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의족경 하권
11. 맹관범지경(猛觀梵志經)
이와 같이 들었다.
부처님께서 석국(釋國) 가유라위수(迦維羅衛樹) 아래에 계셨다. 부처님께서는 오백 비구를 거느리고 계셨는데, 이들은 모두 아라한[應眞]의 수행을 이미 갖추어 번뇌의 무거운 짐을 벗었고 진리를 듣고서 해탈하였으며 따라서 모태에 태어남이 완전히 끝난 상태였다.
이때 시방(十方) 천하의 지신(地神)과 천신(天神)들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존귀하신 부처님과 비구승들을 친견하고자 하였다.
이에 범사천왕(梵四天王)들이 서로에게 이렇게 말했다.
“모든 배우는 이들이 어찌 알겠는가?
부처님께서 석국 가유라위수 아래에 오백 아라한과 함께 계시며 시방의 천신과 지신들이 모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와서 예배하고 존귀하신 부처님의 위신력과 비구승들을 천견하고자 하는 줄을….
이제 어찌 우리가 가서 부처님의 위신력을 친견하지 않으리요?”
사천왕은 즉시 마치 힘이 센 장사가 팔을 굽혔다 펴듯이 제 칠천(七天)에서 날아 내려와 잠깐 사이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 근처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함께 부처님과 비구승들에게로 가서 예배를 올리고 각자 자리에 앉았다.
사천왕 중 첫째 천왕[梵天]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지금 이 숲 속에 큰 모임을 가지는데
모여들어 부처님을 뵙는 이들은 모두 지신과 천신들일세.
이제 제가 와서 법을 듣고자 하오니
원컨대 앞으로 한량없는 대중이 모이기를.
둘째 천왕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이곳에서 도를 배움에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하고
정직하게 수행을 익혀야 자신이 바르게 됨을 알리라.
마치 말 모는 이가 두 고삐를 잘 조절하듯
눈[眼根]을 잘 지켜 마음을 깨달아야 하리.
셋째 천왕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온갖 번뇌를 힘써 끊고 삿된 생각 조복받아
뜻을 굳게 안정하길 철근(鐵根)이 박히듯 하고
세속일랑 보지 말고 티없이 깨끗하게
지혜의 눈, 밝은 생각으로 수행해야 하리.
넷째 천왕이 자리에 나아가 게송을 읊었다.
이 몸으로 현명하신 세존께 귀의하오니
끝내 생(生)을 받아 삿된 곳에 떨어지지 않게 되고
사람 몸을 버리고 다시 태어나도
하늘 몸을 받아서 점차 고통을 여의게 되리라.
이때 좌중에 맹관(猛觀)이란 이름의 한 범지가 있었다. 그는 대중들 가운데 있다가 사천왕의 게송을 듣고 의심이 생겼다.
부처님께서는 맹관 범지가 의심을 품은 줄 알고 또 한 분의 부처님을 만들어 내셨다.
이 만들어낸 부처님은 보는 이들은 누구나 좋아하리만치 더없이 단정한 모습에 삼십이상(三十二相)의 대인상(大人相)과 금색 광명을 갖추고 큰 법의를 걸치고서,
부처님을 향해 손을 모으고 게송을 읊어 찬탄하였다.
사람들의 저마다 생각, 상대방도 알건만
저마다 남보다 지혜가 낫다고 말하려 하네.
능히 이 법을 남김없이 알 수 있는 이가 있다면
행하고 구하면 견해는 없으리라.
이와 같다 단정하기만 하면 곧 달리 바뀌건만
어리석은 이는 자기 지혜가 낫다고 생각하네.
지성스레 말하노니 모두가 평등한 법
일체의 언설들이 모두 한결같이 훌륭하다네.
상대방이 진리를 얻었는지 알지도 못하고서
지혜없는 어리석은 이는 총명한 이만 따라가네.
