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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당집 제3권[2]
[정거 화상] 靖居
6조의 법을 이었고, 길주吉州에서 살았다. 화상의 휘諱는 행사行思요, 속성은 유劉씨이며, 여릉廬陵 사람이다. 조계의 법을 받은 뒤로 바로 여릉으로 돌아가서 중생들을 교화하였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佛法의 대의大意입니까?”
선사가 대답했다.
“여릉廬陵의 쌀값이 얼마던가?”
선사가 신회神會에게 물었다.
“어디서 오는가?”
신회가 대답했다.
“조계산曹溪山에서 옵니다.”
“무엇을 가지고 왔는가?”
이에 신회가 몸을 흔들어 보이니, 선사가 말했다.
“아직도 기와 조각을 가지고 있구나.”
신회가 물었다.
“스님께서 이곳에서 진금眞金을 사람들에게 주시는 게 아니었습니까?”
“설사 그런 일이 있다 한들 그대에게 무슨 관계가 있겠는가?”
선사가 개원開元 28년 12월 13일에 입적하니, 시호는 홍제弘濟 대사라 하사하였고, 탑호塔號는 귀진歸眞이었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탄하였다.
조계의 문인으로서
여릉廬陵에서 출세했네.
오직 한 맥의 법만으로
3승乘의 법보다 훨씬 뛰어났다.
못 속의 외로운 촛불이요
불 속의 한 조각 얼음인가?
그대 묘하게 깨쳤다면
말씀하신 도리에 상응相應하리라.
[하택 화상] 荷澤
6조의 법을 이었고, 서경西京의 하택사荷澤寺에서 살았다. 선사의 휘諱는 신회神會요, 성은 고高씨이며, 양양襄陽 사람이다.
화상이 처음으로 6조의 처소에 이르니,
6조가 물었다.
“멀리서 오느라고 수고했다마는 본래의 것을 가지고 왔는가? 만일 본래가 있다면 의당 주인을 알아볼 터이니, 그대가 한 번 말해 보아라.”
선사가 대답했다.
“신회神會는 머무름 없음으로써 근본을 삼았으니, 보는 것이 곧 주인입니다.”
이에 6조가 말했다.
“이 사미沙彌가 어찌 하찮은 말을 하느냐?”
그리고는 주장자로 마구 때리니, 선사는 매를 맞으면서 생각했다.
‘큰 선지식은 여러 겁을 지나도 만나기 어려운데 이제 만났으니, 어찌 목숨을 아끼랴?’
6조가 그의 말이 뜻 깊고, 감정이 지극히 간절했음을 살폈기 때문에 시험한 것이다. 이로 인해 친히 심인心印을 전해 주니, 심인을 전해 받고 동도東都에서 교화를 펴면서 종지宗旨를 다지니, 남쪽의 혜능慧能, 북쪽의 신수神秀의 뜻이 신회神會로 인해 드날려졌고, 조계의 한 가지가 비로소 우주宇宙 안에 향기를 피웠다.
천보天寶 때에 어사御史로 있던 노액盧液은 북종 보적普寂의 문도였는데, 신회가 낙양에서 무리를 모아 교화한다는 사실을 상소로 아뢰니, 현종玄宗이 불렀다. 황제의 부름에 응하여 궁에 이르러서 황제[天顔]의 질문에 응대하는그 말과 이치가 황제의 심정에 부합하여 황제가 정중히 대하였다. 유사有司의 재량으로 균주均州로 옮기게 했는데, 지덕至德 2년에 숙종肅宗의 명으로 형주荊州 개원사開元寺에서 살게 되었다.
이때 선사의 고향에서 소식이 전해 왔는데,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는 것이었다. 이에 선사가 승당僧堂에 들어가서 백추[槌]를 치면서 말했다.
“우리 부모가 모두 돌아가셨다니, 대중께 모두 마하반야摩訶般若를 읽기를 청합니다.”
대중이 모두 자리에 앉자마자 다시 말했다.
“스님들이여, 수고하셨소. 잘들 돌아가시오.”
선사가 상원上元 원년 5월 13일에 입적하니, 시호는 진종眞宗 대사였고, 탑호塔號는 반야였다.
[혜충 국사] 慧忠
6조의 법을 이었다. 성은 염冉씨요, 월주越州의 제기현諸曁縣 사람이다.
