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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밀해탈경 제4권
10. 성자관세자재보살문품(聖者觀世自在菩薩問品) ①, 10지(地)ㆍ6바라밀
그때 성자관세자재보살마하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보살을 위하여 10지(地)의 차별을 말씀하시니,
이른바 환희지(歡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광명지(光明地)ㆍ염지(炎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전지(現前地)ㆍ원행지(遠行地)ㆍ부동지(不動地)ㆍ선혜지(善慧地)ㆍ법운지(法雲地)ㆍ제11 불지(佛地)입니다.
세존이시여, 몇 가지 청정이 있으며, 이들 모든 지위를 섭취하되 몇 가지 분(分)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세자재여, 네 가지 청정이 있으며, 11분이 이 모든 지위를 섭취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가장 높은[增上] 뜻의 청정이 초지(初地)를 섭취하고,
가장 높은 계의 청정이 2지를 섭취하고,
가장 높은 마음의 청정이 3지를 섭취하고,
가장 높은 지혜의 청정이 4지를 섭취하고,
나아가 보다 높은[上上] 수승하고 묘함은 4지로부터 불지에 이른다.
관세자재여, 이것이 네 가지 청정이 모든 지위를 섭취함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어떤 것이 11분으로 모든 지위를 섭취함인가?
관세자재여, 보살이 신행지(信行地)로부터 열 가지 신심을 수행하되 능히 보살승(菩薩乘)을 잘 생각하면 그 신행지의 행에서 그 신행지를 지나 결정된 무리[定聚]에 들어가 그 분을 만족하게 한다.
관세자재여, 그 보살들이 비록 그 분을 만족하게 하였으나
미세한 행에 아직도 능히 여실히 수행하지 못한다.
그 보살들이 그 분을 만족하게 하지 못하였으므로,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만족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을 만족하게 하였으나,
아직 능히 여실하게 세간의 삼매와 삼마발제를 만족하게 하지 못하였으며, 또 들어 지니는[聞持] 다라니를 만족하지 못한다.
그 보살이 그 분이 만족하지 못하였으므로 만족히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만족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을 보리분(菩提分)과 같이 만족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여실히 수행하지 못하여 마음에 삼매 사랑하는 법을 버리지 못하였으므로, 그 보살들은 그 분을 만족하게 하지 못한다.
그 보살들이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만족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은 원만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일체 진리[諦]를 여실히 관찰하지 못하며, 또한 능히 방편에 섭취되어 닦는 보리분을 버리지 못하여 세간의 열반이 한결같이 나타나거나 한결같이 나타나지 않는다.
그 보살이 그 분이 원만하지 못하므로,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고 나아가 그 분을 만족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을 원만히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모든 세간의 생사를 여실히 알지 못하며, 현전에 보는 수행과 모습 없는 바른 생각을 많이 닦을 수 없다.
그 보살이 그 분을 만족히 하지 못하였으므로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원만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을 만족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간단(間斷)없고 모습 없는 바른 생각을 여실하게 알지 못하며, 능히 많이 닦지 못한다.
그 보살들이 그 분이 만족하지 못하므로, 그 분을 만족하게 하려 하여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원만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을 만족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모습 없는 행과 자연히 행함을 버리지 못하였으며, 모습 없는 행에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그 보살이 그 분을 원만히 하지 못하였으므로, 만족하게 하기 위해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원만하게 한다.
비록 그 분을 원만히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가지가지 명자와 모든 모습에서 일체 법을 걸림 없이 말하지 못하며, 또 설법하는 데 자재함을 얻지 못한다.
그 보살들이 그 분이 원만하지 못하므로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원만히 한다.
비록 그 분을 만족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만족한 법신을 얻지 못하며, 또 능히 즐거움 받는[受樂] 법신을 얻지 못한다.
그 보살들이 그 분이 원만하지 못하므로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을 원만히 한다.
비록 그 분을 만족하게 하였으나,
아직도 능히 일체 경계의 모습에 걸림없는 지혜가 구족함을 얻지 못한다.
그 보살들이 그 분을 원만히 하지 못하였으므로, 그 분을 만족하게 하려는 까닭에 수행하여 나아가 그 분이 만족함을 얻으니,
그 분을 만족히 하면 일체 보리분을 만족하게 하였다 하며,
보리를 만족하게 한 보살을 부처라 한다.
