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론 제1권
1.5. 불상응행법은 실유가 이니다
불상응행법도 역시 실유(實有)가 아니다.211)
무슨 까닭인가?
득(得)과 비득(非得)212) 등은 색법과 심왕법 및 모든 심소법처럼 체상을 얻을 수 없다.
색법과 심왕법 및 모든 심소법과 달리 작용이 있을 수 없다.
따라서 반드시 실유가 아니고, 다만 색법 등의 분위(分位)에 의거해서 가립된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반드시 색법ㆍ심왕법ㆍ심소법과 달리 실재의 본체와 작용이 없다. 색법ㆍ심왕법 등과 같이 온(蘊)에 포함된다고213) 인정되기 때문이다.
혹은 심왕법ㆍ심소법ㆍ색법ㆍ무위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절대적인 비존재[畢竟無]와 같이 반드시 실유가 아니다. 혹은 나머지 실법에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나머지 가법(假法)과 같이 실유의 본체가 없다.
[논주 문] 또한 득(得)과 비득(非得)은 색법과 심왕법 등과 달리 실재의 본체와 작용이 있다는 것을 어떻게 아는가?214)[외인 답] 경전에서 말씀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이 보특가라215)는 선과 악을 성취216)하고, 성자는 열 가지 무학의 법217)을 성취한다218)고 말씀한다.
또한 범부는 성인의 법을 성취하지 않고, 모든 아라한219)은 번뇌를 이루지 않는다고 말씀한다. 성취와 성취하지 않는다는 말은 득(得)과 비득(非得)을 나타낸다.
[논파] 경전에서는 이것이 색법과 심왕법 등과 달리 실재의 본체와 작용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는다. 따라서 증명으로 삼는 것이 성립되지 않는다.
또한 (『장아함경』 제18권 등에서) 전륜성왕220)은 일곱 가지 보배를 성취한다고 말씀하는데, 어떻게 곧 타인[他身]과 무생물[非情]을 성취하는가?221)
만약 보배에 대해서 자재의 힘이 있어서 가정적으로 성취한다고 말하면, 선과 악의 법에 대해서는 어째서 그렇다고 인정하지 않으며, 실체의 득(得)이 있다고 집착하는가?
만약 일곱 가지 보배는 현재에 있기 때문에 성취하는 것으로 가설할 수 있다면, 정녕 알라. 성립된 선과 악 등의 법은 현재에서 떠나서 실재가 된다.
현재에서 떠나는 실법이란 바른 논리가 없기 때문이다.현재에 반드시 선(善)의 종자 등이 있기 때문이다.222)
또한 득(得)은 법에 대해서 어떤 뛰어난 작용이 있는가?
만약 능히 일으킨다고 말하면, 223) 무위법도 일으켜야 한다. 모든 무생물은 영원히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224) 아직 이루지 못한 것[未得]과 이미 소멸된 것[已失]은 영원히 생겨나지 않아야 한다.
만약 선천적으로 함께하는 득(得)225)을 원인으로 해서 일어난다고 말하면, 집착된 두 가지 생(生)226)은 곧 쓸데없는 것이 된다.
또한 선ㆍ악ㆍ무기의 득(得)을 갖춘 사람에게는 선ㆍ악ㆍ무기가 단박에 현전해야 한다.
만약 다른 원인을 필요로 한다고 말하면, 득(得)은 곧 쓸데없는 것이 된다.
만약 득(得)이 법에 대해서 잃지 않음의 원인이고, 유정은 이것에 의해서 그것을 성취하기 때문이라고 말하면,227) 모든 성취될 수 있는 법은 유정에서 떠나지 않는다.
만약 유정에서 떠나는 것이라면, 참으로 득(得)일 수가 없다.
따라서 득(得)은 법에 대해서 모두 쓸데없는 것이 된다. 득이 참으로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비득(非得)도 역시 실재하지 않는다.
[법의 세 종휴의 성취]
[정의] 유정이 이룰 수 있는 모든 법228)의 분위(分位)에 의거해서 세 종류의 성취를 가립한다.
첫째는 종자성취이고,
둘째는 자재성취이며,
셋째는 현행성취이다.229)
이것과 반대로 비득의 불성취(不成就)의 명칭을 가립한다.
