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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경요집 제3권
2. 경탑부(敬塔部)
[여기엔 일곱 가지 연이 있음〕
2.1. 술의연(述意緣)
삼가 생각해 보건대 여래(如來)께서는 중생의 호응에 따라 나타나시니 묘한 색신이 삼천 세계에 드러나사고, 정각(正覺)께서는 광명을 감추셨지만 남기신 형상은 팔만 세까지 전해진다.
그런 까닭에 탑(塔)은 영산(靈山)에 솟아 있고 그림자[影]는 석굴(石窟)에 머무른다. 박달나무에 새기고 비단천에 그런 위의(威儀)와 금(金)을 녹여 만들고 옥(玉)에 새긴 형상은 몸을 보전하고 몸을 부순 자취요, 탑을 모으고 탑을 흩어 지게 한 기적(奇蹟)이다.
그런데 그 광명은 겹겹이 어두운 곳을 비추고 그 복덕은 중생[含識]을 돕는다. 꽃다운 명성과 오래도록 찬미함은 삿된 무리들로 하여금 믿음을 맺게 하였으니, 맨 먼저 아육왕(阿育王)이 처음으로 열었고 맨 마지막엔 대당(大唐) 초기 까지 전해졌다. 역대에 번성하게 일어난 때로부터 신화(神化)가 한둘이 아니있다.
그러므로 경전에서 말하였다.
“바른 법이 머무르기도 하고 바른 법이 멸하여 사라지기도 한다.”
이렇게 말하였으나, 그 뜻이 여기에 있지 않겠는가?
2.2. 인증연(引證緣)
『관불삼매경(觀佛三昧經)』에서 말한 것과 같다.
“부처님께서는 석실(石室)에 그림자[影]를 남기셨으니, 그것은 나건가라국(那乾呵羅國) 독룡지(毒龍池) 곁에 있다. 부처님께서는 용지의 석실굴 속에 앉으시어 용을 위해 열여덟 가지 변화를 부려 몸을 솟구쳐 돌 속으로 들어가셨다.
비유하면 마치 밝은 거울과 같아서 돌 속에 계신데도 바깥으로 내비쳤는데, 멀리서 바라보면 보이지만 가까이서 바라보면 나타나지 않는다.
백천(百千) 여러 하늘들이 부처님의 그림자에 공양하자 그 그림자가 또한 나타나 법을 설하였다.”
[지금까지도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는 것은 미륵이 오기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또 『대집경(大集經)』에서 말하였다.
“도리천(忉利天) 성의 동쪽 조명원(照明園) 안에는 불발탑(佛髮塔)이 있고, 성 남쪽 추삽원(麁澁園) 안에는 부처님의 옷탑[佛衣塔]이 있으며, 성 서쪽 환희원(歡喜園) 안에는 부처님의 발우탑[ 佛鉢塔]이 았고, 성 북쪽 가어원(駕御園) 안에는 부처님의 치아탑[佛牙塔]이 있다.”
또 『대지도론(大智度論)』에서 말하였다.
“천제석(天帝釋)이 보살의 머리칼과 옷을 가지고 천상(天上)의 성 동쪽 문 밖에다가 부처님의 불발탑(佛髮塔)과 불의탑(佛衣塔)을 세웠다.”
또 『육왕전(育王傳:阿育王傳)』에서 말하였다.
“왕은 신심(信心)이 생겨 도인(道人)에게 말하였다.
‘내가 옛부터 지금까지 살해했던 것은 꼭 이유가 있었던 것만은 아닙니다.
그러니 지금 어떤 선업(善業)을 닦아야 이 재앙을 면할 수 있겠습니까?’
도인이 대답하였다.
‘오직 탑을 세우고 많은 스님들을 공양하며, 감옥에 갇혀 있는 죄수들을 방면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구휼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비유경(警喩經)』에서 말하기를
“왕궁(王宮) 안에서 항상 네 가지 일로 이만이나 되는 사문(沙門)을 공양하면서 마음윌 다하여 예(禮)를 갖추었다고 한 것이니, 이루 다 기록하지 못한다.]
왕이 말하였다.
‘어느 곳에 탑을 세워야 하겠습니까?’
