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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륵보살소문경론 제3권
3.2. 행의 마음을 성취함(1)
[문] 수행이라는 뜻은 무엇인가?
[답] 남을 이롭게 하기 위하여 손해되지 않는 깊은 마음을 일으키고, 몸과 입과 뜻의 업으로 자기를 이롭게 하는 행과 남을 이롭게 하는 행을 껴잡는 것이니, 이를 수행이라고 한다.
[보살이 수행을 성취하는 법]
[문] 어떻게 보살이 수행을 성취하는가?
[답] 외도와 성문과 벽지불과는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외도들은 세간의 즐거움을 구하느라고 선한 업의 길을 닦으며, 세간의 즐거운 과보를 탐내고 집착하기 때문에 닦는 것의 모든 행이 세간의 결과를 이루며, 그 세간의 결과를 성취하기 때문에 그는 수행을 성취할 수 없다.
또, 성문과 벽지불 등은 열반의 즐거움을 구하여 선한 업의 길을 닦고 크게 가엾이 여기는 마음을 여의며, 소승 열반(小乘涅槃)의 결과를 성취하기 때문에 그 성문승의 사람은 보살의 결과보다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할 수 없다.
보살은 일체 세간을 넘어서서 모든 세간의 갖가지 과실을 보며, 나아가 전륜성왕의 즐거운 과보 등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비록 또 소승 열반을 증득할 수 있다 하더라도 크게 사랑함과 가엾이 여김의 용맹스런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열반의 즐거움을 버리고 부처님 보리를 구하며 열 가지 선한 업을 수행하고 일체 중생들을 구하기 위하여 크고 훌륭한 서원을 포섭하며,
그 마음은 오직 일체종지로써만이 마지막을 삼는다. 그러므로 보살은 일체 외도ㆍ성문ㆍ벽지불 등이 수행하는 열 가지 선한 업의 결과와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수행을 성취한다고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받아 지니고 더욱 뛰어나게 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의 수행은 성문과 벽지불 등의 열 가지 선한 업의 길보다 뛰어나니, 그러므로 수행을 성취한다고 한다.
[성문의 열 가지 선한 업의 길보다 뛰어나다]
모든 보살마하살에게는 다섯 가지의 법이 있는데, 성문의 열 가지 선한 업의 길보다 뛰어나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마음을 오로지 하여 수행하기 때문이며,
둘째 항상 수행하기 때문이며,
셋째 자기 몸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기 때문이며,
넷째 다른 이의 몸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하기 때문이며,
다섯째 깨끗하게 잘 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오로지하여 수행한다 함은 마침내 한결같은 마음을 여의지 않기 때문이며,
항상 수행한다 함은 끊어지지 않고 휴식하지 않기 때문이며,
자기 몸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한다 함은 자기 몸을 위하여 인간과 천상의 안온과 큰 보리를 취득하기 때문이며,
다른 이의 몸을 편안하고 고요하게 한다 함은 일체 중생에게 안온함을 주기 위하여 마침내 큰 보리에 회향하기 때문이며, 수없는 중생을 구제하여 넘어서게 하기 때문이다.
깨끗하게 잘 한다 함은 깨뜨리지 않기 때문이며, 흠[點]이 나지 않기 때문이며, 더럽히지 않기 때문이며, 소속함이 없기 때문이며, 잘 마치기 때문이며, 헷갈리지[食] 않기 때문이며, 지혜로운 이가 찬탄하기 때문이다.
깨뜨린다 함은 조그마한 부분을 닦고 다스리되 조그마한 부분을 닦고 다스리지 않기 때문에 깨뜨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완전히 닦고 다스리므로 깨뜨리지 않는다고 한다.
흠이 난다 함은 자신은 수행하지 않고 남이 수행하게 하기 때문에 흠이 난다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자신이 수행하면서 남에게 수행하게 하므로 흠이 나지 않는다고 한다.
더럽힌다 함은 스스로가 수행하지 않을 뿐더러 남에게 닦게 하지도 않으나 남의 수행을 보고서 마음에 따라 기뻐하기 때문에 더럽힌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완전히 갖추어 수행하므로 더럽히지 않는다고 한다.
소속한다 함은 반드시 남의 지혜에 의지하여 수행할 수 있기 때문에 소속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남의 지혜에 의지하지 않고서 수행할 수 있으므로 소속함이 없다고 한다.
