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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하사의 일상-힘날세상 스크랩 2002년 동아마라톤대회 참가기
미라마 추천 0 조회 28 12.07.23 14:46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서울의 얼굴

1.

언제나 그렇듯이 서울은 낯선 얼굴로 다가왔다.

중곡역 지하철 출구로 밀려드는 날카로운 바람은 초행길인 나의 마음에 잔뜩 주눅이 들게 하기에 충분하였다.

어둠에 젖어가는 서울!

서울은 그런 얼굴로 나를 맞아 주었다. 어린 시절을 같이 자란 친구 집을 찾아가는 발걸음이 무거운 것은 부상에서 완전히 회복이 되지 못한데 대한 두려움보다는 서울이라는 거대한 실체 앞에서 자꾸만 작아져 가는 내 마음 때문일 것이다.

서울은 언제나 내게는 그런 얼굴이었다. 99년 방송대학교 중문과 4학년 어학경시대회에 참가하여 처음으로 찾아 갔던 대학로의 아침은 얼마나 나의 가슴을 짓눌렀던가. 시험을 치르면서 내가 흘린 땀을 단순히 시험이라는 중압감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내가 서울에서 있었던 기간을 다 합해도 한 달이 못된다. 그래서 서울은 항상 나에게는 낯설고 두려운 존재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은 왠지 느긋할 것 같다. 친구녀석이 고향 친구들 몇을 소집해 놓았단다. 8시가 넘어서 우리는 중곡동 용마산 자락 술집의 흥청거림 속에 젖어들었다.

친구는 소주잔을 건네며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너 정말 내일 뛰냐?”

내가 마라톤을 한다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어린 시절 나는 달리기와는 전혀 무관하였다. 그런 내가 동아마라톤을 달리겠다고 나섰으니, 아무리 번호표를 보여 주어도 믿지 않는다. 안내 프로그램에 실린 작년도 참가 수기와 사진을 보고도 쉽게 받아 들이지 않는 눈치이다.

새벽 한 시가 넘어갈 무렵 녀석들과 나는 소주잔을 놓으며 일어섰다.

약간 취기가 올라온 탓인지 서울의 밤이 포근하게 느껴졌다. 동아마라톤 전야는 그렇게 깊어갔다.

 

2.

갈증에 눈을 떴을 때는 4시였다. 나는 깊은 잠을 자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분명히 무엇인가에 가위눌리고 있다는 것이다. . 모든 것을 잊으려는 마음으로 다시 누워 잠을 청해 보지만 눈은 더욱 더 또렷해진다. 옷을 주워 입고 거리로 나섰다. 공기가 차갑다. 인도를 따라 서서히 달렸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서울의 거리를 밟으며 한 시간 가량 달렸으나 어디를 어떻게 달렸는지 전혀 모르겠다. 이방인스러움을 어쩔 수 없었다. 그 때 문득 서울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정말 서울에서 살고 싶었다. 모두가 바쁘고 정신없이 살아가는 모습이 사람 사는 것같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틀림없이 서울 생활을 하게 된다면 한 달이 못되어 전주로 내려간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금산사를 넘어가는 눈물의 고갯길과 중인리 벌판을 버려 두고 어떻게 서울로 간단 말인가. 용마산이 빙그레 웃으며 내려다 보고 있었다.

샤워를 하면서 오늘 달려야 할 코스를 더듬어 본다. 작년과 동일하기 때문에 눈에 선하였다. 정신을 모으고 출발부터 결승선을 밟을 때까지의 내 모습을 스스로 그려본다. 그리고 다짐을 한다. 즐겁고 즐겁게 달리자. 그러나 작년 4월 전주 벚꽃 마라톤 대회 이후 연습을 거의 하지 못한 사실이 의식의 심층부에서 꿈틀거리고 일어선다. 아내가 보온병에 넣어 준 닭고기 미역국(나는 대회날 아침에 꼭 이것을 먹는다.)을 마시면서 밀려드는 객창감을 떨쳐버리고 혼자서 광화문으로 향했다.

 

3.

민족의 심장부인 광화문!

