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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사유범천소문경 제4권
[보리심]
이때 평등행범천바라문대바라의 아들이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말했다.
“문수사리여, 이 모든 보살이 보리심을 낸다면 어느 곳으로 나아갑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허공으로 나아갑니다. 왜냐하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허공과 같기 때문입니다.”
평등행이 말했다.
“문수사리여, 어째서 보살을 이름하여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냈다고 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만약 보살이 일체의 발심(發心)이 발심이 아니요, 일체의 법이 법이 아니며, 일체의 중생이 중생 아님을 안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보살이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냈다고 합니다.”
[보살의 뜻]
이때 평등행범천바라문대바라의 아들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보살을 말씀하셨는데 보살이란 무엇을 말함이며 무슨 뜻 때문에 이름을 보살이라 합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만약 보살이 삿된 선정에 들어간 중생에게 대비심(大悲心)을 일으키되 바른 선정에 들어간 중생과 다르게 보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이름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여, 보살은 바른 선정의 중생을 위함도 아니며 선정에 들지 않은 중생을 위함도 아니기 때문에 발심한다.
단지 삿된 선정의 중생을 제도하여 해탈시키기 위해서 대비(大悲)를 일으키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왜냐하면 선남자여, 보살은 삿된 선정의 중생에게 대비심을 일으키고 대보리(大菩提)를 원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이때 보리보살(菩提菩薩)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무슨 뜻으로 보살이라 하는지 저희들이 즐거이 설명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어서 말해 보아라.”
보리보살이 아뢰었다.
“비유하자면, 선남자와 선여인이 하루 동안 8계(戒)를 받아서 무너뜨림이 없고 빠뜨림이 없듯이,
보살이 이처럼 처음 발심하여 이에 성불(成佛)에 이르기까지 그 중간에 항상 깨끗한 행(行)을 닦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세존이시여, 보살이 처음 발심하고 이에 도량(道場)에 이르기까지 마음이 동요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견의(堅意)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이 깊고 견고한 자심(慈心)을 성취하여 항상 중생을 생각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도중생(度衆生)보살이 아뢰었다.
“비유컨대 다리나 배[船]가 사람을 건네주되 게으르지 않고 분별함이 없듯이 보살이 이러한 마음으로 일체의 중생을 제도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악도(惡道)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이 모든 불국토에서 땅에 발을 들여 놓는 곳마다 즉시에 일체의 악도가 다 사라지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관자재(觀自在)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이 중생을 보게 되면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됨을 얻게 하고 또 그의 이름만 불러도 놀라움과 공포에서 벗어남을 얻게 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득대세지(得大勢至)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이 땅에 발을 들여 놓는 곳에는 삼천대천세계와 마귀의 궁전이 진동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무피권(無疲惓)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겁수(劫數)를 항하(恒河)의 모래 등을 하루로 삼고, 이와 같은 30일을 1개월로 삼으며, 이러한 12개월을 1년으로 삼되 이 1년의 수가 백천만억 겁을 지나야 한 부처님을 만나게 되고,
이와 같은 항하의 모래와 같이 많은 모든 여래의 처소에서 모든 범행(梵行)을 행하고 공덕을 닦아 모은 뒤에야 아뇩다라삼먁보리의 수기(授記)를 받게 되고, 마음에 휴식(休息)이 없고 피로와 권태가 없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도사(導師)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이 삿된 도[邪道]에 떨어진 모든 중생에게 대비심을 내어 정도(正道)에 들어가게 하되 은혜 갚기를 바라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대미루산(大彌樓山)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법에 분별함이 없어서 마치 미루산(彌樓山)이 모든 색(色)에 한결같음과 같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나라연(那羅延)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번뇌를 파괴하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심력(心力)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마음으로 일체의 법을 사유(思惟)하되 자신의 몸과 마음을 파괴하지 않고 손상하지도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사자유보자재(師子遊步自在)보살이 말했다.
“보살은 모든 담론(談論) 가운데서 공포도 없고 두려움도 없는 심법인(心法忍)을 얻어 능히 모든 마군(魔軍)과 일체의 외도를 놀래고 떨게 할 수 있으므로 보살이라 합니다.”
불가사의(不可思議)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마음과 법이 불가사의하다는 것을 알고 사유함도 없고 분별함도 없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선적(善寂) 천자가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하늘 궁전[天宮] 안에 태어나서 물드는 것이 없고 또한 물듦이 없는 법도 얻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실어(實語)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말하는 것이 항상 진실하며 내지 꿈속에서도 망어(妄語)가 없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희견(喜見)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색(色)을 모두 불색(佛色)으로 볼 수 있으므로 보살이라 합니다.”
