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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요경 제9권
7. 계품(戒品)
1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지켜
그 복은 삼보(三寶)를 성취하니
명성을 얻고 이로움을 얻으며
다음 생에는 천상의 즐거움을 누린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사위국의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지혜로운 사람으로서 세 가지 법을 얻으려고 하면 계율을 잘 지켜야 한다.
그 세 가지 법이란,
첫째는 선한 사람들이 그는 계율로써 근신한다고 칭찬하는 것이고,
둘째는 이양(利養)을 얻고자 하여도 막을 사람이 없는 것이며,
셋째는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천상에 나는 것이다.
이것이 이른바 계율을 지니는 사람이 이 세 가지 법을 얻어서 끝끝내 그 복을 받는 것이다.”
그리고 부처님은 대중 앞에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으셨다.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지켜
그 복은 삼보를 성취하니
명성을 얻고 이로움을 얻으며
다음 생에는 천상의 즐거움을 누린다.
언제나 법이 머무는 곳을 보고
계율을 지키는 것을 등불로 삼아
진실한 견해를 성취하리니
그는 사람 가운데 길상(吉祥)이니라.
계율을 지니면 늘 편안하여
그 몸에 괴로움이 없을 것이니
밤에는 누워서 편히 자고
깨어서는 언제나 즐거우리라.
그때에 대중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2
계율을 지니면 늙어서도 편안하고
언제나 안온하게 지내며
지혜는 사람의 보배가 되고
저 복은 도적도 뺏지 못한다.
“계율을 지니면 늙어서도 편안하고”란 무슨 뜻인가?
계율을 지니는 사람은 아무리 노쇠하더라도 천(天)ㆍ용(龍)ㆍ신기(神祇)가 항상 그를 따라다니면서 보호한다. 또한 아수륜(阿須倫), 가류라(迦留羅), 진타라(眞陀羅), 마휴륵(摩休勒), 인(人), 비인(非人), 구반다(鳩槃茶), 필사차(疋奢遮), 나살귀(羅殺鬼) 등도 항상 계율을 지니는 그 장로를 보호하고 밤낮으로 호위하니, 마치 그림자가 형체를 따르듯 한다.
그러므로 “계율 지니면 늙어서도 편안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언제나 안온하게 지내며”란 무슨 뜻인가?
어떤 중생은 부처님을 믿고 나아가 믿음의 뿌리를 성취한다.
믿음에는 두 가지 업이 있다.
첫째는 의심이 없는 믿음이고,
둘째는 근본이 있는 믿음이다.
그가 대중 속에 있을 때에 어떤 사문이나 바라문이나 범지나 범천이나 마군일지라도 그의 마음을 돌이켜서 악으로 나아가게 하지 못하므로, 그는 천인의 공양을 받는다.
그러므로 “언제나 안온하게 지내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지혜는 사람의 보배가 되고”란 무슨 뜻인가?
지혜란 빛이고 밝음이며 횃불이고 등불이며 눈이고 태양이며 달이고 큰 불 무더기며 또한 모든 법의 광명이다. 마치 세상 사람이 재산과 보물이 많아야 마을에서 살 수 있는 것처럼, ‘지혜는 사람의 보배’란 것도 그와 같아서, 공덕과 지혜의 두 가지가 갖추어져야 비로소 사람의 보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지혜는 사람의 보배가 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저 복은 도적도 뺏지 못한다”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천인이 부처님께 나아가 다음과 같이 그 이치를 여쭈었다.
“무엇이 불에도 타지 않고, 무엇이 바람에도 날리지 않으며, 무엇이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무엇이 물에도 젖지 않으며, 무엇이 땅에도 썩지 않고, 무엇이 왕이나 도적이나 사나운 벼락에도 해를 입지 않으며, 무엇이 창고에 두고 지키지 않더라도 줄어들지 않는 것입니까?”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천인에게 말씀하셨다.
“복은 불에도 타지 않고,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으며, 물에도 젖지 않고, 땅에도 썩지 않으며, 왕이나 도적에게도 빼앗기지 않고, 사나운 벼락에도 해를 입지 않으며, 창고에 두고 지키지 않아도 줄어들지 않는 것이다.”
그때에 모든 천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뛸 듯이 기뻐하면서 다시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부처님을 찬탄하였다.
아아, 세상의 가장 높은 이
이 세상의 광명이시네.
우리도 이미 선행을 닦았기에
이 온갖 하늘의 복을 받는구나.
그때에 천인들은 다시 거듭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여쭈었다.
무엇이 마지막에 가장 좋으며
무엇으로 안온하게 지내고
무엇이 사람의 보배가 되며
무엇을 도적도 뺏지 못하는가?
부처님께서는 게송으로 대답하셨다.
계율 지니면 늙어서도 편안하고
언제나 안온하게 지내며
지혜는 사람의 보배가 되고
저 복은 도적도 뺏지 못한다.
그때에 천인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겨 듣고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부처님을 세 번 돌고 갑자기 사라져서 천상으로 돌아갔다.
3
계율을 닦고 보시를 행하며
복을 짓고 또 복을 행하면
이 생에서나 저 생에서도
언제나 안온한 곳에 이르게 되리.
“계율을 닦고 보시를 행하며”란 무슨 뜻인가?
보시에는 두 가지 일이 있다. 만일 계율을 굳건히 지니고 더불어 보시를 행하면 천상이나 세간에서 저절로 선한 과보를 받을 것이다. 또한 계율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보시하여도 많은 과보를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닦고 보시를 행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복을 짓고 또 복을 행하면”이란 무슨 뜻인가?
혹 어떤 사람이 계율은 완전히 갖추었더라도 널리 많이 듣지 않으면 그가 얻는 공덕은 말할 것이 못 된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계율도 완전히 갖추고, 거기에 다시 큰 지혜가 있고 많이 듣고 또 보시를 행하면 그는 한량없는 복을 얻을 것이다.
그러므로 “복을 짓고 또 복을 행하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생에서나 저 생에서도”란 무슨 뜻인가?
그는 이 생에서나 저 생에서도 마음이 항상 즐거워서 후회하는 일이 없다.
그러므로 “이 생에서나 저 생에서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언제나 안온한 곳에 이르게 되리”란 무슨 뜻인가?
그는 원하는 것을 완전히 이루어서 그 마음이 저절로 즐겁다.
또한 계율이 갖추어지고 보시가 청정하여 반드시 그 공덕의 과보를 받아 삿된 곳에 떨어지지 않음을 스스로 알기 때문에, 밤낮으로 기뻐하며 타는 듯한 고통을 느끼지 않는다. 계율을 지니고 있는 사람에게 보시하는 사람이나 많이 들은 사람도 또한 이와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안온한 곳에 이르게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4
비구여, 계율에 뜻을 세워서
모든 감관을 거두어 단속하고
음식에는 스스로 절도를 알며
마음을 일깨워 응하게 하라.
“비구여, 계율에 뜻을 세워서”란 무슨 뜻인가?
뜻을 굳건히 하여서 무너지지 않게 하되,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에 이끌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여, 계율에 뜻을 세워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모든 감관을 거두어 단속하고”란 무슨 뜻인가?