일체에 어두운 이는 총명한 이만 가까이 하니
생각과 행동이 모두 상대방과 마찬가지라네.
먼저 생각했다가 그 다음에 말하나니
지혜가 이미 깨끗하고 마음에 착한 생각
이들은 모두 지혜가 감소하길 바라지 않아
모두들 생각하여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히네.
자신이 남들보다 결코 낫지 않건만
어리석은 이들은 서로 손잡고 이끌어주네.
자신의 소견을 삼가 진리라 생각하여
자신이 어리석으면서 남을 받아들이네.
자신의 설법으론 누구도 건질 수 없으면서
자신의 텅빈 소견으로 탐욕만 잔뜩 부리네.
자신이 어리석으면서 남들까지 어리석게 하니
무슨 도를 배웠길래 일제(一諦)를 말하지 않나.
일제(一諦)가 유무의 이제(二諦)를 포괄하나니
이 일제를 알기만 하면 전도되지 아니하리.
진리는 생각에 따라 다함이 없다 말하고
이 때문에 배움은 하나라 말하지 않는다네.
어떠한 진리이건 나머지는 말하지 않나니
나머지 진리는 그 누가 다 말해 줄 것인가.
비록 나머지 진리가 있은들 누구에게서 배우리
그리고 의식은 어디로부터 생기는 것일까.
의식에는 나머지란 없는데 어찌 나머지라 하는가.
다른 생각으로부터 분별하고 가리네.
눈으로 볼 적에는 좋은 것에 애착을 두나니
의식이 속인다면 이법(二法)을 다하리.
보고 들음에 생각과 행동을 경계해야 하는데
남보다 지혜롭고자 하는 욕심에 언쟁을 일삼네.
비교하는 짓은 그만두고 무엇이 부끄러운지를 살피라.
이런 까닭에 어리석음을 남에게 전파하네.
어리석음은 어디서 그에게 주어졌는가.
그는 비단같은 말로 나를 잘 꾈 수 있고
문득 스스로 써서 훌륭히 설명한 뒤에라도
이의(異義)가 있으면 그에게는 곧 의문이 생긴다.
사견(邪見) 굳혀 놓고 사사(師事)하기 바라니
나쁜 잔꾀로 그럴듯하게 치장하고
늘 스스로 말이 미치지 못할까 두려워하니
나는 늘 경계하며 이 버릇 보아왔다.
그의 진리를 보는 견해 잘못된 부끄러움 숨어 있다.
본래 스스로 부끄러움 있었으니 잔꾀를 감추어
모든 것을 잔꾀로 분별할 줄 알았고
어리석은 일은 하나도 없이 잔꾀에 맞추어 행동하였다.
이것을 진리가 머무는 곳이라 말하며 자기가 법으로 삼는 법으로
모든 것을 깨끗히 할 수 있다고 한다.
이와 같이 방편을 취하여 혼란과 변을 만드니
자신이 지은 인연으로 호되게 오염된 생각에 집착하였다.
이와 다른 행으로 청정의 뜻 풀이할 수 있으니
그는 비록 청정하다 하더라도 더러움이 다하지 못하였다.
이 다른 행 배우고 들으니 앉아 있어도 편안해
자신이 탐내는 것 나와 함께 굳고 성하네.
스스로 이미 굳고 성하여 탐욕을 방지하니
무슨 어리석음 있다고 그를 위해 말할까.
비록 그에게 아직 법 청정하지 못하다고 가르친다 하더라도
그에게 헤아리고 재보는 마음 생겨 스스로 높고 묘하다 할 것이다.
진리에 대해 풀어주었으나 제멋대로 지었기에
비록 상세(上世)라 하더라도 혼란 있을 것이니
모든 짓는 생각 다 버려라.
묘한 진리는 짓는 생각을 짓지 않는다.
부처님께서 이 『의족경』을 말씀하시고 나자 비구들은 모두 환희에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