도인은 곧 신통력으로써 왼손으로 햇빛을 가리고 팔만 사천의 길을 만들어 염부제(閻浮提)의 이곳 저곳을 비주면서 말하였다.
‘이 빛이 비추는 곳마다 모두 탑을 세우십시오.’
아직까지 여러 탑이 남아 있는 것이 바로 그것들이다.
그 때 왕은 사리탑(舍利塔)을 세우고자 하여 네 부류의 군사들을 거느리고 왕사성(王舍城)에 이르러서 아사세왕(阿闍世王)이 세운 부처님의 탑 안에 사리를 거두고 다시 이 탑을 수리하여 전과 다름이 없게 하였다.
이와 같이 다시 일곱 개의 부처님 탑 속에 들어 었던 사리를 거두어 가지고 중마촌(衆摩村)으로 갔다.
그 때 여러 용왕들은 이 왕을 데리고 용궁으로 들어갔다. 왕은 용이 내놓은 사리를 보고는 공양을 올리니, 용은 곧 그 사리를 나누어 주었다.
그러자 왕은 팔만 사천의 금ㆍ은ㆍ유리ㆍ파리(頗梨)로 상자를 만들어 부처님의 사리를 담있다.
또 팔만 사천 보배 병을 만들어서 이 상자를 그 병 속에 넣었다.
또 한량없는 백천 개의 번기[幡]ㆍ당기[幢]ㆍ일산[傘蓋]을 만들고, 모든 귀신들을 시켜 각각 사리와 공양 도구들을 가지게 하고는 그 귀신들에게 칙명을 내렸다.
‘염부제에 있는 바닷가 성읍(城邑)과 마을[聚落]에 이르러 일억 정도 되는 집에 세존(世尊)을 위하여 탑을 세워라.’
그 때 한 나라가 있었으니, 그 나라의 이름은 저차시라(著叉尸羅)였다.
그 나라에는 삼십육억이나 되는 집이 있었는데,
그 나라 사람들이 귀신들에게 말하였다.
‘서른여섯 개의 상자에 담겨 있는 사리를 우리에게 주면 우리들이 부처님의 탑을 세우겠다.’
왕은 방편을 써서 그 나라에 살고 있는 젊은 사람들에게 그것을 나누어주어 집 수효에 맞추어 탑을 세우게 하였다.
그 때 파련불(巴連弗) 고을에 상좌(上座)가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야사(耶舍)였다. 왕이 그곳에 나아가 상좌에게 말하였다.
‘제가 하루 동안 팔만 사천 개씩 탑을 세워 이 염부제에 두루 가득 차게 하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그러자 그 상좌가 혼자서 중얼거렸다.
‘홀륭하십니다. 대왕이시여, 지금 이후로는 매달 보름날 점심 식사 때마다 이 염부제로 하여금 일시에 모든 부처님의 탑을 세우게 하십시오.’
이렇게 그 수효대로하여 마침내 하루동안에 팔만사천 개의 탑을 세웠으니, 세간의 인민들에겐 경사를 일으킴이 한량없었다.
모두들 그 탑을 아육왕탑(阿育王塔)이라고 불렀다.”
또 『대아육왕경(大阿育王經)』에서 말하였다.
“여덟 나라에서 똑같이 사리를 나누었다.
아사세왕은 그 사리의 수를 나눌 때 팔만 사천 개를 얻었고, 또 따로 부처님의 수염을 얻어 가지고 본국으로 돌아왔다. 돌아오는 도중에 재난을 만났는데 그것은 곧 두화(頭和) 용왕이 자신에게 사리를 나누어 줄 것을 요구한 때문이었다.
그러나 아사세왕이 주지 않자 용왕이 곧 말하였다.
‘나는 여기 사는 용왕인데 내 힘으로 그대의 나라를 부수어 버릴 수도 있다.’
아사세왕은 두렵고 무서워서 곧 부처님의 수염을 그에게 주었다.
용왕은 그것을 가지고 돌아가 수미산(須彌山) 아래 높이 팔만 사천 리쯤 되는 곳에 내려와 서 수정탑(水精塔)을 세웠다.
아사세왕은 본국으로 돌아와서 그 사리를 자금함(紫金函)에 담아 천 년 등불을 만들어 밝히고 다섯 항하강 물 속에 탑을 세워 묻어두었다.