상비(常悲)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생사의 고뇌에 빠진 중생을 보면 자신의 모든 즐거움에 집착하지 않고 오직 법락(法樂)을 다스려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심무애(心無礙)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번뇌와 온갖 마군에도 화를 내거나 장애를 받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상희근(常喜根)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항상 희근(喜根)으로써 스스로의 원(願)을 만족시키고 또한 타인의 원도 만족시켜서 짓는 바를 다 갖추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산의녀(散疑女)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법 가운데서 의심하거나 후회를 내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사자동자(師子童子)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역시 남자의 법도 없고 여자의 법도 없어서 갖가지 색신(色身)을 나타내어 모든 중생을 성취시키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보녀(寶女)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모든 법 가운데서 애욕의 즐거움을 일으키지 않고 단지 삼보(三寶)를 즐거워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비사거달다우바이(毘舍佉達多優婆夷)가 아뢰었다.
“보살이 얻는 바가 있다면 보리(菩提)는 없습니다. 일체의 법을 얻지 않고 일체의 법을 내지도 않고 일체의 법을 멸하지도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발타바라대현사(跋陀婆羅大賢士)가 아뢰었다.
“보살은 중생이 그의 이름만 들어도 반드시 아뇩다라삼먁삼보리에 머물게 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보월동자(寶月童子)가 아뢰었다.
“보살은 항상 동자범행(童子梵行)을 수행하고 내지 마음에 5욕(欲)을 생각하지 않는데 하물며 몸에 받아들이겠습니까? 그러므로 보살이라 합니다.”
도리천자만다라화향(忉利天子曼陀羅華香)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계(戒)를 지니고 마음을 잘 사루어서 항상 공덕과 모든 선법(善法)의 향기를 흘리고 다른 향기를 흘리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작희(作喜)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세 가지 법을 기뻐하고 즐거워합니다. 말하자면 부처님께 공양하고 정법을 수호하며, 중생을 교화하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승사유범천이 아뢰었다.
“보살은 일체의 법을 모두 불법(佛法)으로 보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미륵(彌勒)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중생을 보게 되면 즉시 대자삼매(大慈三昧)에 들어감을 얻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문수사리 법왕자가 아뢰었다.
“보살은 비록 모든 법을 말하지만 법이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나[我]라는 생각을 일으키지 않고, 남이라는 생각도 일으키지 않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망명동자(網明童子)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의 광명은 능히 일체 중생의 모든 번뇌의 어둠을 소멸시키므로 보살이라 합니다.”
보화(普華)보살이 아뢰었다.
“보살은 시방세계에 가득찬 불세계(佛世界)를 온갖 꽃이 활짝 핀 것처럼 보기 때문에 보살이라 합니다.”
이와 같이 모든 보살은 즐거워하는 말과 변재(辯才)에 따라 각각 말을 마쳤다.
이때 부처님께서 평등행범천바라문대바라의 아들에게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보살은 능히 일체의 중생을 대신하여 모든 고뇌를 받고 또한 다시 일체의 복된 일과 모든 중생을 버리기 때문에 보살이라 한다.”
[어떤 행으로 행을 삼고 있는가]
이때 승사유범천이 평등행범천바라문대바라의 아들에게 물었다.
“선남자여, 인자(仁者)께서는 지금 어떤 행으로 행을 삼고 있습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무엇이든 일체의 유위법과 모든 중생의 행을 행하며 나도 그와 같이 행하고 있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일체의 유위법과 모든 중생은 무엇으로 행을 삼는 것입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모든 부처님께서 행하신 것도 일체의 유위법과 중생의 행입니다.”
범천이 물었다.
“모든 부처님께서는 무엇으로 행을 삼으셨습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모든 부처님께서는 제일의공(第一義空)으로써 행을 삼으셨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선남자여, 만약 일체 범부가 행하는 것을 모든 부처님 역시 그렇게 행하신다면 부처와 중생이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평등행범천바라문대바라의 아들이 말했다.
“범천이여, 인자(仁者)께서는 허공으로 하여금 차별이 있도록 하겠습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문수사리가 승사유대범천에게 물었다.
“여래께서는 일체의 법이 비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까?”
대답했다.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문수사리가 말했다.
“그러므로 범천이여, 일체의 법은 차별이 없으며 이 모든 행상(行相) 역시 차별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여래께서는 모든 법에 갖가지 상(相)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평등행범천바라문대바라의 아들이 문수사리 법왕자에게 물었다.
