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명소순례(7) : 바르셀로나 (1)~몬세라트
답사지 : 스페인 바르셀로나(1) ~ 몬세라트
일시 : 2010년 3월 27일
바르셀로나 (Barcelona)
바르셀로나 시의 개관
- 마드리드에 이어 스페인 제2의 도시로서 카탈루냐 지방의 중심 도시이다.
- 과거 로마와 무어인의 지배를 받았고, 12세기 아라곤 왕국의 수도가 되었다가, 1469년 이후
카스틸랴와 에스파니아의 지방도시가 되었다.
- 바르셀로나가 스페인에 완전히 포함된 것은 300년도 채 안되어서 아직도 카탈루냐어를 공용어로
쓰고 있는 등 스페인이지만 스페인이 아닌 도시로 일컬어지기도 한다.
- 시인구는 약 200만명이며, 국민 총생산의 20%를 차지하고 있는 스페인 최대의 상공업 도시이다.
-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 소득수준이 높은 도시이며, 따라서 물가도 비싼 편이다.
- 도시 곳곳에 산재해있는 다양한 볼거리가 유럽 어느 도시 못지 많다.
- 피카소와 천재건축가 가우디가 활동한 도시로 유명하다.
- 소매치기 등 작은 범죄가 많기로 악명이 높다.
바르셀로나 지도 (퍼온 사진)
보다 자세한 지도 : 여기를 click !! (확대, 이동 가능)
주요 추천 여행지 (굵은 글씨는 이번에 답사한 곳)
★ 성 가족 성당 (Sagrada Familia)
★ 구엘 공원 (Parc Guell/Parque Güell)
★ 피카소 미술관 (Museo Picasso)
★ 람블라스 거리 (las Lamblas)
★ 카사 밀라 (Casa Mila)
★ 산타마리아 델 마르 성당 (Englesia de Santa Maria del Mar)
★ 몬주익 (Montjuïc) 언덕 : 황영조 기념물, 올림픽경기장, 카탈루냐 미술관 등
★ 콜럼버스 탑
★ 카탈루냐 광장 (Pl.de Catalunya)
★ 몬세라트 (Montserrat)
☆ 왕의 광장
☆ 대사원
☆ 북쪽 고딕지구
☆ 카탈루냐 미술관 (Museu d’Art de Catalunya)
☆ 기적의 분수대 (Font Magica)
답사 메모
람브라스 거리 : 카탈루냐 광장에서 컬럼버스 탑까지
파리의 샹젤리제 거리에 해당하는 바르셀로나의 중심 거리이므로 바르셀로나를 여행할 때는 놓칠 수 없는 없는 곳이다.
이 거리는 교통의 중심인 카탈루냐 광장부터 콜럼버스의 탑이 있는 포르타 델 라파우 광장까지 약 1km에 달하는 도로로,
주변에는 오래된 건물, 상점, 레스토랑과 카페 들이 줄지어 있고, 1년 사시사철 여행객들과 젊은이들이 도로를 메우고 있다..
카탈루냐 출신의 유명한 예술가 호안 미로가 직접 디자인한 모자이크가 바닥에 깔려 있고,
차가 다니지 않는 길 가운데에는 여행객들을 상대로 행위 퍼포먼스를 펼치는 거리의 예술가들이 많아
늘 축제 같은 분위기가 느껴진다.
람브라스 거리의 한 쪽 끝인 카탈루냐 광장
카탈루냐 광장 한켠에 있는 스페인 은행
람브라스 거리의 명물인 다양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들
지난번 왔을때 찍은 사진인데 요즘은 안나오는 모양이다.
이들도 수시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개발해서 새로운 퍼포먼스를 해야 하겠지...
람브라스 거리는 우리나라 명동 만큼이나 많은 인파로 도로가 붂적인다.
파카소가 자주 들렸다는 조그만 레스토랑
"GAT"는 고양이하는 뜻으로 "CAT"의 스페인말
카탈루냐 광장에서 람브라스거리보다 시계반대방향으로 조금 더 돌다가 우측 거리로 들어가서
왼쪽 골목으로 들어간다.