관세자재여, 이러한 열한 가지 분이 모든 지위를 섭취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무슨 까닭에 처음을 환희지(歡喜地)라 하시고, 나아가 불지(佛地)라 하십니까?”
“관세자재여, 보살이 처음으로 생사를 여의고 세간을 벗어나는 큰 이익을 얻어 청정하고 수승하고 묘함으로 환희하여 뛰므로 첫 지위를 환희지라 한다.
일체 미세한 파계(破戒)의 장애를 여의므로 제2는 이구지(離垢地)라 한다.
무량한 지혜의 광명이 빛남에 의지하여 모든 삼매와 듣고 지니는 다라니를 비추어 자재를 얻고 능히 광명을 지으므로 제3은 광명지(光明地)라 한다.
지혜의 불이 성하게 타올라 보리분의 번뇌와 습기를 태우므로 제4는 염지(炎地)라 한다.
보리분에 의해 방편으로 수행하여 이기기 어려움을 이기므로 제5는 난승지(難勝地)라 한다.
바른 생각으로 모든 함이 있는 행을 생각하고 현전에 모든 법의 모습 없음을 깨쳐 알므로 제6은 현전지(現前地)라 한다.
사이[間]없고 끊임없고 모습 없는 멀리하는 행[遠離行]에 들고, 청정한 지위에 가까워지므로 제7은 원행지(遠行地)라 한다.
모든 모습이 없이 자연히 수행하되 모습이 능히 움직이지 못하므로 제8은 부동지(不動地)라 한다.
일체 법과 일체 종자인 지혜[種智]를 말하되 걸림없이 자재하며, 광대한 지혜를 얻어 다른 이가 항복하지 못하므로 제9는 선혜지(善慧地)라 한다.
중생의 번뇌와 허물의 몸이 허공과 같고 여래의 법신이 큰 구름과 같아서 중생세계를 덮고 설법하며 나타나므로 제10은 법운지(法雲地)라 한다.
일체 무명의 미세한 습기를 여의고 일체 경계의 지혜의 장애[智障]를 여의고 장애가 없고 걸림이 없어서 일체 법 가운데 자재함을 얻으므로 제11은 불지(佛智)라 한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지위에는 몇 가지의 무명과 몇 가지의 장애를 대치함이 있습니까?”
“관세자재여, 22종의 무명과 11종의 장애가 있다.
관세자재여, 첫 지위에는 인아(人我)와 법아(法我)를 집착하는 무명과 나쁜 갈래[惡道]에 물드는 모습[染相]인 무명이니, 이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2지에는 미세한 허물인 무명과 가지가지 업갈래[業道]의 무명이니, 그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3지에는 욕망하는 법을 구하는 무명과 듣고 지니는 다라니를 만족히 하는 무명이니, 이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4지에는 삼마발제를 사랑하는 무명과 법을 사랑하는 무명이니 이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5지에는 세간의 바른 생각[正念]에서 한결같이 세간을 등지지 못하거나, 한결같이 세간을 나타내지 못하는 무명과, 열반의 바른 생각에서 한결같이 열반을 등지지 못하거나, 한결같이 열반을 향하지 못하는 무명이니, 이 두 가지에 빠지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6지에는 유위의 행이 나타나는 것을 여실히 알지 못하는 무명과 모든 모습을 많이 모으는 무명이니, 이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7지에는 미세한 모습이 행하는 무명과 한결같이 방편을 생각하는 무명이니, 저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8지에는 모습 없는 데서 자연스럽지 못한 무명과 모든 모습에 자재하지 못한 무명이니, 그 두 가지에 빠지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9지에는 무량한 설법과 무량한 명자로 보다 높이[上上] 말하기 좋아하는[樂設] 지혜와 다라니의 무명과 말하기 즐기는 변재가 자재하는 무명이니, 그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제10지에는 크게 통하는 무명과 미세한 비밀에 드는 무명이니, 그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불지에는 일체 경계에 극히 미세한 무명과 다른 장애[他障]의 무명이니, 그 두 가지에 빠지게 하는 까닭에 장애라 한다.
관세자재여, 이것이 22종의 무명과 11종의 장애로 모든 지위의 차별을 말한 것이다. 관세자재여, 그러나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이 모든 법과 상응하지 않는다.”