잘 마친다 함은 생각을 오로지하여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마치며, 생각을 오로지하여 사랑하는 마음을 마치며, 생각을 오로지하여 공경하는 마음을 마치며, 생각을 오로지하여 믿는 마음을 마치며, 생각을 오로지하여 두려워하는 마음을 마치며, 생각을 오로지하여 무상하다는 마음을 마친다. 이런 이치 때문에 잘 마친다고 한다.
헷갈린다[食]함은 취할 것이 있거나 삶에 도움 되는 것이 있기 때문에 회향하는 것을 헷갈린다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있는 것을 취하지 않으므로 헷갈리지 않는다고 한다.
지혜로운 이가 찬탄하지 않는다 함은 성문과 벽지불승 중에서 세간에 회향하고 대승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승에 회향하기 때문에 지혜로운 이에게 찬탄을 받지 못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성문과 벽지불승 중에서 세간에 회향하지 않으며 대승 중에서 성문과 벽지불승에 회향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지혜로운 이가 찬탄한다고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온갖 세간을 넘어서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여 모든 세간을 넘어서나니, 그러므로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하는 줄 알아야 한다.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여 온갖 세간을 넘는다]
보살에게 다섯 가지 법이 있는데,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여 온갖 세간을 넘어설 수 있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서원이며,
둘째 편안하고 고요함이며,
셋째 깊은 마음이며,
넷째 깨끗이 잘 함이며,
다섯째 방편이다.
서원이라 함은 보살마하살로서 무릇 서원하는 것이며, 온갖 범부와 성문ㆍ벽지불로서는 이와 같은 서원은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서원에 의하여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닦으므로, 곧 온갖 세간을 넘어설 수 있다.
마하연(摩訶衍) 수다라 중의 『무구덕녀소설경(無垢德女所說經)』에서의 말씀과 같이 “존자 목련(目連)과 모든 보살마하살은 처음 마음을 내어서부터 도량(道場)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온갖 세간의 하늘과 사람들을 위하여 복밭을 지었느니라”고 하셨으니, 모든 성문과 벽지불보다 뛰어났기 때문이다.
편안하고 고요하다 함은 모든 보살이 비록 온갖 세간의 지극히 깊고 중한 괴로움의 핍박을 받는다 하더라도 돌이켜 전환시킬 수 없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취득하며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위하기 때문에 마음을 오로지 하여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에 의지하여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므로, 곧 온갖 세간을 넘어설 수 있다.
깊은 마음이라 함은 가장 훌륭한 수행이기 때문에 모든 보살은 가장 깊고 사랑하는 마음으로써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깊은 마음에 의지하기 때문에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므로, 곧 온갖 세간을 넘어설 수 있다.
깨끗하다 함은 2지(地)를 제외한 그 이상의 깨끗한 보살이다.
왜 그러한가?
모든 보살마하살 등은 세 가지 깨끗함[三種淸淨]을 지녀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깨끗함에 의지하여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므로, 곧 온갖 세간을 넘어설 수 있다.
방편이라 함은 보살은 어떠한 법 중에서 어떠한 방편으로써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지만 그 밖의 세간 중생들은 이와 같은 방편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방편의 힘에 의지하여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므로, 곧 온갖 세간을 넘어설 수 있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시간 등이 한량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한량없는 세상 동안에 열 가지 선한 업의 길과 한량없는 행 등을 수행하였다. 그러므로 보살은 수행을 성취한다.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또 모든 보살은 다섯 가지 법을 얻기 때문에 한량없는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한량없는 세상이며,
둘째 한량없는 선법이며,
셋째 한량없는 살핌[觀]이며,
넷째 한량없는 다함[盡]이며,
다섯째 한량없는 회향이다.
한량없는 세상이라 함은 모든 보살은 한량없는 세상을 지나면서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한량없는 시간 동안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한량없는 선법이라 함은 모든 보살은 한량없는 선법을 수행하므로 그 선법이야말로 한량이 없다.
그러므로 보살은 한량없는 선한 업의 길을 일으켜 수행한다.
여래의 깨끗한 비니(毗尼) 대승 수다라 중에서의 말씀과 같다.