이것(비득)의 부류가 많기는 하지만, 3계의 견도(見道)에서 단멸되는 미혹의 종자를 영원히 없애지 못한 지위에 있어서, 비득(非得)을 가립하여 범부의 성품[異生性]230)이라고 이름한다. 모든 성인의 법231)을 아직 성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211)
다음에 불상응행법을 논파한다.
먼저 득(得)ㆍ비득(非得)의 실유성을 주장하는 여러 부파를 논파한다.
불상응행법의 갖춘 명칭은 비색비심불상응행법(非色非心不相應行法)이다.
색법도 심법도 아니고 또한 무위법도 아닌 것으로서, 행(行:變遷의 뜻으로서 無常을 나타냄)인 것을 말한다.
소승은 열네 가지를 건립하고 모두 실법(實法)이라고 주장한다.
대승은 스물네 가지를 건립하고, 모두 심법ㆍ심소법ㆍ색법의 분위(分位)에서 가립된 가법(假法)이라고 말한다.
212)
소승에서는 득(得)과 비득(非得)을 실재라고 말한다.
득(得, prāpti)은 사물을 나의 몸에 계속(繫屬)시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면 성자가 성도(聖道)를 증득할 때, 곧 득이 실재이므로 그것이 성도를 그 사람에게 이끌어 붙여서 증득케 한다고 말한다.
비득(非得, aprāpti)은 득의 반대작용을 가진 실재물이다. 예를 들면 성자가 번뇌를 단진(斷盡)할 때, 곧 비득이 실재이므로, 그것이 번뇌를 그의 몸으로부터 이끌어 떨어지게 함으로써 단진할 수 있다고 말한다.
213)
5온 중에 행온(行蘊)에 포함된다.
214)
이하 별도로 다른 주장들을 논파한다.
먼저 설일체유부의 14불상응행법 중에서 여섯 가지를 다루는데, 지금 득과 비득을 논파한다.
215)
보특가라(補特加羅, pudgala)는 구역에서는 인(人) 또는 중생으로, 신역에서는 삭취취(數取趣)로 번역된다. 유정이 누누이[數] 5취(趣)를 취착(取着)해서 윤회하기 때문에 유정 또는 유정의 자아를 가리킨다.
216)
득(得)의 의미에 획득[獲]과 성취의 구분이 있다.
획득은 사물을 나의 몸에 얻는 상태[位]이고, 성취는 이미 얻은 상태이다.
비득(非得)에 대해서도 역시 비획득(非獲得)과 불성취(不成就)가 있다.
217)
열 가지 무학(無學)의 법은 바른 견해[正見], 바른 사유[正思惟], 바른 언어생활[正語], 바른 신체행동[正業], 바른 생계수단[正命], 바른 노력[正精進], 바른 기억[正念], 바른 선정[正定], 바른 해탈[正解脫], 정지(正智)를 말한다.
218)
『아비달마구사론』 제4권(『고려대장경』 27, p.483中:『대정장』 29, p.22上).
219)
아라한(阿羅漢, arhat)은 응공(應供)ㆍ불생(不生) 등으로 번역된다. 소승의 궁극적인 깨달음을 성취한 지위의 명칭으로서, 성문(聲聞)의 구경위이다. 또한 대승에서 부처님을 아라한으로 호칭하는 경우도 있다. 여기서는 전자의 칭호이다.
220)
전륜성왕(轉輪聖王)은 고대 인도에서 생각한 이상적인 왕이다. 그는 몸에 32상을 구족하고 수미사주(須彌四洲)를 통솔한다. 무력(武力)이 아니라 보배바퀴[輪寶]를 굴려서 일체를 위험으로부터 항복받으므로 전륜성왕이라고 한다.
왕위에 즉위할 때 하늘로부터 감득(感得)하는 보배바퀴의 종류에 따라 금륜왕(金輪王:수미 사천하 통솔)ㆍ은륜왕(銀輪王:동ㆍ서ㆍ남 三洲 통솔)ㆍ동륜왕(銅輪王:동ㆍ남 二洲 통솔)ㆍ철륜왕(鐵輪王:남염부제 통솔)으로 구분한다.