이순신 장군의 동상을 바라보며 구 경기여고 운동장으로 들어섰다. 작년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출발 준비에 바쁘다. 시간 여유가 많았으나 택배 차량에 옷을 맡기고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다가 고향 후배를 만났다. 인상이 좋고 색시같이 순하던 친구였는데 30년이 지난 지금 마라토너가 되어 여유 있는 얼굴로 웃고 있었다. 우리는 30년의 공간을 채우며 어린 시절을 돌이켜 보기도 하였지만 주로 마라톤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후배는 처음으로 풀코스에 도전한다고 하였다. 출발점에서 서로를 격려하고 그가 먼저 출발하였다.

내가 소속되어 있는 전주마라톤클럽 회원들이 서울마라톤에 참가하였기에 이번 대회에는 4명이 참가하였고, 나는 부상으로 1년 내내 거의 달리지 못하였기에 하프코스에 신청하였다. 부상회복에 대한 자신감이 없었기에 참가 신청을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하프일망정 서울을 달리고 싶었다. 하프. 내년에는 하프를 없앤다고 한다. 거기에는 하프는 마라톤이 아니라는 시각이 있는 듯하다. 문득 마라톤을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말했지만 마라톤은 마음 먹은 만큼은 달릴 수 있다고 했다. 하프만 뛰기로 하고 달리면 하프도 풀코스 못지 않게 죽을 맛이다. 동아대회 춘천 대회에서 하프가 없어지는데 대해 왠지 아쉬움이 앞선다.

하프의 출발 신호가 떨어졌다. 하프는 대포도 쏘지 않았다. 많은 사람의 물결. 물결. 그리고 물결. 자연스럽게 그 흐름에 몸을 맡긴다. 종묘를 지나면서 어느 정도 길이 트였다. 동대문을 지났다. 남대문에 비해서 왜 그렇게 왜소해 보이는가? 전주에는 사대문중 유일하게 풍남문이 남아 있다. 동대문보다 규모가 작을 것 같은데 온갖 치장을 해 놓아서 그럴듯하게 보인다. 동대문도 주변을 정리하고 단장을 해 준다면 위엄이 있게 보일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5km를 지나면서 몸 상태를 점검해 보았으나 이상이 없는 것 같다. 오른쪽 발목의 이상이 느껴지지 않는다. 왼쪽 아킬레스건도 아무렇지가 않다. 부상의 길고도 긴 터널을 빠져나오는 것인가.? 음료수를 한 모금 마시고 있는데 1시간 30분 페이스 메이커가 지나간다. 아! 그들은 만나서는 안될 사람들이었다. 그들을 보는 순간 갑자기 욕심이 발동해버린 것이다. 자연스럽게 오버페이스를 하게 된 것이다. 내가 하프를 달려본 최고 기록이 1시간 46분인데다가 연습을 거의 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상회복을 확인하는 정도에서 2시간 정도의 페이스로 달리겠다는 생각이었는데 자제력을 잃고 그들의 뒤를 따라붙어 버린 것이다.

아차산역을 통과하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부른다. 돌아보니 어제 만났던 친구녀석들이 히죽거리고 있다. 녀석들은 인도를 따라 같이 달린다. 검은 양복에 넥타이를 메고 달리는 녀석들의 모습은 많은 사람들의 눈요기감이 되었다. 페이스메이커의 행렬은 그 사이 저만큼 멀어져 가고 있다. 그러나 녀석들을 뿌리치고 내달릴 수는 없었다. 잠실대교가 보이는 지점까지 그들과 동행하다보니 이미 페이스는 흐트러지고 말았다. 잠실대교를 건너면서 페이스를 올렸다. 이제 다리를 건너면 15km지점이다. 그렇다면 나머지는 6km이다. 지금 상태라면 힘차게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롯데월드 로터리를 돌면서 허벅지에 통증이 오기 시작했다. 통증은 점점 더 심해졌다. 마라톤은 정직한 것이다. 연습 부족의 결과가 확인되는 순간이었다. 풀코스와 갈라지는 지점이다. ‘작년에는 저쪽으로 달렸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약간 머쓱해졌다. 마음 속으로는 마지막 스퍼트를 생각해 보았지만 이미 페이스를 잃은 상태였고 허벅지의 통증이 너무 심해서 힘겨운 레이스를 펼칠 수밖에 없었다.