어릴 적 속가에 있을 때 전혀 말을 하지 않았고, 문 앞의 다리를 건넌 적도 없었다. 16세에 이르러 어느 날 한 선사가 오는 것을 멀리서 보자마자 문 밖으로 나아가 다리를 건너 영접하고 절을 한 뒤에 문안을 하니, 부모와 이웃 사람들이 보고 모두가 깜짝 놀라 말했다.
“희한한 일이구나. 이 아이는 기른 지 16년이 되도록 남과 이야기하는 것이나 문 앞의 다리를 건너는 것을 본 적이 없는데, 오늘은 화상和尙을 보자마자 이렇게 예의바르게 응대하니, 아마도 이 아이는 보통 아이와는 다른 것 같구나.”
이때 아이가 얼른 선사에게 물었다.
“바라건대 자비를 베푸시어 이 한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저는 선사께 귀의하여 출가할 것을 간절히 바랍니다.”
선사가 대답했다.
“나의 종문에는 은륜왕銀輪王의 맏아들이거나 금륜왕金輪王의 손자 정도는 되어야 후계자로서 이 문풍門風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인데, 그대는 서너 집이 모여 사는 시골 촌뜨기들의 등에 업히거나 소 등에 업혀 키워진 아이인데, 어찌 이런 종문에 출가할 수 있으랴? 분수에 맞지 않는 일이다.”
아이가 선사에게 말했다.
“이 법은 평등하여 높고 낮음이 없다 했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셔서 저의 착한 마음을 막으십니까?
다시금 바라건대 선사께서 자비를 베푸시어 받아 주소서.”
선사는 아이가 이렇게 예의바르게 응대하는 것을 보고 곧 아이에게 말했다.
“네가 그렇더라도 나에게 출가할 수는 없다.”
아이가 말하였다.
“그러면 누구에게 의지하여 출가해야 합니까?
선사께서 저에게 종사宗師를 가르쳐 주십시오.”
“그대는 조계산曹溪山이란 소문을 들었는가?”
“조계산이 어느 주州에 있는지 모릅니다.”
“광남廣南의 조계산에 선지식 한 분이 계신다. 6조라고 하시며 거느리고 있는 대중이 6백 명이니, 그대는 거기로 가서 출가하라. 나는 아직 천태산을 가보지 못했으니 그대는 혼자 가야 할 것이다.”
아이가 곧 풀숲 샛길로 숨어들어 부모의 눈을 피해 길을 떠나서 사흘 길을 이틀에 걷고, 이틀 길을 하루에 걸어 조계산에 다다르니, 마침 6조가 설법을 하고 있었다. 앞에 나아가 절을 하니,
조사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동자가 대답했다.
“퍽 가깝습니다.”
조사가 말했다.
“태어나서 자란 곳은 어디지?”
동자가 대답했다.
“5음陰을 얻은 뒤로는 잊었습니다.”
이에 조사가 손을 들어 가까이 오라 한 뒤 물었다.
“사실을 말하라. 그대는 어느 곳 사람인가?”
동자가 대답했다.
“예, 절강성浙江省 사람입니다.”
“그렇게 멀리서 예까지 무엇 하러 왔는가?”
동자가 대답했다.
“첫째는 밝은 스승을 만나기 어렵고 정법正法을 듣기 어렵기에 특별히 와서 조사를 뵙는 것이요,
둘째는 스님께 의지하여 출가코자 함이니,
자비를 내려서 받아 주소서.”
조사가 말했다.
“내 그대에게 이르나니, 출가하지 말라.”
동자가 물었다.
“어째서 그렇게 말씀하십니까?”
6조가 말했다.
“그대는 성명聖明하여 전쟁을 일으키지 않고도 60년 동안 천자가 될 사람이니, 그대는 천자가 되어 불법을 위하는 임금이 되라.”
동자가 말했다.
“60년뿐만 아니라 1백 년의 천자라도 원치 않으니, 오직 스님께서 자비로 거두어 주시기만 하소서. 저는 출가를 원합니다.”
이에 조사가 이마를 만지면서 수기授記하였다.
“그대는 출가하면 천하에 우뚝 홀로 선 부처가 되리라.”
그리고는 곧 거두었다.
선사가 일찍이 남양南陽 백애산白崖山에서 40여 년 동안 수행하였는데, 상원上元 2년 정월 16일에 숙종肅宗 황제의 부름을 받아 서울의 천복사千福寺 서선원西禪院으로 가서 머물렀다가 나중에 광택사光宅寺로 돌아갔다.