눈ㆍ귀ㆍ코ㆍ혀ㆍ몸ㆍ뜻을 단속하고 모두 다 단속하여서 조금도 실수가 없으면, 마음이 어지럽지 않고 또 다른 생각도 없어서 모든 감관을 그대로 따라 그 묘한 행을 닦게 된다.
그러므로 “모든 감관을 거두어 단속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음식에는 스스로 절도를 알며”란 무슨 뜻인가?
소화할 수 있는 양을 알아서 먹고, 쌓아 두거나 탐하지도 않는 것이다.
존자 담마난제(曇摩難提)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많이 먹으면 질병의 고통이 있고 적게 먹으면 기력이 쇠약해진다. 꼭 알맞게 먹되, 저울대의 높낮이가 없듯이 하여라.”
또 승가라찰(僧迦羅刹) 존자는『조립수행경(造立修行經)』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떤 사람이 새를 많이 잡아다가 큰 새장 속에 넣어 두고 때때로 돌보면서 먹이를 주어 길렀다. 그리고는 털과 꼬리가 길어지면 때때로 그것을 베어 보고 살찐 놈을 가려서 날마다 잡아먹었다.
그래서 그 중에 새 한 마리는 생각하기를,
‘만일 내가 많이 먹고 살이 찌면 잡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먹지 않고 굶어도 또한 죽을 것이다.
그러므로 내 양(量)을 생각하여 조금씩 먹고 피부와 털의 광택이 줄어들면 이 새장에서 빠져 나가자’라고 하였다.
그래서 생각한 대로 먹었더니 그 털의 광택이 바라던 대로 되었다.
저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생각한다.
‘만일 내가 많이 먹게 되면 정신이 흐릿하여서 도를 닦을 수 없을 것이다. 그래서 선법을 생각하지 못하게 되어 온갖 악법만이 밤낮으로 자꾸 불어날 것이다. 탐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은 다 많이 먹는 데서 생기기 때문에 열반을 얻지 못하는 것이다.’
또한 경전에도 많이 먹는 사람은 다섯 가지 괴로움이 있다고 하였다.
그 다섯이란,
첫째는 대변이 잦고,
둘째는 소변이 잦으며,
셋째는 잠이 많고,
넷째는 몸이 무거워 공부하지 못하며,
다섯째는 소화되지 않는 것에 대한 걱정이 많은 것이다.
많이 먹는 사람에게는 이 다섯 가지 괴로움이 있기 때문에, 스스로 괴로움에 떨어져서 구경(究竟)에 이르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음식에는 스스로 절도를 알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일깨워 응하게 하라”란 무슨 뜻인가?
밤낮으로 정신을 차리고 생각을 매어서 선정에 두는 것이다. 만일 졸음이 오려고 할 때에는 한쪽 다리를 펴서 평상 밑으로 내리고, 그래도 졸음이 달아나지 않으면 두 다리를 펴서 평상 밑 땅에까지 내리며, 그래도 졸음이 심하면 뜰을 거닌다. 거닐어도 안 되면 찬 물로 낯을 씻고, 그래도 졸음이 달아나지 않으면 하늘의 별을 우러러보아 그 마음을 일깨워서 초저녁이나 밤중이나 새벽이나 게으름이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일깨워 응하게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5
언제나 그 뜻이 깨어 있어서
밤이나 낮이나 부지런히 익히면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려서
저 열반을 이루게 될 것이다.
“언제나 그 뜻이 깨어 있어서”란 무슨 뜻인가?
신(身)ㆍ구(口)ㆍ의(意)가 항상 깨어 있으면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이 일어나더라도 이내 끊을 수 있고, 다시 번뇌가 일지 않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편안할 것이다.
그러므로 “언제나 그 뜻이 깨어 있어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밤이나 낮이나 부지런히 익히면”이란 무슨 뜻인가?
낮에 익힌 것을 역시 밤에도 익히고 밤에 익힌 것을 역시 낮에도 익히며, 초저녁이나 밤중이나 새벽에도 또한 그와 같이 하되, 마음을 한결같이 하여 다른 생각이 없고, 오직 도를 따라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을 사유한다.
그러므로 “밤이나 낮이나 부지런히 익히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려서”란 무슨 뜻인가?
뜻이 용맹스럽고 굳세어야 능히 번뇌를 없앨 수 있다.
만일 마음을 느슨하게 가지면 번뇌를 없앨 수도 없고 부지런히 수행할 수도 없다. 그래서 범부의 부류로 타락하고 만다.
그러나 수행하는 사람은 밤낮으로 부지런히 수행하여서 마치 머리에 붙은 불을 끄듯이 하고, 마음을 용맹스럽게 가져서 험난함을 염려하지 않으며, 속박을 끊기로 마음을 먹되, 무엇보다 먼저 번뇌를 없애려고 한다.
그러므로 “번뇌가 없어지고 뜻이 풀려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저 열반을 이루게 될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온갖 행을 이미 성취하여 세상 근심과 온갖 번뇌가 다시는 생기지 않는 것이며, 열반에 들어가기를 구하여, 모든 속박과 집착으로부터 사람을 더럽히는 것을 교화하여서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다.
또한 열반의 경지로 나아가되, 장애가 없으며 현재의 업을 버리고 열반의 경지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므로 “저 열반을 이루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6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굳게 세우고
마음을 한-가지로 하여 그 지혜를 익힌다.
비구가 타는 듯한 번뇌가 없으면
괴로움을 끝까지 벗어나리라.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굳게 세우고”란 무슨 뜻인가?
계율에 있어서 움직임 없이 굳건히 잘 머무르면 또한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무지를 없애고 끝내 어리석고 미혹된 곳에 머무르지 않는다.
마치 용맹스러운 장수가 몸에는 여러 겹의 갑옷을 입었더라도 손에 큰 칼이 없으면 능히 강적을 이길 수 없는 것처럼, 큰 칼은 있으나 갑옷이 없으면 그 또한 강적을 항복받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용맹스러운 장수가 몸에는 여러 겹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날카로운 큰 칼을 잡았으면, 앞뒤로 험한 곳에서 적과 싸울 때에도 반드시 그 성과가 있을 것은 의심 없는 일이다.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다. 몸에는 계율의 갑옷을 입었더라도 마음에 지혜의 칼이 없으면 번뇌의 우두머리를 부술 수 없을 것이다.
그와 같이 비록 마음에 지혜의 칼은 있으나 몸에 계율의 갑옷이 없으면 그 또한 번뇌를 부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용맹스러운 장수가 몸에는 계율의 갑옷을 입고 손에는 지혜의 칼을 잡았으면, 앞뒤로 험한 곳에서 번뇌와 싸울 때에도 반드시 그 성과가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계율을 굳게 세우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을 한가지로 하여 그 지혜를 익힌다”라는 것은 무슨 뜻인가?
지혜로써 마음을 단련하여 온갖 번뇌의 근본을 찾는다는 것이다.
마치 광철(鑛鐵)이 백 번이나 용광로에 들어가서 정련이 되어야 비로소 부드럽던 것이 강한 것이 되고 거짓이던 것이 진짜가 되는 것과 같다.