“희유하십니다, 세존이시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큰 이익이며, 큰 공과이어서 저 모든 보살이 큰 무명의 미혹하는 그물을 깨트리며, 또한 일체 허망한 숲을 소멸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하십니다.”
관세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이 모든 지위에 몇 가지 수승함이 있다고 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세자재여, 여덟 가지 청정이 있으니,
이른바 곧은 마음의 청정[直心淸淨]과, 사랑하는[慈] 청정과, 슬퍼하는[悲] 청정과, 바라밀(波羅蜜)의 청정과, 모든 부처님을 뵙고 공양하는 청정과, 중생을 교화하는 청정과, 태어나는[生] 청정과, 힘[力]의 청정이다.
관세자재여, 첫 지위에 곧은 마음의 청정과 나아가 힘의 청정이 있고, 다시 보다 높은[上上] 지위 나아가 불지에까지 곧은 마음의 청정과 힘의 청정이 있으되, 그 청정이 극히 청정하고 더욱 높은 청정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불지에는 태어나는 청정은 제외한다.
이른바 첫 지위의 공덕은 모든 지위의 공덕과 나아가 보다 높은 지위의 공덕이 그 첫 지위의 공덕과 평등하여 차별이 없거니와 지위마다 수승한 공덕이 있으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일체 삶 가운데서 보살마하살의 삶이 가장 수승하다고 하십니까?”
“관세자재여, 네 가지 법이 있으니,
이른바 모든 선근(善根)의 청정을 잘 모으는 까닭이며,
안 마음의 방편을 얻는 까닭이며,
큰 자비를 일으켜 일체 중생을 구호하는 까닭이며,
자기가 물들지 않은 까닭에 능히 일체 중생을 물들지 않게 한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모든 보살이 일체 묘한 원(願)과 훌륭한[勝] 원과 수승한 힘의 원을 내라고 하십니까?”
“관세자재여, 네 가지 법이 있으니,
보살이 능히 열반의 묘한 즐거움을 여실히 아는 까닭에,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속히 얻되,
능히 그 속히 얻은 보리의 수승하고 묘한 즐거움의 행을 버리고,
은혜 갚기를 바라지 않고 큰 마음을 내어 중생을 이롭게 하려 하여,
여섯 갈래에서 영원히 모든 괴로움을 받는다.
[有四種法, 菩薩能如實知涅槃妙樂故, 速得阿耨多羅三藐三菩提, 復能捨彼速得菩提勝妙樂行, 不爲報恩而發大心爲利衆生, 於六道中長夜受諸種種苦惱.]
관세자재여, 그러므로 나는 보살의 묘한 원과, 훌륭한 원과, 수승한 힘의 원을 말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보살은 몇 가지 배울 일[學事]이 있습니까?”
“관세자재여, 보살의 배울 일이 여섯 가지가 있으니,
그 여섯 가지란
이른바 단바라밀(檀婆羅蜜)ㆍ시라바라밀(尸羅婆羅蜜)ㆍ찬제바라밀(羼提婆羅蜜)ㆍ비리야바라밀(毘梨耶婆羅蜜)ㆍ선바라밀(禪婆羅蜜)ㆍ반야바라밀(般若婆羅蜜)이니라.”
“세존이시여, 이 여섯 가지 배움은 몇 가지가 가장 높은 계학[增上戒學]이며, 몇 가지가 가장 높은 심학(心學)이며, 몇 가지가 가장 높은 혜학(慧學)입니까?”
“관세자재여, 처음의 세 가지 배움인 단바라밀과 시라바라밀과 찬제바라밀은 가장 높은[增上] 계학이며,
선바라밀은 가장 높은 심학(心學)이며,
반야바라밀은 가장 높은 혜학(慧學)이며,
비리야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이 두루 한다.
관세자재여, 세 가지의 가장 높은 배움이 여섯 가지 배울 일을 섭취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이 여섯 가지 수행이 몇 가지가 공덕의 장엄이며, 몇 가지가 지혜의 장엄입니까?”
“관세자재여, 가장 높은 계학은 공덕을 장엄하고,
가장 높은 혜학은 지혜를 장엄하고,
정진바라밀과 선바라밀은 모든 바라밀에 두루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어떻게 이 모든 배울 것을 배우겠습니까?”