숙종肅宗과 대종代宗이 앞뒤를 이어 친히 보살계를 받고, 국사의 예를 바쳤다.
어떤 스님이 물었다.
“어떤 것이 불법의 대의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문수당文殊堂 안의 1만 보살이니라.”
학인學人이 말했다.
“학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선사가 말했다.
“대비大悲보살은 눈이 천이요, 손이 천이니라.”
국사가 앉아 있는데,
숙종肅宗이 물었다.
“국사가 어떤 법을 얻으셨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폐하께서는 허공의 한 조각 구름이 보이십니까?”
“보입니다.”
국사가 말했다.
“못으로 박아 놓았습니까, 줄로 걸어 놓았습니까?”
황제가 다시 물었다.
“어떤 것이 10신身을 갖추어 중생을 이끄는 것입니까?”
국사가 일어서면서 물었다.
“아시겠습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노승에게 깨끗한 물 한 병을 주소서.”
탐원耽源이 국사에게 물었다.
“돌아가신 뒤에 누군가가 법칙의 지극한 자리를 묻는다면 그에게 무어라 이르리까?”
국사가 말했다.
“참으로 딱한 일이로다. 몸을 보호하는 부적 따위는 얻어서 무엇 하려는가?”
숙종이 시종과 함께 국사를 어깨에 메어서 법상에 오르게 하니,
국사가 얼굴을 쳐들고 바라보면서 말했다.
“아시겠습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모르겠습니다.”
“노승이 오늘 피곤하군요.”
황제가 물었다.
“어떤 것이 무쟁삼매無諍三昧입니까?”
“단월(檀越:시주)이 비로자나부처님의 머리를 밟고 가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비로자나부처님의 머리를 밟고 가는 것입니까?”
“자기의 청정법신을 잘못 아시는군요.”
국사가 어느 날, 탐원耽源이 법당으로 들어오는 것을 보자 곧 한 발을 올리니, 탐원이 나가 버렸다. 한참 있다가 다시 돌아오니,
국사가 물었다.
“아까의 뜻이 무엇이던가?”
탐원이 대답했다.
“누구에게 말해야 합니까?”
“내가 그대에게 묻노라.”
“어디서 저를 보셨습니까?”
숙종 황제가 문안을 하는데 국사가 황제를 보지 않으니,
황제가 말했다.
“짐은 한 나라의 천자이거늘 국사께서는 어째서짐을 전혀 보시지 않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황제께서는 눈앞에 있는 허공을 보셨습니까?”
“보았습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그가 폐하께 눈을 깜박거린 적이 있었습니까?”
어군용魚軍容이 물었다.
“스님께서 백애산白崖山에 계실 때 어떻게 수행하셨습니까?”
국사가 동자를 불러서 동자가 오니, 국사가 손으로 동자의 머리를 만지면서 말했다.
“성성惺惺하면 바로 성성하다 말하고, 역력曆曆하면 바로 역력하다고 말하라. 이후에는 남의 속임을 당하지 마라.”
남양南陽의 장분張濆이 물었다.
“내가 듣기에는 무정無情설법이 있다는데 그 이치를 알지 못하오니, 스님께서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무정설법이란 그대가 들을 때 바야흐로 무정설법을 듣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무정들도 비로소 나의 설법을 듣게 된다. 그대는 오직 무정설법만 물어라.”
“다만 현재 유정들의 방편에 준하여 어떤 것이 무정無情의 인연입니까?”
국사가 말했다.
“다만 지금의 온갖 활동 가운데서 범부와 성인의 두 흐름이 조금도 일었다 꺼졌다 하지 않으면, 이것이 알음알이에서 벗어나서 유정有情들의 치성致誠한 견각見覺에 속하지 않고, 치성하게 견각하여 그저 그런 얽매임이 전혀 없는 상태이다. 그러므로 6근根이 색色에 대해 분별하면서도 식識이 아니니라.”
국사가 당자곡黨子谷에 있을 때, 마곡麻谷이 와서 국사를 세 바퀴 돌고 석장을 한 번 흔드니, 국사가 말했다.
“정히 그렇다면 무엇 하러 다시 나를 보러 왔는가?”
다시 석장을 한 번 흔들자, 국사가 꾸짖었다.
“이 들여우의 정령아.”
이에 장경長慶이 대신 말했다.
“어른께서 어찌 마음 씀이 그러하십니까?”
또 대신 말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어떻게 화상을 알아뵙겠습니까?”
