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태자서응본기경 하권
[설법하지 않고 정의에 들리라]
부처님께서 신족(神足)으로써 석실(石室)에 옮겨 앉아 스스로 생각하셨다.
〈내 본래의 서원은 중생들을 건지려고 함이다.
나고 죽는 근본을 생각해 보니 12인연(因緣)을 따라서 법(法)이 생겨나고, 법이 생겨나기 때문에 문득 나고 죽음이 있게 되었구나.
만약 법이 사라져 없어지면 나고 죽음도 곧 다 없어지리라.
이런 것을 지었기 때문에 스스로 이것을 얻나니, 이것만 짓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쉬어 버릴 것이다.
일체 중생에게는 뜻이 곧 정신이 되나니, 그 정신은 그윽하고 어두우며 황홀하여 형체가 없는데 스스로 인식 작용과 고정 관념을 일으켜 행을 따라 몸을 받나니, 몸은 항상하는 주인이 없고 정신은 항상하는 형상이 없다. 정신인 마음이 변화하여 조급하고 흐려져서 맑히기 어렵다.
저절로 났다가 저절로 사라지며 일찍이 쉬지 않아 한 생각이 가면 다른 한 생각이 오는데, 마치 물 속의 거품과 같나니, 하나가 사라지고 나면 다른 하나가 다시 일어나는구나.
세 가지 세계인 욕계(欲界)와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에 이르기까지 아홉 가지 신(神)이 머무는 곳이다.
인식 작용에 얽매여 괴로움을 면할 수 없으며,
어둡고 깜깜하여 스스로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어리석어 요긴한 도를 알지 못한다고 말한다.
대체로 지극히 묘함을 얻음은 텅 비고 고요하여 생각이 없으므로 평범한 세간의 뜻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이다.
세간의 도술(道術)이 아흔여섯 가지나 되는데 저마다 믿고 섬기는 것이거늘 누가 그 미혹함을 알겠는가.
모두가 사는 것을 좋아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며 맛있는 음식을 탐내고 좋은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처님의 도를 즐거워할 수 없느니라.
부처님의 도는 맑고 깨끗하며 공(空)하여 존재하는 바가 없다.
대개 몸과 온갖 물질을 헤아려 보아도 항상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설사 천하가 다 괴로움이요, 공(空)하여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말한들 누가 믿을 사람이 있겠는가?
나를 애타게 하고 괴롭게 할 뿐이로다. 잠자코 있고 싶구나.
세간을 위하여 설법하지 않고 편안히 정의(定意)에 들리라.〉
[범천의 간청]
부처님께서 눈썹 사이에서 광명을 놓아 위로 일곱 하늘을 비추시자
범천(梵天)이 부처님께서 니원(泥洹)에 들려고 하심을 알고 슬프게 생각하면서
〈삼계가 모두 오래도록 침체하고 말겠구나. 끝내 세상을 건지는 방법을 알 수 없으니 죽으면 꼭 3악도(惡道)에 떨어지고 말 터인데 어느 때에 마땅히 벗어나겠는가.
이 천하에 오랜만에 비로소 부처님께서 계시게 되었다. 부처님은 한 번 만나 뵙기 어려움이 마치 우담화(優曇華)와 같다.
이제 내가 마땅히 하늘과 인간을 위하여 명을 청하고 부처님께 불쌍히 여겨 주시기를 구하여 부처님으로 하여금 바르게 경을 설해 달라고 요구해야겠다〉고 하고는
곧바로 제석에게 말하여 하늘의 악사(樂師) 반차(般遮)를 데리고 내려와 석실(石室)에 이르니, 부처님께서는 마침 정의(定意)에 들어 계셨다.
그래서 반차에게 거문고를 타며 노래를 부르게 하였으니, 그 노래의 가사는 이러했다.
제가 10력(力)을 노래하오니 들어주소서.
번뇌[蓋]를 버리고 고요한 선정에 들어
광명이 통하여 일곱 하늘에 비추시니
덕의 향기 전단보다 뛰어납니다.
상제(上帝)와 신묘(神妙)가 내려와서는
찬탄하고 우러러 높은 분 뵈려 하고
범왕과 제석이 공경하는 뜻 가지고서
머리 조아리며 받아 듣고 싶어합니다.
부처님께선 본래의 행원(行願)으로
백 겁 동안 애써서 정진하셨고
네 가지 평등심[四等] 크게 펴고 베풀어
시방에서 큰 은혜 받았습니다.
