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식보생론 제2권
2.2. 유식이십론[2-3], 꿈에 정액이 손실되는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
[2] 장소와 시간이 일정한 것은 꿈과 같도다. 신체에서 일정하지 않은 것은, 아귀[鬼]가 다 같이 고름의 강 등을 보는 것과 같다. 꿈에서 손실하여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네. |
“꿈에 정액이 손실되는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고 하였다.
비록 바깥 경계는 없을지라도, 이치로는 또한 성립할 수 있다.
꿈속에서 남녀가 둘이 교접(交接)하여, 각기 자기의 성기[根]를 가지고 서로 번갈아 문지르기 때문에, 비록 바깥 경계의 접촉이 없더라도, 작용이 성립되어 당장 부정한 정액이 흘러내린다. 단지 식의 모양[識相]만이 스스로 합하고 어울려서, 그 동작이 되었을 뿐이다.
이것이 이미 이렇다면 그 외 다른 데에서도 역시 그래야 하리라.
나쁜 독이나, 칼과 무기, 서리ㆍ우박으로 상하는 해로움도, 비록 바깥 경계가 없을지라도, 단지 식만을 의지해서 독이나 칼 등이 있어야 한다.
이 작용의 일이 성립되지 않음은 무슨 이치인가?
이미 바깥 경계가 없다는 공동의 인정이 성립되었으므로, 어찌 종의 잘못이 있을 수 있음을 용납하겠는가?
저것들은 결코 작용이 성립될 수 없다고 한다면 이 역시 그 서로 떠난 경계에 대한 차별의 접촉[觸]으로, 식의 자리[識分上]에서 이 모양의 상태가 나타났으니, 곧 자기의 종(宗)에 결정하지 못하는 잘못이 있으리라. 그러니 오직 식에서만 정액이 흐르는 일이 성립되었을 뿐이다.
또 어떤 이는 설하기를
“기억이 이와 같은 자리[位]라면, 생명이 있는 모든 무리가 어느 때나 있음을 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라고 한다.
그렇지만 이 진술은 성립될 수 있는 근거[因]가 없으니, 결정하지 못하는 잘못이 있으리라.
감각의 정[覺情]이 일에서 작용함도 역시 성립하리니, 정액이 흘러내린 원인은 식에서 굴러 변했기 때문이다.
또 저것들이 결코 작용의 원인이 성립되지 않음은, 마땅히 단지 전체적 양상[摠相]의 식만을 의지할 뿐이라는 것인가? 성립시킬 수 없음이 식의 차별이란 말인가?
이 첫 번째의 견해는, 곧 똑같은 비유가 없다. 여기서 말한 식은 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그 더욱 불어나는 식도 또한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두 번째의 헤아림이라면, 그 식이 할 수 있도록 소유한 작용이 곧바로 성립시킬 수 없는 일의 원인과 함께 결정하지 못하는 잘못이 있으리라.
만일 그렇다면 어디에 이와 같이 결정된 일이 있을 수 있다고, 똑같이 경계가 없다고 하는 것이며,
어떤 때는 인연이 있어서 일의 작용이 될 수도 있기에, 일체가 아니라는 것인가?
공능(功能)이 다르기 때문이다.
저 모든 인연의 공능이 각각 달라지기 때문에, 그 공능을 따라서 작용하게 된다.
또다시 그대와 함께 바깥 경계에 집착하는 스승도 그 이치가 서로 유사하다.
경계를 이미 똑같이 두었으니, 어째서 온갖 일이 모든 때에 성립되지 않으랴?
그러므로 마땅히 인정해야 하리라.
다르고 달라지는 일마다 각각 공능이 있어서, 작용할 때에 그 달라진 모양을 드러내 보인다고 하면, 이것은 곧 유식자(唯識者)의 견해와 똑같으리라.
다른 사람이 또 말하기를,
“이치로는 실제로 여자의 형체와 접촉하지 않아도, 부정한 정액이 나올 수 있다. 깨었을 때도 그러리라”고 하였다.
그러나 지극히 치성한 음욕에 흠뻑 젖은 흥분[極重染愛]이 바로 앞에 닥친다면, 결국 당장 이와 같이 정액이 넘쳐흐르는 상태에 다다르기 때문이다.
꿈에서는 등무간연(等無間緣)20)의 차별된 힘이 있기 때문에, 결국 곧 이치에 맞지 않는 충동적 감정[作意]을 끌어내고, 이것이 원인이 되어 문득 정액이 흘러내림을 보는 것이다.
마치 꿈에는 비록 실제의 경계는 없을지라도, 부정한 액이 흘러내리는 것과 같다.
독을 마셨다거나 지나치게 먹었다거나 여자의 몸 등을 접촉하거나 하면, 몸이 괴롭고 아프며 성기[根]의 힘이 충실하다면, 남자아이나 여자아이가 생기는 등 그 꿈속에서는 일이 마땅히 존재함이 성립한다.
그러므로 반드시 알아야 한다.
꿈속에서 정액의 흐름과 같이, 경계는 없어도 작용이 있으니, 깬 상태에서도 이와 같이 비록 작용하더라도 경계가 없다면, 이치에 맞지 않다.
비록 그 경계가 없을지라도, 식의 작용이 성립한다면 만일 깨었을 때에 비록 경계가 없을지라도, 이 유식(唯識)의 작용이 성립될 수 있다고 인정한다면, 이거야말로 어찌 훌륭하게 ‘오직 식일 뿐, 경계가 없다고 논하는 자’와 부합하지 않으며, 또 어찌 좋아하지 않으랴?