국사가 자린紫璘 법사와 토론을 하기 위해 각각 자리를 정하고 앉았다. 이에 법사가 말했다.
“스님께서 논제를 세우십시오. 제가 깨뜨리겠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는가?”
법사가 말했다.
“그래도 주장을 세우십시오.”
국사가 말했다.
“논제를 다 세웠소.”
“어떤 논제를 세우셨습니까?”
“과연 보지 못하는군. 공의 경계가 아니오.”
장경이 대신 말했다.
“스님의 논제는 진 것입니다.”
어떤 좌주座主가 와서 뵈려 하자,
국사가 물었다.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금강경金剛經』을 강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최초의 두 글자가 무슨 자이던가?”
“이와 같이[如是]입니다.”
“이것[是]이 무엇인가?”
국사가 인공봉璘供奉에게 물었다.
“부처란 무슨 뜻인가?”
인공봉이 대답했다.
“부처란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선사가 말했다.
“부처가 언제 헤맨 적이 있었던가?”
“헤맨 적이 없었습니다.”
“헤맨 적이 없었다면 깨달아서 무엇에 쓰려는가?”
인공봉이 대답이 없었다.
인공봉이 또 물었다.
“어떤 것이 실상實相의 뜻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허상을 가져오너라.”
인공봉이 대답했다.
“허상虛相은 없습니다.”
“허상이 없는데 실상은 물어 무엇에 쓰려는가?”
국사가 한번은 또 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 손으로 원상圓相을 그린 다음, 그 속에다 일日 자를 써 보이니, 스님이 대답이 없었다.
어느 때 왕영王詠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해탈합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모든 법이 이르지 못하는 그 자리에서 얻느니라.”
“그렇다면그것은 단멸斷滅이지, 어찌 해탈이 되겠습니까?”
이에 국사가 할喝을 하고 말했다.
“이놈아, 내가 너에게 ‘모든 법이 이르지 못하는 자리’라 했지, 누가 너에게 단멸이라 했더냐?”
왕영이 더 이상 말이 없었고, 국사도 그가 3교敎의 공봉供奉임을 알고 있었다.
왕영의 문도인 지심志心이 물었다.
“어찌하여야 부처가 되겠습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부처와 중생을 몽땅 버려야 그 자리에서 해탈을 얻느니라.”
“어찌하여야 상응相應할 수 있겠습니까?”
“선과 악 모두를 생각하지 말아야 자연히 불성을 볼 수 있느니라.”
또 물었다.
“어찌하여야 법신法身을 증득하겠습니까?”
“비로자나의 경계를 초월해야 하느니라.”
“어떻게 해야 청정법신을 초월합니까?”
“부처에 매달려 구하려 하지 마라.”
또 물었다.
“어느 것이 부처입니까?”
“마음이 곧 부처이니라.”
“마음에 번뇌가 있는데, 어떻게 부처가 됩니까?”
국사가 말했다.
“번뇌의 성품은 절로 여의느니라.”
다시 여쭈었다.
“어째서 번뇌를 끊지 않습니까?”
“번뇌를 끊는 것은 성문ㆍ연각이요, 번뇌를 생기지 않는 것으로 보는 것은 큰 열반이니라.”
대종代宗이 대백산인大白山人이란 사람을 데리고 화상을 만나러 와서 말했다.
“이 사람은 아는 것이 퍽 많소이다.”
“무슨 재주를 가지고 있습니까?”
“산도 알고 땅도 알고, 글자도 알고 산수算數도 안답니다.”
이에 국사가 산인山人에게 물었다.
“산인이 살고 계신 산은 암컷인가, 수컷인가?”
산인이 오랫동안 침묵하여 대답하지 못하니,
국사가 다시 물었다.
“땅은 아시오?”
산인이 대답했다.
“압니다.”
국사가 대궐 앞의 땅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여기는 무슨 땅인가?”
“제자에게 산수할 시간을 주셔야 알겠습니다.”
또 물었다.
“글자는 아는가?”
“예, 압니다.”
이에 국사가 흙 위에 일一 자를 긋고 물었다.
“이것은 무슨 자인가?”
“예, 일一 자입니다.”
“흙 토土에 일一을 더하면 왕王 자가 되지, 어찌 일 자라 하는가?”
또 물었다.
“산수를 아는가?”
“예, 압니다.”
“3ㆍ7은 얼마인가?”
