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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자량론 제5권
[힘을 얻은 보살의 수행]
【문】
힘을 획득한 보살은 중생 속에서 마땅히 어떻게 수행하여야 하는가?
【답】
모든 논(論) 및 공교(工巧)와
명술(明術)과 갖가지 업(業)으로
세간을 이롭게 하려고
그것을 낳아서 건립한다.
이 중에는 책을 찍는 일ㆍ계산하는 일ㆍ광물ㆍ의술에 대한 논과 귀신들림[鬼持]을 능히 소멸하고,
독에 해를 논 등은 마을ㆍ성(城)ㆍ동산ㆍ하천ㆍ연못ㆍ꽃ㆍ열매ㆍ약림(藥林)에 관한 논 등을 낳고,
금ㆍ은ㆍ진주ㆍ비유리(鞞琉璃)ㆍ패석(貝石)[흰색으로 조개와 같은 돌]ㆍ산호(珊瑚)의 보배성품에 관한 논 등을 나타내 보이고,
일월성요(日月星曜)ㆍ지동(地動)ㆍ꿈 해몽[夢相]에 관한 논 등을 기록하여 설명하며,
모든 신체 부분[身分]과 지절(支節)에 관한 논 등을 관찰한다.
이와 같은 한량없는 논으로서 능히 세간에 이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겁(劫)이 굴러 파괴될 때에 전부 다 소멸하여 버리고, 겁이 굴러 생겨날 때에 다시 인간(人間) 가운데 생겨나 건립된다.
나무ㆍ쇠ㆍ기와ㆍ동(銅)으로 조작하는 등과 같은 공교(工巧)는 하나가 아니며, 귀신들림ㆍ전도되어 미침ㆍ독에 해침을 당함ㆍ음식에 체하여 구토하는 급성 위장병[癨亂]ㆍ먹은 음식이 소화되지 않음[不消食] 등 모든 핍박하여 고뇌하게 하는 것들을 능히 소멸시킨다.
갖가지 명술(明術)ㆍ조각하고 그림 그리는 것[雕畵], 수를 놓고 옷감을 짜는 등의 갖가지 사업으로 능히 세간에 이로움과 즐거움을 주는 것은 모두 낳아서 건립하게 한다.
교화시켜야 하는 중생의
계(界)ㆍ취(趣) 및 생(生)을 따라서
염(念)하는 대로 곧 그를 찾아가니,
원력(願力) 때문에 태어남을 받아들인다.
모든 마하살은 어떤 세계(世界), 혹은 하늘나라와 인간 등의 갈래[趣], 혹은 바라문(婆羅門)ㆍ찰제리(刹帝利)ㆍ비사(鞞舍) 등의 생애[生]를 따라 그 각각의 처소에서 교화시켜야 할 중생이 있으면,
한량없는 사념(思念)을 일으켜서 그들 중생을 교화시키고자 하는 까닭에 그 색상의 부류가 길고 짧음ㆍ넓고 좁음과 음성(音聲)의 과보에 따라 중생이 교화를 받게끔 하는 일을 얻으려고 반드시 서원을 짓는다.
그 색상의 부류가 길고 짧음ㆍ넓고 좁음과 음성의 과보를 일으키는 것은 그 중생으로 하여금 신속하게 교화를 받아들이게 하려는 것이다.
갖가지 나쁜 일과
아첨과 환상에 빠진 중생에 대해서는
마땅히 견고한 갑옷[鎧鉀]을 사용해야 하며
혐오하지도 말고 꺼리지도 말아야 한다.
만약 욕하며, 꾸짖고, 무섭게 행동하고, 혐오하며, 한탄하고, 채찍으로 때리고, 계박하여 유폐시키고, 꾸짖으면서 책망하는 등의 이와 같은 나쁜 일을 나에게 가하고,
또 모든 중생이 한량없이 아첨과 환상에 빠져서 교화시킬 수 없음을 안다면,
그들 때문에 마땅히 스스로 갑옷을 느슨하게 하지 말고, 또한 유전하는 것을 혐오하지도 말고, 보리를 구하는 것을 꺼리지 말라.
또 마땅히 다음과 같이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는 아첨도 없고 환상도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갑옷을 걸친다. 나는 바로 그들 중생을 위하여 이 갑옷을 걸친다.