올림픽 공원으로 들어섰다. 결승점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는데 그 거리가 그렇게 힘이 들었다. 걷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그 때 다시 녀석들의 환호가 들려왔다. 어느새 지하철을 이용하여 잠실로 왔나 보다. 힘이 났다.

친구. 그것도 어린 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는 언제 만나도 즐겁고 힘이 난다. 녀석들과 같이 어울려 돌아다녔던 시골의 정경이 눈에 선하다. 학교 가는 길에 서 있던 포플러 두 그루가 생생하다. 갑자기 개울을 막아 놓고 물을 품어내고 고기를 잡던 일이 생각났다. 갑자기 웃음이 났다. 검은 양복을 입고 달리는 친구가 고기 잡는 데는 항상 대장이었다. 녀석의 눈길은 날카로웠다. 어느 곳을 막고 품을 것인가 녀석은 항상 정확하게 짚어 내었다. 우리는 그의 지휘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물을 품고 난 후 메기나 가물치, 뱀장어 등 큰고기를 잡는 것은 언제나 그의 몫이었다. 그의 손은 재빠르게 움직였으며 언제나 우리들이 도저히 잡지 못하는 고기들을 잡아 내었던 것이다.

결승점에 다다랐다. 누구도 맞아주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결승점에서 어린 시절을 같이 했던 친구들과 함께 깊숙이 가라앉아 있던 유년시절과 고향의 하늘을 떠올릴 수 있어서 참으로 좋았다. 언제나 그렇듯 결승점은 복잡하고 호들갑스럽고 시끌벅적하다. 사실 마라톤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별 것이 아닌데 맞아 주는 사람들은 상당히 과장을 하게 되는 곳이 결승점이 아닌가 한다. 그래서 결승점은 살아 있는 것이고, 그 약간의 과장은 필요한 것일 것이다.

1시간 48분(공식기록 1시간 46분02초)이라고 친구들이 기록을 말한다. 녀석들은 나를 잔디밭으로 앉히고 칩을 반납하고 옷을 찾아오고 물을 먹여주는 등 호들갑을 떤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다고 해보지만 막무가내다. 잔디밭에 앉아서 그들의 봉사를 받아 본다.

“ 광모야! 너 학교 다닐 때 달리기라면 항상 꼴찌였잖아. 그런데 어떻게 마라톤을 다 하냐? 정말 대단하다.”

어린 시절의 순수한 마음으로 부천에서 살고 있는 현구가 특유의 표정을 하며 다가선다.

“ 마라톤이니까. 달리고 싶은 마음만 있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 ”

“내년에는 같이 달리자. 나도 꼭 마라톤을 할거다.”

녀석이 내미는 물컵 너머로 봄날의 햇살이 이제는 낯선 얼굴이 아닌 서울의 하늘에서 무르익고 있었다.

 

4.

고속버스 터미널까지 따라나선 친구들과 헤어져 돌아오는 길은 흐뭇했다. 클럽 동료들과 전세버스를 타고 돌아오는 기분과는 또 다른 느낌이었다. 광화문, 종로, 동대문, 신설동, 군자교, 잠실 등을 달리며 서울에 대한 낯선 느낌이 많이 가셔졌다. 내 몸으로 달렸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간 많은 시간들을 되돌아 보며 마라톤을 통하여 얻었던 많은 것들을 생각해 보았다. 자신감이나, 지구력, 소화불량, 디스크 수술의 후유증 등 육체적으로 강인해진 것도 있었지만, 클럽활동을 통해서, 인터넷상에서 또한 주로에서 만났던 많은 사람들의 얼굴들이 더 선명하게 다가왔다. 지역이나 연령을 뛰어 넘어 서로를 위해주고 생각해 주는 그 많고 많은 사람들과의 만남. 그것은 마라톤이 가져다주는 매력이 아닌가 한다.

마라톤!

그것은 단순히 42km를 달리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달리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과 맺어가는 굳건한 사랑의 길을 달리는 것이다. 그래서 ‘마라톤은 신이 내린 선물’이라고 하는 것이리라.

 

   2002년 힘날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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