“21이 됩니다. 화상께서는 제자를 놀리시는군요.”
“산인이 도리어 빈도貧道를 놀리는구려. 3ㆍ7이면 10인데 21이라니, 이 어찌 나를 놀리는 것이 아닌가?”
또 물었다.
“이 밖에 더 무엇을 알고 있는가?”
“더 있지만 감히 대답하지 못하겠습니다.”
“설사 그대가 모든 것을 다 안다 하여도 귀할 것이 없느니라.”
이어 대종에게 말했다.
“산을 물어도 산을 모르고, 땅을 물어도 땅을 모르고, 글자를 물어도 글자를 모르고, 산수를 물어도 산수를 모르니, 어디서 저런 멍텅구리를 데리고 오셨습니까?”
이에 대종代宗이 산인에게 말했다.
“짐이 비록 국왕의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그것은 보배라 할 것이 없고, 화상만이 참 보배이노라.”
산인이 말했다.
“폐하께서는 참으로 보배로운 사람을 바로 아시나이다.”
어느 해 10월 중순에 여러 좌주座主들이 국사에게 예배하러 왔는데,
국사가 물었다.
“성 밖의 풀이 어떤 빛깔이던가?”
좌주들이 대답했다.
“누른빛이었습니다.”
국사가 곧 어린 동자를 불러 물었다.
“성 밖의 풀이 어떤 빛깔이더냐?”
“누른빛이었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좌주들은 경을 알고 논論을 안다면서이 어린애의 견해와 무엇이 다른가?”
이에 좌주들이 물었다.
“화상께서는 성 밖의 풀이 어떤 빛깔이라고 여기십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하늘 위의 새를 보았는가?”
좌주들이 말했다.
“화상께서는 점점 더 선법과 상관없는 말을 하시니,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저희들이 어찌해야 할지 가르쳐 주십시오.”
국사가 갑자기 좌주座主들을 불러 앞으로 다가오라 하여, 좌주들이 함께 앞으로 다가가니, 국사는 좌주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꼴을 보고는 웃으면서 말했다.
“좌주들아, 우선 절로 돌아갔다가 다음 날 다시 오라.”
좌주들이 잠자코 물러갔다가 다음 날 또 와서 말했다.
“바라건대 화상께서는 저희들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국사가 대답했다.
“보려면 곧 보아야지, 보지 못하는 이에게는 말을 하여도 보지는 못할 것이니라.”
여러 공봉供奉들이 말했다.
“전의 국사들께서는 화상과 같은 기지와 변재가 없으셨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그들은 나라를 스승으로 섬겼고, 나는 나라의 스승이니라.”
여러 공봉들이 말했다.
“우리들은 거짓되게 공봉으로 있으면서 경을 안다, 논論을 안다 했는데, 저 선종에 의하면 전혀 맞지가 않구나.”
남방에서 온 선객 하나가 물었다.
“어떤 것이 옛 부처님의 마음입니까?”
국사가 대답했다.
“담ㆍ벽ㆍ기와 조각 같은 무정물無情物 모두가 옛 부처님의 마음이니라.”
“경전의 말과는 매우 어긋나는군요.
왜냐하면 『열반경涅槃經』에서 말하기를,
‘담ㆍ벽ㆍ기와 조각 등 무정물을 여의었으므로 불성佛性’이라 했는데,
지금 말씀하시는 것은
‘온갖 무정물이 모두가 부처의 마음’이라 하시니,
마음과 성품이 같은지 다른지 모르겠습니다.”
“미혹한 사람에게는 다르지만 깨달은 사람에게는 다르지 않느니라.”
선객이 또 말했다.
“이것도 경과 어긋납니다. 경에서 말하기를,
‘선남자야, 마음은 불성佛性이 아니니 불성은 항상함이요, 마음은 항상하지 않다’ 했는데,
오늘 다르다 말씀하시니, 그 이치를 모르겠습니다.”
국사가 말했다.
“그대는 말에만 의지하고, 뜻에는 의지하지 않는구나. 마치 겨울에 물이 얼어서 얼음이 되었다가 봄이 되면 얼음이 풀리어 물이 되는 것같이, 중생이 미혹할 때에는 성품을 묶어 마음을 이루고, 중생이 깨달을 때에는 마음이 풀려 성품을 이룬다. 그대가 만일 무정물에는 불성佛性이 없다고 꼭 집착한다면,
경전에서도 ‘삼계가 마음일 뿐이요 만법이 식識일 뿐이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화엄경華嚴經』에서 말하기를,
‘삼계의 모든 법이 모두가 오직 마음으로 지어진 것일 뿐이다’라고 하였느니라.
