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석보리심론 제4권
11. 열 가지 지위[10지]
다음은 열 가지 지위[十地], 즉 열 가지 분위[十分位]이다.
저 처음의 지위[初地]란 앞서 말한 세제일법의 간격 없는 첫 마음[無間初心]으로부터 견도(見道)에 들어가는 것이다.
이미 성스러운 성품을 획득하고 큰 기쁨이 생하므로 이를 이름하여 환희지(歡喜地)라고 한다.
이것은 능히 두 무아의 이치를 나누어 증득[分證]해서 법의 성품 없음을 얻고 진실한 지혜가 생하여서 일체의 분별과 희론을 모두 여읜다.
이 중에서 능히 백열두 가지의 견도위에서 끊어야 할 미혹을 끊고 나머지 수도위에서 끊어야 할 삼계의 총 열여섯 가지 미혹을 감응하는 대로 끊는다.
이 지위의 보살은 평등한 지혜를 얻어, 스스로에게도 이롭고 다른 사람도 이롭게 하는 보시바라밀다(布施波羅蜜多)에서 원만함을 얻고 삼마지에 편안하게 머무른다.
나아가 아직 미세하게 훼손하고 범하는 번뇌[微細毁犯垢染]를 멀리 여의지는 못하였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증득한다면[分得] 이지(二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두 번째 지위란, 능히 계율을 범하는 일체의 더러움과 물듦을 떠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이구지(離垢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능히 계율을 범하는 미세한 더러움과 물듦을 바르게 멀리 여의고서 계(戒)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는다.
나아가 아직은 능히 수승한 삼마지와 삼마발저 및 문총지(聞總持)를 성취하지는 못하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分得] 삼지(三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세 번째 지위란, 한량없는 수승한 지혜의 광명을 일으키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발광지(發光地)라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수승한 삼마지와 문총지를 두루 다 획득하고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 참아서 인(忍)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고 나면 일체 삼마발저의 애착하는 마음속에서 버린다.
나아가 아직은 능히 보리분법(菩提分法)까지 널리 닦지는 못하였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사지(四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네 번째 지위란, 보리분법인 지혜의 불꽃이 능히 모든 번뇌의 섶을 태우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염혜지(焰慧地)라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결함과 감소가 있는 말과 뜻의 분별을 이미 여의고 결함과 감소가 없는 보리분법을 잘 닦아서 정진(精進)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는다.
나아가 아직은 네 가지 진리의 관[四諦觀]까지 짓지는 못하였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오지(五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다섯 번째 지위란, 생사와 열반에서 훌륭한 방편으로 평등을 관찰해서 지극한 어려움 속의 승리가 바로 수승한 수습(修習)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난승지(難勝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사성제 중에서 많이 닦아 지은 것을 능히 잘 관찰하여 정(定)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는다.
순결택분(順決擇分)으로부터 나와 이 지위에 이르면 비로소 모습 없는 행[無相之行]을 얻는다.
나아가 아직은 능히 연생관(緣生觀)까지 짓지는 못하였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육지(六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여섯 번째 지위란, 수승한 지혜가 구족하여 능히 일체 부처님 법의 수승한 현전문(現前門)을 따라 구를 수 있으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현전지(現前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연생법(緣生法)을 능히 잘 관찰하여 혜(慧)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으며, 모습 없는 행[無相行]을 획득한다.
나아가 아직은 이 행까지 원만하게 하지는 못하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칠지(七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일곱 번째 지위란, 공용(功用)이 없는 방편의 도(道) 중에서 비록 아직 능히 구족하지는 못하였지만 멀리까지 교섭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원행지(遠行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일체의 모습이 모두 허깨비 같은 일임을 관해서 모습과 공용의 행하는 바가 모두 어긋나거나 장애함이 없음을 진실로 요달해 아는 것이다. 그것은 능히 모습 없는 행을 성취하여 방편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는다.
나아가 아직은 공용 없는 행까지 구족하지는 못하였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팔지(八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여덟 번째 지위란, 모든 모습과 공용 등이 모두 움직임이 없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부동지(不動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모습 없는 공용행(功用行)을 잘 얻어서 원(願)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는다.
나아가 아직 능히 일체의 모습까지 분별하여 자재하게 법을 설하지는 못하지만, 만약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구지(九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아홉 번째 지위란, 가장 수승한 지혜를 구족하여 모든 법을 훌륭하게 설하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선혜지(善慧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가장 수승한 사무애해혜력(四無礙解慧力)과 상응함을 얻어서 역(力)바라밀다에서 원만함을 얻는다.
나아가 아직은 능히 불국토의 모임 중에서 감응에 따라 화현(化現)하여 설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는 일까지 자재하고 원만하지는 못하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십지(十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그 열 번째 지위란, 가없는 일체의 세계에서 능히 큰 법의 구름이 감로비를 뿌리는 것이니, 이 때문에 이를 이름하여 법운지(法雲地)라고 한다.
이 지위의 보살은 수승한 지혜에 상응하여 설법으로 중생을 이롭게 하고 모든 변화하는 일을 자재하게 짓는다.
나아가 아직은 능히 일체 아는 모든 모습 가운데에서 장애 없는 지혜[無礙智]까지 획득하지는 못하였지만, 만일 능히 나누어 얻는다면 불지(佛地)에 나아가 머물 것이다.
위와 같이 모든 지위에 건립한 행상은 『화합해탈경(和合解脫經)』에서 설한 것과 같다.
또한 이러한 모든 지위에서 자세히 설한 온(蘊) 등의 청정과 분위의 모습[分位相]은 다른 곳에도 글이 있지만, 번잡함을 피하고자 우선 그친다.
다음으로 불지(佛地)는 바로 하나의 분위이다. 불지는 일체의 수승한 모습을 모두 다 구족하고 일체의 공덕이 모두 다 원만하다.
능히 일체의 변제(邊際)를 두루 다하니, 이것을 넘는 별도의 수승하고 높은 분위는 없다.
그리고 불지 중에 있는 모든 공덕은 가령 모든 부처님의 묘한 언사로도 일부분이나마 칭하여 거양(擧揚)할 수 없다.
그러므로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모든 부처님의 공덕은 한량없고 가없어서 헤아릴 수가 없다. 오직 불세존만이 자연지(自然智)로써 관하여 스스로 증득해 알기[自證知] 때문이다.
마치 『화엄경』 속에서 설한 공덕과 같으니, 역시 일부분이라도 능히 다 궁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다시 내가 지금 이 논(論)을 지어서 감히 언사로써 찬술할 수 있겠는가?
또한 불지 중의 모든 공덕은 일체의 수승한 뜻을 총체적으로 거두어들이고 있는데 『능가경(楞伽經)』에서 설한 것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