만일 별도로 다음과 같은 취지가 있어서, 여러 가지 접촉[觸] 등이, 다 바깥일을 의지해야만 비로소 작용이 성립된다고 말한다면 단지 오직 식만이 있을 뿐이란 이치는 성립될 수 없으리라.
마치 전단나무를 갈고 짓이겨, 향 연고를 만든 다음 몸을 바르는 데 쓰면, 더위의 답답함을 없애고 서늘하여 시원해짐과 같다.
그렇지만 이 정액의 흐름은 단지 식에서만 생길 뿐이니, 이것은 되레 이치가 정확하게 들어맞지 않는다.
접촉 등의 경계를 의지하여 작용이 있음은, 인정한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외부의 접촉 자가 있음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면, 저에게 이 접촉하는 일을 의지해서 작용을 일으키도록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하여 마땅히 저와 더불어 작용하지 못한다면, 곧 접촉이 있지 않는 잘못을 범하리라.
그러므로 “오직 이 식이 있을 뿐”임을 성립시킨다면, 단지 이 사물이 소유한 작용의 차별은, 모두 식의 경계에서 생길 뿐이기 때문이다.
여기에도 잠시 다음과 같이 “이미 바깥 경계가 없다면, 어떻게 식을 떠나서 작용할 수 있기에, 일을 성립시키겠는가”라는 논란이 일어날 수 있으리라.
이미 이 질문[徵]이 있었고, 곧 바른 비유를 들어 말하였다. 꿈속에서 정액이 손실되는 일이 성립됨과 같기 때문이다.
이것은 오직 식에서만 작용이 있을 뿐이란 점도, 모두 이미 앞에서 매우 자세히 설명한 것과 같다.
만일 그렇다면, 꿈속에서 독(毒) 등을 마셔도, 마땅히 몸의 병이 이뤄지리라.
이 역시 그 유식(唯識)에 작용이 있기 때문이라면 오히려 경계에 결정이 예속되어 있는 것과 같다 하리라.
되레 나중에 할 답을 가지고, 먼저 의심을 막는 데 쓰리라.
어떤 이는 또
“때로는 그 독 등을 보면, 비록 실제의 경계가 없을지라도, 작용하는 경우도 있다.
실제로 뱀에게 물리지 않았으나, 보고 독으로 의심해도, 기절하여 땀을 흘리며, 마음이 혼미해질 수 있다.
가령 실지로 뱀에게 물렸을지라도, 또한 꿈속에서 하늘에 주문(呪文) 외우는 등 더욱 불어난 힘 때문에, 드디어 배불리 먹고, 기력이 충실하여 강해지기도 한다.
또 들어 본 적이 있는가?
자식을 얻으려고, 은밀히 상인(牀人)21)을 섬겼는데, 꿈에 어떤 사람과 함께 사귀어 사이좋게 즐기는 것을 보고 나서, 곧바로 그 자식을 얻었다고 한다.
저 꿈속에서 당한 독 등의 상해(傷害)가 실지로 있지 않음을 어떻게 알 수 있겠는가”라고 하였다.
꿈에서 깨고 나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제 이 논할 대상도 되려 저 종류와 똑같다.
현재의 감각으로 느낄 때는, 오히려 실제의 일로 삼고, 독약 등을 보면. 집착해서 틀림이 없다고 여긴다. 참된 지혜로 깨쳤을 때는, 곧바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저 꿈 가운데서, 자체가 진실이 아닌 것과 똑같다.
그러나 꿈속에서, 실제의 물질[實色]이라고 인정한다면.
저 또한 좋지 못한 일을 당한다. 독 등의 효과적 작용도, 곧 실제로 있음이 성립한다.
만일 없다는 것을 말한다면 단지 독의 모양[毒相]만 있을 뿐이요. 독 등의 작용은 없다.
이것을 독의 상태[毒狀]라고 말하면, 곧 어긋난 해로움이 성립한다. 독의 모양 등을 인정함도 실로 이익이 없다. 그 식(識)에는 약의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반드시 실제로 바깥 경계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단지 감각의 마음에서만, 그 작용이 생길 뿐이다. 꿈에서와 같이, 깨었을 때도 또한 그렇다.
이것은 이에 참으로 도리에 부합함이 성립한다.22)
지금까지는 우선 말한 사실을 따라서 유별난 꿈의 비유와 특별한 귀신 등을 가지고, 저들이 진술한 네 가지 논란을 각각 비유로 설명하여 끝냈다.23)
20)
심(心)ㆍ심소(心所)가 작용할 때, 앞뒤의 생각이 단절되지 않도록 고르게 이끌어 이어주는 연(緣)을 말한다.
21)
분명치 않으나, 나무로 조각한 상신(牀神)인 듯하다.
22)
이상은『이십론』의 “마치 꿈에서 정액이 손실되는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如夢損有用]”에 대한 해석이다.
23)
여기에서 『이십론』의
“장소와 시간의 결정은 꿈과 같다. 몸이 불결정은 귀신이 똑같이 고름의 강 등을 보는 것과 같다. 마치 꿈에서 정액이 손실되는 작용이 있는 것과 같다”에 대한 해석이 다 끝났다.
[處時定如夢 身不定如鬼 同見膿河等 如夢損有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