“관세자재여, 다섯 가지 관법이 있어서 이 모든 배울 것을 배우니,
그 다섯 가지란 이른바
모든 바라밀의 설법에 의지하거나, 보살의 장(藏)에 의지하여, 처음에는 지극한 마음으로 믿는 것이며, 다음은 열 가지 법의 행[法行]을 여실히 듣고 생각하고 닦는 지혜를 수행하는 것[까닭]이며,
모든 보리심을 보호하는 것[까닭]이며,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까닭이며,
일체 선근을 닦되 쉬지 않는 까닭이니,
[所謂依諸波羅蜜說法, 依菩薩藏初至心信, 次有十種法行, 如實修行聞, 思, 修慧智故; 護諸菩提心故; 親近善知識故; 不休息; 修行一切諸善根故]
관세자재여, 이것을 보살이 모든 배울 것을 배운다 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배울 일은 무슨 까닭에 여섯 가지로 설하십니까?”
“관세자재여, 두 가지 뜻이 있으니,
어떤 것이 두 가지인가?
이른바 일체 중생을 섭취하는 까닭이며,
모든 장애를 대치하는 까닭이다.
관세자재여, 세 가지 배움이 중생의 이익을 섭취(攝取)하는 까닭이며,
세 가지 배울 것이 모든 장애를 대치하는 까닭이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단바라밀을 수행하여 삶을 도와 이익되게 하여 중생을 섭취하며,
보살이 시라바라밀을 수행하여 괴롭히지 않고 해치지 않아 두려움 없음[無畏]을 베풀어 중생을 섭취하며,
보살이 찬제바라밀을 수행하여 원수 갚을 마음이 없으므로 중생을 섭취하니,
관세자재여, 이 세 가지 배움으로써 중생을 섭취한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비리야바라밀을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움직이고,
모든 부림[使]을 죽여 수행하는 동안 일체 번뇌에 동요되지 않으며,
보살이 선바라밀을 수행하여 모든 번뇌를 속박하며,
보살이 반야바라밀을 수행하여 일체 부림을 끊으니,
관세자재여, 이 세 가지 바라밀로 다스려야 할 번뇌를 대치하는 까닭이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나머지 네 바라밀을 말씀하시되 다만 넷뿐입니까?”
“관세자재여, 여섯 바라밀의 짝을 이루기 위하여 나머지 네 바라밀을 말하는 것이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세 가지 바라밀에 섭취되는 중생을 일로 섭취하는[攝事] 방편으로 포섭하여 착한 법에 안치하므로 나는 방편바라밀이 세 가지 바라밀의 짝이 된다고 한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현재의 몸이 많은 번뇌 때문에 그 마음을 어지럽히고, 능히 여실한 법을 수행하지 못하고,
또 적은 행과 적은 법을 즐기며, 곧은 마음이 적고 엷어서 안 마음의 바른 선정을 섭취하지 못하며, 보살의 장(藏)을 듣고 들은 대로 관찰하되, 능히 선정에 들지 못하며,
또 능히 세간을 벗어나는 지혜를 일으키지 못하고, 다만 적은 부분의 공덕과 지혜의 장엄한 모습을 수행한다.
그 적은 부분의 지혜와 장엄에 의지하여 미래의 번뇌를 엷게 하려고 원을 세우니,
이것이 보살의 원바라밀이다.
미래 세상에 번뇌가 엷고 능히 정진바라밀을 성취하기를 소원하므로 나는 원바라밀은 비리야바라밀과 짝이 된다고 한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선지식을 가까이하는 까닭에 바른 법을 듣고 여실히 생각하여 능히 수순하며 여실히 수행하여 엷은 마음을 돌리고 착한 마음을 자라나게 하며, 진여 법계 안에 가장 높은 힘을 얻으니,
이것이 보살의 역(力)바라밀로 안 마음[內心]의 선정을 얻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바라밀이 선바라밀과 짝이 된다고 한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보살의 법에 의지하는 까닭에 듣는 지혜로 바르게 관찰하여 선바라밀을 수행하니,
이것이 보살의 지(智)바라밀이다.
지바라밀에 의지하여 능히 세상 벗어나는 바라밀을 내므로 나는 지바라밀이 반야바라밀과 짝이 된다고 한다.”
관세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6바라밀을 그러한 차례로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세자재여, 앞뒤가 보다 높이[上上] 더욱 수승하여지는 까닭이다.
