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귀한 보시 Mahādāna
난다말라비왐사 큰스님
Ashin Nandamālābhivaṁs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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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 보시
보시를 할 때 보시 받는 존재가 ‘무엇’을 얻는가를 가늠해서 보시의 크기와 고귀함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붓다께서는 ‘삽바다낭 담마다낭 지나띠(법 보시가 모든 보시를 이긴다)’라고 설하셨습니다. 그러면 법보시가 왜 보시 중에서 가장 귀한 보시가 되는가?
생각해 봅시다. 예를 들어, 물건 하나를 보시하면 이 물건을 얻는 존재에게 이것이 얼마나 이로움을 주는 가를 가늠해 보고 가치 있다 혹은 가치 없다를 판단할 수 있습니다. 담마다나(법보시)도 마찬가지입니다. 담마(법)를 보시함으로써 이 담마(법)를 보시 받는 존재에게 얼마나 좋은 결과를 줄 수 있는지를 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보시하는 존재가 아니라 보시 받는 존재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밥을 보시합니다. 밥이란 모두 알다시피 오전에 먹었지만, 오후가 되면 또 먹어야 합니다. 미얀마 사람들은 밥의 수명이 7일이라고 말하곤 합니다. 이것은 한 끼 식사로 7일 간은 죽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하루에 밥을 몇 번 먹습니까? 하루 한 끼만으로는 버티기 힘듭니다. 최소한 두 끼는 먹습니다. 그래서 밥 한 끼의 보살핌이 한나절 간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밥 한 끼 보시하면 그 사람에게 한나절만 이로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밥이 그 사람에게 이로움을 주는 기간(양)은 몹시 짧습니다. 옷을 보시하는 것을 봅시다. 옷이 주는 이로움은 밥보다는 더 깁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다지 길게 이로움을 주진 않습니다. 고작 한 달, 두 달, 석 달입니다. 하지만 불사를 하면 수십 년 이로움을 줍니다. 그래서 불사를 보다 더 귀한 보시라고 하는 것입니다. 보시 받는 존재에게 이로움을 주는 기간과 정도가 더 크고 강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담마다나(법보시)’는 보시 받는 존재에게 어떤 이로움을 얼마나 줄 수 있는지 봅시다. 앗사지assaji존자께서 사리뿟따sāriputta 존자에게(사리뿟따 존자는 그 당시 우빠띳사upatissa라는 이름의 외도였습니다) 법을 설하셨습니다. ‘담마다나(법보시)’를 하신 것입니다.
ye dhammā hetuppabhavā tesaṁ hetuṁ tathāgato āha,
‘예 담마-헤-뚭빠바와 떼-상 헤-뚱 따타-가또- 아-하’
(원인으로 인해 생겨나는 것(법)들, 결과 되는 것
(법)들의 원인 되는 것(법)들을 붓다께서 설하셨다.) (『테라가타』 286번 게송 중에서)
이와 같이 법보시를 했습니다. 이 한 줄의 게송을 들은 외도 우빠띳사는 얼마만큼의 이로움을 얻었느냐 하면, 수다원이 되어 버립니다. 자! 생각해 봅시다, 이 법을 듣고 우빠띳사 외도가 수다원이 된 것은 적은 이익입니까, 많은 이익입니까? 보시 받은 존재가 얻은 이로움이 어마어마합니다. 참으로 고귀한 보시입니다. 그래서 ‘삽바다낭 담마다낭 지나띠(법보시가 모든 보시를 이긴다)’라고 하신 것입니다.
지금 이 법문에서는 ‘마하다나’라는 이름으로 설하셨습니다. ‘마하’라는 단어에는 ‘위대한, 고귀한, 무궁한’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즉 ‘위대한 보시, 고귀한 보시, 무궁한 보시’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