또 마치 큰 바다가 밤낮으로 끓어 올라서 탁한 것은 밑으로 가라앉아 그것이 변해 보물이 되는 것처럼, 사람도 그와 같아서 밤낮으로 쉬지 않고 마음을 단련시켜야 비로소 그 과(果)를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을 한가지로 하여 그 지혜를 익힌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구가 타는 듯한 번뇌가 없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비록 천지가 녹아 내 몸을 달구더라도 끝내 타는 듯한 번뇌가 없으면 아무런 해도 입히지 못한다. 왜냐 하면 비구는 믿음을 굳게 세우고 힘을 얻어, 그 뜻이 물러서지 않고 원하는 것을 기어코 성취하기 때문이다.
비구란, 온갖 번뇌를 남김없이 영원히 없애기 위해 몸에는 가사를 입고 손에는 발우를 들고 공양할 때가 되면 마을로 가서, 부끄러워하는 얼굴빛을 바루고 보시를 얻되, 좋다 나쁘다는 생각이 없고 오직 깨달음을 원하기 때문에 비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가 타는 듯한 번뇌가 없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괴로움을 끝까지 벗어나리라”란 무슨 뜻인가?
괴로움의 근본을 남김없이 영원히 없애고 다시는 고난을 겪지 않는다는 것이니, 이 괴로움이 없어짐에 따라 그 공덕과 복은 날로 불어나는 것이다.
그러므로 “괴로움을 끝까지 벗어나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7
계율을 지켜 마음을 항복받고
뜻을 지켜서 바른 선정을 지니며
마음으로 지관(止觀)을 닦아
바른 지혜를 잃지 않도록 하라.
“계율을 지켜 마음을 항복받고”란 무슨 뜻인가?
언제나 마음을 잡아매어서 놓지 않고, 또 방일하여 함부로 행동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켜 마음을 항복받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뜻을 지켜서 바른 선정을 지니며”란 무슨 뜻인가?
선정에는 선한 선정과 선하지 않은 선정과 무기(無記) 선정의 세 종류가 있다.
선한 선정을 지니는 사람은 선하지 않은 선정으로 하여금 그 틈을 얻지 못하게 하고, 항상 생각하기를,
‘나는 지금 바른 선정을 얻었다. 기어코 그 마지막까지 가리라.
무엇 때문에 선하지 않은 선정으로 하여금 그 중간에 틈을 보여 마음을 어지럽게 하겠는가?’라고 한다.
그러므로 “뜻을 지켜서 바른 선정 지니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음으로 지관을 닦아”란 무슨 뜻인가?
항상 생각하여 마음을 잡아매고 밝음을 생각하여 어둠을 없애되, 등불을 밝혀 애욕의 뿌리를 관찰하고 어리석음의 근본을 찾아 다시는 생기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마음으로 지관을 닦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바른 지혜를 잃지 않도록 하라”란 무슨 뜻인가?
지혜의 광명은 비추지 않는 곳이 없고, 생각과 지혜는 서로 따르니,
마치 두 마리 소가 한 굴레에 매인 것과 같다. 또한 누진통(漏盡通)은 그 몸이 무겁거나 가볍거나 간에 마음대로 부릴 수 있는 것처럼,
몸으로써 마음을 갖고 마음으로써 몸을 가져서 몸과 마음이 하나가 되면, 어디를 가나 걸림이 없어서 석벽이라도 그대로 통과한다.
그것은 다 마음을 단련시켜 미세함에 들고 그 미세함을 단련시켜 몸에 들기 때문이니, 마음으로 생각하면 몸이 그대로 따라서, 아무런 걸림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지혜를 잃지 않도록 하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8
온갖 더러움을 모두 없애고
교만을 버려서 생기지 않게 하며
몸이 다하도록 법을 구하되
잠깐도 현성을 떠나지 말라.
“온갖 더러움을 모두 없애고”란 무슨 뜻인가?
마음 속의 온갖 더러운 법, 즉 속박과 집착과 온갖 감관 작용을 모두 제거하여서, 다시는 줄기와 마디와 가지와 잎사귀가 없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더러움을 모두 없애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교만을 버려서 생기지 않게 하며”란 무슨 뜻인가?
교만과 증상만(增上慢)의 집착하는 마음을 제어하여 교만함을 없애면, 5음(陰)의 종자와 속박의 종자의 자취가 모두 사라진다.
그러므로 “교만을 버려서 생기지 않게 하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몸이 다하도록 법을 구하되”란 무슨 뜻인가?
대개 몸이란, 모든 물질을 일컬음으로서 번뇌도 몸이라 하고, 5음도 몸이라고 하며, 취(聚)도 몸이라고 하고, 이것을 기르는 업도 몸이라 하며, 코끼리, 말, 수레, 보병 따위의 네 종류의 군사도 몸이라고 한다.
그러나 몸 가운데도 가장 무서운 것은 속박의 몸으로서, 속박의 몸을 부수고 바른 법을 구하면 이것을 ‘속박을 여읜다.’라고 하는 것이니,
그는 유위(有爲)에 머무르지도 않고 7처(處) 3관(觀)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진실한 부처님 제자는 굳건한 믿음과 견고한 법과 하나가 되어서 능히 속박을 부순다.
그러므로 “몸이 다하도록 법을 구하되”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잠깐도 현성을 떠나지 말라”란 무슨 뜻인가?
항상 현성을 좇아 그 제자가 되기를 생각하고 현성과 같이 있기를 즐겨 하는 것이니,
거기에는 세 가지 지혜가 있다.
첫째 지혜는 온갖 번뇌가 없어진 것이고,
둘째 지혜는 유여(有餘)열반의 경계며,
셋째 지혜는 무여(無餘)열반의 경계이다.
그러므로 “잠깐도 현성을 떠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9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해탈
이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하니
온갖 번뇌를 모두 떠나 버리면
재앙도 없고 존재도 없으리라.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해탈”이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이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완전히 갖추어서 그것으로 몸을 장엄하면, 어디에 가든 번뇌를 부수지 못하겠는가?
마치 어떤 국왕이 재물이 많고 백성이 번성하며 기술이 남보다 뛰어나면, 나라와 백성이 편안하고 외적이 침범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수행하는 사람도 이와 같아서, 그 3업을 완전히 갖추면 번뇌의 도둑을 물리치기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계율로 뜻을 세우고 선정으로 어지러운 마음을 걷잡으며 지혜로 번뇌를 끊는다.
그러므로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해탈”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하니”란 무슨 뜻인가?
그 3업을 잘 생각하고 밤낮으로 실행하여 조금도 떠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언제나 생각해야 하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갖 번뇌를 모두 떠나 버리면”이란 무슨 뜻인가?
구경(究竟)을 다하여 생사의 괴로움을 알고는, 그곳에서 빠져 나오면 아주 깨끗하여 티가 없으며 또 어떤 더러움도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온갖 번뇌를 모두 떠나 버리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재앙도 없고 존재도 없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이미 끓어오르는 솥 안의 온갖 고뇌를 떠나고, 3유(有)를 다하여서, 다시는 태(胎) 받지 않음을 여실히 아는 것이다.