그 뒤에 아육왕이 그 나라를 빼앗있다.
왕이 부인을 맞이했는데 신장(身長)이 여덟 자나 되었고 머리카락 길이도 또한 그러하였으며 수많은 상호를 원만하게 갖추었다. 왕은 관상장이를 시켜 그의 상을 보게 하였다.
관상장이가 말하였다.
‘장차 왕께서는 금색의 아드님을 낳으실 것입니다.’
왕은 곧 그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고, 그녀는 마침내 아이를 가져 열 달이 갔다.
왕이 볼 일이 있어서 밖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다.
왕후[太后]가 둘째 부인을 질투하여 곧 방편을 써서 다른 여인들과 공모하여 그녀를 없애버리려고 생각했다.
그리고는 출산에 임박한 어미 돼지를 구해놓고 둘째 부인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나이가 젊은 데다가 이번이 초산[始產]이니, 얼굴을 드러내놓고 하늘을 보아서는 안 된다. 옷으로 얼굴을 가리고 있어야 한다.’
둘째 부인은 곧 금색 아들을 낳아 그 광명이 온 궁중을 비추었다.
태후는 몰래 그 아이를 훔쳐 가지고 데라고 가서 죽여버리고 새끼 돼지를 산모 곁에 놓아 두었다.
그리고는 그녀를 꾸짖어 말하였다.
‘너는 마땅히 대왕을 위하여 금색 왕자를 나을 것이라고 말하더니 무슨 까닭에 돼지 새끼를 낳았느냐?’
그러면서 곧 윤두(輪頭)를 가지고 그녀를 때리고 후원(後園)에 가두어 두고는 나물만 먹게 하였다.
왕이 돌아와 이 말을 듣고 매우 불쾌해 하였다.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왕이 후원으로 나가 그녀를 보고는 옛날을 생각하여 궁중으로 데리고 왔다.
둘째 부인은 점점 왕과 친근하게 되자 그 동안의 상황을 모조리 이야기했다.
왕은 그 이야기를 듣고 놀라고 괴이하게 여겨 곧 팔만 사천이나 되는 부인을 다 죽여버렸다.
그리고 아육왕은 그 후에 성 밖에다 지옥을 짓고 모든 죄인들을 다스렸다.
야사(耶舍)는 왕이 모든 부인을 죽임으로써 장차 지옥에 떨어지리라는 것을 알고,
곧 소산(消散)비구를 보내어 왕을 교화하게 하였다.
그러자 왕은 믿음을 내어 깨닫고 나서 그 비구에게 물었다.
‘팔만 사천이나 되는 부인을 죽인 죄를 속죄할 방법이 있습니까?’
도인(道人)이 대답하였다.
‘그 부인들 각각을 위하여 탑 하나씩 세우고, 그 탑 아래에 사리 하나씩을 넣어 두면 마땅히 그 죄를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왕은 곧 아사세왕의 사리를 찾았다.
그러자 나이 일백스무 살이 되는 어떤 나라 재상의 아버지가 오백 명의 사람을 거느리고 본래의 사리를 가지고 왔다.
왕은 크게 기뻐하면서 그것을 귀신들에게 나누어주며 말하였다.
‘각각 이것을 가지고 소속 부서로 돌아가서 한날 한시에 똑같이 팔만 사천 개의 절에 안치하라.’
귀신들이 말하였다.
‘중간에 많은 산들이 가로막고 있어서 서로 말 수가 없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너희들은 다만 돌아가서 절을 보호하고 방울만 달아두어라. 그러면 내가 반드시 아수륜(阿修輪:阿修羅)을 시켜 손으로 해를 어루만지게 하고 사천하를 동시에 진동하게 하리라.’
또 『아난경(阿難經)』에서 말하였다.
“일천이백 개의 탑을 조성(造成)하고 천으로 번기와 갖가지 꽃을 만들었으나 미처 번기를 달기도 전에 황공하게도 왕이 죽어버렸다.
탑이 이룩된 지 육일 만에 왕은 자신의 정원으로 승려들을 초청하여 공양하였다.
그 때 우파굴다(優波崛多:優婆毱多) 아라한이 일만 팔천 아라한을 거느리고 왕의 청을 받아들였다.
