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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비달마구사론 제11권
3. 분별세품 ④
이상에서와 같이 유정세간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으니,
[기세간]
이제 마땅히 기세간(器世間)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3륜]
게송으로 말하겠다.
기세간에 대해 안치 건립해 보면
풍륜(風輪)이 가장 아래 있으니
그 양에 있어 너비는 헤아릴 수 없으며
두께는 16낙차(洛叉)이다.1)
다음으로 그 위에는 수륜(水輪)이 있어
깊이가 11억 2만이었는데
밑의 8낙차는 수륜이 되었고
나머지는 응결하여 금륜(金輪)이 되었다.
이러한 수륜과 금륜의 너비의
직경은 12낙차와
3천 4백과 50이며
그 둘레는 이것의 세 배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러한 삼천대천세계는 다음과 같이 안립되어 그 형태와 양이 동일하지 않다고 인정[許]한다.2) 이를테면 온갖 유정들의 업의 증상력으로 말미암아 먼저 가장 아래에서 허공에 의지하여 풍륜(風輪, vāyumaṇḍala)이 생겨나니,3) 그 너비는 이루 헤아릴 수 없으며, 두께는 16억 유선나(踰繕那)이다.4) 이와 같은 풍륜은 그 자체 대단히 굳고 치밀하여 설혹 어떤 대(大) 낙건나(諾健那)가 금강륜(金剛輪:구역에서는 金剛杵, 무기의 일종)으로써 위력을 다해 내려치더라도 금강륜은 부서지는 일이 있어도 풍륜에는 어떠한 손상도 없다.5)
또한 온갖 유정들의 업의 증상력은 큰 구름과 비를 일으켜 수레바퀴 만한 물방울을 풍륜 위에 뿌리고 쌓아 수륜(水輪, jalamaṇḍala)을 이루게 된다. 이와 같은 수륜은 아직 응결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그 깊이가 11억 2만 유선나이다.
어찌하여 수륜은 옆으로 흘러 흩어지지 않는 것인가?
유여사는 설하기를,
“일체 유정의 업력에 의해 보지(保持)되어 옆으로 흘러 흩어지지 않게 되니, 마치 먹고 마신 음식물이 아직 완전히 소화되기 이전에는 끝내 숙장(熟藏)으로 흘러들어 떨어지지 않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6) 또한 유여사는 설하기를, “바람에 의해 보지됨에 따라 옆으로 흐르지 않게 되는 것이니, 마치 대바구니가 곡식을 보지하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다시 유정의 업력이 별도의 다른 바람을 초감(招感)하여 일으키고, 이것이 수륜을 후려치면 그 상부는 응결하여 금륜(金輪, kāñcanamaṇḍala)이 되는데, 마치 잘 익은 젖[熟乳]을 가만히 놓아두면 위의 부분은 응고하여 막을 이루게 되는 것과도 같다. 따라서 이전의 수륜은 감소하여 그 두께는 단지 8낙차(억)가 될 뿐이며, 그 나머지는 전변하여 금륜이 되었으니, 그것의 두께가 3억 2만 유선나이다.
[수륜과 금륜의] 두 륜의 너비는 그 수량이 동등한데, 이를테면 직경이 12억 3천 4백 5십 유선나이다. 그리고 그 가장자리를 둘러칠 경우 이 수의 세 배가 된다. 즉 그 둘레는 36억 1만 3백 5십 유선나가 되는 것이다.7)
[9산]
[3륜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9산(山)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소미로산(蘇迷盧山)은 중앙에 처해 있고
다음으로 유건달라산(踰健達羅山)과
이사타라산(伊沙馱羅山)과
걸지낙가산(朅地洛迦山)과
소달려사나산(蘇達黎舍那山)과
알습박갈나산(頞濕縛羯拏山)과
비나달가산(毘那怛迦山)과
니민달라산(尼民達羅山)이 있다.8)
4대주(大洲) 따위 밖에는
철륜위산(鐵輪圍山)이 있는데
앞의 일곱 산은 금으로 이루어져 있고
소미로산은 네 가지 보배로 이루어져 있으며
물에 잠긴 부분은 모두 8만 유선나인데
묘고산(妙高山)은 나온 부분도 역시 그러하나
나머지 여덟 산은 그 반반으로 감소하며
너비는 모두 높이의 양과 동일하다.
논하여 말하겠다.
금륜 위에는 아홉의 큰 산이 있는데, 묘고산왕(妙高山王)이 그 중앙에 처해 있고,9) 나머지 여덟 산은 묘고산의 주위를 둘러싸고 있다. 그리고 이 여덟 산 가운데 앞의 일곱 산을 내산(內山)이라고 이름한다. 즉 이 일곱 번째 산 밖에는 대주(大洲) 등이 있고, 그 밖에는 다시 철륜위산이 있어 마치 바퀴의 형태로 하나의 세계(즉 4대주)를 에워싸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지쌍산(持雙山:즉 유건달라산) 등의 일곱 산은 오로지 금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묘고산은 산 자체가 네 가지 보배로 되어 있다. 즉 북ㆍ동ㆍ남ㆍ서의 사면이 각기 차례대로 금ㆍ은ㆍ폐유리(吠琉璃:vaiḍūrya, 청색의 보석으로 猫眼石)ㆍ파지가(頗胝迦:sphaṭika, 수정을 말함)의 보배로 되어 있는데, 이 같은 보배의 위덕에 따라 그 색채가 허공에 나타나게 되니, 그래서 섬부주(贍部洲)의 허공은 폐유리의 색깔과 유사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와 같은 보배는 무엇으로부터 생겨난 것인가?
역시 온갖 유정들의 업의 증상력에 의해 다시 큰 구름이 일어나 금륜 위에 비를 뿌리게 되니, 그 물방울은 수레바퀴만 하였는데, 쌓이고 쌓인 물이 세차게 파도침에 그 물이 여러 보배들의 종자창고[種藏]가 되었다.
그리고 여러 가지 위덕을 갖춘 맹렬한 바람이 불어 그것을 뚫을 정도로 세차게 침에 따라 보배 등으로 변하여 생겨나게 되었던 것이다.
이와 같이 물이 변하여 보배 등으로 생겨났을 때, 원인이 소멸하고서 결과가 생겨나 그 자체 동시에 존재하지 않으니, 이는 수론(數論)이 주장하는 것처럼 전변(轉變)에 의해 이루진 것이 아니다.10)
수론에서는 어떤 전변의 교의를 주장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실재하는 법’[有法, dravya]으로서 자성(自性)이 항상 존재하여 [이로부터] 그 밖의 다른 법이 낳아지기도 하고, 그 밖의 다른 법이 [여기로] 멸하기도 한다고 주장한다.
이와 같은 전변설은 어떤 이치에 어긋나는 것인가?
이를테면 ‘실재하는 법’은 상주한다고 하면서 다시 별도로 법이 멸하기도 하고 법이 생겨나기도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누가 법 이외 별도의 다른 ‘실재하는 법’이 있다고 말한 것인가? 오로지 이러한 법이 전변할 때, [전변된] 다른 상[異相]의 소의가 되는 것을 일컬어 ‘실재하는 법’이라고 할 뿐이다.
이 같은 사실 또한 이치에 맞지 않는다.
무엇이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인가?
[자성은] 바로 이러한 만물[物, 즉 현상]이면서 이와 같은 만물이 아니다 라고 하는 이와 같은 말의 뜻은 일찍이 들어본 적이 없는 것이다.11)
이와 같은 금과 보배 등을 변화시켜 낳은 다음, 다시 업력에 의해 또 다른 바람을 일으켜 보배 등을 간별하여 끌어 모아 [아홉] 산을 이루었고, [네] 대륙[洲]을 성립시켰으며, 물은 단 것과 짠 것으로 나누어 내해(內海)와 외해(外海)로 별도로 성립시켰던 것이다.
이와 같은 아홉 산은 금륜 위에 위치하고 있는데, 물에 잠긴 부분의 수량은 모두 다 같이 8만 유선나이다. 그리고 소미로산의 경우 물 위로 나와 있는 부분 역시 그러하다.12)
그 밖의 다른 여덟 산의 경우 물 위로 나와 있는 부분은 [내산으로부터 외산에 이르면서] 점차 반반씩 감소하니, 이를테면 첫 번째 내산인 지쌍산이 물위로 나와 있는 부분은 4만 유선나이며, 나아가 최후인 철륜위산이 물위로 나와 있는 부분은 3백 12유선나 반이다.13)
그리고 이와 같은 9산 각각의 너비는 각기 물위로 나와 있는 자신의 높이의 양과 같다.