그러므로 “재앙도 없고 존재도 없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0
집착이 풀리면 곧 해탈하여
다른 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으며
온갖 마군의 경계를 넘으면
마치 해처럼 맑고 밝으리라.
“집착이 풀리면 곧 해탈하여”란 무슨 뜻인가?
행에는 여섯 가지가 있다.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의 온갖 속박과 더러움과, 욕계에서 생겨나는 어리석음과 교만과 미혹됨이 스스로를 얽어매는 것이다.
그러므로 “집착이 풀리면 곧 해탈하여”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다른 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으며”란 무슨 뜻인가?
수행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관찰하여서 그것을 여실히 알고는, 곧 방편을 구하여 속박을 영원히 끊는다. 그래서 생사가 이미 다하여 다시는 태를 받지 않으며, 범행이 이미 서고, 할 일을 이미 다 마친다.
그러므로 “다른 것이 다시는 생기지 않으며”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온갖 마군의 경계를 넘으면”이란 무슨 뜻인가?
6천(天) 이하는 모두 다 마군의 세계이다. 그곳은 온갖 고뇌가 많아서 도의 마음을 막기 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무위의 세계에 이르지 못하게 한다. 염부리(閻浮利) 안에는 어떤 다른 종류의 중생이 있는데 이름을 마가(摩佉)라고 한다. 그것은 낮에는 장처(藏處)에 숨어 있는데, 숙장(熟藏) 안에서 살며 죽어서는 마군의 세계에 떨어진다.
이른바, ‘욕계는 마군의 침해를 받아 온갖 재앙이 많다’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그러나 현성은 그런 삿된 경계를 뛰어넘는다.
그러므로 “온갖 마군의 경계를 넘으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마치 해처럼 맑고 밝으리라”란 무슨 뜻인가?
마치 해가 밝아서 다섯 가지 가리움[蔽]이 없는 것과 같은 것이니,
그 다섯 가지란,
첫째는 구름이고,
둘째는 연기며
셋째는 티끌이고,
넷째는 안개며
다섯째는 아수라의 손이다.
수행하는 비구도 이와 같아서 5음개(陰蓋)를 벗어나야 한다.
그 다섯 가지란,
첫째는 탐욕의 덮개[貪欲蓋]이고,
둘째는 분노의 덮개[瞋恚蓋]며,
셋째는 수면의 덮개[睡眠蓋]이고,
넷째는 들뜸의 덮개[調戱蓋]며,
다섯째는 의심의 덮개[疑蓋]이다.
수행하는 비구가 이 5개(蓋)를 벗어나면 곧 청명하게 되어 안팎이 환할 것이니, 마치 자마금(紫磨金)과 같을 것이다.
그러므로 “마치 해처럼 맑고 밝으리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1
미친 듯 미혹되어 방탕한 행동
비구여, 부디 그것을 피하고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행이
원만하기를 구하여 떠나지 말라.
“미친 듯 미혹되어 방탕한 행동”이란 무슨 뜻인가?
어리석고 미혹된 범부는 그 소행이 경솔하고 사납다. 그것은 마치 원숭이가 하나를 버리고 곧 하나를 취하는 것과 같다. 또 마음은 빠른 바람과 같아서 갖가지 일에 생각이 미친다.
그러므로 “미친 듯 미혹되어 방탕한 행동”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비구여, 부디 그것을 피하고”란 무슨 뜻인가?
물처럼 그 행을 지니고 땅처럼 분노를 참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구란, 힘 있는 자에게 의지하지 않고 능히 스스로 마음을 제어하여서 여섯 가지 감관의 문을 닫아야 비로소 비구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비구여, 부디 그것을 피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행”이란 무슨 뜻인가?
계율과 선정과 지혜를 밤낮으로 부지런히 닦아서 방일한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큰 바다를 건너려면 반드시 큰 배를 타야 하고, 열반으로 나아가려면 계율ㆍ선정ㆍ지혜의 행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선하지 않은 법은 줄고 선한 법은 불어날 것이다. 이 바른 가르침을 어겨서 그대로 따르지 않으면, 부처님과 법과 성스런 제자들에게 큰 폐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계율과 선정과 지혜의 행이 원만하기를 구하여 떠나지 말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2
이미 스스로 방탕하지 않으니
또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네.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리면
이와 같이 나지 않을 것이다.
“이미 스스로 방탕하지 않으니”란 무슨 뜻인가?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따위에 마음이 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미 스스로 방탕하지 않으니”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또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네”란 무슨 뜻인가?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 가운데서 오직 선정만을 닦고, 또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따위를 생각하지도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또 그것을 생각하지도 않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리면”이란 무슨 뜻인가?
마음속으로 지관(止觀)을 행하여 어지러운 생각을 제어하고, 항상 선정에 들어서 빛깔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따위의 교만함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므로 교만함을 버리면”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와 같이 나지 않을 것이다”란 무슨 뜻인가?
마치 저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마음으로 생각하는 법도 역시 이와 같다.
또 마음의 생각은, 마치 하늘에서 비가 내려 수레를 뒤엎고 곡식을 못쓰게 만드는 것과 같고, 마음이 생각하는 악은 그보다 더 많다.
그러므로 “이와 같이 나지 않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3
지혜로운 사람은 배움이 굳고
계율로 모든 것을 제어하므로
곧게 열반의 길로 나아가
어느새 해탈을 이루게 된다.
“지혜로운 사람은 배움이 굳고”란 무슨 뜻인가?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고 스승의 훈계를 따라서, 삿된 것을 버리고 바른 길로 나아가므로, 그 마음이 항상 견고하여서 나쁜 마음으로 무너뜨릴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사람은 배움이 굳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율로 모든 것을 제어하므로”란 무슨 뜻인가?
때를 따라 도를 행하고 계율을 지켜 지닌다는 것이니, 지혜로운 사람의 닦는 바요 어리석은 자의 행할 바가 아니다.
그러므로 “계율로 모든 것을 제어하므로”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곧게 열반의 길로 나아가”란 무슨 뜻인가?
영원한 쉼이고 무위(無爲)며 또한 끝도 처음도 없어서, 아주 고요하여 나는 것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곧게 열반의 길로 나아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어느새 해탈을 이루게 된다”란 무슨 뜻인가?
그 중간에 아무런 걸림이 없다는 것이니, 마치 강물이 사납게 넘쳐 흘러 모두 바다로 가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어느새 해탈을 이루게 된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4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니
부용(芙蓉)이나 전단(栴檀)의 향기와 같다.
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도 나니
덕이 있는 모든 사람이 두루 맡는다.
옛날 부처님께서는 라열기성(羅閱祇城)의 가란타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그때에 가섭(迦葉) 존자는 기사굴산(耆闍崛山)에 있었다. 그런데 그는 원래 부유한 집에서 자랐기 때문에 몸이 유약하여 부드러운 음식만을 먹고 거친 음식은 먹지 못하였다. 그러나 마음으로 깨달은 것이 있어서 빈궁한 사람들을 매우 가엾이 여겼다. 어느 날 그는 어떤 가난한 집에 가서 걸식을 하다가 거친 음식을 먹고 그만 병이 났는데, 속이 울렁거리고 끝내 설사를 하고 말았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목련(目連) 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지금 나를 따라 그를 문병하러 가자.”
