가 아니며 생기(生氣)도 아니니 이를 이름이라고 합니다.”
“초선에는 맑음이 없습니까?”
“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초선도 1상이라 할 터인데 어째서 다만 제2선을 1상이라 합니까?”
“염과 사가 움직임은 물이 움직여 파랑이 일어나서 얼굴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니,
제1선도 그와 같아서 염과 사의 마음이 맑지 않음이 있기 때문이며,
이를 1상이 아니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삼매가 밝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제2선 삼매는 어째서 홀로 명료합니까?”
“마음이 깨끗하기 때문입니다.
‘삼매로부터 기쁨과 즐거움이 난다’고 함은 초선정삼매(初禪定三昧)에서 기쁨과 즐거움이 생기는 것이요, 이 제2선정에서 제2라 함은 숫자입니다.
초선정에 다섯 가지가 있는 것처럼,
제2선정에도 네 가지가 있으니,
무엇이 네 가지인가?
첫째는 맑음[淸]이요, 둘째는 기쁨[喜]이요, 셋째는 즐거움[樂]이요, 넷째는 일심(一心)입니다.
만약 자세히 말하면 네 가지가 있고, 간략하게 말하면 세 가지가 있으니, 경문에서 말한 바와 같습니다.”
“어느 때에 세 가지 기쁨ㆍ즐거움ㆍ일심이 일어납니까?”
법사가 말하였다.
“내가 이제 한 구절을 증명하리니, 나머지는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이는 제2선정품이 끝났습니다.>
[제3선]
<기쁨을 여읜다 함에 대해서이다.>
“무엇을 기쁨을 여의다고 합니까?”
“엷은 기쁨이니, 기쁨이 지나간 것이라고도 하며, 기쁨이 없어졌다고도 말하니, 이때에는 염과 사가 없어지고 기쁨이 또 다시 일어나는 것입니다.”
“제2선 중에 염과 사가 없어지면 기뻐진다고 논하고서, 왜 다시 거듭하여 말씀하십니까?”
“제3선을 칭찬하려고 하는 까닭에 말하는 것이니, 왜냐하면 마치 제3도(道)의 삿된 견해가 없어지지 않는 것과 같이 처음 수다원의 도에서 없어지기 때문입니다.
이제 제3도의 안에서 또 말하겠습니다.”
“무엇을 칭찬한다고 합니까?”
“제3도 때문이니, 이 가운데서도 그와 같습니다.”
“사(捨)이면서 머무른다 함에서, 무엇을 사라고 합니까?”
“사라함은 평등한 견해ㆍ치우치지 않은 견해ㆍ쏠리지 않는 견해ㆍ한결 같음[恒]ㆍ큼[大]ㆍ씩씩함[健]이 사(捨)이니 이는 제3선입니다.
또 사에는 열 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무엇을 열 가지라고 합니까?”
“첫째는 사랑구사(沙浪求捨)요, 둘째는 범마구사(梵磨求捨)요,
셋째는 보리등사(菩提等捨)요, 넷째는 비리구사(毘梨求捨)요,
다섯째는 행구사(行求捨)요, 여섯째는 촉구사(觸求捨)요,
일곱째는 관구사(觀求捨)요, 여덟째는 말사구사(末闍求捨)요,
아홉째는 지구사(智求捨)요, 열째는 청정구사(淸淨求捨)입니다.
이 열 가지의 사는 좋으니, 그 위치에 있는 사람의 마음으로 관하는 1상(相)에 인함이요, 간략히 해설하는 까닭입니다.
사리야(沙利耶)와 담마승가가니야(曇摩僧伽訶尼耶)와 정도도(淨道道) 세 곳에서 이미 널리 말하였으니,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만약 이 비니에서 자세히 말하면 어지럽기만 할 것입니다.”
“열 가지 사라 함은 어느 사를 취하였습니까?”
“말사구사를 취하였습니다.”
“무엇을 말사구사라고 합니까?”
“다른 일을 모르면서 기쁨으로 인하여 생기는 것입니다.”
“초선과 제2선 이 두 곳에는 말사구사가 없습니까? 바로 3선에만 있습니까?”