“가섭아, 마치 넷의 큰 바다 속에 가득한 생소(生酥)는 일체 중생들이 받아쓰게 되는 것처럼, 보살마하살이 닦고 모으는 온갖 함이 있음의 선한 뿌리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은 저 샘이 없는 지혜를 취득하는 것에 회향하기 때문에 능히 일체 중생에게 받아쓸 수 있도록 하여 주느니라.”
한량없는 살핌이라 함은 한량없는 중생들을 위하여 자세히 살피기 때문이다. 모든 보살은 한량있는 중생들을 위하여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는 것이 아니므로,
‘나는 약간의 중생들을 위하여 선한 뿌리를 닦고 모은다. 약간의 중생들을 위하여 선한 뿌리를 닦고 모으지 않는다’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하지 않으며,
모든 보살은 일체 중생을 위하여 선한 뿌리를 닦고 모은다. 그러므로 보살은 선한 업이 한량없다.
그지없다 함은 여래의 깨끗한 비니 수다라 중에서의 말씀과 같다.
“천자들아, 마치 장자에게 재물의 넉넉함이 한량없어서 이는 크게 보시하는 이며,
크게 사랑을 행하는 이며, 크게 가엾이 여김을 행하는 이며,
장사들의 우두머리로서 일체 중생들을 불쌍히 여기기 때문에 수행하는 이로
또는 마음에 물러나지 않는 이로서 이와 같은 마음을 일으킨다.
‘나는 저 일체 중생들에게 한량없고 그지없는 편안하고 고요한 즐거움을 줄 수 있도다.’
천자들아, 보살마하살도 그와 같아서 깊은 마음에 머물러 중생들을 위하고 편안하고 고요한 마음에 머물러 크게 정진하는 마음을 일으키면서,
생각하기를
‘나는 한량없고 그지없는 괴로움 받는 중생들을 교화하여 모두를 다 열반의 즐거움 속에 편안히 두어야겠다’라고 하느니라.”
그러므로 보살의 수행은 그지없다.
한량없는 회향이라 함은 초지(初地) 중에서 일으키는 한량없는 서원과 행의 열 가지 극진한 글귀 등과 같다. 보살은 그 열 가지 극진한 것으로써 한량없이 수행하므로 선한 업의 길 또한 한량없으며, 먼저에 의지하여 회향함이 한량없기 때문에 보살마하살이 수행하는 온갖 업의 길의 결과도 한량없나니, 이를 한량없는 회향이라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진실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마하살은 진실하고 있기 드물게 열 가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수행을 성취한다.
[있기 드문 일을 성취한다]
보살은 다섯 가지 법을 지녀 있기 드문 일을 성취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크게 용맹스런 마음을 일으킴이며,
둘째 힘써 나아감이며,
셋째 견고함이며,
넷째 지혜이며,
다섯째 결과이다.
크게 용맹스런 마음을 일으킨다 함은 마음을 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능히 취득하는 것이다. 가령, 어떤 사람이 두 손가락으로 집거나 혹은 한 손가락 마디로써 삼천대천세계를 들고서 한량없는 겁 동안 머무른다면 이러한 일은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마음을 내어서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능히 취득하는 이런 일은 어려운 것이다. 그러므로 보살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여 있기 드문 일을 성취한다.
힘써 나아간다 함은 보살은 생각하기를
‘중생들이 크게 용맹스런 마음을 내어서 한량없고 그지없이 부지런히 힘써 나아갈 수 있는 이는 조금도 말할 거리가 못되지만, 만약 힘써 나아가 보리를 구할 수 있는 이라면 바로 가장 있기 드문 일이로다’라고 한다.
그러므로 보살이 만약 제일 있기 드문 한량없는 공덕을 구하려 하면 크게 힘써 나아감에 의지하여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여 있기 드문 일을 성취한다.
견고하다 함은 모든 보살이 크게 힘써 나아감의 마음을 내어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지만, 제일 있기 드문 견고한 힘의 가운데에 머무르기 때문에 마지막의 힘써 나아감[精進]에 나아갈 수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여 있기 드문 일을 성취한다.
지혜라 함은 보살은 생각하기를
‘용맹과 힘써 나아감과 견고한 따위의 법은 모두가 반야(般若)의 근본에 의지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반야는 있기 드문 법이다.
왜 그러한가?