피카소 초상화와 피가소가 그려준 그림
콜럼버스 탑
람블라스 거리를 걸어 항구 쪽으로 가다 보면 높이 60m의 높은 청동탑 위에 대항해 시대의 지구본을 밞고 서 있는
콜럼버스의 동상이 나온다.
1888년 만국박람회때 콜럼버스의 스폰서이었던 이사벨 여왕을 컬럼버스가 바르셀로나에서 만난 것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었다고 한다.
콜럼버스 기념탑
탑 위에는 전망대가 있으며, 콜럼버스는 오른쪽 팔을 뻗어 대서양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탑 하단부의 많은 조각들
콜럼버스에 대한 새로운 시각
이번 스페인 여행을 하면서 많은 도시에서 콜럼버스와 관련된 건축물과 역사적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아마 스페인이 강성한 해양국가로 발전하게 된 동기인 많은 해외 식민지와 부를 가져다 준 선구자적 역할을
콜럼버스가 했기 때문일 것이다.
다음은 이번 여행에서 들은 이야기와 최근의 새로운 시각에 대한 몇가지....
콜럼버스 출생에 관한 스페인과 이태리의 논쟁
콜럼버스는 출생과 아메리카대륙 항해 과정, 말년의 삶 등에 있어서 수수께끼가 많다고 한다.
그 중 하나...
이번 여행의 가이드 설명에 의하면, 콜럼버스는 제노바 출신인 이태리인으로 알려져 있으나, 근래들어 각종
정황 분석과 과학적 검사를 해보면 스페인인일 가능성이 더 높고, 유태인일 가능성도 있다는 논쟁 중이란다..
그런데, 여행에서 돌아와 인터넷을 찾아보니 콜럼버스는 이태리 제노바에 살았던 스페인인 아버지
도메니코 콜롬보와 스페인계 유태인 수산나 폰타나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제법 자세한 설이 보인다.
그렇다면 위의 논쟁은 모두 해결된 것이 아닐까? 우리에게는 큰 관심사도 아니지만...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은 잘못된 표현, "아메리카 대륙 도착" 또는 "신항로 개척"으로 수정해야...
아래는 최근에 본 신문기사....
텍사스주 A&M대학의 제임스 크라흐트 교육대 학장은 “(콜럼버스에 관한) 모든 용어가 바뀌 었다”면서
“사람들은 더 이상 예전처럼 ‘발견’이라는 말을 하지 않는다.
이미 원주민이 살고 있는데 어떻게 콜럼버스가 아메리카를 발견할 수 있는가”라고 반문했다."
2010년 미국에서는 콜럼버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를 달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필라델피아에서는 매년 거행되던 콜럼버스데이 퍼레이드가 취소되었다고 한다.
당연한 이야기이고,
한편, 대서양 서쪽으로 계속 가면 인도가 나올것이라는 신념으로 망망대해를 용감하게 항해한
모험가로서의 컬럼버스는 분명 서구인들의 영웅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아메리카 대륙 도착"이나 "신항로 개척" 정도로 수정해서, 대서양을 건너 서구인에게는 미지의 세계이었던
아메리카 대륙으로 가는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점은 인정해 주는 것이 균형잡힌 시각으로 보인다.
콜럼버스의 아메리카 대륙 도착은 원주민에게는 재앙과 살육의 역사 시작...
최근(2010년 4월) 발간된 우루과이의 저널리스트인 갈레아노가 쓴 <거울너머의 역사>의 서평을 보면
컬럼버스 이후 서구인들은 총과 대포를 앞세우고 무자비하게 원주민들을 학살하고 노예로 끌고 갔으며
황금을 약탈했고, 잉카 제국과 아스텍 제국 등 토착문명 을 파괴한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노예선은 멀리서부터 지독한 악취를 풍겼다. 노예들은 목과 목, 팔목과 팔목끼리 서로 쇠사슬로 연결돼
기다란 철봉에 꿰어진 채 작은 틈도 허비하지 않도록 최대한 밀착해 함께 포개져 드러누웠다.
그들은 동료의 몸 위에 대소변을 보았고, 많은 노예가 대양을 건너는 동안 죽어갔다.
경비원들은 매일 아침 노예의 시체들을 바다에 던졌다. .