이제 그대에게 묻노니, 무정물은 삼계의 안에 있는가, 삼계의 밖에 있는가? 그것은 마음인가, 마음이 아닌가? 만일 마음이 아니라면 경전에서 ‘삼계가 마음일 뿐이다’라고 하지 않았어야 할 것이요, 만일 마음이라면 ‘무정물은 불성이 없다’ 하지 말았아야 할 것이니라.
그러므로 그대 자신이 경을 어겼을지언정 내가 어긴 것은 아니니라.”
선사가 말했다.
“무정물에도 마음이 있다면 설법도 할 줄 알겠습니다.”
“그들은 열심히 설하고 항상 설하며 계속 설하되 잠시도 쉬는 바가 없느니라.”
“저는 어째서 듣지 못합니까?”
“그대가 듣지 않을 뿐, 다른 이가 듣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그러면 누가 듣습니까?”
“성인들이 듣느니라.”
“그렇다면 중생은 들을 자격이 없겠습니다.”
“나는 중생을 위해 말했을지언정 성인들을 위해서 말한 것이 아니니라.”
“저는 어리석고 둔해서 무정물의 설법을 듣지 못하지만 화상께서는 인간과 하늘의 스승으로서 반야바라밀다를 설법하시니, 무정의 설법을 들으셨습니까?”
“나도 듣지 못했느니라.”
“화상께서는 어째서 듣지 못하셨습니까?”
“내가 무정無情의 설법을 듣지 못한 것을 다행으로 여겨야지, 내가 만일 무정의 설법을 듣는다면 성인들과 같아질 것이니, 그대가 어떻게 나를 보거나 나의 설법을 들을 수 있으리.”
선객이 물었다.
“모든 중생은 끝내는 무정설법을 들을 수 있습니까, 없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중생이 듣는다면 중생이 아니니라.”
“무정의 설법이란 말이 근거가 있습니까?”
“말이 전고典故에 맞지 않으면 군자의 이야기가 아니니라.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아미타경阿彌陀經』에서 말하기를,
‘물ㆍ새ㆍ나무ㆍ숲이 모두가 부처님을 생각하고 법을 생각하고 스님들을 생각한다’ 하였으니,
새는 유정이지만 물과 나무는 어찌 유정이라 하겠는가?
또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국토의 말씀과 중생의 말씀이 3세 일체의 말씀이다’ 하였으니,
중생은 유정이지만 국토야 어찌 유정이겠는가?”
선객이 말했다.
“무정에 불성이 있다면 유정은 어떻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무정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유정이랴?”
선객이 다시 물었다.
“유정과 무정에 모두 불성佛性이 있다 칩시다. 유정을 죽여서 그 몸뚱이[身分]를 먹으면 죄와 원한을 맺어 과보를 받지만, 무정無情을 해쳐서 오곡이나 채소나 과일 따위 물건을 먹으면 죄의 과보를 부른다는 말은 듣지 못했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유정은 정보正報이니, 끝없는 예로부터 허망하고 뒤바뀌어 나[我]와 내 것[我所]을 계교計較하여 원한을 맺었으므로 원한의 과보가 있지만, 무정無情은 의보依報인지라 전도되고 원한을 맺은 마음이 없으므로 과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경전에서 유정들만이 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아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고, 명호는 무엇 무엇이라 하리라 한 것은 보았을지언정 무정無情들이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현겁賢劫의 천 부처님 중에 어느 분이 무정물로 성불하신 분입니까?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묻노니, 마치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에 태자 한 몸만 왕위를 받는가, 국토 안의 전체가 왕위를 받는가?”
“황태자 하나만 왕위를 받으면 국토 안의 모든 것은 저절로 왕에게 속합니다.
어찌 따로따로 받겠습니까?”
“지금의 이 경우에도 그러하니, 다만 유정들이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되기만 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국토 모두가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에 속한다.
부처님의 몸 이외에 어찌 또 다른 무정물이 있어 수기를 받겠는가?”
선객이 다시 물었다.
“일체 대지가부처님 몸이라면 온갖 중생들이 부처님의 몸 위에서 살면서 부처님 몸에다 똥오줌을 싸서 더럽히고, 부처님의 몸을 파고 뚫고 밟으니,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일체 중생이 그대로 부처의 몸이거늘 누가 죄를 받으랴?”