깨끗이 계율 지켜 더러움이 없으시고
인자하고 부드럽게 중생들을 보호하며
용맹스런 결단으로 선정과 지혜에 들어
큰 자비로 교화하는 경법(經法)을 펴셨습니다.
고행(苦行)을 수없이 쌓으시다가
지금에야 공훈(功勳)이 이루어졌으며
지계ㆍ인욕ㆍ선정ㆍ지혜의 힘으로
땅을 움직여 이미 마군[魔]을 사로잡았습니다.
덕은 하늘과 땅을 널리 덮었고
신령한 지혜 영성(靈聖)보다 뛰어납니다.
상호(相好)는 특별하여 비할 데 없고
여덟 가지 소리는 시방에 떨칩니다.
뜻은 수미산(須彌山)보다 더 높고
맑고 미묘하여 논할 수 없습니다.
음욕과 성냄과 어리석음 아주 여의었고
다시는 늙고 죽는 근심이 없어졌습니다.
오직 가엾이 여겨 선정에서 깨어나시어
여러 하늘과 사람들을 불쌍하게 여기시사
법보(法寶)의 창고 문을 여시고
지혜로 감로(甘露)의 보배 펼쳐 주소서.
근심과 두려움에서 풀려나게 해 주시고
위엄과 재앙에서 편안함을 얻게 하소서.
미혹한 이들에게 바른 도 보이시고
삿되고 의심하는 이에게는 참된 말씀 보이소서.
일체가 다 버리고 좋아하면서
듣고 받으려고 싫어함이 없사옵니다.
마땅히 죽음 없는 법을 여시고
끝없는 교화를 펴시옵소서.
부처님께서 마음속으로 다 아시고서 선정으로부터 깨어나시자 범천(梵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오래전 아주 먼 과거에서부터 오늘에 이른 지금에야 다시 부처님을 뵙게 되어 여러 하늘들이 기뻐 뛰면서 부처님의 법을 듣고 싶어하오니 마땅히 세간을 위하여 경(經)을 설해 주십시오.
바라옵건대 부디 반니원(般泥洹:般涅槃)에 들지 마십시오. 저희 중생들이 어리석고 어두워 지혜의 눈[慧眼]이 없사오니 오직 자비를 더하시어 저희들을 인도하사 저희들로 하여금 해탈할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여러 하늘과 사람들 중엔 어질고 착한 사람이 많아 도를 좋아하고 쉽게 이해하며, 또한 정진(精進)하는 사람도 있어 계율과 법을 받기에 충분합니다. 지옥 따위의 3악도(惡道)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바라는 것은 법의 창고[法藏]를 열어 감로(甘露)를 나타내 주시는 것입니다. 받아 가질 사람이 틀림없이 많을 것입니다.
천하에 부처님이 없었을 때에 제가 다른 도인(道人)을 보았는데 그들은 모두 3독(毒:貪ㆍ瞋ㆍ癡)을 갖추고 있었으며 제멋대로 경전을 만들었는데도 사람들은 지극히도 성실하지 못한 그 법을 숭상하고 배웠는데, 더구나 부처님의 깨끗하고 음욕ㆍ성냄ㆍ어리석음이 없는 법이겠습니까?
바라오니 부처님이시여, 부디 법을 설해 주시어 중생들로 하여금 지극하고 성실한 법을 들을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12연기법과 설법하지 않으려는 까닭]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구나. 범천이여, 편안함을 널리 펴서 모든 세간을 구제하며 그들로 하여금 해탈케 하는 것을 즐거워하는구나.
내가 생각하건대 세간은 탐애(貪愛)와 기욕(嗜慾:즐기고 좋아하는 마음)으로 나고 죽는 괴로움에 떨어지는데도 스스로 깨달아 아는 사람이 적다.
본래 12인연으로부터 어리석음[癡:無明]이 일어나고,
어리석음을 연(緣)하여 작용[行]이 일어나며,
작용을 연하여 인식 작용이 일어나고,
인식 작용을 연하여 이름과 형상[名像:名色]이 일어나며,
이름과 형상을 연하여 6입(入)이 일어나고,
6입을 연하여 갱락(更樂:접촉)이 일어나며,
갱락을 연하여 아픔[痛:느낌]이 일어나고,
아픔을 연하여 사랑[愛]이 일어나며,
사랑을 연하여 느낌[受]이 일어나고,
느낌을 연하여 존재[有]가 일어나며,
존재함을 연하여 생겨남이 있고,
생겨남을 연하여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민[苦悶]ㆍ심뇌(心惱)가 일어난다.