그런데 존자 굴다는 얼굴 모습이 단정하고 신체가 유연했다.
그러나 왕의 몸은 추하고 더러웠으며 피부까지 거칠었다.
존자가 곧 게송으로 말하였다.
내가 보시를 행할 때엔
깨끗한 마음에다 좋은 재물이었지만
그러나 대왕이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한 것만 못하네.
왕이 대신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부처님께 모래를 보시하고 이와 같은 과보를 얻었다. 그러니 어떻게 부처님을 공경하지 않겠는가?’
왕은 그 후에 부처님의 제자인 가섭(迦葉)과 아난(阿難) 등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계셨을 때의 제자들이었던 사람들의 탑이 있는 곳을 몸소 찾아가서 슬픈 감정을 표하고 자책하는 마음으로 공경을 다하였다.
또 각각의 탑마다 갖가지로 공양하고 다시 큰 탑을 세웠는데, 새로 세운 각각의 탑마다 십만 냥의 귀중한 보배로 공양하였다.
다음에는 박구라(縛俱羅)의 탑에 이르러 공양하고 왕이 물었다.
‘이 사람에게 무슨 공덕이 있었습니까?’
존자가 대답하였다.
‘그는 병이 없는 것이 제일이며, 나아가 남을 위해서 한 구절의 법도 말하지 않고 항상 침묵하여 말이 없었습니다.’
왕이 말하였다.
‘그러면 일 전(錢)을 공양하겠습니다.’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였다.
‘공덕은 이미 동등한데 무슨 까닭에 여기에선 일 전만을 공양하십니까?’
왕이 말하였다.
‘내가 설하는 게송을 들으라.’
비록 무명(無明)의 어리석음을 제거했다 하더라도
지혜만이 능히 거울처럼 살필 수 있네.
아무리 저 박구라가 았다고 해도
이 세상에 무슨 이익이 있으리.
그 때 그 일 전의 돈이 왕의 처소로 돌아왔다.
그러자 대신들은 이 희유(稀有)한 일을 보고 이구동음(異口同音)으로 그를 찬탄하였다.
‘아아, 존자시여, 참으로 욕심이 적고 만족할 줄 아십니다. 그러하여 일 전도 받지 않으셨습니다.’
왕과 대신들은 끊임없이 보리수(菩提樹)라고 하였다.
그는 생각하였다.
〈왕은 나를 지극히 사랑하고 생각하선다. 그런데도 왕은 지금 나와 진귀한 보배를 버리시고 보리수 아래로 가시는구나.
내가 방편으로 저 나무를 죽게 하여 왕을 그곳에 가지 못하게 하고 나와 함께 서로 즐기며 살아가게 하리라.〉
이렇게 생각하고 부인은 곧 사람을 보내 뜨거운 우유를 그 나무에 뿌리게 하였다. 그러자 나무는 잎이 시들더나 모두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왕은 그 말을 듣고 혼절하여 땅에 쓰러졌다.
부인은 왕이 시름에 잠겨 기뻐하지 않는 것을 보고 왕의 마음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왕에게 아뢰었다.
‘만약 저 나무가 없으면 내 목숨도 없는 것입니다. 여래께서도 저 나무 밑에서 도를 증득하셨습니다. 저 나무가 이미 죽어가고 있으니 무엇으로 살려야 하겠습니까?’
그리고는 찬 우유를 나무에 주자 그 나무가 다시 살아났다.
왕이 그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나무 아래로 나아갔다. 그리고는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바라보다가 천 개의 항아리에 담긴 향나무 달인 물을 보리수에 쏟아 물을 대주자 나무는 보다 싱싱하게 우거졌다.
그 뒤에 왕은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손에 향로를 들고 전상(殿上)에 올라 사방을 향해 예를 올리고 마음 속으로 생각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여러 곳에 계시는 어질고 거룩한 여래의 제자들이시여, 저를 가련하게 생각하여 이 공양을 받아 주십시오.’
이와 같이 말할 때에 삼십만 비구들이 모두 와서 모였다. 그렇게 모인 대중들 가운데 십만 명은 아라한(阿羅漢)이었고 이십만 명은 학인(學人)과 범부들이 있다.
궁중 사람들과 태자와 뭇 신하들이 왕과 함께 지은 공덕은 한량없이 많아 이루 다 기록할 수조차 없다.”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에서 말하였다.