“부처님의 몸은 함이 없고 걸림이 없는데, 이제 함이 있고 걸림 있는 물질로써 부처의 몸이라 하니, 그 어찌 성인의 취지에 어긋난다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대품경大品經』에서 말하기를,
‘유위有爲를 떠나서 무위無爲를 말하지 말라. 또 무위를 떠나서 유위를 말하지도 말라.’ 하였느니라.
그대는 색이 공함을 믿는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색이 본래 공하다면 어찌 걸림이 있겠는가?”
선객이 또 물었다.
“부처와 중생이 같은 것이라면 한 부처님만 수행하여도 온갖 중생이 모두 함께 해탈을 얻어야 할 것인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같다는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화엄경華嚴經』 가운데 6상의相義에
‘같음[同] 가운데 다름[異]이 있고, 다름 가운데 같음이 있으며, 이룸[成] 가운데 무너짐이 있고, 무너짐 가운데 이룸이 있으며, 전체 가운데 부분이 있고, 부분 가운데 전체가 있다’ 하심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확실히 제각기 스스로가 수행해서 스스로가 얻는 것이어야 한다. 남이 밥 먹는 것을 구경한다 해도 끝내 내 배가 부르지는 않느니라.”
선객이 또 물었다.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푸르디푸른 대나무 모두가 진여眞如요, 성대하게 핀 국화꽃은 반야般若 아닌 것이 없다’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삿된 말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믿어 부사의不思議하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이는 보현普賢ㆍ문수文殊 등 대인大人의 경지이다. 범부와 소인들이 믿어 받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대승요의경大乘了義經』의 뜻과 부합되나니,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 몸이 법계에 충만하여 온갖 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나신다. 인연 따라 응하지 않는 곳 없으시지만 항상 여기 보리좌를 여의지 않으신다’ 하였다.
푸른 대나무가 이미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법신法身이 아니겠는가?
또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에서 말하기를,
‘색色이 끝이 없으므로 반야가 끝이 없다’ 하였나니,
국화꽃이 색色에서 벗어나지 않았을진대 어찌 반야가 아니겠는가?
이 깊고 넓은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이 말에 유의하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선지식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다만 본마음을 알기만 하면 죽음이 닥쳐왔을 때에 한쪽으로 껍질을 훌쩍 벗어 던지고, 영대靈臺인 각성覺性만이 거뜬히 떠나는 것이 해탈이다’라고 한다 하는데,
이것은 어떠합니까?”
“이는 아직도 2승乘과 외도의 소견을 면치 못했다. 2승은 모두가 유위有爲의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려 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즐겨 구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나에게 큰 걱정이 있으니,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 하였고,
명제冥諦를 좋아하여 지극한 도라 여기고 마침내는 명제에 나아갔다.
수다원須陀洹은 8만 겁, 사다함斯陀含은 6만 겁, 아나함阿那含은 4만 겁, 아라한阿羅漢은 2만 겁, 벽지불辟支佛은 만 겁 동안선정에 머무르고, 외도도 역시 8만 겁 동안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에 머문다.
2승乘은 그 겁劫이 차면 대승大乘으로 회향하나 외도는 그 겁이 차도 생사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선객이 또 물었다.
“모든 사람들의 불성佛性은 한 종류인가요, 아니면 차별된 종류인가요?”
국사가 대답했다.
“똑같을 수가 없느니라.”
“어째서 차별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의 불성은 전혀 생멸하지 않고, 어떤 사람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되 반만 생멸하지 않느니라.”
“누구의 불성은 전부 생멸하지 않고, 누구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나의 불성은 전혀 생멸하지 않지만, 남방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느니라.”
선객이 다시 물었다.
“화상의 불성은 어찌하여 전혀 생멸하지 않고, 남방의 불성은 어찌하여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습니까?”
“나의 불성은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서 몸 밖에 다른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전혀 생멸하지 않거니와, 남방의 불성佛性은 몸은 무상하다 하고 마음은 항상하다 하니, 그러기에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이 없느니라.”
“화상의 몸은 색신色身인데 어찌 법신法身과 같이 생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사도邪道에 빠졌느냐?”
“제가 언제 사도에 빠졌다고 그러십니까?”