[8해]
[9산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8해(海)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아홉] 산 사이에는 여덟 바다[八海]가 있으니
앞의 일곱 바다를 내해(內海)라고 이름하는데
첫 번째 바다의 너비는 8만이고
네 변은 각기 그 세 배이다.
다른 여섯 바다의 너비는 반반으로 좁아지며
여덟 번째 바다를 외해(外海)라고 이름하는데
[그 너비는] 3낙차(억) 2만에
2천 유선나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묘고산으로부터 시작하여 최후의 철륜위산에 이르기까지 각 산들 사이에는 여덟 바다가 있는데, 앞의 일곱 바다를 내해(內海)라고 이름한다. 그리고 이 일곱 바다 중에는 모두 여덟 가지의 공덕수(功德水)로 채워져 있으니, 이를테면 첫째는 그 맛이 달며, 둘째는 차가우며, 셋째는 부드러우며, 넷째는 가벼우며, 다섯째는 맑고 깨끗하며, 여섯째는 냄새가 나지 않으며, 일곱째는 마실 때 목구멍이 손상되지 않으며, 여덟째는 마시고 나서 배가 아프지 않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일곱 바다 중 첫 번째 바다의 너비(즉 묘고산에서 지쌍산 사이의 거리)는 8만 유선나로서, 지쌍산의 안쪽 가장자리의 둘레의 길이에 근거하여 말해 보면 그 네 면의 양은 각기 그것의 세 배가 될 것이니, 말하자면 각각의 변은 2억 4만 유선나가 된다.14) 그 밖의 여섯 바다의 너비는 [첫 번째 바다의] 반반으로 좁아지니, 이를테면 두 번째 바다의 너비의 양은 4만 유선나이며, 내지 일곱 번째 바다의 너비의 양은 1천 2백 5십 유선나이다. 그리고 이러한 바다의 둘레에 대해 설하지 않은 것은 번거롭기 때문이다.15)
나아가 여덟 번째 바다를 이름하여 외해(外海)라고 하는데, 그곳에는 짠물로 가득 차 있다. 그 너비는 3억 2만 2천 유선나이다.16)
[4대주]
[8해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으니, 이제 마땅히 4대주(大洲)에 대해 논설해 보아야 할 것이다.]
게송으로 말하겠다.
[외해] 중에 있는 대주(大洲)의 상은
남쪽 섬부주(贍部洲)의 경우는 수레의 형태로
세 변은 각기 2천 유선나이고
남쪽의 변은 3유선나 반이다.
동쪽 비제하주(毘提訶洲)의 경우
그 상은 반달[半月]과 같으며
세 변은 섬부주와 같고
동쪽의 변은 3백 유선나 반이다.
서쪽 구타니주(瞿陀尼洲)의 경우
그 상은 둥글어 이지러짐이 없고
직경이 2천 5백 유선나이며
그 둘레는 이것의 세 배이다.
북쪽 구로주(俱盧洲)는 주사위와 같아
4면이 각기 2천 유선나로 동일하다.
중주(中洲)에도 또한 여덟 곳이 있으니
사대주 근처의 각기 두 곳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외해 중에는 대주(大洲)가 네 곳 있는데, 이를테면 묘고산의 네 면과 마주하고 있다.
즉 남쪽의 섬부주(贍部洲:Jambu-dvīpa)는 북쪽은 넓고 남쪽은 좁은데, [남쪽을 제외한] 세 변(邊)의 너비는 동등하여 그 형태가 마치 수레와도 같다. 즉 남쪽 변의 너비는 오로지 3유선나 반일 뿐이며, 다른 세 변의 너비는 각기 2천 유선나이다.
또한 오직 이 주에만 금강좌(金剛座)가 있는데, 위로는 지면[地際]에 닿아 있으며 아래로는 금륜에 근거하고 있다.
장차 정각(正覺)에 오르려고 하는 일체의 보살은 모두 이 금강좌 위에 앉아 금강유정(金剛喩定)을 일으키는 것이니,17) [최후신이 아닌] 그 밖의 소의신이나 [금강좌가 아닌] 다른 처소에서는 아무리 견고한 힘을 소유하였더라도 능히 이러한 선정을 지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동쪽의 승신주(勝身洲:Pūrvavideha-dvīpa, 게송에서 비제하주)는 동쪽은 좁고 서쪽은 넓은데, [동쪽을 제외한] 세 면의 너비는 동등하여 그 형태가 마치 반달과도 같다. 즉 동쪽 면의 너비는 3백 5십 유선나이며, 그 밖의 세 변은 각기 2천 유선나이다.18)
서쪽의 우화주(牛貨洲:Avaragodānīya-dvīpa, 게송에서 구타니주)는 그 형태가 둥근 만월과 같은데, 직경이 2천 5백 유선나이며, 그 둘레는 7천 유선나 반이다.
북쪽의 구로주(俱盧洲:Uttarakuru-dvīpa)는 그 형태가 네모진 의자[方座]와 같은데, 네 변의 너비는 동등하여 각기 2천 유선나이며, 둘레의 양은 8천 유선나이다.
여기서 ‘동등하다’고 말한 것은 증가하거나 감소하는 일이 없음을 분명히 밝히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각각의 주(洲)의 형상에 따라 그곳 사람들의 얼굴 모습도 역시 그러하다.
다시 여덟 곳의 중주(中洲)가 있으니, 이는 대주(大洲)에 딸린 권속이다.
즉 4대주 가장자리에 각기 두 곳의 중주가 있기 때문으로,
남섬부주 가장자리에 있는 두 곳의 중주란,
첫 번째는 차말라주(遮末羅洲:Cāmara-dvīpa, 猛牛로 번역됨)이며,
두 번째는 벌라차말라주(筏羅遮末羅洲:Avaracāmara-dvīpa, 勝猛牛로 번역됨)이다.
동승신주 가장자리에 있는 두 곳의 중주란,
첫 번째는 제하주(提訶洲:Deha-dvīpa, 身으로 번역됨)이며,
두 번째는 비제하주(毘提訶洲:Videha-dvīpa, 勝身으로 번역됨)이다.
서우화주 가장자리에 있는 두 곳의 중주란,
첫 번째는 사체주(舍搋洲:Śāṭha-dvīpa, 諂으로 번역됨)이며,
두 번째는 올달라만달리나주(嗢怛羅漫怛里拏洲:Uttaramantriṇa-dvīpa, 上義로 번역됨)이다.
북구로주 가장자리에 있는 두 곳의 중주란,
첫 번째는 구랍바주(矩拉婆洲:Kurava-dvīpa, 勝邊으로 번역됨)이며,
두 번째는 교랍바주(憍拉婆洲:Kaurava-dvīpa, 有勝邊으로 번역됨)이다.
이러한 일체의 중주는 모두 사람이 사는 곳이다.19)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오직 한 곳에는 나찰사(那刹娑, rākṣasa)가 살고 있다”고 하였다.20)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 주(洲) 북쪽에 아홉 흑산이 있고
설산(雪山)과 향취산(香醉山) 사이에
무열지(無熱池:즉 阿耨達池)가 있으니
그 가로 세로의 너비는 50유선나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 남섬부주 중앙(즉 중인도)으로부터 점차 북쪽으로 향하여 가면 세 곳에 각기 세 겹의 흑산(黑山)이 있고, 흑산 북쪽에는 대설산(大雪山:Mahāhimalaya-giri)이 있으며, 대설산 북쪽에는 향취산(香醉山:Gandhamādana-giri)이 있다.
바로 이 대설산 북쪽, 향취산 남쪽에 무열뇌(無熱惱:Anavatapta, 혹은 Anotatta, 즉 阿耨達)라고 이름하는 큰 못이 있다.
그리고 바로 이곳으로부터 네 개의 큰 강물이 흘러나오니, 첫째는 긍가하(殑伽河:Gaṅgā)이며, 둘째는 신도하(信度河:Sindhu)이며, 셋째는 사다하(徙多河:Śītā)이며, 넷째는 박추하(縛芻河:Vakṣu)이다.21)
무열뇌지는 가로 세로의 너비가 똑같은데, 네 면의 너비는 각기 50유선나이다.
여덟 가지 공덕수(功德水)가 그 안에 가득 차 있으며, 신통력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면 능히 그곳에 이르는 이가 없다.
그리고 이 못가에는 섬부(贍部, jamu)나무의 숲이 있는데, 나무의 형태는 높고도 크며 그 과실은 달고 맛있다.
바로 이 숲에 의거하여 [이 주(洲)를] ‘섬부주’라고 이름한 것이다.
혹은 이 나무의 과실에 의해 ‘섬부주’라는 명칭으로 설정하게 되었던 것이다.