“예, 그렇게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목련을 데리고 기사굴산으로 가셨다.
그때에 가섭은 혼자 고요한 방에 앉아 있었는데, 돌보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이 있는 굴로 가셨다. 가섭은 부처님을 보자 곧 일어나려고 하였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그에게 말씀하셨다.
“그대는 앓고 있으니, 일어나지 말고 앉아 있어라. 내게 자리가 있으니 나도 앉으리라.”
부처님께서는 그 사정을 아시면서 일부러 그에게 물으셨다.
“그대는 지금 빈 방에 혼자 있고 돌보는 사람도 없구나. 어떻게 이런 고요한 산중에 있는 것을 즐기는가?”
그때에 석제환인(釋提桓因)이 가섭 뒤에 서 있었다.
가섭은 부처님께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드렸다.
그 천왕의 지위마저 버리고
덕을 위하여 게으르지 않으며
그 마음 속에 기쁨을 가진
이 석제환인이 돌봐 줍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석제환인에게 다음과 같은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하늘 몸에 그 성정이 깨끗하며
향기로운 향을 그 몸에 발랐는데
어떻게 신성한 그 마음을 굽혀서
더러운 저 몸을 돌봐 주는가?
석제환인은 합장하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은 다음 거듭 부처님께 말씀드렸다.
가장 훌륭하신 이, 이제 아소서.
계율의 향기는 비할 데가 없으니
저는 지금 공덕의 향을 맡을 뿐이요
그 추한 몸뚱이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세존이시여, 천상의 여러 향은 속박의 근본을 늘리고 번뇌만을 더할 뿐이지만, 현성의 계율의 향은 온갖 번뇌를 끊고 재앙의 문을 막으며 어떤 욕심도 부리지 않습니다. 또한 세존이시여, 저 속된 향은 중생들을 생사에 유전하게 하여 여러 겁이 지나더라도 영원히 열반에 들지 못하게 하지만, 현성의 향은 억천백겁이 지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에 부처님께서는 가만히 석제환인을 관찰하시고 다음과 같은 게송을 말씀하셨다.
훌륭하도다, 석제환인이여.
지금 그대의 생각은 매우 희유하도다.
그대는 방일함 속에서
뜻을 세워 덕의 근본을 닦았구나.
그리고 부처님께서는 이 법의 근본에 의하여 대중들 속에서 다음과 같은게송을 읊으셨다.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니
부용이나 전단의 향기와 같다.
덕의 향기는 바람을 거슬러도 나니
모든 사람이 두루 맡는다.
대개 세상의 모든 꽃 향기는 모두 바람을 향해 나고 바람을 거스르게 되면 향이 나지 않는다. 그러나 계율과 덕의 향기는 바람을 향해서도 나고 바람을 거슬러도 난다.
세상의 꽃 향기는 욕계(欲界)에서는 다 향이 나지만, 색계(色界)에서는 향이 나지 않는다.
세상의 꽃 향기는 한쪽에만 나고 3방(方)으로는 나지 않지만, 계율의 향기는 시방(十方)에까지 난다.
세상의 꽃 향기는 가까이 가야 알 수 있지만, 계율을 지닌 이의 향기는 위로 일구경천(一究竟天)에까지 사무친다.
그러므로 “꽃 향기는 바람을 거스르지 못하지만, 덕의 향기는 모든 사람이 두루 맡는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5
전단나무는 향기가 많이 나고
청련(靑蓮)은 꽃다운 꽃이다.
비록 그것을 진짜라고 하지만
계율의 향기만을 못하다.
“전단나무는 향기가 많이 나고”란 무슨 뜻인가?
세상에서 말하는 침수(沈水)ㆍ목밀(木謐)ㆍ전단(旃檀)ㆍ도량(都良) 따위는 다 뿌리의 향기이고, 꽃의 향기는 청련ㆍ부용ㆍ첨복(瞻蔔)ㆍ수건제(須乾提)ㆍ말(末)수건제ㆍ지해탈화(至解脫華)ㆍ순일정화(純日精華)ㆍ분타리화(分陀利華)인데, 이런 꽃 수십 수백 가지보다 계율을 지닌 이의 향기가 백 배, 천 배, 만 배, 수억만 배 더 난다. 이것은 비유로써 견줄 수도 없고, 마음으로 생각할 수도 없으며, 뜻으로도 헤아릴 수 없다.
지금의 이런 꽃들은 사람의 일생을 따라 현재의 몸으로써만 즐길 수 있고, 사람을 따라 후세에는 갈 수 없다. 그러나 계율을 지닌 자의 향기는 현세에서도 그 복을 받고 백천겁이 지나더라도 헛되이 없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비록 그것을 진짜라 하지만, 계율의 향기만은 못하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6
어떤 꽃 향기도 그 기운이 미약하니
그것은 진짜라고 할 수 없다.
계율을 지닌 그의 향기는
하늘에까지 이를 정도로 훌륭하도다.
“어떤 꽃 향기도 그 기운이 미약하니”란 무슨 뜻인가?
전단이나 목밀은 한가운데 있는 나라[中國]에서는 귀하게 여기지만 변방에는 없다. 그러나 계율을 지닌 자의 덕의 향기는 위로 모든 하늘에까지 사무치고 밑으로는 시방에 사무쳐서 온 세계에 가득 차므로 그것을 맡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꽃 향기도 그 기운이 미약하니, 그것은 진짜라고 할 수 없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계율을 지닌 그의 향기는, 하늘에까지 이를 정도로 훌륭하도다”란 무슨 뜻인가?
저 도리천(忉利天)의 천인들은 방일하고 무엇이나 생각대로 하지만, 스스로 이를 높여서 찬탄한다. 그리고 계율을 지닌 사람도 선을 닦으면 복을 얻지만 악을 지으면 죄에 떨어진다.
그러나 계율, 선정, 지혜, 해탈견혜(解脫見慧), 도지견(度知見) 등은 공경할 만하고 귀히 여길 만하여 위없는 도라고 할 수 있다. 왜냐 하면 그런 사람은 길잡이가 되어서 사람을 바른 길로 이끌어 보이고, 사람들의 어리석음을 열어 지혜의 광명을 보게 한다.
그러므로 “계율을 지닌 그의 향기는, 하늘에까지 이를 정도로 훌륭하도다.”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7
계율을 완전히 성취하고
선정을 닦아 해탈을 얻지만
마군은 아득히 그 길을 잃어
마군은 그 길을 알지 못한다.
“계율을 완전히 성취하고”란 무슨 뜻인가?