신대륙에 도착한 콜럼버스는 신대륙 원주민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수천만 명에 달하던 원주민은 불과 100년 동안 학살과 전염병으로 수백만명으로 감소했다"
여행 기분 해치는 이야기는 이정도로 마친다.
몬주익 언덕과 올림픽 경기장
몬주익은 '유태인의 언덕 또는 산'의 의미라고 한다.
수많은 유태인들이 처형됐던 이 곳은 땅을 파면 해골이 나올 정도라고 해 '눈물의 언덕'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언덕을 따라 올라가면 올림픽 경기장과 몬주익 성이 있으며, 바르셀로나 시내 전경을 내려다 볼 수있다.
또한히, 올림픽 경기장 앞 맞은편에는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의 기념 조형물이 있어 우리에게는 더 친근한 장소가 되고 있다.
몬주익 언덕에서본 바르셀로나 시가지
지중해를 끼고 발전한 바르셀로나 시와 해안이 보인다.
망원으로 멀리 성가족 성당을 당겨 본다.
1992년 올림픽이 열렸던 올림픽 주경기장
황영조 선수가 가파른 오르막에서 역전에 성공했던 몬주익 언덕길.
실제로 가보니 마지막 골인 지점을 앞에두고 힘이 탈진한 상태에서는 뛰기가 힘들었을 법한 제법 경사가 있는 오르막이다.
경기도와 바르셀로나 시의 자매결연 기념 조형물 들
황영조 선수 부조
황영조 선수의 모습을 조각한 돌과 발자국 등이 새겨져 있어 다시 한번 그날의 감격을 되새기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황영조 선수와 비슷한 포즈를 취해 본다.
지중해 해변
지중해 해변가
재력이 좀 있어야 탈수 있는 수 많은 요트들이 있다...
3월 인데도 해변가는 여름 기분을 낸다.
장난기가 돌아...
몬세라트 (Montserrat)
몬세라트 (Montserrat) 개관
- 바르셀로나 시 북서쪽의 요브레가트 강 바로 서쪽에 있다.
- 몬세라트의 어원은 카탈루냐어로 몬트사그라트('신성한 산')라는 뜻과,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뜻도 있다.
- 해발 730m의 가파른 계곡 위 산중턱에 있으며 독특한 외형의 베네딕투스 수도회의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다.
- 이 수도원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검은 마리아상"으로 불리는 오래된 성모자(聖母子) 목조상 이다.
이 목조상은 누가가 조각하여 사도 베드로가 스페인으로 가져온 것으로 전해지며, 무어인이 지배할 당시 동굴 속에 감춰져 있다가
880년에 우연히 발견된 이래 수많은 순례자들이 찾고 있는데, 그들은 많은 기적이 성모 마리아 덕분이라고 믿고 있다.
아래서 올려다본 몬세라트 수도원 (해발 730m)
붉은색을 띤 산봉우리들이 들쭉날쭉하게 능선을 이루고 있으며,
계곡의 가장자리 지점에 베네딕트파의 산타마리아 데 몬세라트 수도원이 있다.
케이블 카를 타고 올라간다.
수도원 바로 위의 기묘한 형상의 바위들
800만년전에는 바다이었는데 지각변동으로 수많은 봉우리가 생겼다고 하고,
성가족 성당을 설계한 가우디도 이곳에 자주들러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성당 입구 윗쪽의 조각
파사드 위쪽 조각 (예수와 12제자상)
성당 안에서 바깥으로 본 광경
이 곳까지 올라오는 특수 산악 열차(Rack railway)를 타고 올 수도 있다.
깍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십자가가 있다.
망원으로 당겨본 십자가
저 높은 꼭대기까지 가서 참배하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전 같으면 한 30분이면 올라갈 것 같은데.. 아쉽다.
라 모레네타(La Moreneta).."검은 마리아상" 또는 "검은 성모자상"으로 불리는 목조상,
위의 목조상이 바로 이 성당을 유명하고 신성하게 만든 검은 마리아상이다.
12세기경에 발견된 이 마리아상은 원래는 검은색이 아니었는데
오랫동안 신도들이 바친 등불에 거을러져서 점차 검어졌다고 한다.
마리아상 손에 들고 있는 구슬을 만지면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한다.
구슬을 만지고 소원을 빌고
검은 마리아상 뒷편의 기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