“문수사리여, 모든 언어로 말한 바와 같은 행은 어째서 행이라 이름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어떠한 곳에서든 네 가지 정행(正行)이 있으면 이 사람을 일컬어 범행(梵行)을 행한다 합니다.
선남자여, 어떠한 사람이 네 가지 범행을 행한다고 해서 그 사람이 행하는 것이 곧 범행은 아닙니까?
어떠한 행이 네 가지 범행을 행해야만 그 사람을 이름하여 범행을 성취했다고 합니까?
선남자여, 비록 텅 비고 한가한 곳[空閑處]이나 광야(曠野) 가운데서 행한다 해도 범행을 여의면 그 사람은 범행을 성취했다고 말하지 않는데, 이는 범행에 있어서 선교(善巧)의 지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다시 비록 누(樓)ㆍ전(殿)ㆍ당(堂)ㆍ각(閣)이나 금(金)ㆍ은(銀)의 침대[床榻]나 매우 좋은 이불이나 담요가 있어서 이 가운데서 행하여 범행을 성취한다면 그 사람은 진실로 범행을 성취한 것입니다. 진실로 범행에 있어서 선교한 지혜가 있기 때문입니다.”
말했다.
“만약 아견(我見)을 본다면 지견(智見)이 아닙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선남자여, 아견을 본다면 그것은 지견이 아닙니다.
선남자여, 마치 사람이 여실(如實)하게 금의 성질을 잘 안다면 유연(柔軟)하고 유연하지 않은 것을 알듯이, 그와 같이 능히 청정한 지혜로 나를 보아야 합니다.”
말했다.
“무엇을 나를 본다고 말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말하자면 나[我]가 없는 법체(法體)만이 영원합니다.
선남자여, 나라는 것은 항상 체(體)가 없어 본래부터 이루어짐이 없습니다. 필경에는 이와 같이 결정된 것을 이름하여 나라고 말합니다.”
말했다.
“나는 문수사리께서 말씀한 법의 뜻을 이해할 것 같습니다. 만약 나를 본다는 것은 곧 부처님을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체나 부처님의 체나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문수사리여, 어떤 사람이 여래를 볼 수 있습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아견의 상[我見相]을 고치지 않는 자입니다. 왜냐하면 나를 보는 것이나 법을 보는 것이나 부처님을 보는 것은 평등하기 때문입니다.”
말했다.
“행함이 없는 것을 이름하여 정행(正行)이라 할 수 있습니까?”
대답했다.
“있습니다. 선남자여, 만약 일체의 유위법(有爲法)을 행하지 않으면 이것을 정행이라 합니다.”
말했다.
“어떻게 행하는 것을 정행이라 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만약 알려고 하지 않고 행하며, 끊으려고 하지 않고 행하며, 증득하려 하지 않고 행하며, 닦으려고 하지 않고 행한다면 이것을 정행(正行)이라 합니다.”
말했다.
“어떤 사람이 부처를 보지 못하는 것은 그 사람의 혜안(慧眼)이 청정해서입니까?”
대답했다.
“그렇습니다. 선남자여, 모든 불여래(佛如來)는 두 가지 상(相)을 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은 혜안의 청정함이 있다 하겠습니다.”
말했다.
“혜안으로는 어떠한 법을 봅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만약 한 법이라도 보게 되면 혜안이라 하지 않습니다.
선남자여, 혜안은 유위(有爲)의 모든 법을 보지 않으며, 또한 무위법도 보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저 반야(般若)는 분별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뜻 때문에 반야는 유위의 모든 법을 보지 않고 혜안은 저 무위법에도 역시 초월해 있습니다.”
[도를 얻는다는 것]
말했다.
“정행(正行)이 있는 비구는 도의 과보[道果]를 얻지 못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정행 안에는 과(果)도 없고 득(得)도 없고 또한 정행도 없습니다. 그곳에는 또한 한 법도 수행(修行)할 것이 없습니다.
선남자여, 또한 그곳에서 과를 얻을 수가 없음은 분별이 없기 때문입니다. 선남자여, 만약 한 법도 얻음이 없었다면 이름하여 얻었다고 합니다.
선남자여, 만약 분별하여 ‘나는 얻은 것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 사람은 아만(我慢)입니다.
정행 안에는 증상만(增上慢)이 없으며, 증상만이 없기에 증득함도 없고 얻음도 없는 것입니다.”
말했다.
“어떠한 법을 얻어야 득도(得道)했다고 말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어떠한 법이든 생겨남이 없습니다. 본래에도 생겨남이 없고 뒤에도 생겨남이 없습니다. 그런 법을 얻었기 때문에 참다운 법이라고 말합니다.”
