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설대반니원경 제5권
11. 사제품(四諦品)
그때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야, 만약 괴로운 것을 괴로움의 참 이치[苦聖諦]라 이름한다면 지옥과 축생에도 모두 괴로움의 참 이치가 있을 것이다. 괴
로움의 참 이치라 이름하는 것은 여래가 항상 머무는 법신이며, 잡된 것을 먹는 몸이 아님을 아는 것을 말하느니라.
중생이 여래의 높은 지혜를 알지 못하고, 괴로움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법 아닌 것을 법이라 하며, 오래도록 어리석음과 애착의 번뇌에 묶여 겁을 지나도록 나고 죽는 고통의 바퀴에서 항상 맴도느니라.
설령 여래가 항상 머문다[常住]는 두 글자를 잠깐이라도 귀에 스친 자는, 천상에 태어나기를 구하고 해탈을 구하매 반드시 성과(聖果)를 얻어 저절로 쾌락하리라.
지혜로운 자는 모두 여래가 항상 머문다는 말을 잠깐 귀에 스침을 말미암아 이 묘과(妙果)를 얻는 줄 스스로 아느니라.
오랜 옛적부터 여래가 항상 머문다는 법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한량없는 생사의 고통과 의혹에 가고 왔으니, 이와 같이 괴로움을 아는 것이 괴로움의 참 이치를 아는 것이니라.
만약 이와 다르면 괴로움의 참 이치를 아는 것이 아니니라.
괴로움과 쌓임의 이치는 모든 법의 실상이니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애욕의 모음이 불어나며, 노비나 법에 맞지 않는 물건을 쌓거나 길러 법 아닌 것을 법이라 하며 망령되이 취함이 생기고 바른 법이 곧 멸하느니라.
지혜가 없기 때문에 영원히 생사의 바퀴가 돌아가는 고통과 의혹에 처하느니라.
마땅히 알아야 하나니 이런 것들이 바른 법을 무너뜨리고, 종내 과(果)와 천상에 태어나거나 해탈을 얻지 못하게 하느니라.
괴로움의 모음의 진실한 모습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바른 법을 무너뜨리느니라.
거짓으로 말한 죄보로 또한 다시 긴 밤을 생사에서 고뇌하느니라.
이와 같이 아는 자는 모음의 이치를 아느니라. 만약 이와 다른 자는 모음을 안다 이름하지 못하느니라.
괴로움을 없애는 이치라는 것은 만약 공(空)을 닦아 행하면 모두 멸하여 여래 성품마저 무너뜨린다.
만약 공을 닦아 행함을 없애는 이치라 이름한다면 저 모든 외도들의 서로 어기는 뜻도 또한 공을 닦아 행하여 없애는 이치를 얻는 것인가?
마땅히 일체가 모두 여래의 항상 머무는 성품이 있는 줄 알아야 한다.
모든 결박(結縛)을 없애 번뇌가 영원히 다하면 여래의 항상 머무는 성품이 나타난다.
한마음을 일으켜 문득 묘과(妙果)를 얻어 항상 즐겁고 자재한 것을 법자재왕이라 이름하니,
이것이 괴로움을 없애는 참이치를 닦아 행하는 것이니라.
만약 다시 여래의 성품을 닦아 행하여 공하여 내가 없다는 생각을 하면, 마땅히 이러한 무리는 나방이 몸을 불에 던짐과 같은 것을 없애는 이치라 이름함을 알아야 하리라.
여래의 성품은 여래의 실상이다. 일체 한량없는 번뇌를 없애 제거하나니 왜냐하면 이것이 여래성품의 인(因)이기 때문이니라.
이와 같이 아는 자는 여래의 평등하게 없애는 이치를 알며, 이와 다른 것은 없앰을 안다 할 수 없느니라.
괴로움을 없애는 도라는 것은 여래와 법과 승(僧)과 해탈의 성품이니, 이 네 가지 법을 도의 이치라 이름하느니라.
네 가지 법의 실상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히 생사의 한량없는 고통과 의혹에 처하나니,
생사 가운데서 능히 부지런히 수행하여 여래와 법과 승과 해탈이 항상 머무는 법이며 변하여 바뀌지 않는 법이며, 마멸하지 않는 법이며, 다하지 아니하고 무너뜨려지지 아니한 줄 훤히 아느니라.
한마음을 일으켜 미묘한 과를 얻으면 쾌락하고 자재하리니, 항상 머물러 공하지 않는 네 법에 법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는 이런 무리는 삿된 견해의 과보를 얻게 되느니라.
괴로움을 없애는 도라는 것은 이 세 가지 법에 항상 머물러 닦는 것이니, 이것의 이름이 괴로움을 없애는 도의 이치를 아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항상 머문다는 생각을 닦아 행하는 자는 마땅히 나의 제자로 네 가지 참된 이치를 알며 이들은 보살로 네 가지 참된 이치를 아느니라.”
가섭보살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이제 비로소 네 가지 참된 이치를 닦을 줄 알겠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