나는 마땅히 이와 같은 일을 해서 정진을 일으켜야 하니, 그들 중생으로 하여금 아첨 없고 환상 없음을 빨리 세우게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마땅히 이와 같이 스스로 갑옷을 견고하게 해야 한다.
[힘을 얻지 못한 보살의 수행]
【문】
힘을 얻은 보살의 수행을 이미 설명하였다.
아직 힘을 얻지 못한 보살은 어떻게 수행해야 하는가?
【답】
수승하고 청정한 의지를 구족하여
아첨하지도 않고 또한 환상에 빠지지도 않으며
모든 죄악을 드러내고
뭇 선한 일을 덮어 감춘다.
‘수승하고 청정한 의지를 구족한다’는 것은
이른바 증상의 의지이다. 또 선(善)의 증대이기도 하다. 의지[意]라는 것은 마음[心]이다.
곧 그 마음을 구족하는 것을 ‘수승하고 청정한 의지를 구족한다’고 이름한다.
‘아첨하지도 않고 또한 환상에 빠지지도 않는다’는 것을 말해 보자.
아첨[諂]은 다른 마음[別心]을 말한다. 다른 마음이란 질직(質直)하지 않은 것이다.
또 아첨이란 왜곡된 마음[曲心]이라고도 이름한다. 환상[幻]이란 기만[誑]을 말한다.
만약 마음이 왜곡되지 않고 기만하지 않으면, 그것은 아첨하는 것이 아니고 환상에 빠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죄악을 드러낸다’는 것을 말해 보자.
만약 어떤 죄악을 말로 나타내어 드러내면, 그것을 ‘모든 죄악을 드러낸다’고 이름한다.
‘뭇 선한 일을 덮어감춘다’는 것을 말해 보자.
만약 어떤 선한 업을 마침내 크게 덮어 감추면, 그것을 ‘뭇 선한 일을 덮어 감춘다’고 이름한다.
만약 보살이 신속하게 보리를 얻고자 하면, 마땅히 청정한 마음을 구족하고, 아첨하지 않고 환상에 빠지지 않으며, 죄악을 드러내고 선한 일을 덮어 감추어야 한다.
그러므로 세존께서
“아첨은 보리가 아니고, 환상은 보리가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몸과 입의 업을 청정하게 하고
또한 마음의 업을 청정하게 하며
모든 계학의 구절[戒學句]을 수행하여
결점이 없게 하라.
이 모든 보살은 수행의 생각[修念]과 상응하고자 하기 위해서는 먼저 마땅히 몸과 입과 마음의 업을 청정하게 해야 한다.
그 중에서 생명을 죽임ㆍ주지 않는 것을 가짐ㆍ깨끗하지 못한 행위 등의 세 가지 몸의 악한 행위는 마땅히 청정하게 해야 한다. 이것과 서로 어긋나는 세 가지 몸의 선한 행위는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망령된 말ㆍ파괴하는 말ㆍ추악한 말ㆍ잡되게 희롱하는 말 등의 네 가지 입의 악한 행위는 마땅히 청정하게 해야 한다. 이것과 서로 어긋나는 네 가지 입의 선한 행위는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탐욕ㆍ성냄ㆍ삿된 견해 등의 세 가지 마음의 악한 행위는 마땅히 청정하게 해야 한다. 이것과 서로 어긋나는 세 가지 마음의 선한 행위는 마땅히 받아들여야 한다.
모든 바라제모차(波羅帝摹叉)의 배워야 하는 구절도 또한 마땅히 받아들여서 따라 굴려야[隨轉] 한다.
저 배워야 하는 구절에 대하여 알고 있는데도 고의로 파괴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만약 계율을 어기고 훼손한 자라면 수행 의 염(念) 속에서 마음이 안정되지 않는다.
정념(正念)에 안주하고
반연을 거두어 홀로 적정하게 사유하며
염(念)을 사용하여 자기를 보호하면
마음에 장애되는 마음이 없게 된다.
이와 같이 계율을 바르고 청정하게 하고 나서 다섯 가지 덮개[五蓋]를 단절하여 제거한다.