“『금강경金剛經』에서 말하기를,
‘만일 색色으로 나를 보거나 소리로 나를 구하는 사람은 삿된 도를 행하나니, 여래를 보지 못한다’ 하였는데,
그대가 색色으로 나를 보니, 어찌 사도에 빠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하여 선객이 절을 하고 찬탄했다.
“화상의 이 말씀은 사법事法으로도 다하지 않음이 없고, 이법理法으로도 치밀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제가 만일 화상을 만나지 못했더라면 일생을 헛되이 보낼 뻔하였습니다.”
숙종 황제가 물었다.
“온갖 중생의 조급한 업의 성품이 본래 의거할 근거가 없거늘 날마다 쓰면서도 알지 못한단 말이 무슨 뜻입니까?”
국사가 금화金花 방석을 들어 올려 황제에게 보이면서 물었다.
“이것을 무엇이라 부릅니까?”
황제가 대답했다.
“금화 방석이라 합니다.”
국사가 말했다.
“확실히 일체 중생이 날마다 쓰면서 모르는구나.”
복우伏牛 화상이 마馬 대사의 심부름으로 편지를 들고 국사에게 왔는데,
국사가 물었다.
“마 대사가 어떤 법으로 사람들을 지도하시는가?”
복우가 대답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 하십니다.”
이에 국사가 말했다.
“그게 무슨 말인가?”
그리고는 이어서 또 물었다.
“다른 말씀은 없던가?”
“부처도 아니요 마음도 아니라 하시고, 또 마음도 아니요 부처도 아니요, 물건도 아니라 하십니다.”
이에 국사가 웃으면서 말했다.
“아직 멀었구나.”
복우가 물었다.
“여기서는 어떻게 하십니까?”
국사가 말했다.
“삼점三點이 흐르는 물 같은데 굽기는 낫 같으니라.”
나중에 어떤 사람이 이 이야기를 앙산仰山에게 전했더니, 앙산이 말했다.
“물속에 반달이 드러나는구나.”
앙산이 또 말했다.
“삼점三點은 영원히 흐르는 물이요, 몸은 고기와 용의 옷과 같도다.”
숙종肅宗 황제가 또 물었다.
“모든 중생의 조급한 업의 성품이 의거할 수 있는 근거가 없거늘 날마다 쓰면서도알지 못하여 삼계를 벗어나 여읠 길이 없다 하니, 스승께서 방편을 베푸시어 제자와 중생들이 생사에서 벗어나게 해주소서.”
이에 국사가 세 개의 대야[䤬羅]를 가져오라 하고는 물을 가득히 붓게 하고 개미를 찾아서 물 위에 던지니, 개미가 물 위에서 뱅뱅 두세 바퀴 돌다가 지쳐서 물 위에 떠 있는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 수 없었다.
이에 황제가 절을 하면서 말하였다.
“스승이시여, 자비를 베풀어주소서.”
국사가 풀 한 잎을 주어 물 위에 던지니, 개미가 깜짝 놀라 풀에 의지해 대야 밖으로 기어 나왔다. 이를 본 황제는 활짝 깨달았다.
대종代宗 황제가 물었다.
“스님께서 열반하신 뒤에 무엇을 해 드리오리까?”
국사가 대답했다.
“노승을 위해 무봉탑無縫塔을 만들어 주시오.”
황제가 곧 꿇어앉아 말했다.
“스님께서 탑의 본을 보여 주소서.”
국사가 양구良久하니, 황제가 어찌할지 몰라 하였다. 국사가 말했다.
“제가 법을 전한 제자가 있는데, 탐원耽源이라 합니다. 그가 이 일을 알고 있으니, 그에게 물으소서.”
국사가 세상을 뜬 뒤에 황제가 탐원을 조서[詔]로 불러 이 인연을 말하고, 그 뜻이 무엇인가를 물었더니, 탐원이 다음과 같은 게송을 보였다.
상湘의 남쪽, 담潭의 북쪽 중간에
황금이 온 나라를 가득 채운다.
그림자 없는 나무 밑에서 같은 배를 탔는데
유리 대궐 위에는 아는 이 없도다.
대력大歷 10년 12월 9일에 입적하니, 대종代宗이 대중大衆 선사라 시호를 내렸다. 정수淨修 선사가 찬탄하였다.
당조唐朝의 국사로서
큰 도를 널리 폈고
조계에서 해를 찾고
위수渭水에서 배를 탔다.
두 황제가 게송을 청하고
사부대중은 구제를 받았다.
법 재주가 매우 드높아
대이大耳 삼장三藏이 창피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