말했다.
“만약 법이 생겨나는 것이 없다면 무슨 법을 증득한다는 것입니까?”
대답했다.
“만약 생겨남이 없음을 안다면 그것을 안다고 말하며 법을 증득했다고 합니다.
[바른 선정을 증득했다는 것]
유위법(有爲法)은 일체 생겨남이 없음을 보았다면 이것을 이름하여 바른 선정[正定]을 증득했다고 합니다.”
말했다.
“무엇을 이름하여 바른 선정을 증득했다고 합니까?”
대답했다.
“선남자여, 나와 열반은 평등하여 두 가지가 없으며 차별이 없기 때문에 바른 선정을 증득했다고 하며,
바른 선정을 따르기 때문에 정정을 증득했다고 하며, 필경에는 평등법을 얻기 때문에 바른 선정이라 합니다.
또 요의(了義)를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바른 선정이라 하며, 모든 삼매(三昧)를 희론(戱論)하지 않기 때문에 바른 선정이라 말합니다.”
이때 세존께서 문수사리 법왕자를 칭찬하며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문수사리여, 이 말은 통쾌하구나. 진실로 너의 말과 같다.
문수사리여, 그와 같이 네가 이 법을 말할 때 7천의 비구는 모든 법을 받지 않고 번뇌가 다하여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3만 2천의 모든 하늘[天]은 티끌을 멀리하고 더러움도 여의어서 모든 법 가운데서 법안정(法眼定)을 얻었으며, 십천(十千) 인은 탐욕을 떠나 정(定)을 얻었으며, 2백 인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며, 5백의 보살이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얻었다.”
[중생]
이때 승사유범천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이 문수사리 법왕자는 능히 불사(佛事)를 짓고 크게 중생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하여 한없는 중생으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선남자여, 그대 역시 무량한 중생을 풍요롭고 이익되게 하여 열반에 들게 하였다.”
문수사리가 물었다.
“범천이여, 당신은 중생이 한량이 있다고 말하십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물었다.
“범천이여, 중생과 여래의 말이 있고 또 중생이 있고 중생의 체(體)가 있다는 것입니까?”
대답했다.
“없습니다.”
물었다.
“범천이여, 당신의 뜻에는 어떠하십니까? 당신은 여래가 태어남이 있고 멸함이 있다고 말하십니까?”
대답했다.
“아닙니다.”
[열반]
물었다.
“범천이여,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중생과 여래로 하여금 열반에 들게 하겠습니까?”
범천이 물었다.
“어떠한 법성(法性)이라도 문수사리 법왕자께서는 ‘이와 같이 세간도 없고 열반도 없다’라고 설법하십니까?”
문수사리가 말했다.
“범천이여, 그렇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래는 세간도 보지 않고 열반도 보지 않습니다.
범천이여, 여래께서 교화하신 성문(聲聞)제자는 그 사람 역시 세간을 보지 않고 열반을 보지 않습니다. 열반이라는 말은 오직 말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세간을 행하는 것이 없고 또한 사람이 열반을 행하는 것도 없습니다.”
범천이 물었다.
“여러 가지 말로 쟁송(諍訟)하는 언어가 있는데, 이러한 언어는 무슨 법을 말하는 것입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이는 희론(戱論)일 뿐, 중생을 말하지 않습니다.
범천이여, 희론은 있으나 항상 아만(我慢)은 없습니다. 이러한 뜻 때문에 무물(無物) 안에서의 희론일 뿐이며, 참으로 희론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희론을 보지 않습니다.
만약 희론을 보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세간을 행하지 않으며,
만약 세간을 행하지 않는다면 다른 견해가 없으며 다른 견해가 없기 때문에 열반이라 말하는 것입니다.”
범천이 물었다.
“문수사리여, 열반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셨는데 어떻게 대치(對治)하는 것을 열반이라고 하십니까?”
대답했다.
“범천이여, 열반이라는 것은 저것과 이것[彼此]의 인연이 서로 화합하지 않고, 무명(無明)을 일으키지 않고 세간행(世間行)을 일으키지 않는 것입니다.
만약 행을 일으키지 않으면 생겨남이 없고, 만약 생겨남이 없다면 이것을 열반이라 합니다.
만약 모든 행을 일으키지 않는다면 이름하여 적정(寂靜)이라 하며,
그런 법을 성도(聖道)를 증득했다고 하며,
항상 생겨남이 없는 것을 4성제(聖諦)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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