비구, 비구니, 우바새(優婆塞), 우바이(優婆夷)의 사부대중은 청정한 청정한 계율을 갖추어서 조금도 이지러짐이 없다. 그러나 마왕(魔王)은 비록 큰 세력이 있어서 욕계를 통솔하며 거기서 홀로 높다고 하지만, 저 사부대중이 얻는 도의 과(果)를 알지 못하고, 또 어떤 도의 과를 좇아야 온갖 번뇌를 없애는지도 알지 못한다. 이때에 마왕은 입을 닫고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은 머리를 깎고, 오른 팔과 오른 어깨를 드러내고[偏袒右肩] 선정을 닦는데, 혹은 정진하여 나의 경계를 벗어나기도 하고, 혹은 갔다왔다 하면서 내 말을 듣지 않으며, 혹은 아주 사라져서 그 정신이 어디 있는지 알 수 없고, 혹은 목숨을 버린 뒤에 그 정신이 나아갈 곳을 알기도 한다.’
그러므로 “마군은 아득히 그 길을 잃어 마군은 그 길을 알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18
이 도를 마지막이라 하고
이 도를 최상이라 하니
그 길을 향해 끝까지 가라.
선정은 능히 마군을 속박한다.
“이 도를 마지막이라 하고”란 무슨 뜻인가?
안온하고 무위(無爲)며 그 즐거움이 끝이 없다. 그래서 그 한 길로 나아가면 마지막에 열반의 문에 이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도를 마지막이라 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이 도를 최상이라 하니”란 무슨 뜻인가?
이 도보다 더 훌륭한 것이 없다는 것이니, 모든 천인들과 용과 귀신들이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들어 섬기고 또 공양하기 때문이다.
사사사사리불(舍利弗) 존자에게 순두(純頭)라는 사미(沙彌)가 있었다. 그는 나이 여덟 살에 6신통을 얻어서 허공을 날아 아누(阿耨) 샘으로 갔다. 그런데 5신통을 지닌 수발(須拔)이라는 범지도 그 샘으로 가게 되었다. 그러자 그 아누 샘의 샘지기인 푸른 옷 귀신[靑衣鬼]은 5신통을 지닌 범지를 돌로 때려 내쫓으면서 그 신령스런 샘물에 가까이하지 못하게 하였다.
순두 사미가 허공을 날아 거기에 갔을 때에는 수백의 푸른 옷 귀신들이 모두 나와 그를 맞이하였다. 앞으로 나와 그의 옷을 받아 들어 주는 이도 있었고, 깨끗한 물로 그의 손발을 씻어 주는 이도 있었으며, 깨끗한 수건으로 그의 머리와 얼굴을 닦아 주는 이도 있었고, 혹은 향탕(香湯)으로 그의 몸을 목욕시키는 이도 있었다.
그러자 수발 범지는 큰 소리로 말하였다.
“나는 지금 5신통을 얻어 그 덕이 한량없다. 힘으로는 산을 옮길 수 있고, 흐르는 물을 돌이킬 수 있으며, 천지도 손바닥의 구슬처럼 돌릴 수 있다. 나는 도를 배우기 시작한 지 120여 년 동안 몸과 마음을 괴롭혀서 피로함이 극도에 이르렀다. 5명(明)과 4처(處)를 공부하기도 하고, 불을 피우기도 하며, 위로는 빛나는 해를 섬기기도 하였다. 잿더미나 쓰레기 위에 눕기도 하였고 날카로운 가시덤불 속에 눕기도 하는 등, 배우지 않은 도가 없다. 그런데도 나를 내쫓아 샘물로 가지 못하게 한다.
그런데 저 검은 옷을 입은 아이는 겨우 7, 8세이고 아직 젖도 떨어지지 않아, 그 몸에는 젖 비린내가 난다.
그런데 과중하게 대우하여, 나가서 맞이하고 받들어 섬기니, 어찌된 까닭인가?”
귀신이 그에게 말하였다.
“지금 이 분은 나이가 어리고 몸은 작지만 그 행은 삼계(三界)에서 뛰어나고 현성의 여덟 가지 도를 얻었다. 그런데 당신에게는 그런 공덕이 없다. 그래서 공경하지 않는 것이다.”
또 어떤 바라문이 있었는데 이름을 열차(閱叉)라고 하였다. 그는 절을 세워서 그 절의 이름도 열차소라 하였다.
그는 언제나 소유(酥油)만으로 절의 등불을 켰다.
그때에 어떤 범지가 먼 곳에서 열차의 절로 왔는데, 그는 그 범지의 재주가 높고 덕이 밝으며, 불법을 독실히 믿고 절을 세웠다는 말을 들었다. 그는 그 범지에게 가서 서로 문안 인사를 나누었다.
그때에 한 명의 사미가 또한 오고 있었다. 범지는 그를 맞이하고 소유를 가져다가 등불을 켜 공양하였다.
다른 범지들이 열차 바라문에게 물었다.
“당신은 참으로 그 물든 옷을 입은 사람에게 예배하였습니까?”
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 사미가 왔다. 그는 또 그에게 예배하였다.
다른 범지들은 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4성(姓)의 출생으로 재주와 기예가 남보다 뛰어나서, 천문과 지리를 모두 능숙히 관리하고, 신주(神呪)로써 신령을 감동시키는 등 못하는 일이 없습니다. 지금 저 물들인 옷을 입은 사람은 여러 가지 잡성(雜姓)의 출생이기 때문에 순수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근본을 어기고 그를 향해 예배하는 것입니까?
또 당신은 범지의 청정한 행을 굳게 지키고 스스로 닦아서 마음속에는 도참비기(圖讖祕記)를 간직하여 도를 행하고 복을 성취하였거늘, 무슨 소원인들 이루지 못하겠으며, 문자장인(文字章印)도 모두 통달하였습니다. 그리고 저 부처의 행은 아직 모자라는 것이 많은데, 무엇이 그리 귀하다고 하겠습니까? 근본을 버리고 그 지말(枝末)을 취하니 이것이 우리가 아파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듣기론, 저 사문들은 가난하고 미천하며, 교묘한 거짓이 아주 많아서 세상 사람들을 미혹되게 한다고 합니다. 또한, 그들의 소행은 보잘것없고 한 몸의 영화만을 꾀하여 청정한 복을 성취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혹 그들을 만나더라도 손을 들면 그만이거늘, 왜 온몸을 땅에 던져서 공경히 예배하는 것입니까? 우리가 직접 보기에도 그 까닭이 매우 괴이하거늘, 하물며 윗분들인 대인(大人)들이 어찌 당신의 죄를 용서하겠습니까?”
열차 범지는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잠시 내가 말하는 오묘한 게송을 들어 보시오.”
현성의 덕은 헤아리기 어려우니
여덟 가지 위없는 바른 길은
저 사문이나 바라문들을 위해
부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다.
보라, 그 몸은 비록 적으나
현성의 도를 이루었으므로
나는 지금 그에게 귀의하는 것이니
너희 범지들아, 왜 비웃는가?
그러므로 “이 도를 최상이라 하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길을 향해 끝까지 가라”란 무슨 뜻인가?
수다원(須陀洹)과 사다함(斯陀含)은 능히 욕계의 속박과 모든 감관 작용을 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길을 향해 끝까지 가라”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선정은 능히 마군을 속박한다”란 무슨 뜻인가?
선정에 들어 좌선하는 사람은 고요한 곳을 좋아하고 뜻이 한결같은 것을 숭상하며, 드나드는 숨길을 헤아리고 뜻을 굳건히 하여서, 능히 마군의 속박을 끊을 뿐 아니라 도리어 마군을 속박한다. 또 선정에 든 사람은 능히 귀신을 부려서 곧 오게 한다.