반야에 의함으로써 용맹이 있고 힘써 나아가며 견고함을 얻기 때문이다’라고 한다.
그 때문에 보살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반야의 있기 드문 법에 의하여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한다. 그러므로 보살은 반야를 성취한다.
결과라 함은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는 것 등에 의함으로써 결과를 낼 수 있으며 한량없고 그지없는 온갖 부처님 법을 증득한다. 그러므로 있기 드문 법을 성취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방편으로 섭취(攝取)하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은 방편의 힘으로 섭취함에 의하여 선한 업의 길을 수행하기 때문에 성문ㆍ벽지불 등과는 같지 않다.
그러므로 보살은 수행을 성취한다.
[섭취하는 방편이 있다]
보살에게 다섯 가지 법으로 섭취하는 방편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때와 처소의 지혜[時處智]이며,
둘째 전환시켜서 들어오게 하는 지혜[廻轉入智]이며,
셋째 합하는 지혜[合智]이며,
넷째 뜻을 얻는 지혜[得意智]이며,
다섯째 차례의 지혜[次等智]이다.
때와 처소의 지혜라 함은
‘어떠한 때에 이와 같은 법을 말하여야 할까?
어떠한 처소에서 이와 같은 법을 말하여야 할까?
어느 때를 따라서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여야 할까?
어느 처소를 따라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여야 할까?’라고 하며,
그는 온갖 것을 사실대로 알고서 그와 같고 그와 같은 때와 처소에 의한 지혜로써 그와 같고 그와 같이 중생을 교화한다.
이를 때와 처소의 지혜라고 한다.
전환시켜서 들어오게 하는 지혜라 함은, 보살은 모든 중생을 외도의 법 중에서는 그와 같이 전환시켜야 할 것을 사실대로 알고, 부처님 법 중에서는 이와 같이 들어오게 해야 할 것을 사실대로 한다. 이와 같이 전환시켜야 할 것도 사실대로 알고, 편안하고 즐거운 가운데에 둘 것도 사실대로 안다. 이와 같이 부처님의 법 중에 두어서 다시는 전환되지 않는 것과 외도의 법을 따르면, 그곳은 12인연의 관찰이 아니라 함을 사실대로 알고서 이 관찰을 전환시키나니, 이를 전환시켜서 들어오게 하는 지혜라 한다.
합하는 지혜라 함은 여러 중생들을 따라 어떠한 것은 어떠한 문으로써 서로가 합하면 좋으며, 그것은 그 문인 줄 알고 그것은 그 문에 의하며 그것은 그 중생과 합쳐서 믿음대로 힘대로 분수대로 교화하나니, 이를 합하는 지혜라 한다.
뜻을 얻는 지혜라 함은 중생의 뜻을 알고 중생의 믿음을 알고 중생의 구함을 알며, 이와 같이 알고서 보살은 그의 수행에 들어가고 믿음에 들어가고 구함에 들어가고 말에 들어가서 그를 따르기 때문에, 교화할 수 있는 일을 일으키며 이와 같이 전환되지 않도록 일으키나니, 이를 뜻을 얻는 지혜라 한다.
차례의 지혜라 함은 중생의 업을 알리되 차례로 깨닫고 차츰차츰 깨닫게 한다. 이른바 성문승 중에서는 보시와 계율을 지님은 인간과 천상의 과보라 함을 말하고, 모든 욕심의 허물을 말하고, 집에 있으면서 물들게 되는 허물을 말하고, 집을 떠났을 적의 이익을 말하고, 또 괴로움[苦]ㆍ쌓임[集]ㆍ사라짐[滅]ㆍ도(道)를 말하고, 다음에는 수다원(須陀洹)ㆍ사다함(斯多含)ㆍ아나함(阿那含)과 아라한의 과위를 말하고, 다음에는 무너뜨릴 수 없는 해탈을 말하고, 다음에는 걸림없음[無礙]을 말한다.