[지옥]
다시 어떤 곳에 날락가(捺落迦:naraka, 즉 지옥)와 대 날락가(대지옥)가 위치하며, 그 너비의 양은 얼마이며, 몇 가지나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이 주(洲) 밑으로 2만 유선나를 지나면
무간(無間)이 있어 그 깊이와 너비는 동일하며
다시 그 위에는 일곱 날락가가 있는데
이 여덟 지옥에는 모두 열 여섯 ‘증(增)’이 있다.
즉 뜨거운 잿불과 송장의 똥오줌과
날카로운 칼날과 뜨거운 강물의 ‘증’이 있어
각기 각 날락가의 사방에 존재하며
이 밖에도 차가운 여덟 지옥이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이 남섬부주 밑으로 2만 유선나를 지나게 되면 아비지(阿鼻旨:Avīci, 즉 無間)라는 대날락가(大捺落迦)가 있어 그 깊이와 너비는 앞의 거리(남섬부주에서의 거리)와 동일하니, 말하자면 2만 유선나이다. 따라서 그 밑바닥은 이 섬부주로부터 4만 유선나 떨어져 있다.
즉 여기에서는 괴로움을 받는 것이 쉴 사이[間]가 없으니, 항상 괴로움을 받는 것은 아닌 다른 일곱 곳의 대날락가와 같지 않기 때문에 ‘무간’이라 이름한 것이다.22)
이를테면 등활(等活) 날락가와 같은 곳에서는 온갖 유정들의 몸이 비록 [칼에] 잘리고 [바늘에] 찔리고 [맷돌에] 갈리고 [절구에] 찧이는 등 여러 가지 괴로움을 당할지라도, 그들이 잠시 시원하게 부는 바람을 맞게 되면 다시 본래대로 소생한다.
곧 이와 같은 이치로 말미암아 ‘등활’이라 이름한 것이지만 아비지 중에서는 이와 같은 일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아비지 중에서는 즐거워할 틈[間]이 없이 괴로움만 존재하기 때문에 ‘무간’이라 이름한 것으로, 그 밖의 다른 지옥 중에서는 비록 이숙의 즐거움은 없다 할지라도 등류의 즐거움은 있기 때문에 즐거워할 틈은 있다”고 하였다.23)
그 밖의 일곱 날락가는 무간지옥 위에 있는데, 겹겹이 쌓여있다.
그 같은 일곱이란 무엇인가?
첫째는 극열(極熱)이며, 둘째는 염열(炎熱)이며, 셋째는 대규(大叫)이며, 넷째는 호규(號叫)이며, 다섯째는 중합(衆合)이며, 여섯째는 흑승(黑繩)이며, 일곱째는 등활(等活)이다.24)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이러한 일곱 날락가는 무간지옥 옆에 있다”고 하였다.
이러한 여덟 날락가의 증(增)에는 각기 열여섯 곳이 있다.25)
그래서 박가범(薄伽梵)께서도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게송을 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여덟 날락가는
참으로 벗어나기 어렵다고 나는 설하니
뜨거운 쇠로서 땅을 삼으며
주위는 쇠담으로 둘러쳐져 있기 때문이다.
지옥의 4면에는 비록 네 문이 있지만
철부채[鐵扇]로써 열고 닫으며
그 너비의 분량을 교묘히 배치하여
각각에 열여섯 곳의 증(增)이 있기 때문이다.
너비가 수백 유선나인 그곳은
악업을 지은 이들로 가득한데,
뜨거운 불꽃이 두루 퍼져 넘실대며
맹렬한 불길이 늘 이글거리기 때문이다.26)
열여섯 곳의 ‘증’이란 8날락가의 4면 문 밖의 각기 네 곳을 말한다.
첫 번째는 뜨거운 잿불의 증[煻煨增:구역에서는 熱灰園]이니,
이를테면 이러한 ‘증’에서는 뜨거운 재가 무릎까지 차있어 유정이 그곳을 노닐면서 잠시라도 그의 발을 내려놓게 되면 피부는 물론이고 살과 피도 모두 불에 타 문드러지게 된다.
그러나 만약 발을 들게 되면 다시 생겨나고 회복되어 본래의 상태와 같게 된다.
두 번째는 송장의 똥오줌의 증[屍糞增:구역에서는 死屍園]이니,
이를테면 이러한 ‘증’에서는 송장의 똥오줌이 진창으로 가득한데, 여기에는 입은 날카롭기가 침과 같고, 몸은 희며 머리는 검은 낭구타(娘矩吒)라고 하는 벌레가 수없이 우글거려 유정이 그곳을 노닐게 되면, 그들은 모두 살갗을 뚫고 뼛속으로 파고 들어간 이 벌레들에게 골수를 먹히게 된다.27)
세 번째는 칼날의 증[鋒刃增:구역에서는 刃路園]이니, 이를테면 이러한 ‘증’에는 다시 세 가지 종류가 있다.
첫째는 ‘칼날의 길[刀刃路]’이니,
이를테면 여기에서는 칼날을 늘어놓고 큰길로 삼았다. 그래서 유정이 그곳을 노닐면서 잠시라도 그의 발을 내려놓게 되면 피부는 물론이고 살과 피가 모두 끊어지고 부서져 버리고 만다. 그러나 만약 발을 들게 되면 다시 생겨나고 회복되어 본래의 상태와 같게 된다.
둘째는 ‘칼잎의 숲[劍葉林]’이니,
이를테면 이 숲의 나뭇잎은 순전히 날카로운 칼날로 되어 있어 유정이 그 아래서 노닐다가 바람이 불어 그 잎이 떨어지게 되면 팔 다리와 몸[肢體]은 그것에 잘리고 찔리며, 끝내 뼈와 살점이 말라 떨어진다. 그러면 까마귀와 박(駮:범을 먹는 말과 비슷한 짐승)과 개가 그것을 씹어 뜯어먹는 것이다.
셋째는 ‘쇠 가시의 숲[鐵刺林]’이니,
이를테면 이 숲의 나무에는 길이가 열여섯 마디 정도나 되는 날카로운 쇠 가시가 박혀 있어 유정들이 괴로움에 핍박당해 이 나무를 오르내릴 때면 그 같은 가시의 날카로운 칼날이 아래위에서 그를 찌르고 꿰뚫는다. 여기에는 또한 ‘부리가 쇠로 된 새[鐵嘴鳥]’가 있어 유정의 눈알이나 심장과 간을 다투어 쪼아먹는다.
이처럼 ‘칼날의 길’ 등의 세 가지는 비록 그 종류는 각기 다를지라도 쇠의 무기[鐵仗]가 동일하기 때문에 하나의 ‘증’에 포섭시킨 것이다.
네 번째는 뜨거운 강물의 증[烈河增:구역에서는 熱江園]이니,
이를테면 이러한 ‘증’은 넓을 뿐더러 그 안에는 뜨겁고 짠물로 가득 차 있다. 만약 유정이 거기에 들어가거나, 혹은 떠 있거나, 혹은 가라앉았거나, 혹은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거나, 혹은 따라 내려가거나, 혹은 가로 질러가거나, 혹은 돌아가거나 간에 쪄지고 삶겨져 살과 뼈가 문드러진다.
마치 큰 가마솥 안에 잿물을 가득 채운 다음 깨나 쌀 등을 넣고 아래서 불을 맹렬하게 지피게 되면 깨 등은 그 안에서 아래위로 회전하면서 그 자체 불어 문드러 터지는 것과 마찬가지로, 유정도 역시 그러하다.
설사 도망가려고 해도 양 강둑 위에는 여러 옥졸(獄卒, nalaka-pāla)들이 손에 칼과 창을 들고 지키면서 돌게 하므로 나갈 수가 없다.
즉 이 같은 강은 성을 싸고 있는 해자[塹]와 같고, 앞의 세 가지는 성의 동산[園]과 유사한 것이다.
[8대지옥] 4면에 각각 네 곳의 ‘증’이 있기 때문에 모두 열 여섯 곳이라고 말한 것으로, 이는 바로 증상(增上)의 형벌과 해코지[形害]를 받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을 설하여 ‘증’이라 이름하였다. 즉 본래의 지옥에서 이미 그에 적합한 해코지를 당하였으면서 다시 거듭하여 해코지를 당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떤 이는 설하기를,
“유정은 지옥을 나와서도 다시 이 같은 괴로움과 조우하기 때문에 그러한 곳을 설하여 ‘증’이라 이름하였다”고 하였다.
[지옥을 지키는 옥졸은 유정인가]
지금 여기서 논의에 의해 논의를 낳게 되었으니,
그렇다면 온갖 지옥을 지키는 옥졸들은 유정인가, 유정이 아닌가?28)
어떤 이는 설하기를, “유정이 아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가?