관세자재여, 보살이 수용하는 욕심을 멀리하고 맑은 계를 받아 지니며,
맑은 계를 지니고는 모든 일을 잘 참으며,
모든 악을 참고는 정진을 잘 이루며,
정진을 이루고는 모든 선정에 들며,
모든 선정에 들고는 세간 벗어나는 지혜를 얻는다.
관세자재여, 그러므로 나는 6바라밀을 이렇게 차례차례 말하는 것이다.”
“세존이시여, 세존께서는 모든 바라밀에 각각 몇 가지 차별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관세자재여, 모든 바라밀은 각각 세 가지 차별이 있다.
관세자재여, 단바라밀에 세 가지 차별이 있으니,
이른바 법보시[法施]와
재물 보시[財施]와
두려움 없애는 보시[無畏施]이다.
시라바라밀에 세 가지 있으니,
이른바 모든 악한 행을 여의는 계와
모든 착한 행을 닦는 계와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계이다.
찬제바라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모든 악을 참는 인욕[忍諸惡忍]과
모든 괴로움을 참는 인욕과
모든 법을 참는 인욕이다.
비리야바라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일으키는 정진[發起精進]과
착한 법 수행하는 정진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정진이다.
선바라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분별없이 고요하여 번뇌를 대치하고 즐거운 행을 받는 선정과
모든 공덕을 일으키는 선정과
중생을 이익되게 하는 선정이다.
반야바라밀에 세 가지가 있으니,
이른바 세간의 진리[世諦]를 관찰하는 지혜와
제일의제를 관찰하는 지혜와
중생 이롭게 함을 관찰하는 지혜이다.
관세자재여, 이것이 모든 바라밀에 각각 세 가지 차별이 있는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으로 모든 바라밀을 바라밀이라고 합니까?”
“관세자재여, 다섯 가지 뜻이 있으므로 바라밀이라고 하니,
이른바 집착하지 않으며,
희망하지 않으며,
허물 없으며,
분별하지 않으며,
회향(廻向)하기 때문이다.
관세자재여, 집착하지 않는다 함은 이른바 모든 바라밀과 어긋나는 일에 집착하지 않음이며,
희망하지 않는다 함은 모든 바라밀로 수용하는 과보와 은혜에 보답하는 가운데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며,
허물이 없다 함은 모든 바라밀의 방편 없이 물든 법을 여의는 것이며,
분별치 않는다 함은 모든 바라밀 가운데 들은 대로의 제 모습[自相]에 집착하지 않음이며,
회향한다 함은 모든 바라밀로 지은 바와 모은 바를 돌려 큰 보리의 과를 취하는 까닭이다.
관세자재여, 그러므로 나는 바라밀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모든 바라밀과 어긋나는 일이 몇 가지가 있습니까?”
“관세자재여, 바라밀과 어긋나는 일이 여섯 가지 있으니
어떤 것이 여섯 가지인가?
이른바 5욕을 즐기고 살림살이에서 자재하여 내가 즐거움을 받거든 공덕과 이익이 자재하다고 보는 까닭이며,
몸ㆍ입ㆍ뜻을 따라 행을 자재하게 하는 것과 남이 가벼이 여기는 번뇌를 마음에 견디지 못하는 까닭이며,
자기 몸의 즐거움에 집착하는 까닭이며,
세간의 산란한 행을 오로지 생각하는 까닭이며,
세간에서 보고 듣고 깨닫고 아는 명자(名字)와 분별을 수승한 공덕으로 여기는 까닭이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모든 바라밀과 어기는 일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모든 바라밀의 과보입니까?”
“관세자재여, 모든 바라밀의 과보는 여섯 가지가 있으니,
그 여섯 가지란 이른바 풍부한 재물을 얻는 까닭이며,
좋은 갈래로 나아가는 까닭이며,
원수진 적이 없는 까닭이며,
많은 기쁨이 망가지지 않는 까닭이며,
항상 중생의 주인이 되는 까닭이며,
자기의 몸을 해치지 않는 까닭이며,
큰 위덕의 힘인 까닭이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모든 바라밀의 여섯 가지 과보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모든 바라밀의 물든 법[雜染]입니까?”
“관세자재여, 모든 바라밀에 네 가지 법답지 못한 행이 있으니 물든 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네 가지인가?
이른바 자비한 마음이 없는 행이며,
바르지 못한 생각의 행이며,
악을 끊지 않은 행이며,
지극하지 못한 마음의 행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바르지 못한 생각[思惟]입니까?”