“아육왕(阿育王)이 비구에게 물었다.
‘누가 불법 가운데 제일 큰 보시를 행하였습니까?’
여러 비구들이 말하였다.
‘급고독(給孤獨) 장자가 가장 큰 보시를 행하였습니다.’
왕이 물었다.
‘그의 보시가 얼마나 됩니까?’
비구가 대답하였다.
‘억천 금을 보시하였습니다.’
왕은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하였다.
‘저 장자(長者)도 오히려 억천 금을 보시하였는데, 나는 지금 왕이 되어가지고서 어찌 억천 금만을 보시하겠는가? 나는 억백천 금을 보시하리라.’
그리하여 마침내는 개인의 창고까지 다 비우고 이 염부제의 부인ㆍ채녀(婇女)ㆍ태자ㆍ대신들까지 다 페라고 가서 거룩한 스님들께 모조리 보시하였다.
그리고는 뒤에 사십억 금(金)으로써 그들을 다시 사서 취하였으니 이와 같이 계산한디면 총 구십육억천 금이나 되었다.
이윽고 왕은 중한 병을 얻어 자신의 수명이 다한 것을 알고 이렇게 말하였다.
‘항상 억백천 금으로 공덕 짓기를 원했었다.
지금 그 원을 다 채우지 못하고 갑자기 다음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었는데 다만 사억 금이 덜 찼을 뿐이다.’
왕이 이렇게 말하고는 곧 모든 진귀한 보물들을 챙겨 계두마사(雞頭摩寺)로 보내고 나아가 아미륵(阿摩勒) 열매 반 쪽을 스님들에게 주고는 그 스님들의 발에 예배하고 크고 거룩한 대중들께 문안을 올린 뒤에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 염부제를 다스렸지만 내가 소유하고 있던 것은 이제 다하여 자재롭지 못합니다.
오직 이 과일 반 쪽뿐이나, 저를 가없이 여기시어 받아주시고 저로 하여금 복을 열게 해 주십시오.’
상좌(上座) 야사(耶舍)기 그것을 갈아 석류국[石榴羮]에 넣어 모든 스님들에게 고루 돌리게 하였다.
그리고는 왕이 다시 곁에 있던 신하에게 물었다.
‘누가 이 염부제의 왕이냐?’
모든 신하들이 왕에게 아뢰었다.
‘대왕이 곧 이 염부제의 왕이십니다.’
그 때 왕은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사방을 돌아보며 합장하고 예를 올리고 모든 부처님의 공덕을 생각하면서 말하였다.
‘나는 지금 다시 이 염부제를 삼보께 드립니다.’
그 때 왕은 이 말을 종이에 써서 봉함한 뒤에 치인(齒印)을 찍었다.
이와 같은 일을 다 마치고 나서 곧 숨을 거두었다.
그 때 태자와 모든 인민듬은 여러 가지로 공양을 하여 장례를 치르고 왕법(王法)에 의하여 화장[闍維]하였다.”
또 『법익경(法益經)』에서 말하였다.
“지금 이 대지(大地)는 삼보에 속해 있는 것인데, 어떻게 태자를 세워서 왕으로 삼겠는가?’
여러 신하들이 듣고 나서 다시 사억 금을 내어 절에 보내고 그것을 가지고 그 땅을 샀다.”
또 『선견론(善見論)』에서 말하였다.
“아육왕은 금전 구십육 억으로 팔만 사천 개나 되는 보배탑을 세우고 다시 갖가지 큰 보시를 하였다.”
2.3. 흥조연(興造緣)
[自述] 이상에서 인용한 경론에서 탑을 세워야 하는 이유를 이미 다 알았다.
그러나 아직 탑의 의미가 무엇인지 또는 몇 종류나 있는지는 잘 모른다.
또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범부인가 하는 것도 모른다.
[답] 범어(梵語)와 한어(漢語)가 같지 않고 번역의 전후에 따라서 이름도 다양하며 글의 잘잘못도 있다.
이른바 탑(塔)을 혹은 탑파(塔婆)라고도 하는데 이것은 방분(方墳)이라는 뜻이다.