유정의 업력에 의해서이니, [옥졸은] 마치 성겁(成劫) 시의 바람과 같은 것이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대덕(大德) 법선현(法善現, Dhārmika Subhūti)이 설한 바와 어떻게 회통시킬 것인가?
즉 그는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하고 있다.
마음에 항상 분노의 독을 품고
즐거이 온갖 악업을 쌓으며
다른 이의 고통을 보며 기뻐하는 이는
죽어 염마(琰魔, Yama)의 옥졸이 될 것이다.
염마왕이 여러 나찰사(邏刹娑, rākṣasa)를 시켜서 여러 유정들을 지옥에 던지게 하면 그러한 이를 염마의 옥졸이라 이름하는데, 이는 실로 유정이지만 지옥 중에서 유정을 해코지하는 자는 아니다. 따라서 [염마의 옥졸은 유정이지만] 지옥의 옥졸은 유정이 아니다.29)
그러나 어떤 이는 설하기를, “[지옥의 옥졸은] 유정이다”고 하였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이들의 악업은 어떠한 처소에서 그 이숙과를 받을 것인가?
바로 지옥 중에서이다.
지옥 중에서는 하물며 무간업(無間業)에 의해 초래되는 이숙과를 받는 것조차도 허용되는데 어떠한 이유에서 이를 받지 못할 것인가?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지옥의] 불은 그들을 태우지 못하는 것인가?
이는 결정코 업력에 의해 격리 장애 되어 있기 때문이다.
혹은 다른 대종을 초감(招感)하였기 때문에 불에 타지 않는 것이다.
뜨거운[熱] 날락가에 여덟 가지가 있다고 이미 논설하였다.
다시 그 밖에 여덟 종류의 차가운[寒] 날락가가 있다.
무엇이 여덟 가지인가?
첫째는 알부타(頞部陀)이며, 둘째는 니랄부타(尼刺部陀)이며, 셋째는 알찰타(頞哳陀)이며, 넷째는 확확바(臛臛婆)이며, 다섯째는 호호바(呼呼婆)이며, 여섯째는 올발라(嗢鉢羅)이며, 일곱째는 발특마(鉢特摩)이며, 여덟째는 마하발특마(摩訶鉢特摩)이다.30)
여기에 머무는 유정은 혹독한 추위에 핍박되어 몸과 소리에 변화가 생겨남에 따라 이러한 명칭을 설정한 것으로,31)
이러한 여덟 가지 지옥은 남섬부주 아래, 앞에서 설한 바와 같은 대지옥과 나란히 붙어 있다.
이 남섬부주는 그 너비가 얼마 되지 않는데, 그 아래에 무간지옥 등의 온갖 지옥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는 것인가?
주(洲)는 마치 곡식을 쌓아놓은 것처럼 위는 뾰족하고 아래는 넓게 퍼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대해(大海)는 그 너비가 좁아지면 좁아질수록 그 깊이는 점점 깊어지는 것이다.
앞에서 논의한 바와 같은 열여섯 가지 지옥(8熱과 8寒지옥)은 일체의 유정의 증상업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그러나 그 밖의 고(孤)지옥은 각각의 유정의 개별적인 업[別業]에 의해 초래된 것이다.
즉 혹 어떤 경우에는 다수의 유정에 의해, 혹은 두 명의 유정에 이해, 혹은 한 명의 유정에 의해 초래되기도 한다.
또한 머무는 처소의 차별도 다양하여 일정하지 않으니,
혹 어떤 것은 강이나 하천, 산간, 광야 근처에 있기도 하고,
혹은 어떤 것은 지하나 공중에 있기도 하며,
혹은 그 밖의 다른 어떤 곳에 있기도 한다.32)
온갖 지옥의 기세간이 어디에 안포(安布)되어 있는가?
이처럼 본처(本處)는 [남섬부주] 밑에 있지만, 지파(支派)는 일정하지 않다.
[축생]
방생(傍生:즉 짐승)이 머무르는 곳은 말하자면 물과 육지와 공중으로, 본처는 대해(大海)였지만 후에 다른 곳으로도 흘러들게 되었던 것이다.
[아귀]
온갖 아귀의 본처는 염마왕(琰魔王)의 나라이다.33)
즉 이 남섬부주 아래로 5백 유선나를 지나면 염마왕의 나라가 있어 폭과 너비의 양도 역시 그러한데(5백 유선나이다),
온갖 아귀는 바로 이로부터 전전(展轉)하여 다른 곳에도 흩어져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혹 어떤 아귀는 단엄(端嚴)하고도 크나큰 위덕을 갖춘 것도 있고,
온갖 부락(富樂)을 향수하며 자재하기가 신과 같은 것도 있으며,
혹은 배고픔에 시달려 얼굴이 누추한 것도 있는데,34)
이와 같은 등등의 종류에 대해서는 경에서 널리 설하고 있는 바와 같다.35)
[해와 달이 머무는 곳의 너비 등]
해와 달이 머무는 곳의 너비 등에 대해 게송으로 말하리라.
해와 달은 소미로산의 중턱[半]에 있는데
[그 직경은 각기] 51과 50유선나로서,
밤중과 일몰과 한낮[日中]과
일출은 4대주에서 같은 시간이다.
비오는 계절[雨際]의 두 번째 달의
후반 제9일부터 밤은 점차 길어지고,
추운 계절[寒際]의 네 번째 달도 역시 그날부터
밤이 짧아지니, 낮은 이와 반대이다.
낮과 밤에 납박(臘縛)이 증가하는 것은
[해가] 남쪽 길과 북쪽 길로 운행할 때이며,
[달은] 해에 가까이 갈 때 자신의 그림자에 덮이니,
그래서 달의 바퀴가 일그러져 보이는 것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해와 달과 뭇 별들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는 것인가?
바람[風]에 의지하여 머문다.
이를테면 온갖 중생들의 업(즉 共業)의 증상력은 다같이 바람을 인기하니, 그러한 바람이 묘고산을 돌고 공중을 선회하여 해 등을 운행시키며, 그것들이 멈추어 떨어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것들이 머물고 있는 곳은 이 곳(즉 남섬부주)으로부터 몇 유선나 떨어져 있는가?
지쌍산의 꼭대기(즉 4만 유선나)에 있으니, 그곳은 바로 묘고산의 중턱과 나란히 하는 곳이다.
해와 달의 직경은 몇 유선나인가?
해는 51유선나이며, 달은 오로지 50유선나일 뿐이다.
별의 경우 가장 작은 것은 1구로사(俱盧舍)이며,36) 가장 큰 것은 16유선나이다.
일륜(日輪) 아랫면의 파지가(頗胝迦, sphaṭika, 수정) 보배는 화주(火珠)로 이루어져 능히 뜨거우면서 능히 비추는 것이며, 월륜(月輪) 아랫면의 파지가 보배는 수주(水珠)로 이루어져 능히 차가우면서 능히 비추는 것이다.
즉 이 두 가지는 유정의 업의 증상력에 의해 생겨나 눈[眼]ㆍ몸ㆍ과일ㆍ꽃ㆍ농작물ㆍ약초 등에 대해 그것이 상응하는 바대로 이익이 되기도 하고 손해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37)
오로지 하나의 해와 달이 두루 4대주에서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의 해는 4대주에서 동시에 해야 할 일을 하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렇지 않다.
어째서인가?
북구로주가 한 밤중이면 동승신주는 일몰이며, 남섬부주는 바로 한낮이고, 서우화주는 일출이다.
즉 이러한 4시(時)는 같은 시간이니,38) 그 밖의 경우에 대해서도 마땅히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39)
해가 이 주(즉 남섬부주)를 운행하는 길에 차별이 있기 때문에 밤과 낮이 짧아지기도 하고, 길어지기도 한다.
즉 비 오는 계절[雨際]의 두 번째 달의 후반 제9일째부터는 밤이 점차 길어지고, 추운 계절[寒際]의 네 번째 달의 후반 제9일째부터는 낮이 점차 짧아진다.40)
그리고 낮이 길어지고 짧아지는 것은 이와 반대이니, 밤이 점차 길어질 때에는 바로 낮이 점차 짧아지고, 밤이 점차 짧아질 때에는 바로 낮이 점차 길어진다.
그렇다면 낮과 밤이 길어질 때에는 하루의 낮 밤이 얼마만큼 길어지는 것인가?
1납박씩 증가하며,41) 낮 밤이 짧아지는 시간의 양도 역시 그러하다.
그리고 해가 이 남섬부주를 운행함에 있어 남쪽으로 향하거나 북쪽으로 향하면, 그 순서대로 밤이 길어지거나 낮이 길어진다.