“관세자재여, 이른바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되 다른 바라밀을 여의는 것이니, 이것이 바르지 못한 생각이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의 방편 없는 수행입니까?”
“관세자재여, 만일 보살이 바라밀을 수행하여 중생을 섭취하되, 음식과 살림살이 따위 즐거움만을 보시하는 것으로 만족하게 여기고, 그들로 하여금 착하지 못한 곳을 떠나 착한 곳에 있게 하지 못하면
이는 보살의 방편 없는 수행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관세자재여, 음식이나 그러한 즐거움을 보시하는 것은 이익이라 이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관세자재여, 비유하자면 더러운 똥은 많거나 적거나 아무도 향기롭고 아름다운 냄새가 나게 할 수 없으니,
관세자재여, 이와 같아서 일체 함이 있는[有爲] 행의 괴로움과 일체 중생의 자성의 모든 괴로움은 음식이나 살림살이로 중생을 섭취하여도 즐거움이 되지 못한다.
관세자재여, 만일 중생을 제일 높고 착한 법 가운데 두어 끝까지 즐거운 곳에 있게 하면,
이것을 섭취하여 큰 이익을 주는 것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이 모든 바라밀은 몇 가지의 청정이 있습니까?”
“관세자재여, 나는 다섯 가지 청정을 떠나서 따로 청정이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관
세자재여, 나는 이 다섯 가지 청정에 의지하여 간략하고 넓게 모든 바라밀의 청정한 모습을 말하리라.
관세자재여, 어떤 것이 모든 바라밀의 청정한 모습을 간략히 말한 것인가?
관세자재여, 일체 바라밀은 일곱 가지 청정이 있다.
그 일곱 가지란 이른바
보살이 나를 떠나 설법하되 다른 이에게 다시 지혜롭다는 칭찬을 구하지 않으며,
이 모든 법을 본 것에 집착을 내지 않고 일체 법을 알아서 능히 큰 보리를 취하며,
다른 뜻과 다른 의심을 내지 않으며,
스스로를 찬탄하고 남을 훼손하지 않으며,
속이지 않고 교만하지 않고 게으르지 않으며,
적은 선법을 얻고 만족한 마음을 내지 않으며,
이 법을 얻고는 다른 사람에게 질투하거나 아끼는 마음을 내지 않으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모든 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한 모습을 간략히 말한 것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내가 다시 모든 바라밀의 청정한 모습을 널리 말하되 일곱 가지에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의 청정을 설명하리라.
어떤 것이 일곱 가지인가?
관세자재여, 나는 모든 보살마하살이 단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을 여실히 수행함을 말하리라.
어떤 것이 일곱인가?
이른바 자비한 마음에 의지하여 보시가 청정하고,
보시가 청정하면 곧 계가 청정하고, 소견이 청정하고, 입이 청정하고, 지혜가 청정하고, 뜻이 청정하니,
[所謂依悲心施淸淨, 施淸淨卽戒淸淨, 見淸淨, 心淸淨, 口淸淨, 智淸淨, 意淸淨.]
이것이 단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이다.
관세자재여, 이렇게 하여 계바라밀에도 일곱 가지 청정이 있으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이른바 보살마하살이 보살의 받을 계에 대하여 여실히 일체 계를 알며,
여실히 모든 허물 여의는 법을 알며,
그 법으로 항상 견고한 계와 지극한 마음의 계와 항상 수순하는 계를 지니며,
모든 배움 가운데서 여실히 계를 지닌다.
[所謂菩薩摩訶薩於菩薩受持戒, 如實知一切戒, 如實能知離諸過法, 彼法恒持堅固戒, 至心戒, 常隨順戒, 於諸學中如實持戒.]