한적하고 정결하여 대중을 여읜 처소에서 소리가 적고 덜 시끄러우며 모기ㆍ등에ㆍ뱀ㆍ호랑이ㆍ도적 등이 적고 매우 춥거나 덥지 않은 곳으로 침상[臥狀]을 두지 않는다.
그리고 서거나 경행하기도 하고 혹은 결가부좌하기도 하고, 혹은 코끝이나 이마 부분에 생각[念]을 돌이켜 안주하면서 한 가지 인연을 따라 잘 거두어 짓는다.
만약 경계에 대하여 성급하고 요동하는 마음이 있으면 염(念)을 이용해서 수문(守門)으로 삼으며, 이와 같이 수호를 두고 나서는 장애하는 도적의 마음을 멀리 여읜 채 홀로 한 곳에 머무르면서 산란한 마음 없이 사유를 닦아 익힌다.
만약 분별을 일으킬 때에는
마땅히 선함과 선하지 않음을 자각하여
모든 선하지 않음을 버려야 하고
모든 선한 몫[善分]을 많이 닦아야 한다.
사유할 때 만약 분별이 일어나면 일어나자마자 이 분별을 자각한다.
만약 선하지 않는 것이면 즉각 버려서 다시는 증장되지 않게 해야 하고,
만약 선한 부분이면 오직 자주자주 많이 지어야 한다.
실내의 등불이 바람길[風道]을 가리지 않는 것처럼 마땅히 산란하지 않아야 한다.
경계를 반연하는 마음이 만약 산란하면
마땅히 오로지 염(念)하여 알도록 하고
되돌아서 그 경계 가운데
움직임을 따라 즉각 안주하게 해야 한다.
이 중에서 선정을 수행하는 비구는 마음으로 사유할 때 뜻을 오로지 해서 산란하지 않아야 한다.
만약 마음이 경계를 여의면 즉각 각지(覺知)해야 하고, 나아가 경계까지 여의어서 멀리 가지 않게 해야 하며, 다시 그 마음을 거두어 경계 속에 안주시켜야 한다.
원숭이를 줄로 묶어 기둥에 붙들어 맬 때, 오직 기둥에 묶어야 능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는 것처럼,
사념의 줄로써 마음의 원숭이를 묶어 경계의 기둥에 붙들어 맬 때는 오직 경계의 기둥에 자주자주 묶어 두어야 능히 다른 곳으로 가지 못하게 된다.
느슨하거나 잘못됨을 취해서
정진을 수행하지 말아야 하니
선정을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마땅히 항상 수행해야 한다.
‘느슨하다’는 것은 채찍질하며 정근하는 것을 여읨을 말한다.
‘잘못됨을 취한다’는 것은 잘 취하지 못하는 것이다[몹시 성급함을 말한다.]
만약 삼마제를 성취하고자 하면, 마땅히 느슨하거나 잘못됨을 취해서 정진하지 말아야 한다. 느슨하게 하거나 잘못됨을 취해서 정진하고자 하면 삼마제를 유지할 수 없다.
그러므로 선정을 수행하는 자는 마땅히 항상 바르게 수행해야 한다.
만약 성문승(聲聞乘)과
독각승(獨覺乘)에 오른다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할 뿐이라서
견고한 정진을 버리지 않는다.
만약 성문승과 독각승에 오르고자 하면 오직 자신의 이익을 위하기 때문에, 그리고 스스로 열반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밤낮으로 견고한 정진을 버리지 않고 채찍질하며 부지런히 수행한다.
하물며 대장부(大丈夫)가 자신도 제도하고
또한 타인도 제도하려고 하는데
구치(俱致)의 천 배(千倍)나 되는 정진을
어찌 마땅히 일으키지 않으랴.
그런데 이 보살은 유전하는 강물[流轉河] 속에서 마땅히 모든 중생을 제도해야 하고 또한 자신도 제도해야 하는데, 어찌 저 성문승과 독각승의 사람보다 뛰어난 구치의 백천 배나 되는 정진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스스로 유전의 강물을 건너는 것처럼 타인을 건너게 하는 것도 또한 이와 같다.
반 시간은 혹은 별도로 수행하고
한 시간은 그 밖의 도(道)를 수행하는데
선정을 수행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야 하니
마땅히 하나의 경계를 반연해야 한다.