어떠한 까닭에서 월륜(月輪)은 흑반(黑半:즉 보름 이후)이 끝나는 상태나 백반(白半:보름 이전)이 시작하는 상태에 있을 때 이지러져 보이는 것인가?
『세시설론(世施說論)』에서는 다음과 같이 해석하고 있다.42)
“달의 궁전이 운행하다 일륜(日輪)에 가까워짐으로써 달은 일륜의 빛을 받아 그 빛을 침해당하고, 그 밖의 다른 가장자리는 그림자를 낳아 스스로 달의 바퀴를 가리게 되니, 이 때 원만하지(둥글지) 않게 보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선구사(先舊師)는 해석하기를,
“일륜과 월륜은 그것이 가는 길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둥글거나 이지러져 나타나는 것이다”고 하였다.43)
해 등의 궁전에는 어떠한 유정이 살고 있는 것인가?
사대천왕(四大天王)에게 소속된 천중(天衆)들이 살고 있다.44)
그렇다면 이러한 온갖 천중은 오로지 여기에만 머무는 것인가?
만약 공중에 사는 천[空居天]이라면 오로지 이와 같은 해 등의 궁전에 머물지만, 만약 땅에 사는 천[地居天]이라면 묘고산의 여러 층급(層級) 등에 머물고 있다.45)
[사대천왕]
[그렇다면 묘고산에는] 몇 가지 층급이 있으며, 그 너비의 양은 얼마나 되는가?
또한 어떠한 천중이, 어떠한 층급에 머물고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묘고산의 층급에는 네 가지가 있는데
서로 각기 일만 유선나씩 떨어져 있으며
옆으로 돌출된 너비의 양은 1만 6천,
8천, 4천, 2천 유선나이다.
견수(堅手)와 지만(持鬘)과
항교(恒憍)와 사대천왕의 무리가
각기 순서대로 네 층급에 살고 있으며
그 밖의 일곱 산에도 역시 머물고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소미로산에는 네 층급이 있는데, 수륜의 끝으로부터 시작하여 제1층을 다할 때까지 서로 떨어진 거리의 양은 1만[十千] 유선나이다.
이와 같이 하여 제3층으로부터 제4층을 다할 때까지의 거리도 역시 1만 유선나이다.
이 네 층급은 묘고산에서 옆으로 돌출하여 그 하반부의 반(즉 4만 유선나)을 전부 에워싸고 있는데, 첫 번째 층급의 돌출된 너비의 양은 1만 6[十六千] 유선나이며,
두 번째ㆍ세 번째ㆍ네 번째 층급의 돌출된 너비의 양은 그 순서대로 각기 8천ㆍ4천ㆍ2천 유선나이다.46)
견수(堅手)라고 이름하는 약차(藥叉, yakṣa) 신이 첫 번째 층급에 머물고 있으며,
지만(持鬘)이라 이름하는 약차신은 두 번째 층급에 머물고 있으며,
항교(恒憍)라고 이름하는 약차신은 세 번째 층급에 머물고 있는데,
이들 세 가지는 모두 사대천왕에 소속된 천중(天衆)들이다.
그리고 네 번째 층급은 사대천왕과 온갖 권속들이 함께 머무는 곳으로, 그래서 경에서는 이 같은 사실에 의거하여 ‘사대왕중천’이라 설하게 된 것이다.47)
이같이 묘고산 밖의 네 층급에 사대천왕과 그 권속들이 살고 있는 것처럼 지쌍산ㆍ지축산 등의 일곱 금산(金山) 위에도 역시 천중들이 살고 있으니, 이는 바로 사대천왕에 소속되는 봉읍(封邑)이다.
이와 같은 천을 일컬어 땅에 의지하여 머무는 ‘사대왕중천’이라고 하는데, 욕계천 중에서 이 천이 가장 넓다.
그렇다면 삼십삼천(三十三天)은 어떠한 처소에 주재하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묘고산 꼭대기는 8만 유선나로서
삼십삼천이 살고 있는데
그곳 네 모퉁이에는 네 봉우리가 있어
금강수(金剛手)가 머물고 있다.
중앙에는 선견(善見)이라 이름하는 궁성이 있어
둘레가 만 유선나나 되는데
높이가 일 유선나 반인 금성(金城)은
지면을 여러 가지로 장식하여 아름답고 부드럽다.
성 안에는 수승전(殊勝殿)이 있어
둘레가 천 유선나나 되는데
성 밖은 네 동산으로 장엄하였니
중차(衆車)ㆍ추악(麤惡)ㆍ잡립(雜林)ㆍ희림(喜林)이 그것이다.
또한 [네 동산의] 사방에는 미묘한 땅이
각기 동산과 2십 유선나씩 떨어져 있고
[성밖] 동북쪽에는 원생수(圓生樹)가 있으며
서남쪽에는 선법당(善法堂)이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삼십삼천]
삼십삼천은 수미로산 꼭대기에 머물고 있다.
그 꼭대기의 네 면은 각기 8만 유선나로서, 아래의 네 변과 그 너비의 양에 있어 어떠한 차이도 없다.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사방의 둘레가 8만 유선나로서, 네 변을 따로이 설하자면 각기 2만 유선나이다”고 하였다.48)
수미로산 꼭대기의 네 모퉁이에는 각기 하나의 봉우리가 있는데, 그것의 높이와 너비의 양은 각각 5백 유선나이다.
그리고 그곳에는 금강수(金剛手)라고 이름하는 약차신들이 살고 있어, 온갖 천들을 수호한다.
수미로산 꼭대기에는 선견(善見)이라 이름하는 궁성이 있는데, 한 면의 길이는 2천 유선나 반으로, 그 둘레는 만 유선나가 된다.
거기에는 높이가 1유선나 반이나 되는 금으로 만들어진 성(城)이 있다.
그곳의 땅은 평탄하며 역시 순금으로 만들어졌는데, 백한 가지의 형형 색색의 보배[雜寶]로 장식되어 있다.
그리고 땅의 촉감은 부드럽기가 마치 투라면(妬羅綿:tūlapicu, 비단의 일종)과도 같아서 그것을 밟을 때면 발에 따라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하니, 이곳이 바로 대제석(大帝釋:Śakra devānām-indra, 因陀羅神을 말함)이 도읍한 큰 성인 것이다.
또한 이 성 안에는 수승전(殊勝殿)이 있는데, 여러 가지 미묘한 보배를 모두 갖추고서 그것으로 장엄하여 다른 천궁이 이에 비할 바가 아니었기 때문에 ‘수승’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 한 면의 길이는 2백 5십 유선나로서, 둘레가 천 유선나나 되었다. 이상의 것들을 일러 성 안의 온갖 애호할 만한 것이라고 한다.
성 밖의 사방에는 네 동산으로 장엄되어 있는데, 이는 바로 그러한 온갖 천들이 함께 유희하는 곳이다.
즉 첫 번째는 중차원(衆車苑)이며, 두 번째는 추악원(麤惡苑)이며, 세 번째는 잡림원(雜林苑)이며, 네 번째는 희림원(喜林苑)이다.49)
이것은 바로 대성(大城, 즉 선견궁)을 장엄하는 외적인 장식이 된다.
네 동산의 네 측면에는 네 곳의 미묘한 땅[妙地, 구역에서는 善地]이 있는데, 그 중간을 기점으로 하여 각기 동산으로부터 20유선나씩 떨어져 있다.
이곳은 바로 온갖 천중들의 뛰어난 유희처로서, 온갖 천들은 이곳에서 서로 얽혀 승리를 겨루며 즐겁게 오락한다.
또한 성 밖 동북쪽에는 원생수(圓生樹)가 있는데, 이는 바로 삼십삼천이 욕락을 누리는 빼어난 곳이다.
이 나무가 땅속으로 뻗어 내린 뿌리의 깊이와 너비는 5유선나이며, 높이 솟고 넓게 퍼진 줄기와 가지의 높이와 너비는 다같이 백 유선나이다.
빼어난 잎과 활짝 핀 꽃에서는 미묘한 향기가 어지럽게 흩날리니, 순풍일 경우 그 향기는 백 유선나에 가득하고, 만약 역풍이 불더라도 5십 유선나까지 두루 퍼진다.
바람이 순풍일 때는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어떻게 역풍일 때 향기가 흩날릴 수 있는 것인가?
유여사는 말하기를,
“바람에 거슬려서 향기를 흩날리는 일은 없으며, 다만 나무의 경계를 벗어나지 않는 범위에 의거하여 역풍에도 향기를 흩날린다고 설한 것이다”고 하였다.50)
이치상으로 원생수에는 실로 이와 같은 공덕이 있으니, 흩날린 향기는 능히 바람을 거슬려서도 풍기는 것이다.