221)
전륜성왕의 일곱 가지 보배는 전륜성왕이 출현할 때 세상에 나타난다고 한다.
즉 흰 코끼리[白象寶], 감색 말[紺馬寶], 군사업무를 뛰어나게 맡아보는 신하[主兵寶], 단정하고 아름다운 여인[玉女寶], 재정업무를 뛰어나게 맡아보는 신하[居士寶], 신령스러운 청색 구슬[神珠], 금륜보(金輪寶)이다.
이 가운데에서 앞의 다섯 가지는 타신유정(他身有情)이고, 뒤의 둘은 무생물[非情]이다.
여기서는 득(得)이 타인[他身]과 무생물[非情]은 성취하지 않는다고 말하기 때문에, 이 예를 들어 논파한다.
222)
소승인들이 말하기를, 과거의 법은 이미 가버렸고, 미래의 법은 아직 생겨나지 않았으며, 현재는 오직 법이 현전(現前)하는 한 찰나뿐인데, 어디에 선ㆍ악이 있다는 말인가라고 한다.
여기서 그것을 논파하여, 선악의 법이 현재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이것의 종자는 반드시 제8식 중에 있다고 말한다.
223)
그들은 득(得)의 작용으로서 능기(能起)와 불실(不失)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능기를 논파한다.
224)
그들이 일체의 무생물[非情法]에는 득이 없다고 말하기 때문이다.
225)
세 가지 득 중의 하나이다. 그림자처럼 몸에 따르는 득[如影隨身得]이라고도 한다. 능득(能得)과 소득(所得)이 동시에 오는 것을 말한다.
226)
크고 작은 두 가지 생상(生相)을 가리킨다.
『아비달마구사론』에서 사물의 변화하는 모습을 생(生)ㆍ주(住)ㆍ이(異)ㆍ멸(滅)의 4상(相)으로 하고,
그것을 대상(大相 또는 本相:生ㆍ住ㆍ異ㆍ滅)과 소상(小相 또는 隨相:生生ㆍ住住ㆍ異異ㆍ滅滅)의 둘로 나눈다.
이 대소 2상(相)으로써 만물 변화의 원리로 하여, 만물이 변화하는 것은 대(大)의 4상이 있기 때문이고, 대의 4상이 천류(遷流)하는 것은 소의 4상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의 4상이 천류하는 것은 대의 4상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팔일공능(八一功能)이라 하여, 무릇 법이 생멸할 때는 반드시 9법(본법, 4本相, 4隨相)이 함께 일어나고,
그 중에 4본상이 각각 8법(본법, 자신을 제외한 3본상, 4수상)에 작용을 미치고,
4수상이 각각 일법(4본상 중의 하나)에 작용을 미친다고 한다.
227)
득(得)의 작용 중에서 불실(不失)을 논파한다.
228)
소승에서는 외부의 비정(非情)과 타인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것을 가리킨다. 대승에서는 식이 전변된[識所變] 법이라면, 타인이든 비정이든 모두 득(得)일 수 있는 법이다.
229)
종자성취는 잡염법이 아직 조복되지 않고, 무기(無記)가 아직 해(害)되지 않으며, 생득선(生得善)이 아직 사견(邪見)에 의해 손복(損伏)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자재성취는 가행(加行)으로 생겨난 선(善)과, 생득무기(生得無記)를 제외한 나머지 무기(無記)의 가행력에 의해 훈습된 종자를 가리킨다.
현행성취(現行成就)는 온ㆍ처ㆍ계의 일체법의 선(善)ㆍ불선(不善)ㆍ무기(無記)의 현행을 말한다.
230)
이생(異生)은 범부(凡夫)라는 뜻이다. 이(異)는 성자(聖者)와 다르다는[別異] 의미이고, 생(生)은 부류[類]라는 뜻으로서 범부를 그렇게 부르기도 한다. 범부는 유루의 종자를 복단(伏斷)하여 조금이라도 무루를 발득(發得)하는 등의 일을 하지 않으므로, 그 무루 위에 비득(非得)이 있기 때문에 그것을 범부의 성품[異生性]이라고 부른다.
231)
무루법(無漏法)으로서 아직 발득(發得)시키지 못한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