지금 이 하루 동안에 반 시간은 별도의 선정을 수행하고 그 밖의 시간에는 다시 다른 도를 수행하지 말아야 한다.
오직 하나의 선정만으로 마땅히 경계를 잘 반연하여 마음이 하나의 경계를 따르게 하고 그 밖의 곳으로 향하지 않게 해야 한다.
몸에 대하여 탐욕을 내지 말고
목숨에 대해서도 또한 아까워하지 말라.
설령 이 몸을 보호하더라도
끝내는 문드러져서 허물어지는 법이다.
마땅히 다음과 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한다.
‘나의 이 몸 중에는 오직 엷은 피부ㆍ두터운 피부ㆍ살과 피ㆍ근육과 뼈ㆍ골수 등이 있을 뿐이며, 끝내는 말라서 죽음으로 돌아간다.
나의 이 수명도 또한 마땅히 끝내 다해 버린다. 저 장부(丈夫)의 정진ㆍ장부의 세력ㆍ장부의 건전한 수행을 나도 마땅히 얻어야 한다. 만약 그것을 얻지 못하면, 나는 정진을 미루거나 느슨하지 말아야 한다. 비록 백 살 동안 이 문드러지는 몸을 보호하여도 반드시 파괴되는 법이다.’
이양(利養)과 공경과 명성을
전적으로 탐착하지 말라.
마땅히 머리와 옷이 타는 것처럼
부지런히 수행하여 소원을 성취해야 한다.
지금 만약 광야에서 노숙하며 머물 때에는 몸과 목숨을 탐내면서 유행(遊行)하지 말라.
만약 이양과 공경과 명성이 퍼질 때에는 마땅히 탐착하지 말고, 자신의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머리와 옷이 불타는 것처럼 수행하여야 한다.
결정코 즉각 수승한 이익[勝利]을 일으키고
내일[明日]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내일은 몹시도 더디고 머니,
어떠한 인연으로 순간의 목숨을 보장하리.
머리와 옷이 타는 것처럼 부지런히 수행하는 그러한 때에는 내일이 더디고 머니 내일을 기약하지 말라.
만약 나의 몸에 대하여 수승한 이익이 있으면 결정코 즉각 일으켜서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한다.
‘어떠한 인연으로 눈을 뜨고 눈을 감는 순간에 능히 목숨을 보장한단 말인가? 나는 지금 곧 수승한 이익을 일으켜야 한다. 내일은 몹시 머니 내일을 기다리지 말아야 한다.’
바른 생활[正命]에 안주하여야 하니,
사랑하는 자식의 살을 먹는 것처럼
먹는 음식에 대하여 좋아하지도 말고
또한 싫어하지도 말라.
이와 같이 선정을 수행하는 비구는 촌락이나 승방(僧坊) 중에서 있는데 따라 법답게 기만하거나 혐오하는 일 없이 음식을 구걸하여 먹고 나서는 탐내는 마음을 일으켜 애착하지도 말고 또한 혐오하지도 말라.
사랑하는 자식의 살을 먹는 것처럼 마땅히 정념에 안주해야 한다. 단지 몸을 유지하여 무너지지 않게 하고 수명을 보존해서 청정한 행위를 거두어 보호하고자 하기 때문이다.
마치 옛날 남편과 아내가 광야에 갔을 때 그 자식의 살을 함께 먹은 것처럼 해야 한다.
출가는 어떠한 의미가 있는가.
내가 해야 할 일을 끝냈는가, 끝내지 못했는가.
지금 해야 하는지 아닌지를 사념하는 것은
십법경(十法經)에서 말하는 바와 같다.
마땅히 다음과 같이 관찰해야 한다.
‘나는 무슨 의미 때문에 출가를 하였는가? 살지 못하는 것을 두려워하기 때문인가, 사문(沙門)을 추구하기 때문인가?’
만약 사문을 추구하기 때문이라면 마땅히 이러한 생각을 해야 한다.
‘나는 사문의 일에 대하여 이미 했는가, 아직 하지 않았는가, 지금 바로 해야 하는가?