비록 하늘의 부드러운 바람[和風]이 그것을 끌어안아 막을지라도 능히 상속하여 다른 곳으로 흘러 나아가다가 점차로 미약해져 그 근처(즉 50유선나)에 이르러 문득 사라지니, 능히 멀리(즉 100유선나)까지 흩날리는 순풍일 때의 향기와는 같지 않은 것이다.
(유부의 正釋)
그렇다면 이와 같은 꽃의 향기는 자지(自地, 즉 자신의 대종)에 근거하여 [생겨나] 바람에 따라 다른 곳으로 상속 전지(轉至)하는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인가, 다만 풍기는 바람이 별도의 향기를 낳는다고 해야 할 것인가?
여기에 정해진 뜻은 없으니, 모든 궤범사(軌範師)는 이러한 두 가지 방안 모두에 과실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다.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어떠한 이유에서 박가범(薄伽梵)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겠는가?
꽃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 흩날릴 수 없고
뿌리와 줄기 등의 향도 역시 그러하지만
선사(善士)의 공덕의 향은 참으로 향기로와
역풍에서도 그 아름다움을 온갖 곳으로 두루 풍기네.51)
인간의 향기에 근거하였기 때문에 이같이 설한 것으로, [꽃 등의 향기에] 이와 같은 공능이 없다는 것은 세상사람들이 모두 알고 있기 때문이다.
화지부(化地部)의 경에서도 말하기를,
“이 [원생수의] 향기는 순풍일 때는 백 유선나까지 흩날리어 가득 차지만, 역풍일 때는 오직 50유선나에만 두루 찰 뿐이다”고 하였다.
[다시 이 같은 금으로 이루어진] 성 밖의 서남쪽 모퉁이에는 선법당(善法堂)이 있는데, 삼십삼천들은 때때로 이곳에 모여52) 여법(如法)하고 여법하지 않은 일 등에 대해 상세히 논의한다.
이와 같이 삼십삼천이 살고 있는 바깥의 기세간에 대해 이미 분별하였다.
[그 밖의 하늘]
그 밖의 다른 유색(有色)의 천중들이 머물고 있는 기세간은 어떠한 곳이 있는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그(즉 삼십삼천) 위의 유색의 천들은
허공[空]에 의지하는 궁전에 머물고 있다.53)
논하여 말하겠다.
이 앞에서 설한 삼십삼천 위에 존재하는 유색의 온갖 천은 허공에 의지하는 궁전에 머물고 있다.
위에 존재하는 유색의 온갖 천이라 함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를테면 야마천(夜摩天)과 도사다천(覩史多天)과 낙변화천(樂變化天)과 타화자재천(他化自在天)과 아울러,
앞(권제8)에서 논설한 범중천(梵衆天) 등의 열여섯 처소를 말하니,
앞의 천(사대왕중천과 삼십삼천)과 합하여 22천은 모두 외적인 기세간에 의지하는 것이다.
[6욕천]
이상에서와 같이 설한 온갖 천중들에 대해 게송으로 말하겠다.
6욕천은 교합하고, 포옹하고, 손을 잡고
웃음짓고, 바라보며 음욕(婬欲)을 향수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오로지 6욕천54)만이 묘욕(妙欲)의 경계를 향수한다.
그 중에서 땅(즉 소미로산)에 의지하여 살고 있는 앞의 두 가지 천은 신체적인 형태상으로 교합하여 음애(婬愛)를 성취하니, 인간과 다름이 없다.
그렇지만 풍기(風氣)만을 배설함으로서 뜨거운 번뇌[熱惱]를 바로 제거하니, 인간처럼 다른 어떤 부정(不淨)을 갖는 것은 아니다.
야마천의 무리는 잠시 동안 포옹함으로써 음애를 성취하며,
도사다천은 단지 손을 잡는 것에 의해 음애를 성취하며,
낙변화천은 오로지 서로를 향해 웃기만 하면 바로 음애를 성취하며,
타화자재천은 서로 마주 봄으로써 음애를 성취한다.
그러나 비바사사(毘婆沙師)는 이와 같이 해석하고 있다.
“6욕천은 모두 신체적인 형태상으로 교합하여야 비로소 음애를 성취하니,
『세시설론(世施設論)』 중에서 서로 포옹하는 것 따위를 설한 것은 다만 그같이 [뜨거운 번뇌가 종식되는] 시간의 차별을 나타내기 위함이었다.”55)
즉 이상의 온갖 천들은 욕계의 경계로 전전(轉展)함이 미묘하고, 탐심(貪心)이 민첩하게 일어나기 때문에 그렇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짧은 시간에 다수의 음애를 성취하는 것이다.]
그곳의 동남 동녀는 그러한 온갖 천들의 남ㆍ여 무릎 위에서 홀연히 화생(化生)하는데, 그들을 일러 온갖 천에게서 태어난 남ㆍ여라고 한다.
갓 태어난[初生] 천중들의 신체의 크기는 어느 정도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갓 태어난 경우 5세로부터 10세 정도이며,
색계에서는 원만할 뿐더러 옷을 입고 있다.
논하여 말하겠다.
바야흐로 6욕(欲)의 온갖 천으로서 갓 태어났을 때의 신체의 크기는 그 순서대로 다섯 살ㆍ여섯 살ㆍ일곱 살ㆍ여덟 살ㆍ아홉 살ㆍ열 살 정도의 인간(남섬부주의 인간)과 같으며, 태어난 이후 신체의 형태는 빠르게 원만함을 성취하게 된다.
색계의 천중들이 갓 태어났을 때에는 신체와 크기가 두루 원만하며, 미묘한 의복을 입고 있다.
그리고 일체의 천중들은 모두 성언(聖言:바라문의 말)으로 말한다.
즉 그들이 사용하는 언사는 중인도의 그것과 같다.56)
[욕생과 낙생]
욕생(欲生)과 낙생(樂生)은 어떠한 차별이 있는 것인가?57)
게송으로 말하겠다.
욕생의 세 가지는 인간과 [욕계의] 천이며
낙생의 세 가지는 [색계의] 아홉 곳이다.
논하여 말하겠다.
[욕생]
욕생의 세 가지란 다음과 같다.
온갖 유정으로서 [자기 앞에] 현전하는 온갖 미묘한 욕계의 경계를 즐거이 향수(享受)하는 자가 있는데,
그는 이와 같은 현전한 욕계의 경계로 자유자재로 전전하니, 이를테면 인취(人趣) 전부와 아래 네 가지 천이 바로 그러하다.
온갖 유정으로서 자기가 변화시킨[自化] 온갖 미묘한 욕계의 경계를 즐거이 향수하는 자가 있는데,
그는 자신이 변화시킨 온갖 미묘한 욕계의 경계로 자유자재로 전전하니, 이를테면 다섯 번째 천인 낙변화천만이 오로지 그러하다.
온갖 유정으로서 다른 이가 변화시킨[他化] 온갖 미묘한 욕계의 경계를 즐거이 향수하는 자가 있는데,
그는 다른 이가 변화시킨 미묘한 욕계의 경계로 자유자재로 전전하니, 이를테면 여섯 번째 천인 타화자재천이 그러하다.
[이러한 욕생의 세 가지는 무엇에 근거하여 건립한 것인가?]
생겨난 대로 현전하는 욕계의 경계를 향수함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며,58)
즐기려고 하는 대로 자신이 변화시킨 욕계의 경계를 향수함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며,
즐기려고 하는 대로 다른 이가 변화시킨 욕계의 경계를 향수함에 근거하였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욕계 중에서 욕생의 차별을 세 종류로 분별한 것이다.
[낙생]
낙생의 세 가지란 [색계] 세 정려 중의 9처(處)의 생에서 세 종류의 낙(樂)을 향수하는 것을 말하니,
이를테면 욕계를 떠나 생겨난 희락[離生喜樂]과, 선정에서 생겨난 희락[定生喜樂]과, 그러한 희를 떠나는 미묘한 낙[離喜妙樂]에 안주(安住)하기 때문에 ‘낙생’이다.59)
다시 말해 그러한 낙생자는 오랜 시간 괴로움을 떠나 오랜 시간 즐거움을 수용하여 오랜 시간 안락하게 머물기 때문에 낙생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그렇다면 중간정려에 태어난 자에게는 희ㆍ락이 없을 것인데, 어떻게 그것을 역시 낙생이라 부를 수 있는 것인지 마땅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60)
[22천 사이의 거리]
앞에서 설한 온갖 천의 스물두 처소는 상하간에 서로 얼마나 떨어져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그 아래로 내려가는 거리의 양과 같이
위로 올라가는 거리의 수치도 역시 그러하다.
논하여 말하겠다.
