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르투 리디아 호텔에서 아침식사를 하고 가이드를 기다린다.
가이드와 함께 버스에 올라 라트비아 시굴다로 향한다.
약 3시간이 소요된다고 한다.
가이드가 라트비아를 소개한다.
라트비아는 남한의 2/3 면적에 약180만의 인구가 있다.
젊은 층이 북유럽등으로 많이 떠나서 인구가 급속도로 줄고 있다.
전자 정부를 지향해서 신분증에 IC칩이 있어 현실과 인터넷 공간에서 신분을 밝힐 수 있다.
1991년 독립 후에 정부차원의 디지털 산업에 열중하고 있다.
러시아 인구가 30%정도인데 독립 후 일부는 러시아로 돌아갔다고 한다.
주요 수출품은 목재일 정도로 산림이 울창하다.
러시아로 부터 오는 가스가 단절되었으나 수력, 풍력, 천연가스로 전기를 생산한다.
따라서 전기세가 크게 올랐다고 한다.
국경도시 발가에서 잠시 휴식한다.
발가는 에스토니아 남부에 위치한 주로 라트비아와의 국경 지대에 위치해 있다.
국경을 사이에 두고 에스토니아의 발가와 건너편 라트비아의 발카로 나뉜다.
한때는 국경을 넘나들 때마다 번거롭게 검문을 받아야 했다.
2007년 양국 간 국경의 장벽이 사라질 때 에스토니아와 라트비아 양국의 대통령이 축하하는 행사를 가지기도 했다.
버스여행을 계속해서 라트비아의 시굴다에 도착한다.
시굴다는 라트비아 비드제메지역의 도시로 수도 리가에서 53km 떨어져 있다.
비드제메의 스위스라 불린다. 이 일대에 가우야강 주변의 원시림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는 데서 붙은 별명이다.
중세의 성인 시굴다성, 투라이다성과 크리물다성이 있고 가우야국립공원 지역에 위치해 볼거리가 풍부하다.
스포츠단지인 시굴다봅슬레이루지스켈레톤트랙과 발타이스플리겔리스콘서트홀이 있다.
먼저 가우야 국립공원을 방문했다.
투라이다 성은 고대 중세 성으로 트라이다 박물관 유적지에 있다.
1214년 리가의 대주교 거주지로 건립되었다.
처음에는 리브족의 목재로 지었으며 후에 폴란드, 스웨덴, 러시아 병사들에 의해 점령된 이후 방화로 1776년 성이 파괴되었다.
20세기 중반에 복원되어 새 벽돌로 복원되었기에 고색창연한 느낌은 부족하나, 라트비아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축물로 꼽힌다.
특히 빨간 벽돌이 인상적이며, 현재까지 보존된 커다란 탑에서 아름다운 가우야강의 전경이 바라보인다.
이어서 쿠트마니스 동굴을 방문한다.
이 동굴에서 흘러나온 물로 환자를 치료했던 치료사의 이름을 따 쿠트마니스라는 이름을 얻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작지만 아름다운 동굴이다. 암반과 토양특성 때문에 동굴자체가 형성되기 힘든 지역이다 보니 발트에서는 가장 크단다.
이 동굴에는 비극적인 사랑의 이야기가 전해진다.
트라이다 성에 살고있던 19살의 처녀가 같은 성에 살고 있는 독일인 정원사를 사랑했다.
이 사실을 알고 있던 폴란드 군인이 가짜 편지를 보내 이 처녀를 동굴로 유인한다.
그리고는 강간을 시도하자 처녀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며 그자리에서 자살한다.
동굴벽면에는 여러가지 각 국의 언어로 낙서가 되어있다.
시굴다에서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로 가는 도중에 점심식사를 하려고 교외 식당을 방문했다.
마침 라트비아의 초등학생들이 단체로 자전거 하이킹을 하다가 들러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동양인이 적은 곳이라 아주 신기하게 여겨 바둑두는 모습을 구경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물어보기도 했다.
식사 후에 리가로의 여행이 계속된다.
가이드의 라트비아 소개가 계속된다.
소련시절 건물을 무상으로 사용했으나 독립 후 현재 살고있는 사람을 기준으로 쿠폰으로 지급했다.
그런데 소련을 피해서 외국에 살던 원래주인이 소유를 주장하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한 건물에 건물주가여럿인 경우도 많다고 한다.
여기도 자녀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무조건 독립해야하는 문화이다.
드디어 리가에 도착한다.
리가는 라트비아의 수도로 인구가 65만 정도이고 아주 활발하고 생동감 있는 도시이다.
한자동맹 때 무역의 중심도시여서 도시 전체가 독일 풍이다.
한국 대사관에 상시 주재원이 있으며 에스토니아와 스웨덴 대사를 겸임한다.
리가의 검은머리 전당을 방문한다.
검은머리전당은 1334년에 처음 지어졌으며, 당시 상인들의 조합인 검은머리길드의 회원들이 세를 얻어서 사용했다.
1713년에 그들이 건물을 구입하여 지금과 같은 화려한 건물로 둔갑시켰다.
검은머리 길드의 회원은 젊은 독신의 상인들과 배의 선장들로 구성되었다.
상상 속의 아프리카 흑인 무어인인 '성 모리셔스'를 그들의 수호신으로 삼아서 검은머리라는 명칭이 유래되었다.
당시 전통사회에서 큰 역할을 한 이 길드의 행사에는 러시아 황제를 포함한 많은 귀빈이 참석할 정도로 영향력을 과시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인 1941년에 한 차례 파괴되었고 그 후에 라트비아를 점령한 소련에 의해 1948년에 완전히 파괴되었다.
라트비아가 독립한 후에 검은머리전당의 복구를 시작해 2000년에 완성했다.
2001년부터 도시의 800주년을 기념하여 관광안내소, 콘서트홀, 검은머리길드의 역사를 다룬 박물관 등으로 공개하고 있다.
리가의 구시가지에 여러가지 유명한 곳이 많다.
바로 옆에 있는 성베드로 성당을 방문한다.
1200년대에 세워진 로마네스크 양식의 교회로 여러차례 보수와 증축이 이어졌다.
성당은 카토릭교회, 루터교회, 박물관등으로 시대에 따라 기능이 바뀌었는데 지금은 루터교 소속이다.
1970년 시가지 전체를 볼 수있는 전망대를 만드로 엘리베이터도 설치했다.
성당 뒤쪽에는 그림형제의 동화 브레멘 음악대에 나오는 동물 4마리(당나귀, 개, 고양이, 수탉) 동상이 있다.
동물의 코를 만지면 행운이 온다고 하여 많은 사람이 손을 댄 흔적이 있다.
리가 구시가지는 전체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다.
16세기 화약저장고로 사용된 화약탑이 보인다.
스웨덴 문을 구경한다.
1698년 스웨덴 인들이 리가 도시를 점령한 기념으로 세워진 일종의 개선문으로 점령을 축하하기 위해 세워졌다.
자유의 여신상을 방문한다.
1918년 라트비아가 러시아 제국으로부터 해방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935년에 세워졌다.
기념비에서 가장 눈에 띄는 요소는 약 42미터 높이의 기둥 꼭대기에 있는 자유의 여신상이다.
뉴욕의 자유의 여신상과 함께 이 조각상은 자유를 상징하는 국제적인 상징물이다.
기둥 아래에는 자유, 정의, 형제애, 노동을 상징하는 네 명의 중요한 인물을 형상화한 조각이 있다.
시내관광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와 휴식을 취한다.
근처 공원에서 우리 일행과 만나기로 하고 풀룻을 연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