부처님 경전에,
‘나는 천상과 인간 세상을 두루 살펴보았지만, 모든 속박 중에서 가장 견고한 것은 마군의 속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번뇌가 없어진 아라한에게는 끊어지기 때문에 다시는 미래 세상에서 생을 받지 않는다.’라고 하신 말씀과 같다.
그러므로 비구는 이렇게 생각하고, 방편을 구하여 마군의 견고한 속박을 끊어야 한다.
19
그 설법이 비록 간단하여도
일심으로 오로지 듣고 받들면
법을 보호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음욕, 분노, 어리석음을 떨쳐 버려라.
온갖 속박을 영원히 버린 이
그러므로 그를 사문이라고 한다.
“그 설법이 비록 간단하여도”란 무슨 뜻인가?
아무리 간단하더라도 요의(要義)가 있고 그 이치가 서로 어울린다는 것이다.
옛날 어떤 두 비구가 깊은 산중에서 도를 닦고 있었다. 한 사람은 아는 것이 많았고 한 사람은 아는 것이 적었다. 그런데 아는 것이 적은 사람은 계율은 완전히 가졌지만 그가 외우는 경문은 다만 한 글귀뿐이었다. 더욱이 날마다 그것만을 외우면서 다시 더 배우려고 하지 않았다. 그래서 허공의 신과 산림의 신은 날마다 훌륭하다고 그를 칭찬하면서 그 도인의 설법을 듣기를 원하였다. 그때에 많이 아는 비구는 자기가 아는 온갖 묘한 이치와 매우 깊은 경전의 글귀를 높은 소리로 외우고 있었다. 그러나 산림의 여러 신들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또 훌륭하다고 칭찬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 비구는 화가 나서 그 산신(山神)들에게 말하였다.
“저 늦게 배운 비구는 배움이 아직 낮아서 겨우 한 글귀밖에 외우지 못하는데도 천신들이 훌륭하다고 칭찬하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많이 알아, 매우 깊은 이치와 온갖 경전의 묘한 말과 글을 모아 당신들을 위해 외우거늘, 왜 천신들은 대답도 하지 않고 훌륭하다고 칭찬도 하지 않는가?”
천신은 대답하였다.
“비구는 자기를 꾸짖을 줄은 모르고 도리어 나를 꾸짖는구나. 이 아는 것이 적은 비구는 말과 행이 같다. 지금 그대 비구는 비록 삼장(三藏)을 외우지만 그 행이 경전과 어긋난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출요경(出曜經)』에 다음과 같은 게송이 있다.
그 설법이 비록 간단하여도
일심으로 오로지 듣고 받들면
법을 보호하는 사람이라고 하니
음욕, 분노, 어리석음을 떨쳐 버려라.
저 비구는 그 법과 일치한다. 또한 비록 음욕, 분노, 어리석음을 다 없애지는 못했지만 방편으로 그것을 없애려고 한다.
그런데 그대는 비록 아는 것은 많지만 밤낮으로 음욕과 분노와 어리석음을 익히면서 색ㆍ소리ㆍ냄새ㆍ맛ㆍ촉감ㆍ법에 탐착하고 있다.
저 아는 것이 적은 비구는 밤낮으로 선정에 들어 생각이 흩어지지 않으므로 항상 훌륭하다고 칭찬을 받는 것이다. 그대는 아는 것은 많지만 마음이 한결같지 않다. 그러므로 훌륭하다고 칭찬하지 않는 것이다.”
그때에 그 비구는 천신의 말을 듣고 자신이 한 일을 매우 부끄럽고 창피하게 여겨 이렇게 마음먹었다.
‘저 산신도 더러운 내 행을 아는데, 하물며 도를 얻고 신통을 지닌 사람으로서 어찌 나를 보지 못하겠는가? 나는 지금 허물을 고치고 묘한 지혜를 생각하여 다시는 음욕, 분노, 어리석음에 집착하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그래서 배운 것처럼, 말과 행이 일치하면, 모든 하늘과 해와 달이 한량없이 훌륭하다고 칭찬할 것이다. 대개 사람이 수행할 때에 그 벗의 충고를 따르면 선법(善法)을 완전히 성취할 수 있다.’
그때에 그 비구는 행을 굳건히 하고 부지런히 힘써서, 세속의 묘한 법과 부정관(不淨觀)ㆍ안반(安般)ㆍ4의지(意止)ㆍ난법(煖法)ㆍ정법(頂法)ㆍ인법(忍法)ㆍ세간제일법(世間第一法)을 얻고, 이어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陀含)ㆍ아나함(阿那含)ㆍ아라한(阿羅漢)의 과(果)를 차례로 증득하였다. 이렇게 도를 얻은 뒤에 그 비구는 천신들에게 사례하였다.
“고마운 충고를 받고 맑은 연못에 때를 씻었습니다. 저는 지금 도를 얻고 많은 것을 성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다시 그들을 위해 설법하니, 그들은 마음이 열리고 뜻이 풀려서 법안(法眼)이 깨끗해졌다.
그러므로 “그 설법이 비록 간단하여도”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20
방일하지 않으면 칭찬을 받고
방일하면 헐뜯음과 비난을 받는다.
방일하지 않은 마갈인(摩竭人)
인연이 깨끗하여 천상에 나다.
무수히 오랜 과거 세상에 가섭(迦葉)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셨다.
그는 지진(至眞)ㆍ등정각(等正覺)으로 세상에 있으면서 제도할 수 있는 인연 있는 중생을 모두 교화하고 무여(無餘)열반의 세계에서 열반에 들었다.
그때에 사부대중들은 그 사리를 화장한 뒤에 7보로 된 탑을 세우고 그것을 공경하고 공양하였다. 그 뒤 여러 세상을 지나 그 탑이 무너져 내렸지만아무도 수리하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에 그 도읍의 사람 9만 2천 명이 모여 의논하였는데, 병사왕(甁沙王)이 그 우두머리가 되었다.
왕이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너희들은 각각 서로 권하고 독려하여 복덕을 짓도록 하라. 부처님 세상은 만나기 어렵고 사람의 몸은 얻기 어렵다. 혹 사람이 되더라도 저 변방에 떨어져 삿된 소견을 가진 집에 태어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우리가 세속의 환락에만 탐착하고 있겠는가? 생각을 내어 저 허물어진 탑을 수리하는 것만 못하다.”
사람들은 모두 왕의 분부를 받고 다 같이 허물어진 탑을 수리하기로 하고, 다시 발원하였다.
“저희들 모두는 지금 마음과 뜻을 같이하여 이 탑을 수리하고자 합니다. 만일 조금이라도 여기에 공덕이 있으면 3도(塗)와 8난처(難處)에 떨어지지 않고, 천인이나 인간으로 태어나되, 모두 한곳에서 살게 해주십시오. 장래에 석가문(釋迦文)이라는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신다고 하는데, 그 분이 최초에 설법하실 때에는 우리 대중이 맨 먼저 제도를 얻되, 이 왕을 우두머리로 삼게 해주십시오.”