각각의 천들 사이의 거리가 몇 유선나나 되는지는 쉽게 헤아려 볼 수 있는 성질의 문제가 아니다.
다만 그 아래로 내려가는 거리를 총괄적으로 언급할 수 있을 뿐이며, 위로 올라가는 거리 역시 그러하다.
즉 각 천들 사이의 거리는 어떤 천으로부터 그 밑의 바다로 내려가는 거리에 따르는 것으로, 그 위로 올라가는 거리는 그 아래(즉 바다)로 내려가는 거리와 동일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묘고산의 네 번째 층급으로부터 아래의 바다로 내려가는 거리는 4만 유선나인데,
이는 바로 사대천왕이 머무는 곳으로서, 이로부터 그 위의 삼십삼천(즉 묘고산 꼭대기)으로 올라가는 거리도 역시 그 천(즉 제4층급)에서 바다로 내려가는 거리와 동일하다.
또한 삼십삼천에서 대해로 내려가는 거리와 마찬가지로, 그 위의 야마천으로 올라가는 거리도 역시 그러하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선견천(善見天)에서 대해로 내려가는 거리와 마찬가지로 그것으로부터 색구경천으로 올라가는 거리도 역시 색구경천으로부터 밑의 바다로 내려가는 거리와 같다.61)
그리고 이 위로는 더 이상 [유색의 천중이] 머무는 곳이 없으며, 이 곳이 가장 높은 곳이기 때문에 ‘색구경(色究竟 Akaniṣṭha)’이라 이름한 것이다.
그런데 유여사는 설하기를,
“그것은 애구경천(礙究竟天, Aghaniṣṭha)이라고 해야 한다”고 하였다.
즉 그 논사는
“애(礙)라고 하는 말은 집적의 색을 근거한 것으로, 이 천에서는 그러한 ‘애’가 다하였기 때문에 구경(究竟, niṣṭha)이라는 명칭을 얻게 된 것이다”고 하였다.
[누가 하늘들을 볼 수 있는가]
하처(下處)에 태어날 경우 상승하여 위의 처소를 볼 수 있는가, 볼 수 없는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자신의] 신통력이나 다른 이에 의하지 않고서는
아래의 유정이 상승하여 위의 처소를 보는 일은 없다.62)
논하여 말하겠다.
삼십삼천은 자신의 신통력에 의해 본처(本處)로부터 능히 야마천으로 상승할 수 있다.63)
혹은 또한 다른 이의 힘에 의해서도 상승하여 위의 천을 볼 수 있으니, 이를테면 신통을 획득한 이나 위의 천중에 의해 영접되어 야마천으로 가는 것이다.
그 밖의 온갖 천들이 상승하는 것도 역시 그러하다.
그런데 만약 [위의 천이 하처로 내려] 오거나 혹은 [아래 천이 상처에] 이른 경우라면 하처에서도 [그 같은] 위의 천을 볼 수 있다.64)
그러나 아래 천의 눈[眼]은 상계(上界) 상지(上地)를 능히 볼 수 없으니, 그것의 경계가 아니기 때문으로 마치 [하지의 몸이] 그 같은 [상계 상지의] 촉을 지각할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렇기 때문에 상지로부터 하지로 내려올 때에는 자신의 몸[상계 상지의 몸]으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요컨대 하지의 몸으로 변화하여 내려오는 것이다.
그러나 다른 어떤 부파에서는,
“그러한 하지의 천도 낙욕(樂欲)에 따라 역시 능히 상지의 색을 볼 수 있으니,
이를테면 이러한 계(욕계)에서 태어난 하지가 [앞서 언급한 세 인연에 따라] 상지의 하늘을 보는 것과 같다”고 설하고 있다.65)
[이상 지거천의 너비 등에 대해 논설하였다.]
[하늘들의 넓이]
야마(夜摩) 등의 천궁이 근거하고 있는 처소의 너비는 얼마나 되는가?
유여사는 설하기를,
“이러한 4천(야마천 내지 타화자재천)이 근거하고 있는 처소의 너비는 묘고산의 꼭대기(즉 8만 유선나)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유여사는 설하기를,
“이 4천은 위로 올라가면서 각기 두 배씩 증가한다”고 하였다.
또한 유여사는 말하기를,
“초정려지의 궁전이 근거하고 있는 처소는 하나의 4대주와 같으며,
제2정려는 소천계(小千界)와 같으며,
제3정려는 중천계(中千界)와 같으며,
제4정려는 대천계(大千界)와 같다”고 하였다.
또한 유여사는 말하기를,
“아래 세 정려 천(天)의 너비는 그 순서대로 소천ㆍ중천ㆍ대천과 같으며, 제4정려 천의 너비는 그 끝이 없다”고 하였다.
[하늘들의 양, 소천ㆍ중천ㆍ대천 세계]
일반적으로 어느 정도의 양을 소천ㆍ중천ㆍ대천 세계라고 설한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4대주(大洲)와 해와 달과
소미로산과 욕계의 천과
범세(梵世)가 각기 1천 개인 것을
1소천세계라고 이름한다.
이러한 소천세계의 천 배를
설하여 중천세계라고 이름하며
이것의 천 배를 대천 세계라고 하니
이 모두는 동시에 이루어지고 허물어진다.
논하여 말하겠다.
천 개의 4대주와 내지 범세, 이와 같은 것을 모두 설하여 1소천세계라 하고,
소천세계를 천 배한 것을 1중천세계라고 하며,
천 개의 중천세계를 모두 설하여 1대천세계라고 한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천세계는 동시에 이루어지고, 동시에 허물어진다.
동시에 이루어지고 허물어진다고 하는 것에 대해서는 뒤(권제12)에서 마땅히 널리 분별하게 될 것이다.
[중샘들의 크기]
외적인 기세간의 크기가 각기 다르듯이 [그곳에 살고 있는 유정들의] 신체의 크기[身量]도 역시 다른가?
역시 다르다.
어떻게 다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섬부주에 사는 사람의 신장은
3주(肘) 반 내지 4주이며,
동ㆍ서ㆍ북 주의 사람은
차례대로 각기 두 배씩 증가한다.
욕계의 [가장 아래] 천은 구로사(俱盧舍)의
4분의 1로서, 점차 4분의 1씩 증가한다.
색계 천의 신장은 1유선나인데
처음 네 가지는 반반씩 증가하고,
그 이상은 두 배씩 증가하지만
오로지 무운천 만은 3유선나가 감해진다.
논하여 말하겠다.
남섬부주에 사는 사람들은 대개 그 신장이 3주(肘) 반이지만, 그 가운데 일부의 어떤 이들의 신장은 4주나 되는 경우도 있다.66) 동승신주에 사는 사람들의 신장은 8주이고, 서우화주에 사는 사람들의 신장은 16주이며, 북구로주에 사는 사람들의 신장은 32주이다.
욕계 6천 중 가장 아래 천취(즉 사대천왕천)의 신장은 1구로사(俱盧舍)의 4분의 1이며,67) 이와 같이 그 다음부터도 각기 4분의 1씩 증가하여 제6 천(타화자재천)에 이를 경우 그들의 신장은 1구로사 반이 된다.
색계 천의 신장은, 처음의 범중천은 반 유선나이며, 범보천은 완전한 1유선나이며, 대범천은 1유선나 반이며, 소광천은 2유선나 전부이다. 그리고 그 위의 다른 천의 경우는 모두 다 두 배씩 증가하는데, 다만 무운천 만은 거기서 3유선나를 감한다.68) 즉 무량광천의 신장은 소광천의 두 배로 증가하여 2유선나로부터 4유선나가 되며, 내지 색구경천의 신장은 증가하여 1만 6천 유선나가 되는 것이다.
신체의 크기에는 이미 다름이 있다고 하였다.
[중생들의 수명]
그렇다면 수명의 길이에도 역시 다름이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은 것인가?
역시 다름이 있다.
어떻게 다른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북주에 사는 이들의 정해진 수명은 천 년이고
서주ㆍ동주의 경우는 반반씩 감소되며
이 주(즉 섬부주)의 수명은 정해져 있지 않아
최후는 십 년이나 최초는 헤아릴 수 없다.
인간세계의 5십 년은
가장 아래 천의 하루 밤낮으로
그곳의 수명은 그에 따른 5백 년이며
그 위의 다섯 천은 두 배씩 증가한다.
색계 천에는 밤낮의 구별이 없는데
수명의 겁수(劫數)는 신장의 수량과 같다.