혹은 지제(支提)라고도 하는데 이것을 번역하면 ‘악을 멸해 없애고 선을 내는 곳’이라는 뜻이다.
혹은 두수파(斗藪波)라고도 하나니 이것은 보호하고 찬탄한다는 뜻이다. 어떤 사람이 찬탄하고 옹호한다고 한 말과 같다.
서역 범어(梵語)의 정음(正音)으로는 솔도파(窣堵波)라고 하는데 여기 말로는 묘(廟:사당)라고 한다. 묘라는 것은 모양[貌]이니 이것은 곧 영묘(靈廟)를 말하는 것이다.
탑을 세우는 데에는 세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사람이 훌륭함을 표현하는 것이요,
둘째는 다른 이로 하여금 믿게 하는 것이며,
셋째는 은혜를 갚기 위해서이다.
만일 그가 평범한 비구라 할지라도 덕망이 있으면 탑을 세을 수 있으니 나머지는 합당하지 못하다.
또한 지제를 세우는 곳으로는 네 종류가 있다.
첫째는 그가 태어난 곳이요,
둘째는 도를 증득한 곳이며,
셋째는 법륜(法輪)을 굴린 곳이요,
넷째는 열반(涅槃)한 곳이다.
모든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과 도를 증득하신 이 두 곳에는 결정코 지제가 있다. 태어나신 곳으로 말하면 틀림없이 아수가(阿輸柯)나무 아래에서 태어나셨다.
이 나무를 여기 말로 번역하면 무우수(無憂樹)라고 하며, 이곳이 바로 부인께서 태자를 출생하신 곳이다. 그래서 이 나무 밑을 생지제(生處支提)라고 말한다.
여래께서 도를 증득하신 곳은 보리수 밑이니, 그래서 이 나무 밑을 득도지제(得道支提)라고 말한다.
또 여래께서 법륜을 굴리신 곳과 열반하신 곳, 이 두 곳은 결정된 것이 없다.
다섯 비구를 위해 처음으로 법륜을 굴리실 때는 녹원(鹿苑)에 계셨는데, 가로와 세로가 각각 이십오 심(尋)이다. 일 심은 여덟 자[尺]를 말하는 것인데, 옛날 사람들은 신장이 컸기 때문이다. 일 심이 여덟 자라면 도합 이십 장(丈)에 의하여 세 기둥을 세우고 세 바퀴를 두어 부처님께서 옛날에 법륜을 세 번 굴리신 모습을 나타내었다. 그래서 이 곳을 전법륜지제(轉法輪支提)라고 말한다.
여래께서 열반에 드신 곳에는 사리를 안치하고 곧 이 곳을 열반지제(涅槃支提)라고 말한다. 현재 절을 짓고 그 이름을 열반사(涅槃寺)라고 하였으니, 이것은 정해진 곳에 해당된다.
만약 사리에 의거하여 곳곳마다 탑을 세운다면 그것은 정해진 것이 아니다.
이 네 가지를 모두 솔도파라고 말한다.”
또 『비바사론(毘婆沙論)』에서 말하였다.
“만약 어떤 사람이 여래께서 태어나신 곳과 법륜을 굴리신 곳에 큰 탑을 세우 고, 또 어떤 사람이 작은 돌을 가져다가 탑을 만들었다면 그 복은 앞에서 큰 탑을 만든 것과 동등하니, 모두 존중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여래를 위하여 대범(大梵)이 큰 탑을 세우거나 혹은 작은 탑을 세웠다면, 그 한 일이 같기 때문에 그 복도 다르지 않다.”
또 『아함경(阿含經)』에서 말하였다.
“네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꼭 탑을 세워야 한다.
첫째는 여래요, 둘째는 벽지불(辟支佛)이며, 셋째는 성문(聲聞)이요, 넷째는 전륜성왕[輪王]이다.”
또 『십이인연경(十二因緣經)』에서 말하였다.
“여덟 종류의 사람이 있으니, 이들에게는 탑을 세워줄 수 있다.
첫째는 여래요, 둘째는 보살이며, 셋째는 연각(緣覺)이요, 넷째는 아라한이며, 다섯째는 아나함(阿那含)이요, 여섯째는 사다함(斯陀含)이며, 일곱째는 수다원(須陀洹)이요, 여덟째는 전륜성왕이다. 만약 전륜성왕 이하의 사람들이라면 탑을 세워 노반(露槃) 하나를 안치할 수 있으나 거기에 예배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성인의 탑이 아니기 때문이다.