“초선과 제2선에도 있으나 아직 작아서 나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염과 사와 기쁨에 가리기 때문이니, 제3선 중의 염과 사와 기쁨은 이미 여의였으므로 나타나게 될 따름입니다.”
<정사지(正思知)에 대해서이다.>
“무엇을 사(思)라고 합니까?”
“마음으로 많은 생각을 내기 때문에 사라고 합니다.”
<지(知)에 대해서이다.>
“무엇을 지라고 합니까?”
“통달하는 앎(知)입니다.”
“무엇을 정사(正思)라고 합니까?”
“정사라 함은 잊지 않음[不忘]이요, 또한 의식[識]을 말하며, 또 일어나는 모양을 앎[起相知]이라고도 합니다.”
“무엇을 지(知)라고 합니까?”
“선택함입니다. 또한 무더기[聚]라고 하며, 넓음[廣]이라고도 합니다. 이는 간략한 해설이니, 말사 중에서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초선정에는 사(思)와 지(知)가 없습니까?”
“있습니다. 왜냐하면 사와 지가 없으면 무엇으로부터 나아가는 것이 처음의 법이겠습니까?”
“초선 중에는 어째서 사와 지가 나타나지 않았습니까?”
“아직도 몹시 무디기 때문입니다.
비유컨대 칼을 갈 적에 처음은 무디다가 나중에는 날카로워지는 것처럼,
사와 지도 그와 같아서 처음에 관하는 선정 중에는 아직도 몹시 무디니, 그러므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또한 사람들이 소젖을 짤 적에 송아지를 내몰되 멀리 해버리지 않으면 때때로 다시 오는 것과 같습니다.
제3선정의 즐거움도 기쁨을 여의되 멀리 해버리지 않음과 같습니다.
만약 사와 지를 수호하지 않으면 기쁨과 합해지니, 사(思)와 지(知)를 수호함이 자주 자주하고 강하면 여의어집니다.
즐거움이란 위없는 즐거움이요, 극락입니다. 왜냐하면 사와 지의 지킴 때문입니다.
뜻과 글이 이와 같으니,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
<몸으로써 즐거움을 안다고 함에 대해서이다.>
“무엇을 몸이라고 합니까?”
“이름과 물질인 몸[名色身]이니, 이름과 물질인 몸으로써 즐거움을 압니다.
왜냐하면 즐거움이 이름과 물질인 몸과 합하면 양 이치가 서로 합치되어 아주 좋은 재미가 되니, 앎과 좋은 재미가 서로 붙어서 앎이 생기고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몸으로써 즐거움을 압니다.”
착한 이가 ‘버리어서[捨] 사(思)가 있고 즐거움에 머무른다’고 말한 것을 물었다.
“무엇을 착한 이의 말이라고 합니까?”
“부처님ㆍ벽지불ㆍ성문은 제3선을 하는 사람을 위하여 제3선의 인연을 말하니, 이것을 착한 이의 말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말이라고 합니까?”
“열어서 보이도록 말하고 분별하는 것이며, 또한 찬탄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버리어서 사가 (있고) 즐거움에 머무르는 것입니까?”
“제3선정에 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듭니까?”
“지극한 즐거움 때문이니, 지극한 즐거움이 아름답게 가득참으로써 제3선정에서 버리는 것이요, 기쁨을 중지하여 일어나지 않게 하는 이것을 사가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착한 이의 생각하는 바와 즐거움에 드는 바와 즐거움이 순일하여 섞임이 없는 이것이 착한 이의 찬탄한 바입니다.
이 뜻을 본래 버리어서 사(思)가 (있고) 즐거움에 머무름이라 말하니, 착한 이의 찬탄함이 이와 같습니다.
제3선에 들음이란 제1ㆍ제2에 드는 것처럼 제3선도 그와 같습니다.
다른 것은 제1에는 다섯 가지가 있고, 제2에는 네 가지가 있고, 제3에는 두 가지가 있으니 경전에서 말씀한 바와 같습니다.”
“어느 때에 두 가지가 제3선정 중에서 나옵니까?”
“낙일심(樂一心)입니다.
<여기서 제3선품은 끝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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