무색계 제1천의 수명은 2만 겁이고,
그 뒤로는 각기 2만씩 증가하는데,
소광천(少光天)의 위와 아래 천은
대겁의 전부와 그 반을 ‘겁’이라 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북구로주에 사는 사람들의 정해진 수명은 천 세(歲)이며, 서우화주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은 5백 세이며, 동승신주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은 2백 5십 세이며, 남섬부주에 사는 사람들의 수명은 결정된 한도가 없다. 즉 겁(劫)이 감해질 때의 최후의 수명은 십 년이지만 겁초 시에 인간의 수명은 헤아릴 수가 없으니, 백 천 등의 수로 능히 계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69)
인간 수명의 길고 짧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그런데 천계의 경우, 요컨대 먼저 천상의 밤낮시간을 설정한 연후에야 비로소 그 수명의 길고 짧음은 계산할 수 있다.
천상에서는 밤낮의 시간을 어떻게 설정하는 것인가?
인간세계의 5십년은 욕계 6천 중 가장 아래 있는 천(즉 사대왕중천)의 하루 밤낮에 해당한다. 그러한 밤낮에 30을 곱하면 한 달이 되고, 12달은 일 년이 되며, 이 같은 계산에 따라 그들의 수명은 5백 년이다.70)
그리고 그 위의 다섯 욕계천은 점차 다 같이 두 배씩 증가한다.
이를테면 인간의 백 세가 두 번째 천(삼십삼천)의 하루 밤낮이 되는데, 그러한 밤낮을 곱하여 한 달과 일 년이 되며, 이 같은 계산에 따라 그들의 수명은 천 년이다.
야마천 등의 4천은 순서대로 인간의 2백ㆍ4백ㆍ8백ㆍ천 6백 세가 하루 밤낮이 되며, 그러한 밤낮을 곱하여 한 달과 일 년이 되며, 이 같은 계산에 따라 그들의 수명은 순서대로 2천ㆍ4천ㆍ8천ㆍ만 6천 년이 된다.71)
지쌍산(즉 묘고산의 중간) 이상에는 해와 달이 모두 없는데, 그러한 하늘[天]에 어떻게 낮과 밤을 건립할 수 있으며, 아울러 그곳에서의 광명은 무엇에 의거하여 이루어지는 것인가?
예컨대 구물타(拘物陀)나 발특마(鉢特摩)와 같은 꽃이 벌어지고 닫히는 것에 의거하여 밤과 낮을 건립한다.72) 또는 온갖 새가 울고 조용해지는 차별에 의해, 혹은 천중이 깨어나고 잠들고 하는 차별에 의해 밤과 낮을 건립한다. 그리고 자신의 광명으로써 외적 기세간에서의 광명을 성취하는 것이다.
욕계천의 수명의 길고 짧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색계의 천에는 밤낮의 차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단지 겁수(劫數)로써 수명의 길고 짧음을 알 수 있을 뿐인데, 그들의 겁에 이르는 수명[劫壽]의 길고 짧음은 신체의 크기와 일치한다.
즉 만약 신체의 크기가 반 유선나라면 수명의 길이도 반 겁이며,
만약 그들의 신체의 크기가 일 유선나라면 수명의 길이도 일 겁이며,
내지 신체의 크기가 만 6천 유선나라면 수명의 길이도 역시 마찬가지로 만 6천 겁이다.
색계 천의 수명의 길고 짧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무색계의 4천(공무변ㆍ식무변ㆍ무소유처ㆍ비상비비상처)의 수명의 길이는 아래로부터 그 순서대로 2만ㆍ4만ㆍ6만ㆍ8만 겁이다.
이상에서 설한 겁(劫)은 그 양이 얼마나 되는 것인가?
괴겁(壞劫)의 그것인가, 성겁(成劫)의 그것인가? 혹
은 중겁(中劫)의 그것인가, 대겁(大劫)의 그것인가?73)
소광천(제2정려의 제1천) 이상의 천은 대겁의 전부(즉 80중겁)를 1겁으로 삼고, 그 이하의 온갖 천은 대겁의 반(40중겁)을 1겁으로 삼는데, 바로 이 같은 사실로 말미암아 ‘대범천왕은 범보천의 수명을 초과하니, 그의 수명의 양은 1겁 반이다’고 설하게 되었다.
즉 대범천왕은 성ㆍ주ㆍ괴겁의 각 20중겁으로써 60중겁을 취하여 1겁 반의 수명으로 삼았으니, 그래서 대겁의 반인 40중겁을 아래 세 천(범중ㆍ범보ㆍ대범천)의 수명을 재는 겁의 단위로 삼았던 것이다.74)
선취(善趣)가 갖는 수명의 길고 짧음에 대해 이미 논설하였다.
그렇다면 악취의 경우는 어떠한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등활(等活) 등의 위의 여섯 지옥은
차례대로 욕계 천의 수명을
하루의 밤낮으로 삼으며
수명도 역시 그들과 동일하다.
극열(極熱)에서의 수명은 중겁의 반이며
무간(無間)은 중겁의 전부이며
방생 중의 가장 긴 것은 1중겁이며
아귀는 [인간의] 한 달을 하루로 한 5백 년이다.
[극한지옥 중] 알부타의 수명은
이를테면 1마바하(麻婆訶)의 참깨를
백 년에 한 알씩 집어내어 다하는 기간이며
그 뒤로는 각기 20배씩 증가한다.
논하여 말하겠다.
사대왕 등의 6욕천의 수명을 순서대로 등활(等活) 등의 여섯 날락가의 하루 밤낮으로 삼으며, 그 수명 또한 차례대로 그러한 천과 동일하다.
이를테면 사대왕중천의 수명인 5백 년을 등활지옥에서는 하루 밤낮으로 삼는데, 이러한 하루 밤낮의 계산에 따라 한달이 되고 일년이 된다고 할 때, 이와 같은 연수로 그의 수명은 5백 년이 된다.75)
내지는 타화자재천의 수명인 만 6천 년을 염열지옥에서는 하루 밤낮으로 삼는데, 이러한 하루 밤낮의 계산에 따라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고 할 때, 이와 같은 년수로 그들의 수명은 만 6천 세이다.
그리고 극열지옥의 수명은 반 중겁이며, 무간지옥의 수명은 1중겁이다.
방생의 수명은 다양하여 정해진 한도가 없다. 만약 수명이 가장 긴 것을 들자면 역시 1중겁이니, 이를테면 난타(難陀) 등의 온갖 대용왕이 그러하다.
그래서 세존께서 말씀하기를,
“대용왕에는 여덟 가지가 있는데, 모두 1겁 동안 머물며 능히 대지를 지킨다”고 하였던 것이다.76)
아귀는 인간세계의 한 달을 하루로 삼는데, 이러한 하루 밤낮의 계산에 따라 한 달이 되고 일 년이 된다고 할 때, 그들의 수명은 5백 년이다.
극한(極寒) 날락가의 수명은 어느 정도인가?
세존께서는 비유로써 그들의 수명을 밝혀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이를테면 이곳의 인간들 사이에서 20가려(佉黎)는 마갈타국의 1마바하(麻婆訶)의 양을 담을 수 있는 용기인데, 거승(巨勝:tila, 호마 즉 참깨를 말함)을 그 안에 가득 부어놓고서 백 년에 하나씩 집어낸다고 할 때,
이와 같이하여 거승을 다 집어내는 것은 기약하기 쉬울지라도 알부타에 태어난 자가 그 수명을 다하기는 참으로 기약하기 어렵다.”77)
나아가 이것의 20배가 두 번째 날락가(즉 尼刺部陀)의 수명이 되며, 이와 같이하여 그 다음도 계속 20배씩 증가하니, 이것을 팔한지옥의 수명의 양이라고 한다.
이 같은 온갖 유정의 수명에 중간에 요절하는 일[中夭]도 있는 것인가?
게송으로 말하겠다.
모든 곳에서 중간에 죽는 일이 있지만
북구로주만은 제외된다.
논하여 말하겠다.
모든 곳에서의 수명은 다 중간에 요절하는 경우가 있지만 오로지 북구로주에서만은 수명이 천 세로 정해져 있다.
그런데 이 같은 사실(북구로주를 제외한 모든 처소의 유정이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있다는 사실)은 다만 처(處)에 근거하여 설한 것일 뿐 각기 개별적인 유정에 근거하여 설한 것이 아니다. 즉 개별적인 유정 중에는 중간에 죽지 않는 자도 있기 때문으로, 이를테면 도사다(도솔)천에 머무는 일생소계(一生所繫)의 보살과, 최후신의 보살과, 부처님의 수기를 받은 자와, 부처님의 사자와, 수신행(隨信行)ㆍ수법행(隨法行)과, 보살과 전륜왕의 어머니로서 그들을 잉태하고 있을 때, 이러한 이들은 각기 상응하는 바대로 중간에 요절하는 일이 없다.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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