관세자재여, 이것이 계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이와 같이 찬제바라밀에도 일곱 가지 청정이 있으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이른바 스스로의 업보를 믿고 일체 이롭지 못한 일에 성내는 마음을 내지 않으며,
꾸짖거나 성내거나 때리는 일체 악한 일이 그 몸에 닥쳐올지라도 보복할 마음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맺지 않으며,
만일 그가 와서 용서를 구하면 곧 받아들여 그를 괴롭히지 않으며,
그가 용서 구하기를 바라지 않으며,
두려움이 있어서나 음식을 위해서 인욕하지 않으며,
남에게 은혜를 받으면 잊지 않고 갚아야 하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인욕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비리야바라밀에 일곱 가지 청정이 있으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이른바 보살이 정진의 평등함을 여실히 아는 까닭이며,
정진으로써 자기는 높이고 남은 낮추지 않는 까닭이며,
몸을 안주하여 태산과 같이 움직이지 않는 까닭이며,
항상 부지런히 정진하는 까닭이며,
마음이 비겁하거나 약하지 않은 까닭이며,
행하는 것이 견고한 까닭이며,
모든 착한 법에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켜 쉬지 않는 까닭이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비리야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선바라밀에 일곱 가지 청정이 있으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이른바 보살이 잘 결정하여 모든 모습의 삼매를 아는 선바라밀이며,
삼매를 만족히 하는 선바라밀이며, 2분의 삼매를 여실히 아는 선바라밀이며,
삼매에 수순하는 법을 여실히 아는 선바라밀이며,
삼매에 의지하지 않는 선바라밀이며,
모든 업으로 지은 착한 삼매를 잘 단련하는 선바라밀이며,
보살법[菩薩藏]의 삼매를 관찰하는 선바라밀이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선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여, 반야바라밀에 일곱 가지 청정이 있으니,
어떤 것이 일곱인가?
이른바 ‘있다[有]’와 ‘없다[無]’의 비방을 여읜 중도(中道)의 반야이며,
반야의 힘에 의지하여 여실히 세 가지 해탈의 뜻을 아니, 이른바 공(空)과 모습 없음[無相]과 원 없음[無願]을 알며,
세 가지 분별과 남의 힘[他力]과 제일의제의 세 가지를 여실히 알며,
여실히 능히 세 가지인 이름 모습[名相]과 나는 모습[生相]과 제일의의 모습 자체를 알며, 여실히 능히 세상 진리[世諦]인 5명처(明處)를 알며,
능히 제일의제를 여실히 알며,
일곱 가지 진여에 분별하지 않고 희론하지 않으면서 무량한 차별 관법인 사마타ㆍ비바사나를 한맛으로 수행하며,
들은 대로 여실히 수행하여 성취한다.
관세자재여, 이것을 반야바라밀의 일곱 가지 청정이라 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이 다섯 가지 관법은 낱낱 관법에 어떠한 업이 있습니까?”
“관세자재여, 이 다섯 가지 관법에는 각각 다섯 가지 업이 있으니,
어떤 것이 다섯 가지인가?
이른바 보살이 현재의 보[現報]에 집착하지 않고, 항상 지극한 마음으로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되 게을리 하지 않는 까닭이며,
은혜에 보답하기를 바라지 않고 미래를 섭취하되 게을리 하지 않는 까닭이며,
모든 허물이 없이 좋은 청정과 좋은 백정[白淨]을 만족하게 잘하여 모든 바라밀을 잘 닦는 까닭이며,
분별없이 공교한 방편에 의지하여 속히 모든 바라밀을 만족히 하는 까닭이며,
회향하는 힘에 의지하여 일체 태어나는 곳에서 좋은 과보를 얻으며, 그에 의지하여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여 다함이 없으며, 나아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는 까닭이니
관세자재여, 이것이 보살의 모든 바라밀의 차별된 업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이 모든 바라밀에 어느 것이 가장 수승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관세자재여, 이른바 자재(資財)를 아끼지 않으며, 과보에 집착하지 않고 큰 보리에 회향함이니
관세자재여, 이것을 가장 수승함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물들지 않는 법입니까?”
“이른바 모든 허물이 없으며, 분별없는 것이니,
이것을 물들지 않는 법이라고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밝고 묘한 것입니까?”
“이른바 반연이 멸한 모든 법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것이 보살의 움직이지 않는 곳[不動地]입니까?”
“관세자재여, 보살이 첫 환희지에 들어가는 큰 힘을 구족하게 하고 모든 법에서 물러나지 않으니,
이것이 보살의 움직이지 않는 곳임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세존이시여, 어떤 법이 가장 청정한 법입니까?”
“이른바 10지를 만족하게 하고 나아가 불지(佛地)를 만족하게 하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
관세자재보살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까닭에 보살의 모든 바라밀은 다하지 않으며, 사랑하고 즐거워하는 과보도 다함이 없습니까?”
“이른바 서로서로가 인이 되어 묘한 과보를 내니, 마땅히 알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