가령 아직 하지 않은 것과 또 바로 해야 하는 것은 인연을 성취하고자 하기 때문에 마땅히 정근해야 한다.
나는 집안의 부류[家類]를 여의었으므로 그 부류가 아니라고[非類] 명명함을 마땅히 자주 사념해야 한다. 나의 삶[活命]은 타인에게 묶여 있다. 나도 또한 별다른 의식(儀式)을 지어야 한다.
나는 스스로 계율에 대하여 싫어하지 않게 되었는가?
청정한 수행을 함께하는 지혜 있는 자가 나의 계율에 대하여 또한 싫어하는가?
나는 이미 모든 은애(恩愛)와 그 모습이 달라서 더불어 함께하지 못한다. 나는 업에 속해서 업으로 태어나고 업을 수용한다. 업은 가까운 것이라서 업에 의거해 행한다. 내가 짓는 업은 선하든 악하든 나는 마땅히 스스로 감수해야 한다.
나는 밤낮으로 어떻게 지내는가, 나는 공적함[空寂]을 기뻐하여 좋아하는가, 나는 상인(上人)의 법을 소유했는가, 능히 성인(聖人)의 수승한 지견(知見)을 획득했는가?
만약 나중에 청정한 수행을 함께하는 자가 나에게 질문한다면 그것을 설명하면서 부끄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마땅히 자주 이러한 열 가지 법을 사념해야 한다. 말하자면 선정을 수행하는 비구는 반드시 자주 사념해야 한다.
유위(有爲)의 무상(無常)을 관찰해서
나와 내 것이 없다면
존재하는 모든 악마의 업[魔業]은
마땅히 자각해서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
‘유위(有爲)’라는 것은 인연(因緣)이 화합하여 생하는 것이다.
인연이 화합하여 생하기 때문에 내 것[我所]이 없고, 유위이기 때문에 그것은 항상하지 않다[無常].
만약 항상하지 않다면 그것은 다른 것에서 핍박당하기 때문에 괴로움[苦]이다.
만약 괴로운 것이라면 그것은 자재하게 구르지 못하기 때문에 자아가 없다[無我].
유위법에 대해서는 마땅히 이와 같이 관찰해야 한다.
‘존재하는 모든 악마의 업은 마땅히 자각해서 버리고 여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해 보자.
혹은 보리심(菩提心)과 6도(度)와 상응하는 경전 중에서 욕망하여 좋아하지 않는 인연ㆍ산란한 인연ㆍ더디고 느슨한 인연ㆍ장애되는 인연을 짓는 것에 대하여 자신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이나 다른 것으로부터 일어나는 것을 모두 깨달아 알아야 한다.
이 모든 악마의 업에 대하여 모두 깨달아 알고 나서는 그것을 여의어서 자재하게 행동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근(根)과 역(力)과 각분(覺分)
신족(神足)과 정단(正斷)과 도(道)
그리고 4념처(念處)를
수행하기 위하여 정근(精勤)을 일으킨다.
믿음[信]ㆍ정진(精進)ㆍ정념[念]ㆍ선정[定]ㆍ지혜[慧], 이것이 5근(根)이다.
믿음ㆍ정진ㆍ정념ㆍ선정ㆍ지혜, 이것이 5력(力)이다.
정념[念]ㆍ택법(擇法)ㆍ정진(精進)ㆍ기쁨[喜]ㆍ유연함[猗]ㆍ선정[定]ㆍ버림[捨], 이것이 7각분[覺分]이다.
욕정(欲定)ㆍ정진정(精進定)ㆍ심정(心定)ㆍ사유정(思惟定), 이것이 4신족(神足)이다.
아직 생하지 않은 악과 선하지 않은 법은 생겨나지 않게 하고,
이미 생겨난 악과 선하지 않은 법은 단절하게 하고,
아직 생하지 않은 선한 법은 생겨나게 하고,
이미 생겨난 선한 법은 머무르게 하고자 해서 욕구를 일으키고, 정근을 일으키고, 마음을 거두고, 서원을 일으킨다. 이것이 4정단(正斷)이다.
바른 견해[正見]ㆍ바른 분별[正分別]ㆍ바른 말[正語]ㆍ바른 업[正業]ㆍ바른 생활[正命]ㆍ바른 발행[正發行]ㆍ바른 사념[正念]ㆍ바른 선정[正定], 이것이 8분성도(分聖道)이다.