초과(初果:須陀洹)를 얻은 사람은 노반 이 두 개요, 나아가 여래에 이르면 노반이 여덟 개이니 이상은 모두 불탑(佛塔)이다.”
또 『승기율(僧祇律)』에서 말하였다.
“처음으로 승가람(僧伽藍)을 지을 때에는 먼저 좋은 터를 잡고 장차 탑을 세우려는 곳은 남쪽에 두지도 말고 서쪽에 두어서도 안 되며, 반드시 동쪽이나 북쪽에 두어야 한다.
불지(佛地)나 승지(僧地)를 침범하지 않아야 하며, 승방(僧房)은 서쪽이나 남쪽에 지어야 한다.
부처님의 탑은 높이 드러난 곳에 세우고 탑원(塔院) 안에서는 더러운 것을 빨거나 옷을 널어 말리거나 침을 뱉지 않아야 한다.
부처님의 탑 네 면에는 감실 [龕]을 만들고 거기에다 사자와 새ㆍ짐승 등 갖가지 그림을 그릴 것이며, 그 안에는 번기와 일산을 달아야 한다.
부처님의 탑 네 면에는 갖가지 공원을 만들고 꽃과 과일 나무를 심되, 그 공원에서 피는 꽃은 꼭 탑에만 공양해야 한다.
만약 나무를 단월(檀越)이 스스로 심었으면 단월은 이렇게 말해야 한다.
‘이 안에서 피는 꽃은 부처님께 공양하고 과일은 스님들께서 드십시요.’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마땅히 단월의 말을 따라야 한다. 만약 꽃이 많으면 화만(華鬘)을 만드는 사람에게 주면서 이렇게 말하라.
〈너에게 꽃을 주노니 화만을 만들어 나에게 주되, 남는 것은 적당한 값을 쳐서 나에게 탈라.
만약 돈을 벌었으면 그 돈으로 연등과 향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하고 아울러 탑을 수리하는데 쓰도록 하라.
만약 돈이 많으면 부처님의 다함이 없는 물건[無盡物] 안에 두어라.〉
만약 누가 부처님께서는 탐욕과 성냄과 어리석음이 없다고 하여 그 꽃과 과일을 자신을 장엄하는데 쓰면서 즐기는 사람이 있으면, 그가 얻는 죄의 과보가 무거울 것이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또 지제(支提)를 만들 수도 있다. 사리(舍利)가 있는 것을 탑이라고 말하고 사리가 없는 것을 지제라고 말한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 도를 증득하신 곳, 법륜을 굴리신 곳, 부처님께서 열반[泥洹]하신 곳과 보살의 상(像), 벽지불의 상과 부처님의 발자취가 있는 곳의 모든 지제에는 부처님을 안치하고 꽃과 일산 따위를 공양하라.
공양할 때에는 상등품은 부처님의 탑에 공양하고 조금 품질이 낮은 것은 지제에 공양하라.
만약 갑자기 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에는 마땅히 공양거리를 거두어 가까운 곳에 갖다 두라.
〈내가 바로 상좌(上座)한다. 내가 곧 아련야(阿練若)에서 걸식하는 대덕이다〉라고 말하지 말라. 그렇게 말하면 월비니죄(越毘尼罪)를 얻는다.
만약 탑이나 승려의 물건을 훔쳐가려고 도둑이 와서 아무리 다급한 경우가 되었다 하더라도 부처님의 물품을 감추어 두지 말라.
부처님의 물품으로는 마땅히 불상(佛像)을 장엄해야 한다. 스님이 좌구(座具)를 펴고 갖가지 음식을 차려놓고 그 도둑으로 하여금 그 모습을 보게 하라.
만약 인자한 마음이 생겨 도둑이 그 이유를 묻더라도 비구들은 두려워하지 말고 젊은 사람이 나가서 상대하라.
만약 도둑이 갑자기 들이닥치는 바람에 물건을 감출 수 없으면 꼭 이렇게 말하라.
〈일체의 행은 무상(無常)한 것이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곳을 떠나라.
이것을 난법(難法)이라고 말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