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가섭문대보적정법경 제2권
4.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
가섭이 아뢰었다.
“보살이 어떻게 수지하면 바른 법행을 볼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가섭아, 내 몸에 나[我]가 없는 것처럼 사람이 없고 중생이 없으며 수명이 없고 이름이 없으며 모양이 없다고 관(觀)하는 것이니, 관행(觀行)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影像) 가운데의 법을 바로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또 가섭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바로 관찰한다 하는데,
가섭아, 어떤 것이 영상 가운데의 법인가?
몸[色]을 바로 관찰하는 것처럼, 그것이 상(常)이 없고 상이 없음도 아니라고 관찰하며,
이와 같이 느낌[受]ㆍ상상[想]ㆍ의지[行]ㆍ의식[識]의 상(常)과 무상(無常)과 정(定)이 없음과 정이 없음도 아님을 관찰하는 것이니,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영상 가운데의 법에 있는 지계(地界)의 상(常)과 무상과 정이 없음과 정이 없음도 아님을 여실히 관찰하며,
이와 같이 수계(水界)ㆍ화계(火界)ㆍ풍계(風界)ㆍ공계(空界)ㆍ식계(識界)도 그와 같아서 정이 없음과 정이 없음도 아님을 관찰하나니,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저 안처(眼處)는 상이요, 무상성(無常性)이며, 정도 없고 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와 같이 이처(耳處)ㆍ비처(鼻處)ㆍ설처(舌處)ㆍ신처(身處)ㆍ의처(意處)도 상이요 무상성이며, 정도 없고 정이 없는 것도 아니다.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정(定)은 한 법이요, 이 부정(不定)은 두 법이니,
만일 그 두 법을 이 색(色)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숨기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또한 상(相)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한다.
또 가섭아, 아견(我見)은 한 법이요, 무아(無我)는 두 법이다.
만일 이 두 법을 이 색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무르지도 않으며 숨기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또한 상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影像)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진실한 마음은 한 법이요, 이 진실하지 않은 마음은 두 법이니,
가섭아, 두 법이 있는 곳에는 마음도 없고 깨달음도 없으며, 뜻도 없고 알음알이도 없나니,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선(善)과 불선, 세간과 출세간, 유죄와 무죄, 유루(有漏)와 무루, 유위(有爲)와 무위, 번뇌 있음과 번뇌 없음 등 이런 모든 법에 있어서
가섭아, 이 생기는 법은 하나요 멸하는 법은 둘이니,
만약 이 두 법 가운데에 모임도 없고 흩어짐도 없으면 구해서 얻을 수도 없다.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있는 법은 하나요, 이 없는 법은 둘이니,
만일 이 두 법이 이 색(色)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거두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또한 상이 없기 때문이니,
그러므로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이 윤회는 한 법이요, 이 열반은 두 법이니,
만일 이 두 법이 이 색 가운데서 보지도 않고 머물지도 않으며 거두지도 않고 알음알이도 없으면,
가섭아,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나는 너희들에게 말한다.
즉 무명(無明)의 반연[緣]으로 행(行)이 생기고,
행의 반연으로 식(識)이 생기며,
식의 반연으로 명색(名色)이 생기고,
명색의 반연으로 6입(入)이 생기며,
6입의 반연으로 촉(觸)이 생기고,
촉의 반연으로 수(受)가 생기며,
수의 반연으로 애(愛)가 생기고,
애의 반연으로 취(取)가 생기며,
취의 반연으로 유(有)가 생기고,
유의 반연으로 노사(老死)가 생기며,
노사의 반연으로 우비고뇌(憂悲苦惱)가 생기나니,
가섭아, 이리하여 이 하나의 큰 고통의 무더기가 모이게 되느니라.
있는바 무명이 멸하면 행이 멸하고,
행이 멸하면 식이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이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6입이 멸하며,
6입이 멸하면 촉이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고,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며,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고,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며,
유가 멸하면 생이 멸하고,
생이 멸하면 노사가 멸하며,
노사가 멸하면 우비고뇌가 멸하나니,
이리하여 이 하나의 큰 고통의 무더기가 멸하게 된다.
가섭아, 만일 지혜로 명과 무명 등 이 두 상이 없음을 관찰하면,
가섭아, 이것이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니라.
또 가섭아, 이와 같이 행과 행이 멸하고,
이와 같이 식과 식이 멸하며,
이와 같이 명색과 명색이 멸하고,
이와 같이 6입과 6입이 멸하며,
이와 같이 촉과 촉이 멸하고,
이와 같이 수와 수가 멸하며,
이와 같이 애와 애가 멸하고,
이와 같이 취와 취가 멸하며,
이와 같이 유와 유가 멸하고,
이와 같이 생과 생이 멸하며,
이와 같이 노사와 노사가 멸하고,
이와 같이 지관(智觀)과 생성(生性)이 멸하나니,
성품에 두 상이 없기 때문이다.
가섭아, 이 두 상을 떠나면 이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을 여실히 관찰하는 것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영상 가운데의 법을 마땅히 바르게 관찰해야 한다.
즉 그 법은 공도 아니요, 공이 아닌 것도 아니며,
이와 같이 공법은 법상(法相)이 없고, 법상이 없는 것도 아니다.
법상은 곧 공상(空相)이요,
공상은 곧 무상(無相)이며,
무상은 곧 무원(無願)이다.
왜냐하면 소원을 짓는 바가 없기 때문이니, 무상이 곧 공상이며,
이와 같이 행하는 자가 만일 법이 생기지 못했으면 생기지 않은 것이니, 법이 생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법이 생기는 것과 같이 그것은 생기지도 않는 것이니, 생김이 이미 떠났기 때문이요, 이와 같이 생김이 없나니, 생이 취(取)를 떠났기 때문이다.
법에는 자성이 없고 성(性)이 없음은 공이니,
이렇게 바로 관찰하는 것을 영상 가운데의 법이라 하느니라.
또 가섭아, 보특가라는 공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요, 그 실체가 곧 공이니, 있음이 아니기 때문이다.
과거의 공도 아니요, 미래의 공도 아니며, 현재가 곧 공이니라.”
가섭이 아뢰었다.
“나는 지금 저 보특가라(補特迦羅)가 바로 공임을 깨달았습니다. 나[我]를 파괴했기 때문입니다. 일체는 다 공이다. 이 법은 이와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