벽지불승 중에서는 저장하며 쌓는 허물과 흩어서 쓰는 이익을 말하고, 집에 있을 적의 허물과 집을 떠났을 적의 이익을 말하고, 쓸모없는 이론의 허물과 잠자코 있을 적의 이익을 말하고, 마을의 허물과 아란야의 이익을 말하고, 욕심이 많아서 만족할 줄 모르는 허물과 욕심이 적어서 만족할 줄 아는 이익을 말하고, 모든 감관의 문을 보호하며 음식에 있어 헤아릴 줄 알며 초저녁과 새벽에 애쓰면서 수행함을 말하고, 자세히 살피는 가운데서 생각을 하는 허물과 비어서 한가한 데를 좋아함을 말하고, 계율의 중함과 삼매의 중함과 반야의 중함을 말하고 꾸지람을 받지 않고 스스로의 이익을 찬탄하며, 깊은 법은 다른 이로부터 알게 됨이 아니라 함을 찬탄하는, 이와 같은 것 등이다.
대승 중에서는 차례로 보시ㆍ지계ㆍ인욕ㆍ정진ㆍ선정ㆍ지혜를 토론하고, 다음에는 진리[實]ㆍ버림[捨]ㆍ적멸[滅]ㆍ지혜[慧]를 말하는 것이니, 이를 차례의 지혜라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보리심을 내어서 열 가지 글귀의 서원[十同願]과 열 가지 글귀의 다함[十同盡]과 열 가지 글귀의 물러남을 멀리 여의는 법[十句遠離退轉法]으로 물러나지 않음의 법을 수행하여, 견고하게 힘써 나아감을 찬탄하고 견고한 마음을 찬탄하고 편안히 머무는 지혜[安住智]를 찬탄하나니, 이를 보살이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지(地)에 머무르는 법을 찬탄하고, 한결같이 지(地)를 마치는 법을 찬탄하고, 지에서 물들며 물러나는 법을 말하고, 깨끗한 지의 법을 찬탄하고, 지에 나아갈 수 있는 법을 찬탄하고, 지의 중간에 머물면서 얻을 수 있는 법을 찬탄하고, 지의 물러나는 법을 말하고, 지의 결과의 법을 찬탄하고, 지의 습기와 결과의 법을 찬탄하나니, 이를 보살이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모든 지를 말하는 것으로서 이른바 환희지(歡喜地)ㆍ이구지(離垢地)ㆍ명지(明之)ㆍ염지(焰地)ㆍ난승지(難勝地)ㆍ현전지(現前之)ㆍ원행지(遠行地)ㆍ부동지(不動地)ㆍ선혜지(善慧地)ㆍ법운지(法雲地)이니, 이를 보살이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모든 보살은 깊은 마음으로 훌륭하고 미묘한 법을 껴잡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보살은 깊은 마음으로 미묘한 법을 껴잡아서 3보를 끊어지지 않게 하고 중생 교화를 위하여 보리의 행을 행하며 일체종지를 위하여 선한 업의 길을 닦나니, 그러므로 보살은 수행하는 선한 업의 길을 성취한다.
[미묘한 법을 껴잡는다]
보살은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미묘한 법을 껴잡는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모든 부처님의 은혜를 갚으려 함이며,
둘째 자신을 위하여 미묘한 법이 항상 머무르게 함이며,
셋째 모든 부처님을 공양함이며,
넷째 한량없는 중생을 이롭게 하려 함이며,
다섯째 미묘한 법은 얻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법에 다시 다섯 가지 법이 있기 때문에 미묘한 법을 껴잡는다고 한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스스로가 사실대로 수행함이며,
둘째 남을 가르쳐서 사실대로 수행하게 함이며,
셋째 모든 악마의 나쁜 가시를 항복받음이며,
넷째 검은 아파제사(阿波提舍)를 버림이며,
다섯째 큰 아파제사를 껴잡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이를 보살로서 수행을 껴잡는다고 한다.
또 수행을 성취한다 함은 행하는 일은 나무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무슨 뜻을 설명하는 것인가?
모든 보살의 하는 일은 선한 업의 길 등에 머물러 지니면서 수행하므로 모두가 나무랄 수가 없나니, 이를 보살로서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모든 업이 성취되고 나무랄 수가 없다]
다섯 가지 법이 있어서 모든 업이 성취되고 나무랄 수가 없다.
무엇이 다섯 가지인가?
첫째 하게 되는 일이 있으면 이룩할 수 있으며,
둘째 큰 결과를 얻을 수 있으며,
셋째 선법을 어기지 않으며,
넷째 깨끗한 법을 따르며,
다섯째 덕의 칭송이 널리 들리는 것이니,
이를 보살로서 수행을 성취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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