그 존재함을 크게 걱정하여 정신이 애욕을 좇아 변천하며 나고 죽음을 받나니,
도를 증득하고자 하는 사람은 마땅히 탐욕과 애욕을 끊고 정욕(情欲)을 덜어 없애며, 작용함도 없고 일어남도 없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어리석음이 소멸되고,
어리석음이 소멸하면 작용이 사라지며,
작용이 사라지면 인식 작용이 사라지고,
인식 작용이 사라지면 이름과 형상이 사라지며,
이름과 형상이 사라지면 6입이 사라지고,
6입이 사라지면 갱락(更樂)이 사라지며,
갱락이 사라지면 아픔이 사라지고,
아픔이 사라지면 사랑이 사라지며,
사랑이 사라지면 느낌이 사라지고,
느낌이 사라지면 존재함이 사라지며,
존재함이 사라지면 생겨남이 사라지며,
생겨남이 사라지면 늙음ㆍ죽음ㆍ근심ㆍ슬픔ㆍ고민ㆍ심뇌의 커다란 걱정거리가 다 없어지리니,
이것을 바로 도를 증득했다고 말하는 것이니라.
오직 부처님만이 이 미묘하여 밝히기 어려운 이치를 깨달으셨느니라.
대체로 이 깨끗하여 어리석은 생각이 없는 것은 세간 평범한 사람의 뜻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니라.
천하의 도술(道術)이 아흔여섯 가지나 되는데 제각기 섬기는 것이 있다.
혹은 하늘과 땅, 해와 달, 5성(星)을 섬기기도 하고, 더러는 물과 불, 귀신과 용신(龍神)을 섬기기도 하면서 모두 삶을 즐거워하고 편안함을 추구하며, 탐욕스럽고 맛있는 음식을 즐기며, 소리와 빛깔을 좋아하기 때문에 부처님 도를 즐거워하지 않고 불경을 듣지 않아서 긴요한 법을 알지 못하느니라.
평범한 사람은 생각이 달라서 몸과 온갖 물질을 헤아리되 항상 존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니, 이들을 위하여
〈눈앞에 보이는 온갖 물질은 덧없는 것이요, 몸이 있으면 다 괴로운 것이며, 몸은 곧 몸이 아니라 공(空)하여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말해 주면,
저들은
〈친척이나 집안 사람들은 모두 남의 소유가 아니다〉고 말할 터이니,
바른 말을 반대와 같이 여겨서 그 누가 믿으려 하겠느냐?
내가 마른 풀과 같이 되어 니원을 취하는 것만 못하기 때문에 말하지 않으려고 할 뿐이니라.’
[법천의 간청]
범천(梵天)이 다시 말하였다.
‘수없이 많은 겁을 지내오는 동안 사람들이 이 세간에 있으면서 나고 죽고 했건만 오직 부처님의 경법만은 듣기 어려웠습니다.
이 세간을 건져 주실 수 있으신 부처님으로부터 이제 원하던 바를 얻었으니 인간 세상에서는 있기 어려운 일입니다.
지극히 존귀하여 비교할 데 없는 부처님이시기에 저희들은 머리 조아려 예를 올립니다.
세간 사람들이 집착에 얽매여 오래도록 깜깜한 속에 있었는데 이제 10력(力) 지니신 분께서 출현하시니 신비한 지혜 한량없사옵니다.
마땅히 법의 창고 여시어 지혜로운 광명 베푸시어 여러 하늘과 사람들을 비추어 그들로 하여금 깨달아 알게 하여 주소서.
부처님만이 능히 일체를 제도할 수 있으시니, 그런 까닭에 스스로 귀의하기 원하옵니다.
본래 발의(發意)한 때로부터 맹서하기를 괴로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수고롭고 겸손하여 덕을 쌓으시어 행원(行願)을 이미 이루셨으니, 무명과 늙고 죽음에 오래도록 쇠미해진 이들을 가엾게 여기시어 마땅히 법약(法藥)을 베풀어 여러 병통(病痛)을 구제하소서.
자애롭기가 부처님보다 뛰어난 이 없으니, 그런 까닭에 머리 조아려 간청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