몸[身]ㆍ감수[受]ㆍ마음[心]ㆍ법(法), 이것이 4념처(念處)이다.
보리를 보조하는 서른일곱 가지 이러한 법을 닦고자 하기 때문에 정근을 일으킨다.
마음은 이익[利]과 안락[樂]과 선(善)과 함께
계속 전승되는 태어나는 처소[生處]를 짓고
또 모든 악하고 혼탁한 것의 근본이 되니
그것을 마땅히 잘 관찰해야 한다.
마음을 만약 조복하고 수호하고 금지해 단속하면 모든 이익과 안락과 선한 일과 함께 전승되는 태어나는 원인[生因]을 짓고,
만약 조복하지 않고 수호하지 않고 닦지 않고 금지해 단속하지 않으면 모든 이익 없음과 악함과 혼탁함의 근본이 됨을 알고 나서는 그것에 대하여 마땅히 지극하게 관찰해야 한다.
생겨나고 머물고 달라지는 모습이기 때문에,
안ㆍ밖ㆍ양쪽 사이에 머무르지 않기 때문에,
과거와 미래와 현재 세상에서 함께하지 않기 때문에,
오는 곳이 없기 때문에, 가는 곳이 없기 때문에,
찰나(刹那)ㆍ나바(羅婆: 須庾의 30분의 1)ㆍ모호리다(牟呼利多: 須庾, 하루의 30분의 1)의 시간 속에 머물지 않기 때문에,
마치 환상과 같기 때문에,
닦고자 하기 때문에 마땅히 관찰해야 한다.
나는 선한 법 중에서
날마다 얼마나 증장시키고
다시 얼마나 훼손하여 감소하였는가.
그것을 마땅히 지극하게 관찰해야 한다.
가령 부처님 세존께서 보시 등의 선한 법이 능히 보리를 낳는다고 하셨는데,
나는 그 모든 선한 법을 얼마나 증장했고 얼마나 훼손하여 감소했는가?
항상 마땅히 이와 같이 전적으로 정밀한 관찰을 날마다 일으키고 또 일으켜야 한다.
타인이 이익과 공경과 명성을
증장하게 되는 것을 보고서
아주 조금이라도 질투하는 마음을
마땅히 짓지 말아야 한다.
만약 그밖에 똑같이 청정한 수행을 자인 사문이나 바라문이 이익과 공경과 명성을 증장하는 것을 볼 때면, 또한 아주 조금이라도 질투를 일으키지 말아야 하고 마땅히 사량해서 다음과 같은 마음을 내야 한다.
‘나도 또한 중생으로부터 이익이 되는 의복ㆍ음식ㆍ침상과 병에 필요한 의약 등의 도구들을 기뻐하며 얻고,
나도 또한 재가인과 출가인에게 공경 받는 것을 기뻐하며 얻고,
나도 또한 찬탄할 만한 법을 구족하는 것을 기뻐하며 얻는다.’
모든 경계를 부러워하지 않고
백치와 장님과 벙어리와 귀머거리처럼 행세하며
때에 이르러 다시 사자후(師子吼)하여
모든 외도(外道)인 사슴을 두렵게 한다.
만약 타인이 이익과 공경과 명성을 증장하는 것을 볼 때면 색(色) 등의 경계를 희구하거나 부러워하지 말아야 한다.
빛깔[色]ㆍ소리[聲]ㆍ향기[香]ㆍ맛[味]을 애착하느냐 애착하지 않느냐에 대해서 비록 백치ㆍ장님ㆍ벙어리ㆍ귀머거리가 아니면서도 백치ㆍ장님ㆍ벙어리ㆍ귀머거리의 행세를 한다.
만약 능력이 있으면 항상 벙어리 행세에 머무르지 말고 마땅히 바른 법으로써 미혹을 없애버리고 계박을 파괴해야 하나니, 시기가 도래하면 외도인 사슴을 두렵게 하기 때문에, 또 바른 가르침을 유지시키고자 하기 때문에 다시 마땅히 사자후를 떨쳐야 한다.
나는 이미 마음을 수행하는 것을 해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