그래서 그 9만 2천 명은 모두 세간에서의 수명에 따라 각기 목숨을 마치고는, 모두 천상에 나서 도리천(忉利天) 궁전에 있었다.
거기서 다시 여러 세상을 지나 염부리(閻浮利) 안에 부처님께서 세상에 나오시니, 그 명호(名號)는 지진ㆍ등정각으로서, 10호(號)를 완전히 갖추시고 32상과 80종호를 갖추었으며, 피부는 자마금색(紫磨金色)이고, 뚜렷한 광명은 일곱 자였으며, 음성은 여덟 가지로서 갈비조(羯毘鳥)의 소리와 같았다.
그때에 9만 2천의 천인들은 하늘의 복을 받다가 각기 목숨을 마치고는 마갈국에 태어났다. 병사왕은 나이 여덟 살에 선왕의 뒤를 이어 법으로써 다스리고 교화하였다. 그는 조금의 어긋남도 없이 바른 법을 닦았으며, 은혜와 사랑은 아랫사람에게도 넘쳐서 산 목숨을 해치지 않았다. 또한 보시를 행하여 가난하고 곤궁한 이를 구제하고, 멀리서 오는 사람이나 지나가는 사람이나 잠깐 멈추어 쉬는 사람들에게도 필요한 것을 모두 주었다.
이때에 유동(儒童) 보살은 8만의 시녀와 왕의 중한 자리와 나라를 버리고, 아무도 없는 밤에 도를 구하러 떠났다. 스스로 머리를 깎고 또 보배로운 옷을 벗고, 타고 간 말을 차닉(車匿)에게 주어 돌려보내면서 왕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했다.
“생사의 고뇌와 근심 걱정은 한량이 없습니다. 소자는 지금 도를 닦기 위해 떠나는데 기어코 그 결과를 얻고야 말 것입니다. 만일 소원을 성취하면 돌아와서 대왕을 제도하겠습니다.”
이윽고 보살은 앞으로 계속 걸어가다가 길에서 어떤 사냥꾼을 만났다. 그는 법복을 입고 있었는데, 그 형색이 사문과 같았다.
보살은 그 사냥꾼에게 물었다.
“지금 입고 있는 법복은 이름이 무엇입니까?”
사냥꾼은 대답하였다.
“이 옷 이름은 가사(袈裟)라고 합니다. 이것을 입고 사냥을 나가면 사슴들이 보고는 도인이라 생각하여, 모두 와서 공경하고 가까이하면서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하여 사슴을 잡아먹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보살은 이 말을 듣고 더욱 자비심을 일으켜 다음과 같은 게송을 읊었다.
21
사람은 네 가지 한량없는 마음으로
중생들을 두루 구제해야 하니
가사는 부처님의 법복으로서
죄를 없애는 것인데 도리어 죄를 짓네.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이 하늘옷은 매우 부드럽고 좋소. 그것과 바꾸면 어떻겠소.”
사냥꾼은 말하였다.
“왕자님은 깊은 궁전에서 성장하여 몸이 가냘프기 때문에 추위나 괴로움을 겪지 않았을 것인데, 혹 왕자님의 몸을 해칠까 두렵습니다.”
보살은 말하였다.
“다만 바꾸면 그만이오. 괴로울 것 없소. 이 옷은 옛날 현성의 표식(幖式)이오.”
“왕자님의 보배로운 옷은 그 가치가 한량이 없지만, 지금 이 가사는 쓸데없는 것입니다. 무엇하러 구태여 바꾸려고 하십니까?”
“그저 가지고 싶을 뿐이오, 귀하고 천함을 생각하지 않소.”
“이 옷은 때가 묻어 더럽고 고름과 피 냄새가 납니다. 바꿀 수 없습니다.”
“냄새가 나거나 향기가 나거나 간에 큰마음 먹고 주기만 한다면 나는 그것을 빨아서 쓰겠소.”
사냥꾼을 곧 옷을 벗어서 보살의 옷과 바꾸었다.
그리고 보살은 법의를 입고 손에는 연꽃을 들고 라열성으로 들어가서 걸식을 하였다. 그때에 수천만의 대중들이 한 곳에 모여들어 보살을 보고는 손을 들고 찬탄하였다.
어떤 이는 “잘 오셨습니다.”라고 하고, 어떤 이는 “해와 달과 같습니다.”라고 하며, 어떤 이는 합장하고 귀의하며, 어떤 이는 문안을 드리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인(天人)이십니까? 범천(梵天)이십니까? 석제환인(釋提桓因)이십니까?
보살은 여러 사람들에게 둘러싸여서 걸식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보살은 연꽃을 들고 성 밖으로 돌아와 동산(東山)으로 갔다.
사람들이 그를 쫓아가니, 앞뒤가 계속 서로 잇닿았다.
이때에 병사왕은 높은 누각 위에 있으면서 멀리서 사람들이 보살을 쫓아가는 것을 보고 죄우의 신하들에게 물었다.
“저 사람들이 모두 산으로 달려가는데 무슨 까닭인가?”
한 대신이 보살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곧 왕에게 말했다.
“저 사람은 석종(釋種)의 아들로서 출가하여 도를 배운다고 하면서 저렇게 밖에 나와 놀고 있습니다. 혹 나라 일을 꾀할는지 모르니 곧 가서 잡아 죽여야 할 것입니다.”
병사왕은 그 말을 듣고 그 대신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종족을 보존하고자 한다면 그런 말을 말라. 만일 저 석종의 아들이 왕위를 이어받는다면, 그는 전륜성왕(轉輪聖王)이 되고 우리는 그 신하가 될 것이요, 만일 집을 떠나 도를 배워 스스로 부처가 되면 우리는 그 상수의 제자가 되어 최초로 설법할 때에는 제일 먼저 듣는 차례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래서 병사왕은 갖가지 맛있는 음식을 수레에 싣고 산으로 가서 보살을 만났다. 그는 곧 앞으로 나가 그 발에 예배하고 자기 성명을 말했다.
“마갈국의 병사왕이 바로 저입니다.”
보살은 대답하였다.
“나는 벌써 알고 있소. 그렇게 인사할 것 없소.”
왕은 말했다.
“이제 보잘것없지만 남은 음식을 바치오니, 원컨대 미미한 이 마음을 생각하시고 받아 주소서.”
보살은 말없이 그것을 드셨다. 공양이 끝난 뒤에 깨끗한 물을 돌리고 왕은 앞으로 나가 말했다.
“만일 왕자께서 위없는 도를 이루시거든, 저를 먼저 제도하여 이 세상 괴로움을 떠나게 하소서.”
그리고 병사왕은 보살의 발에 예배하고 떠났다.
보살은 그 길을 따라 아란(阿蘭)에게로 갔다. 아란의 제자들은 멀리서 보살이 오는 것을 보고 그 스승에게 말했다.
“지금 어떤 단정하고 범상치 않은 사람이 스승님의 문으로 오고 있는데, 반드시 제자가 되기를 청할 것입니다.”
아란은 곧 그 제자들에게 이와 같은 게송으로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